김 정 남(언론인)
어릴 적 나는 커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집안이 가난해서 하루 속히 가계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 내게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되었다. 선생님을 우러러보는 분위기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니 선생님을 뒤따를 때는 그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내가 좋아했던 말은 이런 것들이 아니라 “선생님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진정 제자를 사랑하여 있는 힘을 다하고, 성심을 다하여 가르친다면 과연 선생님의 똥은 개도 먹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 길은 그만큼 힘들고 고달프지만, 성스러운 길로 내가 가야할 길처럼만 느껴지던 것이었다.
길을 가르쳐주는 동행자
그 때 가장 빠르게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길은 사범학교 병설중학교를 거쳐 사범학교를 졸업하는 것이었다. 그때는 가난한 집의 수재들이 그 길을 갔다. 나보다 한 해 먼저 초등학교를 졸업한 누나도 그 길을 갔다. 나는 결국 그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샜지만, 선생님이 되고 싶은 것이 집안내력이었던지 내 형제 7남매 가운데 네 명이 선생님이 되었다. 그 가운데 둘은 내외가 함께 선생님이고, 거기다 선생님을 했던 삼촌 내외까지 합치면 과연 우리 집안은 교육가족이라 할 만 하다.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보다는 인생을 가르치는 스승을 만나고 싶었다. 수업료를 못내 교실에서 쫓겨나올 때 나를 위로해줄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나를 받쳐줄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 내가 갈 길을 몰라 헤맬 때 ‘이 길이 어떨까’ 조언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초·중·고교를 다니는 동안, 정말로 나에게 인생의 길을 가르쳐주고, 나를 사람의 길로 이끌어주는 선생님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고, 그런 점에서 나의 학창시절은 너무도 고달프고 삭막했다.
아버지로부터는 생명을 받았으나 스승으로부터는 생명을 보람 있게 하기를 배웠다고 푸르타크는 말했다. 선생님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쳐주는 교사만이 아니라, 길을 가르쳐주는 동행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교직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 말한다. “당신이 있어 내가 사람이 되었고, 당신이 있어 내 인생이 달라졌다”고 고백하는 제자가 단 한 사람만 있다면 너는 성공한 교육자라고, 제발 그런 교육자가 되어달라고 당부한다. 내가 선생님이 되어 하고 싶었던 일을 그들이 교직에서 이루어주기를 간곡히 바랄 뿐이다.
너는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꽃
맹자는 세상 사람에게 공통되는 폐단을 자기가 다른 사람의 스승되기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지금도 할 수만 있다면 선생님이 되고 싶다. 어디 꼭 교직을 가져야만 선생님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이런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내가 서울을 떠나 시골로 낙향해 살 때가 오면, 나는 내가 사는 인근의 초·중·고등학교를 찾아가 교장선생님에게 이런 부탁을 할 작정이다. 어떤 선생님이 부득이한 일로 결근을 하거나 수업을 할 수 없을 때, 그 시간을 나로 하여금 보강(補講)케 해달라고….
다행히 내가 시간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 한 시간 있는 힘을 다하여 나는 그들의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 동안 내가 듣고 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들을 가르치고 싶다. 그 학교가 산간벽지 오지면 오지일수록, 학생들의 형편이 딱하면 딱할수록 정성을 다해 선생님 노릇을 하고 싶다. 내가 꼭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너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는 이 세상에서 너만의 색깔과 향기를 가지고 태어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하나뿐인 꽃이라고….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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