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노트(영화일반론)

독일영화사

장코폴로 2010. 1. 22. 07:59

■독일영화의 역사


영화가 이 세상에 나온지 100여년이 지났다. 움직이는 그림, 활동사진 등으로 불려졌던 영화는 20세기 대중문화를 지배한 장르이다. 2000년을 맞는 현재의 시점에서 영화는 TV에 밀려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극장을 찾은 인구 면에서 보면 1956년이 독일 영화의 전성기이다. 이 해에 8억이나 되는 사림아 영화관을 찾아 1인당 평균 13/4편의 영화를 보았다. 그러던 것이 1994년에는 1.33억명이 영화를 관람하여 한해 평균 1.5편의 영화를 보는데 그쳤다. 그러나 관객의 감소를 영화장르 또는 산업의 쇠퇴로 보기는 어렵다. TV드라마나 TV영화 다큐멘터리 등이 영화의 기법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TV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상당부분이 영화인 것을 감안하면 영화는 앞으로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인간과 함께  할 것이다.



1. 20/30 년대


독일의 영화는 20세기 초 20/30년대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의 영화는 소위 표현주의 영화이다. 대표적인 감독으로는 프리츠 랑 , 루비취, 무르나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프리츠 랑의 업적이 두드러진다. 1890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난 랑은 대학에서 건축과 회화를 전공했다.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일로 영화계와 관계를 맺었다. 1919년 잡종이라는 영화로 감독에 대뷔를 했고. 1921년 피곤한 죽음을 통해 예술적으로 평가를 받는다. 그의 대표작은 뭐니뭐니 해도 "대도시" 와 "엠M"이다. 대도시는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갈등을 그리면서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 영화에서는 여주인공 마라아와 사용자의 아들 프레더가 사랑으로 결합하며 사용자의 대표인 아버지 요한이 노동자의 대표와 손을 잡는다. 그러나 전체적인 주제는 산업사회의 자동화로 인해 인간이 느끼는 갈등과 소외, 그리고 노사간의 대립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엠은 살인자를 뜻하는 독일어 뫼르더의 첫 엠자이다. 어린이를 살해하는 살인자가 나타나면서 도시 전체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하지만 단서조차 잡을 길이 없다. 이 영화는 그림자와 어둠을  강조하여 불안과 위협, 공포를 잘 표현한다. 살인자와 경찰 그리고 범죄 단체가 벌이는 숨바꼭질로 인해 시민들은 더욱 불안하다. 이 영화는 어린이를 살해한 범인을 잡아 심판하기 보다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모들이 아이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쓰도록 경고하고 있다. 또한 이 영화는 당시 독일을 지배하기 시작한 국가 사회주의적 경향을 풍자하고 있다. 살인자, 범죄집단, 경찰로 대변되는 일종의 폭력집단이 주민들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프리츠 랑은 1993년 나치의 영화제작 요구를 거절하고 프랑스와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이민한다. 나치시대 독일영화는 선전선동의 도구가 되고 독일의 대표적인 영화제작사 우파 역시 영화의 예술성을 포기하고 선전선동용으로 변하고 만다. 다만 선전선동 영화인 다큐멘터리 기법만이 전후의 영화기법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2. 전후시기



독일 영화는 전후에도 경제의 피폐로 인해 제대로 발전을 하지 못했다. 또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상황 속에서 유럽의 영화는 상대적으로 위축 될 수밖에 없었다. 인적 물적인 면에서 헐리우드 영화는 전후 세계의 영화 시장을 지배한다. 제작과 배급, 극장이라는 영화의 세가지 루트를 헐리우드가 장악했기 때문이다. 1995년 현재 독일에는 3,300개 정도의 영화관이 있지만 이곳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80 %가 헐리우두 영화이다. 독일에서 만든 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10%에불과하다.



3. 50/60/70 년대


50년대 독일 영화는 정치성을  배제한 통속적인 코미디 영화나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홈 드라마 수준에 만족해야 했다. 독일의 영화가 그나마 세계 무대에 진출한 것은 60년대부터이다. 1962년 프랑스의 누벨 바그와 함께 독일에서도 새로운 독일영화 운동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단편영화 축제가 열리던 오버하우젠 선언을 채택한다. "옛날 독일 영화는 죽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믿는다." 히틀러의 국가 사회주의 시절  체제에 야합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던 독일 영화가 새로운 노선을 설정하는 계기가 온 것이다. 1966/67년 새로운 프로덕션들이 생겨나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영화 진흥책이 나온다. 알렉산더 클루게가 만든 "이제의 여자"가 1966년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국제적인 평가를 받는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죽음보다 차가운 사랑" 역시 헐리우드 스타일의 영화로 그때까지의 독일 영화와는 달리 흥행성을 고려한 것이었다. 이 영화 역시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되었고, 이후 파스빈더는 오락과 흥행을 추구하는 영화에 몰두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전후 독일의 이중성을 고발한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 베로니카 포스"의 갈망 이 있다. 그러나 파스빈더는 1982년 마흔 여섯의 나이로 죽었다. 50년대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폴커 쉴렌도르프ᄑ역시 문학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무질의 소설에 토대를 둔 "생도 퇴어레스"(1965)하인리히 볼의 작품을 화화화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975)와 권터그라스의 소설을 영화한 "양철북"이다. 이중 양철북은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작품으로 시대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양철북은 또한 1979칸느 영화제에서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요한계시록과 함께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70년대에는 독일은 또 하나의 위대한 감독을 가지게 된다. 베르너 헤어초크 그는 "아기레 신의 분노", "보이체트 피츠파랄도" 등을 통해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다. 헤어초크의 영화세계는 기이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인물들은 일상 속의 평범한 시민이 아니다. 기법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사실주의를 도입하면서도 지나친 동경과 참여의식을 기저에 깔고 있다.



4. 80/90 년대


현재 독일을 대표하는 감독은 빔 벤더스이다. 1945년 생인 벤더스 1971년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으로 영화를 시작, 1983년 "파리텍사스"로 1984년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는다. 그의 작품에는 새로는 경험을 얻기위해 일상을 탈출하려는 인간의 모습이 운명적으로 그려져있다. 그리고 통상 있을 수 있는 사건들이 꼼꼼하게 다루어진다. 그는 1986/87년 "베를린 천사의 시"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87년 칸느영화제 감독상을 받아 더 유명해 졌는데 철학, 문학, 음악, 미술이 영화예술 속에 절묘하게 녹아들어간 종합예술이다. 베를린 하늘의 천사 다니엘과 서커스단에서 그네를 타는 여자 마리온의 사랑을 축으로 하는 이 영화는 상징을 통해 삶과 역사의 의미를 추구해간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여러 가지문제를 예술적으로 승화 시켰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한마디로 어렵다. 킬링타임용이 아닌 진정한 영화팬을 위한 감상용이기 때문이다. 독일영화가 가지는 특성이 바로 이 상징성과 난해성 그리고 철학성이다

이러한 독일영화의 맥을 이으면서도 재미와 시사성을 보여주는 감독이 80년대 중반에 나타난 퍼시아들론이다. 그는 1984년에 대뷔하여 1987년 "바그다드카페"를 통해 미국에 진출했고, 그 작품을 통해 유명해졌다. 바그다드 카레는 밴더스의 파리텍사스처럼 로드무비적인 성격을 보여 주면서도 웃음과 사랑을 담고 있다. 라스베가스로 가는 길 활량한 사막에 위치한 바그다드카폐가 독일여성 야스민에 의해 절서와 활기,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야스민과 브렌다라는 아주 다른  두 여성이 국가와 인종, 지식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어쩌면 상당히 이상적인 경향의 영화이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불어닥친 페미니즘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아들론은 91년 "연어알"을 냉놓았다. 이 영황 역시 우연히 만남 두 여성이 동고동락의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가까워지는 보습을 보여준다. 다만 그 배경이 알래스카의 설원과 서베를린이다. 그러나 93년에 나온 "영거 앤 영거"는 전편들과 상당히 다르다. 중년 남자가 사별한 아내의 환영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내용이다. 이들론은 환상적이면서도 마적인 화면을 통해 독일영화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독일식 표현주의 영화와 신독일 영화(New German Cinema)


■표현주의 expressionismus


표현주의는 현대 예술에서 인간의 감정의 거친 힘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예술 운동의 이름을 따서 붙인 하나의 영화운동(1919~1931)이다. 에드바르드 뭉크Edward Munch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는 굴절된 인물과 밝은 색감을 사용하는 이 예술 운동의 기수들이었다. 이 운동은 독일과 독일어가 통용되는 나라에서 회화뿐만 아니라 문학, 연극, 건축 분야에서도 일어났으며 현실 및 전통적 예술에 대한 부르주아의 개념을 거부하였던 반부르주아 운동이다. 이 표현주의는 영화에서 상당히 양식화한 형태로 나타났다. 기울어진 카메라 각도는 신체와 사물의 형태 그리고 무대를 왜곡시켰다. 세팅은 기괴하고 부조화로 가득 차 거의 괴기적 분위기를 창출한다. 조명도 극적인 그림자를 창조하는 대조가 강한 것을 사용하였고 매우 양식화한 것이었다. 다루는 주제 또한 초현실적이거나 괴기적이며 부자연스러운 행위나 그러한 현실에 관한 것이었다. 등장인물의 주관적이고 때로는 광적인 세계를 스크린 위에 투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표현주의 영화이론은 영화란 물리적인 현실세계와 영화적인 현실세계 사이의 편차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감독은 단지 소리, 색조, 깊이, 시공간적 연속 등을 이용하여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세계를 만들뿐이라고 주장한다. 카메라가 잡은 과일과 우리가 잡는 과일의 지각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며 단지 어떤 형식이냐에 따라 우리가 그 형식처럼 인식할 뿐이라는 것이다. 표현주의 이론가들은 이런 차이점을 지적하는 한편 '형식'을 대단히 존중하였다. 그들은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사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욱 완벽해진다 할지라도 그것이 정말 완벽 하에 사물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 뿐 아니라 실제로 영화의 표현주의적 특성을 저해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사실적으로 찍는다 하더라도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찍는 가에 따라 사물은 달라질 수밖에 없고 결국 영화란 만드는 사람이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주의자들은 카메라의 작동 속도와 각도, 앵글의 크기, 조명의 활용 그리고 이들을 어떤 시공간 속에다 배치(편집)하느냐에 따라 자신들이 그리고자 하는 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영화란 현실의 재구성이며 조작자이자 재해석이라는 것이다.




■독일식 표현주의 영화(1919-1925)


세계대전을 끝낸 독일에는 식량부족, 실업률 증가, 폭동 등의 사회적 문제가 만연하고 있었다.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도 독일은 전후 예술의 중심이 되었는데 특히 베를린에서 많은 예술가 들이 모여들었다. 몇몇 지식인들이 영화를 무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유럽 (특히 영국)의 상황과 달리 독일인들은 영화에 호기심과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독일 예술계를 이끌어가던 많은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영화제작이 활발해지는데 그들의 공통된 취향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탄생의 모태가 된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는 멜로드라마와 활극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미국영화와 크게 비교된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경도되어 있던 독일의 예술가들은 인간의 심리적 영역을 영화로 표현하고자 그들만의 독특한 방법을 발전시킨다. 인간내면의 심리적 모습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실제와 다른 변형된 세트나 소품, 분장, 조명등을 이용하였다. 이 결과 우리가 화면에서 볼 수 있는 피사체들은 주관적으로 극대화되어 일그러진 형태들이다. 표현주의 영화는 당연히 연출을 하는 감독 만큼 세트와 소품을 담당하는 미술감독의 힘도 크게 작용한다. 미술감독은 감독과 주연배우 다음으로 많은 급료를 받았고 일류 미술감독들은 주인공보다 많은 액수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후에 감독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한다.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F.W.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등이 이 시대를 빛낸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걸작이다.

 




新독일영화(1966~1982)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고 우리는 새로운 영화를 믿고 지켜 나아갈 것이다." 1962년 2월 28일, 오버하우젠에 모인 26명의 젊은 감독들은 자신들이 서명한 선언문을 낭독하며 새로운 독일영화의 도래를 천명하였다. 독립제작 방식으로 단편영화를 제작해 오던 그들은 단편영화가 새로운 영화작가 탄생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으며, 새로운 영화언어를 구사하는 독일영화의 밝은 미래을 약속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로 이들 젊은 작가들의 단편영화가 지난 몇년간 국제영화들에서 거둔 성과를 들면서.


■나치를 비판하는 新독일감독들



그들의 주장은 허풍이 아니었다. 기성영화인들을 격렬히 비난하며 새로운 방식의 작업을 통해 영화를 제작했던 신독일영화의 감독들은 왕성한 활동으로 독일영화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드디어 세계는 독일영화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관심들에 걸맞은 걸작들이 탄생했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폴커 슐렌도르프, 알렉산더 클루게, 한스 위르겐 지버버그, 베르너 헤어조그, 빔 벤더스 등이 신독일영화를 이끌던 주역들이다.

신독일영화의 특징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독일의 정신적 원류를 찾아내기 위한 영화적 탐색이다. 그 탐색은 그들이 현재 갖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문제등 그들의 부끄러운 과거 (나치즘으로 대표되는 것)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위장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냉철한 응시를 통해 새로운 독일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들이 들추어낸 아픈 과거는 독일인 스스로가 만들어낸 히틀러라는 독재자에 관한 것이다. 세계대전의 주인공인 히틀러는 독일의 브르주와계급과 쁘띠 브르주와계급이 만들어낸 우상이다. 불황으로 경제적 혼란에 시달리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중상류층 계급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노동자 계급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대립한다. 안정을 추구하는 그들의 열망이 히틀러라는 독재자가 탄생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고 신독일영화의 작가들은 나치즘과 파시즘의 배경에는 독일국민들의 비틀어진 역사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치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연극, 영화, 건축 등을 철저히 이용했다. 히틀러와 나치의 충직한 선전물이 되었던 영화는 몇몇 다큐멘타리의 뛰어난 미학적 가치를 지니기도 했다.

전쟁 직후의 독일영화는 '하이마트 Heimat'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들이 주를 이루었다. 하이마트 영화는 독일의 동화나 우화, 요정들이 등장하는 현실도피적인 이야기 들을 담고 있는 영화를 말한다. 신독일영화 작가들은 나치찬양의 영화나 하이마트 영화에 반하여 현실 속으로 파고드는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 그들은 할리우드 영화의 허구적 재미를 비판하며 영화가 사회변혁에 일조 하기를 원했다.

신독일영화는 각 개인적 차원에서 감독의 스타일과 형식보다는 사회, 경제, 정치, 문화, 역사적 의미에서 그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아버지 세대의 잘못을 잔인할 정도로 발가벗겨 그들이 안고 있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를 말한다. 그들은 반성이라는 이름의 처방을 스스로 내린 용기 있는 젊은 영화인들이다.

 

■신 독일영화의 삼대 거목들


클루게, 지버버그, 헤어조그 등 신독일영화 기수들의 작품은 그들의 정치적 상황과 비상업적인 영화라는 이유로 국내에 소개되지 않고 있다. 아쉽게도 그들의 영화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지하시장에서 불법거래되는 비디오와 소수만이 이용한 시네마떼끄에서 볼 수 있었다. 불행히 우리가 극장엣 볼 수 있었던 이들의 영화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 신독일영화의 대표적 감독인 폴커 슐렌도르프의 [양철북]과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파스빈더의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슐렌도르프는 다른 신독일영화 작가들에 비해 많은 작품이 소개된 친숙한 감독이다. 그의 80년도 작품 [양철북]은 후기 신독일영화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작이다. 슐렌도르프는 신 독일영화 작가중 가장 대중적인 감독이다. 그는 전후시대의 대표적 작가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을 성공적으로 영화화하였다.[양철북]은 오스카라는 소년의 눈으로 파시즘의 허상을 고발한 작품이다. 어른들의 어리석은 행동에 염증을 느껴 성장을 거부한 오스카는 기성영화에 반기를 들고 작업해온 신독일영화 작가들의 모습의 다름 아니다.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는 신독일영화의 경향에서 다소 벗어난 작품이지만 후기 벤더스의 대표작이라고 불리울만 하다. 미국문화에 찌든 전후 독일의 암울한 모습을 그린 [거리의 왕]과는 달리 좀더 시적인 영상과 인간존재에 대한 명상이 담겨있다. 미국에서 촬영된 [파리, 텍사스]는 존재의 근원을 찾는 한 인간의 슬픈 떠돎을 그리고 있다. '파리 텍사스'라는 가상의 지명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은 독일의 문화의 원류를 찾아 길을 떠나는 [거리의 왕]의 주인공의 변화된 모습이고 삭막한 콘크리트 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슬픈 초상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벤더스의 영화적 감수성이 가장 섬세하게 드러난다. 인간의 마음을 읽는 천사의 눈으로 본 베를린은 인간의 번민과 고뇌, 분단의 상처를 안고 있는 도시다. 페터 한트케가 쓴 시나리오와 벤더스의 아름다운 영상에는 베를린에 대한 그들의 애정이 녹아 흐른다. 벤더스는 줄곧 자신의 영화에서 비판해 오던 미국문화를 쫓아 미국으로 떠났다. 영화 작업을 위해 미국에서의 몇 년간은 그의 영화일생 중 가장 치욕적인 기간이었다. 자본은 그의 재능을 갉아먹었고 벤더스는 초라한 꼴로 조국에 돌아와야만 했다. 조국에 돌아온 벤더스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독일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아름답게 고백하였다. 그는 분단의 상처를 지닌 독일인이고 베를린은 상처 입은 그가 살아가야 할 터전이다.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은 신독일 영화의 대표작이자 파스빈더 영화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룸이다. 파스빈더는 그의 곽격한 정치적 발언으로 유명하다. 그는 초기 실험적 영상에서 벗어나 더글라스 서크의 영향을 받은 멜로드라마를 제작한다. 그는 여성이 주인공인 멜로드라마의 틀 위에 정치적 메타포를 삽입하여 대단히 아이러니컬한 영화를 만들었다. 파스빈더는 여자의 입장에서 결혼생활의 종속성과 사회의 억압을 비판하였다. 그는 이후 [퀼렐]에서 프랑스 작가 주네의 생애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일상의 고정관념을 깨뜨렸고,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서 인종차별과 나치즘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하였다.

신독일영화가 퇴조를 보이는 시기는 80년대가 접어들면서이다. 이들 작가군 역시 누벨바그 작가처럼 미국영화계의 진출등으로 와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독일영화은 파스빈더가 죽은 82년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다. 파스빈더의 죽음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신독일영화의 얼굴이며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죽음은 신독일영화의 죽음을 의미했고, 그후 독일영화에서는 70년대 영화의 새로움을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분단조국의 상황과 독일문화의 원류를 찾아 끊임없이 영화적 고민을 해 온 이들의 노력이 맺은 결실일까? 두개의 독일은 하나의 단일민족국가로 통일되어 '신독일'이 탄생되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들 영화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영화보다 더 큰 무엇이 숨어있지 않을까?



감독 소개


∙로베르트 비네(Robert Wiene)

유대인. 영화감독. 대본작가. 영화제작자.

작센 궁정극장의 배우 칼 비네의 아들이며 그의 동생 콘라드 비네도 연극배우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 로베르트 비네는 1894-96년 베를린 대학과 비엔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 1912년부터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대본작가 및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기 시작. 그는 코미디, 멜로 드라마, 통속물에 속하는 영화의 대본을 썼으며 환상적인 것, 초감각적인 것, 폭력자의 최면적 힘 , 환각과 광기가 지배적이면서 그는 '진기한 사랑들'에 관한 이야기꾼으로 알려졌다.

특히 독일 무성영화 시대의 유명한 여배우 헨리 포르텐이 출연하는 영화 18편에서 작가와 감독으로 참여했다. 1919/20년에 비네는 베를린에서 자신의 영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감독했다. 그는 이후의 영화들인 <진실한 사람>(Genuine 1920)과 <라스콜리니코프>( '죄와 벌'의 영화화 1923)에서도 <칼리가리>에서 처럼 환상적인 소재와 추상적인 장치들을 이용하는 시도를 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 이후 무르나우감독의 <사타나스>(Satanas)의 대본을 썼으며, 1924년 비엔나로 가서 <오를라하의 손>(Orlachs Hande, 1924), 오페라를 영화화한 <장미의 기사>(Rosenkavalier, 1925), <他人>(Der Andere, 1930),을 감독했고 <태풍>(Taifun, 1933)은 독일에서 상영 금지를 당했다. 유대인인 비네는 히틀러의 등장이후 1933년 영국으로 피신했고 다시 1936년 (혹은 37년) 프랑스로 갔으며 <최후의 통첩>(Ultimatum, 1938), 촬영을 끝내기 며칠 전에 타계했다. (이 영화는 <일요일의 사람들>을 감독했던 Robert Siodmak에 의해 완성되었다. )

그는 주제의 독창성과 배우들에 대한 독특한 연기지도에고 불구하고 상업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성향을 드러낼 수 있었던 독일 영화의 전성기에 살다간 풍운아적 인물이었다.

훗날 영화 이론가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는 그의 저서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Von Caligari zu Hitler)"에서 이 영화 속에 담긴 심리가 곧 있을 히틀러의 파시즘을 예고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영화 속에 나오는 광기와 정신분열이 파시즘 독일의 집단적 광기를 예언한 것이라는 그의 비평은 정신분석 영화비평의 고전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프리드리히 무르나우 Friedrich W.Murnau

독일 표현주의 감독. 로베르트 비네, 프릿츠 랑과 더불어 독일 표현주의 최고의 감독들 중 한명이다. 대표작으로는 1992년작 <노스페라투 Nosferatu>와 1924년작 <마지막 미소 Der letzte Mann>이 있다. 독일은 1차 대전 당시 타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자극영화 자원을 위해 1917년 UFA라는 회사를 설립, 자국의 영화인들에게 막대한 경제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따라서 이는 처음에는 1차 대전에서의 군국주의적 선전물을 만드는 시스템으로 작용했으나, 1918년 1차대전이 막을 내린 후 변모하게 된다.

장사가 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도가 있었고 이때 당시 타 예술 장르에서 유행하던 '표현주의'양식이 국제 시장에 구매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서 제작된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1920). 이로 인해 '표현주의 영화'들이 유행처럼 계속 만들어지게 되었다. 무르나우 감독은 이러한 시대 조류 속에서 자신의 색채를 영화에 투영한 감독이다. 브람스토커 원작의 '드라큘라'를 영화로 옮긴 <노스페라투>는 표현주의를 하나의 양식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작품이다. 이 영화 속의 화면 구성과 촬영각도, 그리고 각종 미장센들은 후대 공포영화의 원형이 되었다. 공포 영화와 불안의 심리가 화면 속에서 잘 배어 나오는 작품들이다. 그의 또 다른 걸작 <마지막 미소>의 경우, 표현주의의 가능성을 더욱 열어 놓았다.

더 이상 공포, 광인을 다루지 않고도 표현주의적인 기법들이 가지는 가능성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 유명한 '만취' 장면에서 그는 프랑스에서 많이 쓰던 촬영 방식인 '들고 찍기'를 도입한다. 이것은 만취한 노인의 심리가 화면에 그대로 투영되어 마치 관객들도 함께 취한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는 평이한 내러티브를 가진 '사실적'인 영화이지만, 이처럼 표현주의적인 기법들이 사용됨으로써 그 생명력이 더욱 증대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주의 유행이 짧게 끝나며 무르나우는 1926년 미국으로 건너가고 할리우드에서 <일출>(1927)과 같은 작품을 남긴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독일적인 색채를 그대로 띠고 있다. 그와 같은 유럽 출신 감독들로 인해 할리우드에는 각종 국제적인 양식들이 도입되고 '표현주의' 역시 미국에서 '필름 느와르'와 같은 장르를 낳으며 여전히 각종 영화에서 그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데틀레프 부크 D. W Buck

독일 북부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Buck 감독은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각으로 사회의 비주류 인간들을 그려 나간다.

그는 어떤 인물도 틀에 박힌 고정관념으로 대하거나 과장됨이 없이, 신선한 시각으로 해석한다. 그의 작품에는 신선한 재미가 있으며 또 때로는 폐부를 찌르는 파라독스가 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21세때(1984) 첫 작품 <Erst die Arbeit und dann>을 연출했다. 1991년에 자신의 제작사 Boje Buck Produktion GBH를 설립했다. <Oliver Harniggels>라는 영화로 독일의 Bayerischer Flimpreis를 수상했다. 1993년 < No More Mr. Nice Guy>라는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독일 영화제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 각색상, 음악상, 제작상을 수상했다.

<양철북> 이후 독일 영화계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주 있는 감독으로 연출 뿐만 아니라 각색이나 연기도 뛰어난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프릿츠 랑(Fritz Lang)

프릿츠 랑은 독일 표현주의 감독들 중에서 아직까지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비네의 <칼리가리..>의 성공으로 표현주의 영화의 붐이 일면서, 1920년대 독일 영화계에는 엄청난 자본을 투자한 대작 표현주의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와 함께 이때 나온 영화가 바로 랑의 <니벨룽겐>(1923~24)이다. 독일의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를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원작의 방대함만큼, 길이와 내용의 스케일에 있어서 "대작"이었다. 또한 전설 속의 배경을 구현한 표현주의적 세트와 분장, 의상 등은 이 영화를 단지 규모에 있어서만 "대작"이라고 부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니벨룽겐>의 성공에 힘입어 독일 영화사들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게 되지만, 그가 많은 물량을 들여서 만든 작품인 <메트로폴리스>(1927)는 많은 비판과 함께 표현주의의 종언을 고하게 만들었다. 미래 사회를 나타낸 걸작 SF물인 이 작품은 뛰어난 내용전개와 엄청난 세트 건축으로 영화사에 새겨진 걸작이지만, 거기에 든 막대한 양의 제작비로 인해 지탄을 받았다. 당시 독일의 환율 폭락으로 인한 자금난이 표현주의 영화의 '대작화' 현상과 만남으로써 결국 표현주의는 몰락하게 된 것이다.

<메트로폴리스>의 건축은 초고층의 건물들로 빽빽히 둘러싸인 미래 도시를 그려내고 있는데, 이는 모순된 구조를 가진 미래 사회를 나타내는 데 있어서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 영화 속의 도시 디자인은 이후의 많은 SF영화들에 영향을 주었고,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는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메트로폴리스>의 실패 이후 랑은 자신의 제작사를 세우고는 (1930), <마부제 박사의 유언>(1932) 등의 영화를 만드는데 이들 영화는 그 전까지의 표현주의적 자유분방함에서 방향을 달리한 영화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영화에도 표현주의적인 양식들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당시 독일 영화들 대부분의 추세였다. 그 후 랑은 나치의 집권이 시작되자 미국으로 옮겨가서 계속 작품을 만든다. 미국에서의 작품으로는 <한 번사는 인생>(You live only once, 1939), <인간 사냥>(Man Hunt, 1941), <주홍의 거리>(Scarlet Street, 1945), 등이 있다



∙알렉산더 클루게(Alexander Kluge)

서독의 1960년대에서 가장 성공적인 데뷔는 알렉산더 클루게의 것이었다. 그는 이미 저술가로서도 명성을 얻고 있었다. '오버하우젠 선언' 이래로 그는 개혁 운동의 '브레인'이었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남아 있다. <Abschied von gestern>이 1966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았을 때, 그것은 서독의 새로운 영화들에 대해 최초로 주목한, 국제적인 승인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그리고 이 승인은 후에 독일 국민의 관심사에 소급력있는 충격을 가했다.

클루게를 그의 동료 감독들과 시작부터 구분지었던 것은 그가 주제를 다루는 데에 있다. 미리 생각해 둔 주제를 다루는 데에는 조금의 연속성도 없었으며, 이야기의 연속적인 발전도 없었다. 그 모든 것들은 그의 히로인 'Anita G.' -동독에서 서독으로 왔지만, 이 새로운 사회에 자신을 동화시키지 못하는- 의 발전에 중요한 무대를 할애하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통한 심화로 대체되었다. 개개의 에피소드들은 자막과 인용을 통해 연결되었다. "그 영화 속의 인물들은 배역을 연기하면서 동시에 그 자신을 연기하고 있다.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에서 클루게가 발견한 것들, 배우들이 영화에 가져 온 것들,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방법에서 발전된 것들이 적용되었고, 궁극적으로 그 영화의 흥미로운 구조를 이루었다."

<Abschied von gestern>과 함께 클루게는 연방 독일의 현실에서 비롯된 특정 문제들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요구를 드러냈고, 또한 충분히 강력한 방법을 통한다면 이 국민들이 어려운 예술적 행보에도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

(H.G.Pflaum, H.H.Prinzler의 'Film i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에서 발췌)

지금껏 보여지지 않은 이미지, 환영(幻影)이 바로 <Lebenszeichen>(삶의 기호, '뉴저먼 시네마 10편에 관한 단상' 참조)에서부터 시작된 헤어조크 영화의 주된 모티프이다. 그의 영화가 지닌 환영적인 속성은 1974년 <Jeder fur sich und Gott gegen alle>(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 않는다, '뉴저먼 시네마 10편에 관한 단상 참조)와 함께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다. 그리고 이 영화의 해외에서의 성공은 독일에서 헤어조크의 평판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했다. 이 영화는 1974년 가을에 개봉되어 별로 빛을 보지 못하다가 갑자기 독일 영화계에서 사라져버렸다. 1975년 봄, 이 영화는 깐느에서 몇몇 상을 석권하였고, 그 직후 프란시스 코폴라가 미국 판권을 위해 사들였다는 뉴스가 터져 나왔다. 그 후, '카스파 하우저'(영화의 주인공 이름이자, 미국 제목 '카스파 하우저의 수수께끼'의 줄임말)는 재상영되고서야 독일에서 그에 상응하는 성공을 얻게 된다.

한편 이 영화는 몇세대 동안 교육학자들에게 매력을 주었던 한 독일 캐릭터와 그 테마를 안고 있다. 바로 카스파 하우저(Kaspar Hauser)로, 그는 버려진 고아로 1829년에 발견되었는데 처음에는 의사 소통이 불가능하다가(말을 할 줄 모르다가) 사회 속으로의 진입을 비탄스러운 열정과 함께 경험했던 인물이다. 헤어조크는 19세기의 지방 사회가 처음에 어떻게 이방인으로부터 착취를 하는지, 어떻게 그의 예속이 자행되는지, 성직자들이 카스파에게서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는 것 외에는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지, 그리고 그가 의문의 살인을 당한 후에 과학이 사회 자체 속에서 원인을 찾기보다, 어떻게 기계적인 생물학의 관점에서 그의 특수성을 설명하려 드는지를 보여준다.

그 때까지 헤어조크의 주된 테마는 관객들에게 그들이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미지들을 주로 풍경을 통해 제공하는 것이었다. <Lebenszeichen>의 크레타 섬 풍차 계곡, <Fata Morgana>의 허깨비같은 사막 장면, <Aguirre, der Zorn Gottes>(아귀레 신의 분노, '뉴저먼 시네마 10편에 관한 단상'참조)의 스펙터클한 정글 광경, 그리고 <Fitzcarraldo>의 제국주의 우화가 그렇다. 카스파 하우저 이야기에서 그는 전에 볼 수 없던 이미지인, 마치 중세의 그림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운 프랑콘 주의 풍경과 함께 자신의 영웅과 맞닥뜨렸다. 헤어조크는 주위의 억압과 두명의 뚜쟁이들의 폭력 때문에 자신의 오랜 이웃과 창녀 한명과 함께 미국으로 향하는 한 이방인의 발라드인 <Stroszek>(1976/77)에서 다소 전보다는 덜 이상한 방식으로 자신의 테마를 추구했다. 짧은 순간 스트로스첵의 환상은 충족되는 듯 하였으나, 그가 돈을 지불할 능력없이 자신의 행복을 쌓으려 했던 그 상품의 왕국은 순식간에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그를 쫓아낸다. 미국 잡지 뉴스위크는 베르너 헤어조크를 뉴저먼시네마 작가들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감독으로 평했고, 프랑스 비평가인 Gilles Jacob은 그의 영상들을 종교적인(이방인들에게는 때때로 거만하기까지 한) 포교 의식에 견주면서 그를 '세로운 무르나우(Murnau)'로 칭했다.(pp.24-26)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

연극인으로서의 파스빈더

1946년 5월 31일 바트 뵈리쇼펜 출생, 1982년 7월 10일 사망. 의사의 아들로 태어남.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와 뮌헨, 아우스부르크의 김나지움을 다님. 1964년부터 66년까지 뮌헨의 연극학교에 다니면서, 영화배우, 엑스트라 등의 활동을 하면서 뮌헨의 소극장에 참여했다. 이들 극장에는 뷔히너 극장과 함께 1968년에 파스빈더의 수행 하에 '안티테아터antiteater'로 발전했던 악치온 테아터(Action-Theater)가 있었다. 1971년 그 그룹(안티테아터)은 해체된다. 파스빈더는 1974년과 75년에 프랑크푸르트의 테아테 극장(TAT-Theater)을 떠맡은 채로, 영화 감독으로 일해 나간다. 그후 거의 오로지 영화 일에만 전념하게된다.

파스빈더는 스스로를 '텍스트의 실행자'로 보았다. 그것이 극장 연출가이건, 영화감독이건, TV 제작자이건 간에 말이다. 작품 집필은 오로지 사전 작업이며, 제작에 관련되면 각색과 제작 가능성에 따라 편집되어지는 것이다. 1968년 그는 슈바빙(뮌헨의 일부)에 '안티테아터'를 창단하는데, 여기에 그를 둘러싼 공동체가 형성되었고(한나 쉬굴라, 마그리트 카르스텐젠, 해리 베어, 페어 라벤, 잉그리트 카벤 등), 우선 문학적인 모델을 이용했다. 1967년의 페르디난트 부르크너의 "범죄자", 1968년의 마리엘뤼제 플라이셔의 "예를 들자면 잉골슈타트", 알프레드 제리의 "오르기 오부", 괴테의 "이피게니" 등이 그것. 그는 종종 문학 텍스트를 허름한 악치온 테아터에 맞춰 고쳤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 자신의 작품이 나왔다..........(중략)..........대표작으로는 "Katzelmacher"(1968), "Anarchie in Bayern"(1969), "Pre-Paradise Sorry Now"(1969), "Bremer Freiheit"(1971) 등이 있다. (pp.987-988)

〔파스빈더는 60-70년대 독일에서 중흥했던 '민중극' 형식의 대표적인 작가였다. 이것은 1901년 태생의 두 극작가 외덴 폰 호르바트(Odon von Horvath, 1901-1938), 마리엘뤼제 플라이서(Marieluise Fleiser, 1901-1974)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30년대의 사회적 리얼리즘을 복원시킨 것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파스빈더 외에도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Franz Xaver Kroetz)와 마르틴 슈페어(Martin Sperr)가 주도했으며,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극복할 방안으로 여겨졌다. 한편, 파스빈더의 영화가 브레히트적인 서사적 요소가 자주 나타나면서도 브레히트와는 크게 다른 형식인 '멜러물'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도 역시 민중극의 사회적 리얼리즘의 영향이라고 하겠다.


영화인으로서의 파스빈더

파스빈더의 첫 영화는 1965년에 촬영되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한 것은 69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 후 그는 82년 37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40여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작품들 역시 무척 많다. "Katzelmacher"(1969, 자신의 동명 연극을 영화로 각색), "Handler der vier Jahreszeiten 사계절의 상인"(1971), "Ansgt Essen Seele Auf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3), "Die Ehe der Maria Braun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1978), "Berlin Alexanderplatz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1980) 등이 자주 언급되는 작품들이다. 초기작 "Katzelmacher"를 제외하고 나머지 작품들은 그의 특징을 잘 말해준다. 아나키적인 좌파였던 파스빈더는 그러한 자신의 신념을 투영하기 위해 브레히트의 '서사극' 기법을 영화에 도입했고, 이것을 쉬운 플롯 전개로 대중에게 쉽게 접근시키기 위해 멜로 영화의 틀을 활용했다. 패전 이후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온 미국 영화를 보고 자란 덕분에 그는 미국적 멜로물에 매우 익숙해 있었고, 그는 이것을 '서사적으로' 걸러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와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의 내용 전개는 '사랑'을 중심으로한 멜로물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파스빈더는 중심 골격을 이루고 있는 '주인공들의 사랑'을 극 전체에서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둘러싼 주변의 상황들을 나열하듯이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그는 배우들을 '비전문인'들로 고용했는데(대부분 그 자신 주위의 가족, 친구들이었다), 이들의 어색한 연기는 그 자체로 서사적이고, 드문드문 나타나는 정지된 동작들은 브레히트의 '게스투스Gestus'이론의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파스빈더는 이러한 방식들을 통해 '전복'을 꾀했다. 그는 '라인강의 기적' 속에 빠른 경제 성장을 하고 있던 서독 사회에 잔존하는 파시즘과 성적 억압, 계급 관계를 폭로하고 뒤엎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자신의 몸에도 지속적인 폭력을 가했고, 폭음, 과식, 마약 복용 등의 결과로 요절하고 말았다. 그가 죽자 '뉴저먼시네마' 운동은 구심점을 잃었고, 다시 독일 영화는 침체기로 들어갔다.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Margarethe von Trotta)

뉴저먼시네마의 선구자들은 사실상 모두들 예술적인 '아버지'가 없었고, 그들의 후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뉴저먼시네마의 성립 배경부터가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는 외침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고, 그들의 영화는 실상 어떤 예술적인 동의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제작 환경에 대한 공통된 열망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무국적 독일 영화들을 지양하고 작가들의 창작 의지를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었던 것. 따라서 이들의 영화들은 각자 매우 다르고, 이들이 동경했던 영화 작가들도 천차만별이었다. 프랑스 누벨 바그, 이태리 네오 리얼리즘, 러시아 몽타쥬, 헐리우드 장르영화 등 서로 다른 조류들이 각각의 예술적 '아버지'가 되었다 ;역자 주). 그러나 그것은 그들 자신의 탓이었다. 너무나 개인주의적 생활에 탐닉한 나머지 자신들의 행보를 한동안 이어나갈 제자가 부족했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죽음 후에 그의 후계자가 되어 그가 남긴 '유산'을 이어 받을 사람은 그와 오랜 세월 함께 일한 이들 중에서조차도 없었다.

폴커 슐렌도르프 조차도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Die verlorene Ehre der Katharina Blum, 1975, 폰 트로타와 공동 감독)이후로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이자 공동 감독이었던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는 <Das zweite Erwachen der Christa Klages>(1977)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여기서 각기 매우 다른 상황에 처한 세 여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 여인 중 한명이 어느 극단이 문닫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 강도를 저지르는데, 이를 통해 이들 세 여인이 연결된다. 이 세 여인은 동일한 한 사람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상이한 가능성들을 보여준다. 셋 다 자신의 세계에서 뛰쳐 나와, 행복에 대한 자신의 옛 기준으로부터(그리고 아마도 남자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을 찾게 된다.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는 이 이야기를 <Schwestern oder Die Balance des Glucks>(1979)에서 보다 독창적인 방식으로 반복한다. 그리고는 다시 단호한 정치 영화로 돌아간다. <Die bleierne Zeit>(1981)은 Ensslin 자매에 대한 이야기이다...(중략)...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영화이지만 <Die bleierne Zeit>은 테러리즘에 대한 가장 중요한 영화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파스빈더도 영화화하고 싶어했던 전기영화인 <Rosa Luxemburg>(1985, 로자 룩셈부르크)에서 폰 트로타는 명백히 공식화된 정치적 의무와 개인적인(사사롭기까지 한) 혼란을 엮어내는 데에 성공한다. 캐릭터들을 마치 페미니스트 이론서에나 나오는 모델처럼 설정했던 1982년의 <Heller Wahn>와는 달리, 감독은 이 영화에서 다양한 차원에서 한 인물의 Biography를 만들어 간다. 수사적인 논법에는 절대 의지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백과 사전과 같은 '(수사적인)완전함'이 아닌 '정확함'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서 1919년에 암살당한 이 여류 사회주의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에서 나치가 장악하기 이전에 사회주의 혁명을 이룩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독일의 좌파는 분열되어 있었다. 그녀는 직접적인 행동을 통한 혁명을 이룩하고자 쿠데타파를 지지했으나, 보수적인 색채를 띠고 있던 사민주의 세력에 의해 암살되고 만다. 이러한 분열의 양상 끝에 독일 좌파는 나치에 의해 그 힘을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역자 주). 행복에 대한 느낌과 생각들,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이 성취인가 하는 것, 그러한 것들에 대한 트로타의 열정은 정치적인 차원이 무의식에 가까울 정도로 필연적임을 말해준다.


폴커 슐렌도르프(Volker Schlondorf)

로드 부인의 낮과 밤

세일즈 맨의 죽음(Tod eines Handlungsreienden)

스완의 사랑(Eine Liebe von Swann)

양철 북(Die Blechtrommend)

핸드메이즈(Die Geschichte der Dienerin)

                  사랑과 슬픔의 여로(Homo Faber)


∙빔 벤더스(Wim Wenders)

파리 텍사스(Paris, Texas)

베를린 천사의 시(Der Himmel uber Berlin)

세상 끝까지(Bis ans Ende der Welt)




∙도리스 되리(Doris Dorrie)

(H.G.Pflaum, H.H.Prinzler의 'Film i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에서 발췌)

도리스 되리는 80년대에 적어도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여성 감독으로 보인다. 비록 남자 주인공을 묘사하는 데에는 갈피를 못 잡았지만, 점차적으로 자신의 사랑과 안전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해가는 여자 주인공을 다룬 <Mitten ins Herz>(1983)는 이를 확인시켜준다. <Im Innern des Wals>(1984)에서도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서 젊은 음악가와 함께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가는 15세 소녀의 자기 인식의 발전을 다루고 있다. 이 로드 무비 이후에 도리스 되리는 <Manner>(1985)로 경이적인 히트를 쳤는데, 원래 이 영화의 완성된 필름을 어느 배급사에서도 맡으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 코메디는 당대의 분위기를 매우 정밀하게 잡아내었다. 실마리는 캬바레식의 경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도리스 되리는 역할 놀이와 역할 교환을 묘사한다. 한 광고 제작자의 부인이 남편에게 싫증나서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정부를 사귄다. 남편은 그 정부의 생활 속에 슬그머니 들어가서 그를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주 성공적인 관고인으로 만든다. 그러는 동안 그 정부는 예술가로서의 기질을 잃고, 결국 남편이 부인을 쟁취하게 된다. 영화의 풍자적인 꼬집기는 도를 넘지 않으며, 또한 그 유머도 잃지 않는다. <Manner>는 정말로 멋진 저예산 오락영화였다. <Paradies>(1986)에서 인간관계의 위기에 대한 감독의 묘사는 상당히 더 대담해졌다. 싫증난 아내는 어린 시절 여자 친구를 집으로 데려온다. 코메디로 시작해서 가공할 만한 비극과 심리학적 파괴의 극치로까지 돌이킬 수 없이 이동한다. Alberto Moravia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Ich und er>(1987)로 되리는 미국에서의 코메디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그 다음 작품인 독일 코메디 <,Geld>(1988/1989)만큼이나 형편없었다. 독일에 거주하는 젊은 터키 작가 Jakob Arjouni의 소설을 각색한 그녀의 근작 <Happy Birthday, Turke>(1990/91)은 미국식 고전적 범죄 소설에 대한 거만한 클리셰(cliches - '진부한 반복', '진부한 모방'- 역주)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 위에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와 그 어두운 부분에 대한 초상화를 쌓아 올렸다. 이 스토리는 레이몬드 챈들러(미국의 추리 소설 작가- 역주)의 필립 말로우(챈들러 소설의 주인공 탐정 - 역주)를 모방한 한 터키인 사립 탐정(Main마인市에 살고자 하는)을 다루고 있는데, 그는 경찰까지 관여되어서 자신에게는 너모나 큰 사건에 연루되고 만다.

파니 핑크(Keiner liebt mich)



■작품 소개


[결혼에 대한 환상을 위해 그녀가 해온것]

촬영 : 미하엘 발하우스

편집 : 율리만 로렌쯔

음악 : 피어 라벤

주연 : 한나 쉬굴라, 클라우스뢰비취, 이반 데즈니


이 영화의 첫 장면은 폭탄이 떨어지는 전장의 한 복판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이다. 3개월간의 약혼기간과 하루 반나절의 결혼 생활을 보내고,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 보내야만 했던 마리아 브라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전쟁중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결혼식을 올리게 했으며, 행복한 결혼생활이라는 고정된 목표만을 위해 살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영화의 시작부분에서 보여지는 마리아의 모습은, 전쟁터로 남편을 떠나보낸 다른 여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혹은 남편과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 시장경제의 원리를 배우는 좀 더 적극적인 여성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매우 주체적이며 발전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 하나, 바로 남편과의 결혼생활뿐이다. 동시에 남편의 존재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어머니나, 흑인병사인 빌, 혹은 오스왈드 등과 그녀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마리아에게 있어 어머니의 존재는 항상 자신에게 거짓말만 하며,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하는 사람일뿐이다. 따라서 그녀와 어머니의 관계는 친 모녀간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관계가 아닌, 조건적으로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관계만이 성립한다.

두 번째로, 미국인 전용 술집에서 만나게 되는 빌과의 관계이다. 빌은 마리아를 사랑하며, 마리아 역시 그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마리아에게 있어서 빌은 그녀의 성과 그의 경제적 능력, 혹은 영어를 교환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세 번째는 그녀의 상관이 되는 오스왈드와의 관계이다. 오스왈드 역시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오스왈드의 존재는 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엔 그녀의 능숙한 영어실력과 업무능력에 상응하는 보수를 주는 사람일뿐인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마리아의 남편인 헤르만은 그녀에게 있어서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각별한 존재이다. 그녀는 감옥에 들어간 남편을 위해 열심히 돈을 모으고, 집을 산다. 하지만 헤르만은 그녀의 돈을 부담스러워하며, 출옥해서도 그녀에게 당당한 모습이 될 때 돌아오겠다는 메모만을 남긴 채 잠적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결혼생활에 대한 마리아의 시각과 헤르만의 시각이 상이함을 알 수 있다.

마리아에게 있어 결혼 생활은 하나의 이상점이며, 희망이다. 따라서 부부관계도 타인들과의 조건적이고 상대적인 관계가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이 가능한 절대적 관계이다. 하지만 헤르만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에게는 경제적 능력을 부부 중에 누가 갖고 있는가가 중요하며, 또 그것을 위해 아내의 성을 이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즉, 그에게 있어서의 결혼은 그가 추구하는 경제적 가치를 위해 양보할 수도 있는 가변적인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도 원하던 이상적인 결혼생활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사고인지, 자살인지는 모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여자들에게 있어서 결혼은 하나의 환상으로 다가오며, 한편으로는 탈출구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현재로서는, 남자보다 여자에게 있어 결혼에 따른 삶의 변화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결말이 그러하듯이,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조건적인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동시에 진정한 행복은 다른 누구에게 바라는 것이 아닌 자신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뭔가를 함께 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일은 참 즐거운 일입니다. 주말에 시간 덤비는 솔로, 영화비 없는 CC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튕기지 말고 다 모여!!!

97학번 김은경



그와 그 사이에 이루어진 거래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은 한 여자의 생애를 그리면서 동시에 나찌시대, 전후 미국점령기와 라인강의 기적을 거쳐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독일 사회를 차갑게 묘사해 가고 있다. 여기에서 파스빈더는 <뉴저먼 시네마>라는 독일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줬다.

마리아 브라운과 헤르만 브라운의 결혼식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나 결혼식장은 곧 폭격을 당하고 다음날 남편은 전장으로 떠난다. 전쟁이 끝난 후 마리아는 남편을 찾는 패널을 걸고서 기차역 부근을 서성인다. 그러나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리아는 미군을 상대로 하는 술집에서 흑인 병사 빌을 만나고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그러나 빌과 정사를 벌이려던 순간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돌아오고 마리아는 빌을 죽인다. 법정에서 헤르만은 자신이 빌을 죽였다고 위증을 하고 마리아 대신 감옥에 간다. 그후 마리아는 낙태를 하고 또 한 남자 사업가 오스왈드를 만나 자신의 능력을 펼친다. 사업은 번창하지만 출소한 헤르만은 돌아오지 않는다. 마리아는 헤르만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그러나 마리아가 모르는 사이에 그녀를 두고 오스왈드와 헤르만 사이에 '더러운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다. 오스왈드가 살아있는 동안은 마리아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오스왈드의 유언장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된 마리아는 가스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새로산 집은 폐허가 된다. 전쟁을 인한 폐허 속에서도 놀랍도록 당당하고 아름답고 강인한 마리아. 그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독일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꾸리고 출세가도를 달린다. 이는 마치 독일 국민이 일으킨 "라인강의 기적"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러나 전쟁을 통한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남편 헤르만과 오스왈드는 비리비리하다. 남성이라는 고정된 성역할에만 안주한채 마리아를 돈에 팔고 돈으로 사는 이들은 사랑이라는 측면이 있기는 하나 형편없이 무능하게 그려져 있다.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은 기본적으로 멜로 형식을 취하지만 전후 독일의 성장 뒤에 가리워진 이야기이다.


할리우드의 ? 식이 아닌 독일만의 독특한 ? 식이 있습니다. 베를린 앞으로도 많이 지켜 봐주세여. 이번 베를린 영상제를 준비하면서 넘 희경선배 수고하셨구요. 그 밖의 베를린 회원모두 수고하셨습니다

98학번 전선옥



[베로니카 포스의 갈망 Die Sehnsucht der Veronika Voss(1995, 흑백영화, 104분)]


1982년 베를린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

감독 :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제작 : 라루아 필름(Larua Film), 탱고 필름(Tango Film)

촬영 : 자버 슈바르첸베르거

각본 :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페터 메르테샤이머, 페아 프뢸레히

편집 : 쥴리안 로렌즈

제작 디자이너 : 롤프 제트 바우어

음악 : 페어 라벤

의상 : 바바라 바움

주연 : 로젤 체흐, 힐마 타테, 코넬리아 프로뵈스, 안네마리 뒤링거, 도리스샤데, 에릭 슈만



깔끔하면서도 우울한 흑백영상...


1955년, 뮌헨에서 이 영화는 시작된다. 한 여자가 극장 안에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있다. 그녀의 이름은 베로니카 포스. 그녀는 과거에 자신이 주연했던, 지금 자신의 모습을 예언한 듯한 영화를 보고 있다. 베로니카는 10여 년 전, UFA영화사 시절의 유명한 영화배우였으나 지금은 정신병원 신세를 지고있는 환자였다. 그녀는 우연히 스포츠 담당 신문기자인 로베르트 크론을 만나게된다. 그는 베로니카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그녀의 신변을 조사한다. 인기는 사라졌으나 그녀는 아직 매력적이고, 정렬적이였다. 베로니카를 자주 만나면서 그녀에 대한 동정과 안쓰러움의 감정은 사랑으로 바뀌어 간다. 어느 날 로베르트는 그녀가 짧은 장면조차도 제대로 연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녀의 전 남편으로부터 그녀가 마약 중독 환자라는 사실을 안다. 로베르트는 베로니카의 정신과 의사인 카츠 박사의 속셈을 알게되고 사실을 밝히려 하나 결국 그의 여자친구는 카츠 박사 일당으로부터 살해 당하고 만다. 아무도 로베르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끝내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서 남자는 베로니카가 죽어 가는 집 앞에서 잠시 머문 뒤 바로 축구장으로 차를 돌린다.

파스빈더 감독의 '베로니카 포스의 갈망'은 그가 죽은 해에 발표된 것으로, 독일의 사회를 비판하던 그의 마지막 작품 이였다. 흑백 영화라는 것과 파스빈더 감독의 전후 독일의 3부작을 이루는 작품이란 것 때문에 처음에 지루하리라고만 생각했었다. 베로니카가 갈망하던 10년전은 40년대로 나치즘의 시대였다. 감독은 베로니카를 독일로 놓고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었다. 이 밖에도 그는 많은 장면과 인물에 의미를 두고 만들었는데,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난 그 시대적 배경이나 감독의 생각들보다는 영화 흐름과 스토리 전개에만 관심을 두고 보았다. 그래서 정확히 무엇이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깔끔하면서 우울하게만 하는 흑백 영상이 인상 깊이 남았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영화가 끝이 나서 답답하기도 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Angst Essen Seele Auf(1998, 1시간 33분)]

제작년도 1973년

28회 칸느 영화제 비평가상 수상

감독 :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촬영 : 위르겐 위게스

각본 :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편집 : 테아 아이메츠

미술 감독 :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조감독 : 라이너 랑한스

주연 : 브리지테 마라, 엘 하디 벤 살렘, 바바라 발렌틴, 이름 헤르만,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사랑이란 가장 교활하고, 가장 효과적인, 최선의 수단


이 영화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을 시작하기에는 너무나 나이가 들어버린 중년을 한참 지난 에미와 젊은 외국인 노동자 알리와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이다.

단순히 사랑을 하면서 겪어야할 시련들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 자신의 사랑 자체가 남들에게 이해 받기 힘든 상황이어서 사회의 시선과 갈등의 과정을 겪는 힘든 사랑을 진행한다. 그들의 사랑이 어떤 결말을 갖는 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들을 통해 사회를 그리고 인간성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손자를 볼 만한 나이의 노부인 에미는 독일이라는 사회자체에서도 하층 그룹에 속해있는 청소부이다. 그런 그녀가 그런 사람들조차도 더러운 개로 취급하는 외국인 노동자 알리라는 젊은이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둘 사이의 사랑만으로는 견디기 힘든 주위의 시선과 멸시로 그들은 힘겨워 하지만 이런 사회와 개인(혹은 소수집단)의 갈등은 그들을 더욱 붙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사랑으로써 자식들과 이웃의 멸시를 꿋꿋이 이겨내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향한 시선들이 밀월여행을 떠나온 후에는 차츰 누그러지고 달라져 있다 .

자신들이 계속해서 멸시해서는 득이 될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전과 같이 대하게 된다. 너무나 행복해서 두려운 연인인 그들은 그리하여 사회와의 갈등이 끝나게 되자 이제는 개인과 개인의 갈등으로 사랑이 흔들린다. 둘 사이를 묶어주던 사회와의 갈등이 끝이 보이자 그들은 서로에 대하여 불안해하며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다. 에미도 이제는 자신을 따돌렸던 집단에 다시 소속되고, 다른 사람을 소외시키면서 자신의 집단을 강화시키며 알리를 예전처럼 애틋한 마음으로 사랑을 하기보다는 하나의 신기한 소유물처럼 여기게된다. 알리는 점점 설자리를 잃고 방황하게 된다.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알리 모국의 속담인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파스빈더가 한말을 아주 가장 잘 설명한 것 같다. "사랑이란 사회적 억압을 위한 가장 교활하고, 가장 효과적인, 최선의 수단이다." 그들에게서 사랑이 점점 클 수 있었던 건 그들을 소외시키는 사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의 억압 수단이 사라지자 그들은 불안감을 갖게 되었고 그 불안함이 그들의 사랑, 그들의 영혼마저 먹어치우게 된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각별히 느꼈던 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키며 혹은 소외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였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알게 모르게 작용하는 우리들의 선입견이 그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한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Knocking on Heaven's Door)]

 

줄거리

악성 뇌종양 환자와 골수암 환자. 이 정도 짝이면 세상에 거리낄 게 없는"무서운 아이들"이다. 그들이 바다를 보고자 하면 바다는 나타나야 하 고, 두명의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죽음이란 결승선이 이미 코앞에 다가온 달리기에서 이들이 줄 밖으로 뛰쳐나가건 좌 충우돌 널뛰기를 하건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독일이 자랑하는 영화배우틸 슈바이거가 제작.각본.주연을 맡은 '노킹.'은 밥 딜런의 노래 제목으로 더 유명하지만, 가사 그대로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시한부 인생들의 삶을 유쾌하게 그렸다. 음울한 게르만족들이 이렇게 유머로 환하게 빛나는 장면들을 연출했다는 것은 두 희귀병 환자들의 만남만큼이나 희한한 일이다. 망나니형 마틴(틸 슈바이거)과 천사표 루디(얀 요세프 리퍼스)가 얼마 남지 않는 삶을 불태우며 걸어가는 길은 눈물보다 웃음이 넘치 기에, 예고된 마지막 장면이 더 찡하다. '맨 인 블랙'의 독일판 복제인가. 사사건건 뒤통수만 맞는 "행크와 압둘" 짝패나, 거대한 옥수수밭에서벌이는 자동차 추격전은 할리우드영화를 뺨친다. 희비극이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감독은 "내일 죽더라도 지금 이곳에서 천국의 문을 두드려라"고 말하고 있다.

암병동에서 만난 마틴과 루디에겐 목숨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보브 딜런의 노래 제목처럼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노킹 온 헤븐스 도어)" 젊은이들이다. "천국에선 모두 바다 이야기만 한다지." 둘 다 그 이야기를 부인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 비사실을 전제로 삼고 출발한다. 동화가 될 조건을 갖췄다. 그들이 바다로 가는 법. 우선 병실에서 도망쳐 병원 마당에서 있는 하늘 색 벤츠를 훔쳐탄다. 은행을 털어 여비도 마련한다. 경찰이 쫓고, 갱들도 쫓는다. 벤츠에는 그들의 검은 돈 100만달러가 들어 있었던 것. 할리우드 갱영화는 독일식 동화 (메르헨)과 이렇게 뒤섞인다. 공명심에 찬 경찰과 선정적 언론, 소심한 중산층의 이기주의 따위를 변두리 청년들의 꿈이나 어머니를 향한 사랑 이야기와 대비시킨다. 틸 슈바이거, 얀 리퍼스 주연. 토마스 얀 감독. (블레이드 러너)의 룻거 하우어가 100만달러를 탕진하고 갱들에게 붙잡힌 주인공들 앞에 홀연히 나타나는 갱 두목으로 특별출연했다. 그는 이들을 용서하는 건 물론, 바다 여행까지 주선해준다. 결말 역시 동화적이지만, 룻거 하우어의 절대적 권력을 너무 의심없이 미화한다.

 

[버스비 (Busby)]

시상정보 1998년 히로시마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데뷔상 안나 헨켈-돈네스-마르크

상영시간 3분22초 분

줄거리

긴 성을 가진 젊은 여성감독의 작품 (버스비)는 마치 학생의 졸업작품과 같이 도전적인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사람의 손이 다양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흑백필름으로 촬영한 다음, 이를 여러개 복사해 원, 평행선 등 다양한 모양으로 배치했다. 배경음악에 교묘하게 맞춰서 손이 움직이는 모습은 과거 할리우드의 쇼를 연상시킨다. 제목에서도 작가가 할리우드를 의식했음을 알 수 있다. 컴퓨터의 편집기술이 없었으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작품. 


[잊혀진 장난감]

줄거리

아이들이 갖고 놀다 버린 인형들이 새 주인을 찾아 헤매는 과정을 담은 단편 애니메이션. 인형 애니와 꼬마 곰 인형 테디가 쓰레기통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자기들을 받아줄 새 주인을 만나기까지 이들 앞에는 이런 저런 작은 모험들이 기다리고 있다. 통상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잊혀진 장난감)은 도화지 위에 그린 수채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화면이 눈을 편하게 해주며, 간간이 흘러나오는 노래는 잔잔하고 아름답다. 독일 공영방송사 (ZDF) 제작.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Knockin' on Heaven's Door)]

줄거리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는 병원에서 만난 두 젊은이의 이야기. 마틴은 뇌종양을, 투디는 골수염을 앓고 있는 시한부인생이다. 바다를 한번도 보지 못한 투디는 죽기 전에 그곳에 가는 것이 소원인데 결국 둘은 병원을 탈 출, 교통편과 여비 마련을 위해 차를 훔치고 은행을 털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훔친 차의 주인은 공교롭게도 갱스터 일당. 경찰과 갱들에게 동시에 쫓기는 몸이 된 이들은 잡히기 전에, 그리고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각자의 평소 소원 하나씩을 실행에 옮긴다. 마틴은 어머니에게 캐딜락을 선물하고, 투디는 사창가에서 창녀들과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둘은 경찰과 갱들의 총격전을 뚫고 마침내 바닷가에 이른다. 밥 딜런의 노래제목을차용한 이 영화는 로드무비와 갱스터무비의 특징을 골고루 지녔다. 마틴 역의 슈바이거는 제작과 각본도 함께 맡은 재간꾼.한편 (클라이네스 아쉬록)은 성인용 코믹 만화영화다. 발터 모어스의 출판만화를 원작으로 삼아, 정치에서부터 도덕과 관습, 섹스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대의 기만과 위선에 대한 예리하고 해학적인 풍자를 펼쳐 젊은층의인기를 끌고 있다. 제목인 "클라이스아쉬록"은 코가 얼굴만큼이나 크고 머리카락이 거의 없는 12세짜리 악동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꼬마는 항상 말썽을 일으킨다. 때로는 어린애 답기도 하지만, 악의에 가 득 차 있다. 그는 침실에서 부부관계를 하고 있는 부모의 방을 열고 들어가 민망하게 하고, 그 앞에서 생물번식에 관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또 래와 어울려 다니며 네오 나치 집회장에서 터키민요를 부르고 환경단체인그린피스의 연설장에서 환경을 저주하는 노래를 부른다. 악동짓의 절정은학교선생님과 학부모 파티에서 벌어진다. 그가 펀치볼에 집어넣은 환각제로 말미암아 파티장의 어른들은 모두 제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서 난교를시작하며, 발가벗은 채 거리를 질주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이 클라 이네스 아쉬록에게 만족을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결국 그는 반문한다. "기성세대의 안주와 지리멸렬함에 대한 나의 고독한 반항은 무기력한 것인가?"

클라이네스 아쉬록의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정신은 60년대 말에 서구를 휩쓸었던 자유주의 학생운동에서 비롯된다.

원작자 빌터 모어스가1969년에 12세이었던 것이 클라이네스 아쉬록과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The Cabinet of Dr. Caligari)]

출시년도 1920

다른 이름 The Kabinett des Dr. Caligali 

줄거리

♥ 원래 프리츠 랑 감독이 연출하기로 했던 이 영화는 (나이트 메어)의 효시라고나 할까. 물론 (나이트 메어)의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이야기구조의다중성에 비하면 단순한 수준이지만 꿈과 현실을 혼동시키는 사건의 전개는 묘한 뉘앙스의 공포를 충분히 맛보게 한다.

특히 이 영화에서 두드러진 것은 세트의 활용이다. 밀폐된 공간을 추상적기호물들과 병치해서 설치한 세트의 구성은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잘이끌어내고 있다. 몽유병 환자의 살인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순수한 공포영화에 가깝다.

♠ 영화사를 통틀어 1920년대만큼 영화매체의 독자성을 밝히기 위한 실험이 활발했던 시기는 없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러시아의 형식주의, 독일의 표현주의가 그 시기 영화의 대표적인 경향들인데, 그들의 공통 분모는 현실을 재현한다는 영화매체의 속성에 도전해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낯설게 바라보도록 영상의 내재적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 점이다.

1919년에 제작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모태가 된 작품으로서 그 서사와 시각적 특성은 당대의 가장 실험적 양상의 하나로 꼽힐 뿐 아니라 이후 수년간 지속된 표현주의 영화 경향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주인공이 칼리가리라는 연쇄 살인범을 회상하면서 얘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에 따르면, 칼리가리는 몽유병자에게 최면을 걸어 자신의 친구를 죽이고 여자 친구를 유괴한다. 그의 추적으로 칼리가리는 18세기에 있었던 대리 살인을 재현하고자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정신병원의 원장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해준 주인공이 사실은 정신병원의 환자이며, 칼리가리는 그를 담당한 의사라는 것이 드러난다. 주인공은 병실로 끌려가며 소리치고, 의사 칼리가리는 그제야 그의 병증을 이해했다고 말한다. 이 마지막 부분은 관객을 당황하게 만든다. 관객은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이 미친 자가 꾸며낸 망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며, 동시에 그가 정말 미쳤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이 관객의 의구심을 누른다.

영화의 장면은 현실감과는 거리가 멀다. 형태와 색채를 통한 왜곡, 구성의 부조화 같은 당대 표현주의 회화의 특성이 세트 곳곳에 그대로 살아 있다. 평면적으로 그려진 세트에는 원근감이 과장되어 있고, 사물의 형태는 각지거나 왜곡되어 있다. 인물 또한 분장이나 의상을 통해 그 세트의 일부처럼 기능한다. 조명은 명암의 대조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도록 조절되고 있으며, 연기도 극히 기교화되어 있다.

이런 극히 양식화된 장면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세계를 창조한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서 공간의 표현이란 곧 정신의 표현이다. 즉, 영화 속의 공간에 합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과대망상증으로 가득 찬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 광인의 이야기가 시각화되어 표현주의 영화의 모태가 된 데는 헤르만 바름 같은 세트 디자이너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제작자 에리히 포머의 역할이 컸다. 칼리가리가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미친 악당이던 원래 각본을 뒤집어 주인공을 광인으로 설정한 것도 그였으며,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미국 영화와 경쟁하기 위해 표현주의 회화기법을 영화에 끌어들인 것도 그의 결정이었다.

포머의 그런 결정은 이 영화를 해석하는 데 흥미 있는 변수가 된다. 원래 각본의 의도는 개인이 폭정적 권력을 등에 업고 자유를 남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는 폭정적 권력이 어쩌면 개인들에게 유익할지도 모른다고 시사한다. 이는 당시 독일인들의 의식 저편에 있는 불안과 공포심을 암시한 것이며, 칼리가리라는 인물을 통해서 히틀러의 등극을 예시했다는, 이 영화의 의미를 명확히 해 준다.


[노스페라투 (Nosferatu-Eine Symphonie Des Grauens)]

출시년도 1922

줄거리

브람 스토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흡혈귀 영화의 고전 중의 고전. 이 영화는 공포감보다는 서사 전달 중심에 상당히 치중해 있다. 흡혈귀 영화 중 가장 시적이라고 평가되었지만 조금은 과찬인 듯싶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과 더불어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노스페라투]는 전설적인 흡혈귀 드라큐라 백작에 관한 영화이다. 당시 혼란스럽던 독일의 사회적 상황을 [노스페라투]는 간접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브레멘에서 니나와 함께 살고있는 주인공 조나단은 부동산 중계업자로 펜트필드의 드라큐라 백작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드라큐라 백작이 브레멘으로 이주하고 싶다는 내용이다. 계약을 위해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드라큐라 백작의 성에 도착한 조나단은 공포스러운 밤을 보낸다. 드라큐라 백작이 흡혈귀라는 사실을 깨달은 조나단은 탈출을 시도하고 백작은 배를 타고 브레멘에 도착한다. 드라큐라가 도착한 브레멘은 흑사병이 만연하는 등 불길한 사건이 계속된다.

[노스페라투]에 나타나는 표현주의 영화의 특징은 배우의 기괴한 분장과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이용한 묘사들이다. 대표적인 장면으로 드라큐라가 니나의 침실로 다가오는 장면은 백작의 실체는 보이지 않고 길게 늘어진 그림자만이 계단에 나타나 끔찍함을 자극한다.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은 어두운 조명을 통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영화에서 볼 수 있던 전반적인 강한 조명을 탈피하여 어두운 조명 속에 화면의 일부분 만을 강조하는 명암의 대비효과를 적절히 사용한다. 이것은 이후 미국의 필름느와르와 공포영화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드라큐라 백작의 큰 키와 하얀 얼굴, 매부리코, 짐승의 눈을 연상하게 하는 분장은 이미지를 극대화 시킨다. 이런 표현주의 영화는 영화의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비합리적이며 비현실적인 세계를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묘사하였다.

[노스페라투]에 보이는 몽유병이라는 주제와 악마의 힘으로 지배되는 인물들, 집단 살인과 광기들은 표현주의 영화에서 주로 다루던 것들이다. 파시즘의 마수가 퍼져나가는 유럽의 상황을 무르나우는 흑사병으로 은유하고 있다. 그는 흡혈귀로 표현되는 히틀러를 독일사회 혼란의 원흉으로 묘사했다.


[도박사, 마부제박사 (Dr. Mabuse, Der Spieder)]

출시년도 1922

줄거리1:

마부제 박사는 최면술사이며 변장술의 천재이며 또 사기꾼이다. 그는 부하들로 하여금 네덜란드와 스위스간의 통상조약문서를 급사로부터 빼앗아 그 조약과 관련된 기업들의 주식을 떨어뜨려 시세하락하는 주식을 모두 매입한 다음 일정한 시간이 지날때쯤 그 조약문서를 모두 매각한다. 그렇게 그의 사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공장주의 아들인 홀에게 화살을 겨냥한다.

한 극장에서 그에게 최면을 걸어 두통을 일으키고 그다음 자신을 발링으로 속여 홀이 가담하고 있는 17+4라는 클럽으로 함께 간다.

줄거리 2:

삶과 운명을 건 도박을 하는 마부제 박사의 이야기를 다룬 (도박사 마부 제 박사)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암울한 데카당스 분위기 속에서 나온 작품이다. 최면술사, 변장술의 천재, 정신병의 권위자인 마부제 박사 는 최면술을 이용, 돈을 벌려는 계략을 세운다. 그는 홀에게 최면을 걸어도박에서 지게 한 뒤 거액의 돈을 챙긴다. 한편 사기 도박 사건을 추적하는 벵크 검사는 한 도박장 장소를 입수하고, 도박사로 변장하여 그곳을 찾는다. 검사의 지갑을 본 마부제 박사는 그에게 최면을 걸지만 실패하고만다.(M)을 통해 국내에 알려진 프리츠 랑 감독은 나치즘을 암시하는 악당들을 영화에 등장시켰다는 이유로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그뒤 미국, 프랑스, 인도 등 세계를 돌며 영화를 찍었다. 한가지 아니러니한 것은 (도박사.)의 주연을 맡은 로게가 훗날 나치즘에 동조하고, 프리츠 랑 감독의 전 부인인 하보우와 결혼한 사실.

 

[니벨룽겐의 노래 (Die Nibelungen)]

출시년도 1924

줄거리

비교적 규모가 큰 영화로 (지그프리드)와 (크림힐트의 복수) 두편으로 나뉘어 배급됐던 영화. 건축가 교육을 받았던 프리츠 랑답게 스펙터클한 건축물을 배경으로 배우들이 연기하는 동안 신비한 기하학적 세계를 만든다. 이렇게 표현된 압도적인 시각효과는 역사 이전의 환상이 돼버린 과거에대한 독일적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해석된다. 즉 감독은 독일음악가 바그 너가 이용하기도 했던 "니벨룽겐의 전설"을 표현주의적 영화양식으로 재창조하여, 주제를 좀더 극명하게 표현하고자 하였다.

 

[마지막 웃음 (Der Letate Mann)]

출시년도 1924

줄거리

* 1920년대 모든 영화의 테크닉을 담고 있어 "진정한" 무성영화로 평가받는 (마지막 웃음)은 무대장치가 극소화되고 사회 현실과 개인 심리에 집착한 실내극 영화의 흐름 속에 있다. 물 흐르는 듯한 화면 전개의 기법이도입된 이 영화는 카메라가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각 장면들을 친절 하게 해석해준다. 이 점은 카메라와 내러티브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는 의미를 갖는다. 무르나우 감독은 늙은 도어맨의 비애를 다루며, (노스페라투)식의 시각적 효과를 넘어 새로운 영화언어를 발명한 것이다.

*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호텔 도어맨에서 세탁실 조수로 밀려나버린 한 늙 은 노동자의 비애를 담았다. 가족은 물론 이웃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그에게는 자부심의 표상이던 제복을 반납해야 할 위기에 빠지게 되 는데, 달라진 지위는 순식간에 모든 걸 잃게 만든다. 이 비참한 노인의 삶을 해피엔딩이 위로해주긴 하지만 영화가 표현하고자 한 삶의 아이러니는 여전히 남는다. 실내극 영화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마지막 웃음'은 지금 봐도 놀라운 기 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고정삼각대를 버린 카메라의 움직임은 도어맨의 심리를 담아내며 관객을 상황 속으로 끌어들이는 해설자 구실을 한다. 역동적인 카메라는 또한 천편일률적인 객관적 시선으로부터 영화를 해방시 켜주었고, 도어맨의 주관적 시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놀라운 시각적 표현양식은 자막이 없는데도 내러티브를 탁월하게 이해시키며 영화를 걸작으로 남게 했다.

*표현주의로 불리는 1919~25년 시기의 독일 영화들은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프리츠 랑의 <숙명>(1921)에서 볼 수 있듯이 신화로 남아 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재구성하는 역사물들이다. 둘째는 표현주의 연극의 무대장치와 연출이 영향을 준 괴기스럽고 신비한 분위기의 영화들로, 이 부류의 대표작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들 수 있다. 마지막 셋째 부류는 막스 라인하르트의 연극에서 비롯된 이른바 ������실내극영화������들이다.

실내극영화의 특징은 다른 표현주의 영화들과 달리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대개 중간계층 이하인 인물들의 행위와 심리를 단순한 내러티브(narrative)로 전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실내극영화의 부류에 포함되는 ������거리영화������들은 근대화 바람에 편승해 헛된 꿈을 좇는 남자들에게 버림받은 비극적인 여자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며,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종래적인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무르나우의 1924년작 <마지막 웃음>은 폴 레니의 <뒷계단>(1920), 루푸픽의 <파편>(1921)과 함께 실내극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다른 두 편과 마찬가지로 카를 마이어가 시나리오를 쓴 <마지막 웃음>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호텔 도어맨(에밀 야닝스 연기)이 나이가 들어 화장실 조수로 밀려나면서 주위의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되지만, 화장실을 사용한 미국인 백만장자의 뜻하지 않은 유언(화장실에서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자신을 지켜본 사람에게 유산을 남겼다)으로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해피엔딩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웃음>은 관객들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영화의 마지막을 지켜보게 만든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이 늙은 도어맨의 좌절과 비참함을 공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감독은 도어맨이 유니폼을 벗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사용한 자막을 통해 ������그를 불쌍히 여긴다������고 말하는데, 이 자막은 부를 얻게 되었지만 사회적으로 지위가 하락하게 되는 중산층에 대한 감독의 연민을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웃음>이 영화사에서 자리매김되는 이유는 1920년대 독일 사회가 직면하게 된 중산층의 부상을 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관객들에게 설명함과 동시에 뛰어난 카메라 테크닉과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마지막 웃음>은 영화에 대한 가장 일상적인 질문인 주제와 형식의 일치가 갖는 중요성에 대한 하나의 모범 답안일 수도 있다.

영화는 자전거에 장치한 카메라가 호텔의 엘리베이터와 회전문, 사람들로 북적이는 화려한 로비 등을 자유롭게 다니며 도시화․근대화가 대두하는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카를 프로인트가 촬영한 이 도입부는 도어맨이 처하게 된, 피할 수 없는 어두운 운명을 예시하고 있다. 영화사에서 유명한, 도어맨이 술에 취한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도어맨의 가슴에 매달려 세트를 비틀거리며 휘젓고 다니는데, 이는 도어맨의 심리적 불안과 함께 당시 중산계층의 불안정한 위치를 암시한다.

<마지막 웃음>은 감독 무르나우, 카메라맨 프로인트, 작가 마이어가 고안한 영화적 테크닉으로 내러티브를 성공적으로 재현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고, 영화사가들은 이 영화가 그리피스의 카메라 트래킹과 시점 편집을 발전시켜 더욱 정제된 영화 문법으로 정착시키는 데 공헌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버라이어티 (Variety)]

출시년도 1925

줄거리

서커스 세팅을 배경으로 사도-마조히즘적인 영화세계를 보여주는 듀퐁 감독의 (버라이어티)는 실내극과 거리 영화의 특성을 함유하고 있다. 에밀

야닝스가 마조히스트적 캐릭터를 가진 곡예사를 연기한다. 칼 프로이트가촬영을 맡은 이 영화는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빠른 편집과 주제를 잘 다루는 카메라 기법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슈테른베르크 감독의 (푸른 천사)와 베리만 감독의 (벌거벗은 밤)(The Nakied Night)에 영향을 미쳤다. 10년 뒤 한스 알베르스와 안나 벨라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했으나 25년작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는 평을 받는다.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출시년도 1927

줄거리

* 총 81개 신으로 구성된 (메트로폴리스)는 제목이 암시해주듯 기계문명에 대한 불안으로 얼룩진 디스토피아를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시각적 요소가 두드러지는데, 도입부의 고층빌딩, 거리장면, 공중의 다리들이 극단적인 조명과 세팅으로 암울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풍요로운 지상세계와비참한 지하세계가 극명하게 대조되고, 마리아를 복제한 로봇 설정은 인 류문명이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음을 웅변한다. 한편 (메트로폴리스)는 당시 혼란한 독일을 재건하는 방법으로 나치즘이 대안이 될 수 있음을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또 마지막 대목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메트로폴리스)의 표현양식은 할리우드영화의 SF장르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 영화가 역사 바깥에서 만들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만일 볼셰비키 혁명이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을 만들었다면,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는 나치즘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브레히트의 친구였으며, 루카치가 증오하는 예술가였고, 벤야민이 찬미했으며, 아도르노가 비난했던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가 프리츠 랑(1890~1976)은 건축학과 미술을 공부한, 괴테와 말러의 찬미론자였다. 그는 원래 화가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1차 대전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고 후송된 병원에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독일 영화의 거물 프로듀서 에리히 포머를 알게 되었고, <마부세 박사>(1924)를 만들면서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와 함께 독일 무성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러나 무르나우가 회화적인 표현주의를 추구했다면, 랑은 건축적인 표현주의 양식을 완성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촬영감독 카를 프로인트와 귄터 리타우, 미술감독 오토 훈테와 에리히 케텔후트, 카를 볼프레히트 같은 표현주의 영화의 주력부대를 이끌고 독일 최대의 촬영소인 우파 스튜디오에서 310일에 이르는 대작 <메트로폴리스>의 촬영에 들어갔다.

미래 도시 메트로폴리스는 두 개의 세계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행복하고 안락한 부르주아들의 지상낙원이고, 또 하나는 온통 기계로 둘러싸인 노동자들의 지하감옥이다. 지상의 가진 자들은 지하의 빼앗긴 자들의 노동의 대가로 천국을 소유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상세계를 움직이는 자본가의 아들 프레더가 우연히 비밀의 문을 통해 그 끔찍한 지하세계로 내려가 천사 같은 소녀 마리아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노동자들의 유일한, 성녀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과학자가 음모를 꾸민다. 그는 마리아를 납치한 뒤 마리아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지하세계로 내려보낸다. 가짜 마리아는 노동자들을 선동하고, 지하세계의 노동자들은 계급투쟁을 향해 전진한다.

랑이 만들어내는, 이 어둡고 음침하면서도 무섭도록 열광적이고 흥분을 자아내는 계급투쟁의 우화는 공상과학영화라는 형식 속에서 무성영화 특유의 압도적인 시각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는 독일 영화의 새로운 전통을 위해 당대 러시아 영화의 몽타주나 프랑스 영화의 아방가르드 전통을 모두 무시했다. 그 대신 영화 전체를 거대한 건축적인 유기체처럼 설계하고, 그 속에서 집단적 움직임과 기하학적 구도,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와 그 사이로 늘어선 기형적인 세트, 기계적인 카메라의 이동으로 화면을 구성했다. 아마 표현주의 정신을 이렇듯 탁월하게 구현한 작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메트로폴리스>는 위험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선동과 집단 봉기라는 계급투쟁의 결과를 공상과학영화라는 모호한 변명 속에서 이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변질시켰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는 자본가와 자본가 아들 사이의 화해로 변질된다. 결국 혁명은 폭동이 되고, 영화는 노동자계급의 패배와 부르주아 휴머니즘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메트로폴리스>는 무시무시한 인플레가 독일 전역을 휩쓸던 1927년 1월 10일 베를린에서 개봉되었다. 두 사람이 이 영화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였고, 또 한 사람은 할리우드의 제작자 월터 윈저였다.

13년 뒤, 프리츠 랑은 나치 선전영화를 만들어달라는 괴벨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할리우드로 가 필름 누아르 영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아도르노의 말처럼 그는 ������실패한������ 독일 영화의 바그너였다.


[푸른 천사 (The Blue Angel)]

출시년도 1930

줄거리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단골배우 야닝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슈테른베르트 가 감독한 영화. 야닝스는 자신의 삶을 망치는 카바레 여가수 롤라롤라( 디트리히)와 사랑에 빠지는 교수로 나온다. 디트리히는 이 영화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푸른 천사)는 하인리히의 소설 (운라틀 교수)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사실 이 소설은 영국에서도 영화로 제작됐는데, 표 현주의적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슈테른베르트의 작품이 단연 뛰어나다. 이 작품은 50년대에 에드워드 그마이크릭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한다.

 

[몬테카를로에서 생긴 일 (Bomben Auf Monte Carlo)]

출시년도 1931

줄거리

독일 이미지 선전을 위해 31년 국가적 차원에서 만든 영화로 한스 슈바르츠 감독의 대표작이다. 선상생활 모습을 비롯해 거리와 카지노 등에서 율동감 넘치는 동작과 노래를 경쾌하게 그려지고 있다. 욜라 여왕을 모셔야 하는 임무를 받은 크래독 선장이 멋대로 행동하는 데 복수하기 위해 욜라 여왕은 신분을 속여 크래독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해프닝이 벌어진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기하학적 구도와 정교한 촬영술이 돋보인다.

 

[엠 (M)]

출시년도 1931

줄거리

♥ 프리츠 랑은 많은 영화 장르의 아버지격인 사람 같다. (메트로폴리스)로 SF의 규범을 세웠는가 하면,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필름 누아르에 영향을 준다. (M)은 범죄 스릴러물의 전형이다. 심리적 운용을 위한 카메라 위치의 적절한 선택과 더불어 그림자를 통한 인간의 이중성의 표현,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의 모티브를 반복되는 사운드를 통해 이끌어감으로써 스릴러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을 모두 제시해 준다. 지금 보아도 전혀 격이 떨어지지 않는 (M)은 범인의 낯익은 휘파람 소리 가 귀에생생하다. 유아 살해범인 정신분열증 환자의 묘사와 도덕적 논쟁은 이후에 만들어진 아류작들보다 앞선 시대적 감각이다.

♥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 가운데는 대중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거나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은 경우가 많지만, 그와 더불어 다음 세대의 영화에 끼친 영향력이 더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프리츠 랑의 <M>도 그러한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작품이다. 1930~40년대의 필름 누아르 감독들에게 <M>은 교과서였고, 1920년대 말에 갓 태어난 유성영화 속에 어떻게 사운드를 삽입할 것인가를 놓고 우왕좌왕하고 있던 영화인들에게 <M>은 역시 모범적인 교본이었다. 1920년대와 30년대의 독일 사회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권위주의를 지향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작품이 바로 <M>이다.


뒤셀도르프의 어린이 살해사건을 모델로 한 이 작품은 어린이 살해범 베케르트를 쫓는 경찰과 지하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랑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모색한다. 근대적 의미의 공동체는 자손을 통해 영속되며 법과 같은 권위적 관리체제에 의해 유지되는데, 그러한 권위는 개인의 권리를 제한함으로써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끝없이 자유를 원하는 개인의 본능은 공동체와 권위에 심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살인범 베케르트는 바로 그러한 위협의 상징적 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베케르트가 드러내는 정체성의 혼란, 즉 또 다른 자아를 구현한 랑의 기법들은 필름 누아르의 시각적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베케르트의 또 다른 자아는 그림자나 거울, 유리창에 비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림자나 거울은 필름 누아르의 가장 지배적인 시각적 모티브 가운데 하나다. 또한 랑은 베케르트의 개인적 혼란과 더불어 사회적 혼란도 이야기한다. 즉, 베케르트를 추적하는 사회세력이 경찰과 지하세계로 이원화되어 있는 것이다. 랑은 이러한 두 집단의 모습을 완벽한 대칭구조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두 집단이 베케르트를 추적하기 위해 회의하는 장면은 교차 편집의 전형으로 꼽힌다. 사운드 기법은 오늘날에도 그 탁월함이 빛을 잃지 않고 있다. 랑은 사운드를 단순히 영상에 종속적인 것이 아닌, 대위법적인 관계로 파악했다. 특히 유사한 구도를 가지고 있는 경찰과 지하세계의 장면에서는 사운드를 통해 대립적 관계를 부각시키고 있다. 즉, 두 집단이 살인범을 쫓는 과정에서 경찰은 시각적인 것(지도, 필적 등)에 치중하는 반면, 지하세계는 소리를 통해 베케르트를 붙잡는다. 맹인 거지가 기억해낸 베케르트의 ������페르귄트 조곡������의 휘파람소리는 청각적인 모티브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러나 랑의 가장 탁월한 사운드 기법은 은유적 기법이다. 소녀 엘시가 납치되었음을 알리는 장면은 엘시를 애타게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음 장면인 텅 빈 계단에서 울려퍼지고, 이어 엘시의 공이 공터로 굴러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처럼 랑은 사운드를 영상과 결합시켰을 때 그것이 만들어내는 은유적 효과에 대해 누구보다도 앞선 생각을 가진 감독이었다. 이 작품이 지닌 또 하나의 가치는 표현주의의 그림자를 안고 심리적 사실주의의 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M>을 영화사의 전환기에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기억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홍의 거리 (Scalet)]

출시년도 1945

줄거리

히틀러의 광기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프리츠 랑 감독의 후기 작품에 속하는 것으로, 범죄 멜로 드라마가 주특기인 랑 감독의 편력이 계속된다. (주홍의 거리)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대칭구도를 이루면서 정밀하게 내러티브가 연결된다. 이렇게 빠져나올 수 없는 꽉 짜인 구도 속에 프리츠 랑 감독은 우연적 요소를 제거하면서 차갑고도 냉혹한 영화세계를 보여 준다. 더들리 니콜스가 각본을 쓴 (주홍의 거리)는 독일 표현주의의 독특한 플롯의 대표적 작품.김의수/ 영화평론가

 

[도시의 알리스 (Alice in den Stadten)]

출시년도 1973

줄거리

빔 벤더스는 70년대 독일문화원의 스타감독이다. 76년 (시간의 항해)로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하고 81년 (사물의 상태)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으니 동시대적 감성을 건드릴 만했다. (도시의 알리스)는 (빗나간 동작) (시간의 항해)와 함께 빔 벤더스의 초기 로드무비 3부작의 첫번째 영화. 미국과 유럽의 도시를 관통하는 주인공의 여정을 추적하는 이 영화는 16mm 흑백영화지만 당대 최고의 촬영감독 중 한사람인 로비 뮬러의 섬세한 촬영술에 힘입어 매혹적인 영상을 선사한다. (도시의 알리스)는 미국여행을 하고 독일로 돌아가던 저널리스트와 알리스라는 소녀 사이에 생겨나는 우정을 그리고 있다. 알리스를 버린 어머니를 찾아나서는 여행에서 처음에 삭막하게 다가온 도시는 차츰 따뜻하게 바뀐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Angst Essen Seele Auf)]

출시년도 1973

줄거리

파스빈더의 초중반기 대표작인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너무나 뒤늦 게 한국을 찾아 온 걸작이다. 외국인 노동자 알리와 중년부인 엠마의 기 묘한 사랑은 전후 독일의 불안한 징후들과 함께 멜로드라마를 통해 사회 의 통념들을 비웃던 파스빈더식 비극이다. 영화 속 주인공 알리는 동성애자로 알려진 파스빈더의 연인이기도 하였다. 파스빈더 또한 영화 속 엠마의 사위로 등장한다. 그 자신이 훌륭한 연극 배우이자 연출가였던 파스빈더는 연극적인 기법과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 를 적절히 사용하는 특출난 감독이었다. 특히 인물들을 극단으로 몰고가 는 상황전개는 파스빈더가 얼마나 천재적이었는가를 새삼 실감케 한다. 후기작인 '13개의 달이 있는 해'에서 보여준 과격함과 극단적인 폭력성이나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에서 다룬 여인의 비극에 비해 다소 얌전하기 는 하지만, '불안.'은 파스빈더의 대중적인 성향과 정수가 고스란히 담 겨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비록 짧은 개봉일로 인해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받기는 했어도 영화광이라면 놓칠 수 없는 영화다.

파스빈더를 빼놓고 뉴저먼시네마를 논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의 영화가 난해한 것도 사실이다.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의 거장 더글라스 서크의 (천국이 허락하는 모든 것)을 변주한 이 영화가 그중 쉽게 이해되는 것은 장르적 특질과 사실적 묘사 덕분이다. 청소부인 중년여성과 외로운 아랍청년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사랑과 행복이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보편적인 사랑이야기를 하면서 파스빈더는 70년대 독일사회의 위선적인 모습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아랍인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주위의 따돌림을 받던 중년여성 에미는 나중에 자신을 멸시했던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한다. 독일사회에 뿌리박은 인종적 편견은 순수한 사랑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견고한 것이라는 얘기.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학대하고 죽음을 향해 돌진했던 파스빈더는 평생 독일사회를 증오하며 파시즘의 잔재와 싸웠다. 브레히트와 멜로드라마를 빌려 새로운 독일영화를 만들었던 그는 82년 36살로 요절하기 전까지 29편의 장편영화와 12편의 TV영화를 감독했다. 그 놀라운 창조력과 비타협적인 자세는 신화가 되기엔 충분했던 것이다.

 

[아귀네, 신의 분노 (Aguirre, Der Zorn Gottes)]

출시년도 1973

줄거리

미쳐가는 정복자의 최후를 70년대 영화광들은 의미심장하게 지켜봤다.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광기로 "나는 신의 분노다"라고 외치는 클라우스 킨스키의 모습에서 독재자의 말로를 연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게다. 영화는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찾아 남미 정글을 헤매는 스페인 군대의 이야기다. 음식은 떨어져가고 급류와 늪지가 앞길을 가로막는다. 선발대의 부대장 아귀레는 대장의 철수명령에 불복한 채 진군을 계속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살이 날아들어 병사들은 죽어가고 남은 사람들은 하나둘 미쳐간다.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아귀레, 그는 마침내 순수한 종족보존을 위해 자기 딸과의 결혼을 선언하고 정글의 광기에 중독되고 만다. 눈에 띄는 기교나 형식파괴는 없지만 헤어조그는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기묘한 결합을 통해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으로 손꼽힌다. 주로 신화 같은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던 헤어조그는 파스빈더와 맞먹는 괴짜로도 유명하다. 촬영장을 전쟁터로 만드는 헤어조그의 독단적 성격은 그의 영화에 나오는 광기어린 주인공들과 감독의 근친관계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크리스타 클라게스의 두번째 각성 (The Second Awakening of Christa Klages)]

출시년도 1977

줄거리

마가레테 폰 트로타는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되는 독일여성감독 중에 우리에게 가장 낯익은 감독일 것이다. (크리스타 클라게스의 두번째 각성)은 트로타가 남편인 폴커 슐뢴도르프와의 공동작업에서 벗어나 단독으로 연 출한 첫번째 작품. 3년 전부터 대안적인 시스템의 어린이 보육센터를 운 영해온 클라게스는 재정난에 봉착하자 운영비 마련을 위해 동료인 베르너, 볼프강과 함께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 돈을 보육센터에 전해주려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녀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포르투갈로 도피하는데..트로타는 독일여성운동에서 뜨거운 쟁점이었던 어린이 보육문제를 끌어들여와 이 영화를 여성 갱스터, 탐정 이야기와 페미니스트 이야기라는 이중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그리고 문제들을 다의적으로 작동시켜 영화에 대 한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은행을 터는 여성은행강도 이야기는 당시에 페미니즘과 정치적 테러리즘을 환기시켰고 그로 인하여 이 영화는 좌파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영화의 가장 전복적인 측면은 "여성간의 우정 혹은 여성들의 연대"에 대한 묘사에 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클라게스를 중심으로 두 축의 관계가 설정되는데 하나는 인질로 잡혔던 은행 원 레나와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도중에 만나는 옛 친구 잉그리드와 의 관계이다. 여성들은 점차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연대의 식을 느낀다. 특히 레나가 그녀를 인질로 잡았던 클라게스에게 가지는 감정이 흥미로운 부분. 틀에 박힌

반복적인 삶을 살던 레나가 클라게스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추적하면서 그녀의 삶과 범행동기를 공감하게 되는 과정이 미묘한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극의 반전으로 이어진다.

(크리스타 클라게스의 두번째 각성)은 뉴 저먼 시네마로서는 드물게 비평적인 찬사와 흥행적 성공을 동시에 거둔 흥미로운 작품이다. 한편 이 작품을 통하여 트로타는 슐뢴도르프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감독으로서 뉴 저먼 시네마 내에 그녀의 입지를 확고히 구축하였다.


[독일, 창백한 어머니 (Germany, Pale Mother)]

출시년도 1979

줄거리

브레히트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헬마 산더스-브람스의 자서전적인 영화. 산더스-브람스는 이 영화에서 모녀관계를 통하여 여성의 아이덴티티를 탐구하는

동시에 독일 현대사를 페미니스트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아버지 한스가 참전하는 2차대전 기간은 일시적으로 가부장제가 해체된 시기. 그 동안

모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행복한 날들을 보낸다. 반면 전후시기는 전쟁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파괴된 아버지에 의해 여성들이 억압받고,

가족의 행복이 파괴된 시기로 제시된다. 


 

[리듀퍼스:모든면에서 축소된 인격 (Redupers)]

출시년도 1979

줄거리

한 딸의 어머니이자 독신녀이며 여성사진가그룹의 리더인 에다는 베를린 시로부터 기금을 받아 베를린에 관한 사진전시회를 갖고자 하는데.. 그 들에게는

작업비용, 견해차, 성차별 등 너무나 많은 현실적 제약들이 존 재한다. 이 영화는 예술가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생존해야 하는 헬케 산더 자신에 대한

자기반영적인 고찰이자 동시에 1977년 분단된 도시 베를 린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독일여성운동과 여성영화에서 상징적인 인물인 헬케 산더는 보이스

오버, 자막 등 모더니즘적 영화 형식을 통해서 페미니스트 영화를 실천하고자 하였다. 


 

[리용으로의 여행 (Blind Spot)]

출시년도 1980

줄거리

아내이자 어머니이기도한 여성역사가 엘리자베스는 어느 날 불현듯 기차 를 타고 리용으로 여행을 떠난다. 바로 1840년대 사회주의자이자 최초의

페미니스트였던 플로라 트리스탄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기 위함이다. 플로라 트리스탄은 "노동자들은 나를 지지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내가 여성이고

여성의 인권을 지지하기 때문이다"라고 계급운동 내에 존재하는 여성억압을 최초로 인식했던 인물이다. (리용으로의 여행)은 남성중심의 역사에서 망각된

것들을 여성의 시각에서 재소환해내고 재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프릭 올란도 (Freak Orlando)]

출시년도 1981

줄거리

*토드 브라우닝의 공포영화 (프릭)과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란도)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영화다. 프릭 올란도가 남성과 여성의 삶을 거치면서 주변부 인생들을 만나는 판타스틱한 로드무비이다. 독일에서 강한 전통을 이어온 표현주의 양식의 여성영화를 만들어온 울리케 오팅거 감독은 초현실주의적이고 인공적인 세계를 빚어냈다.


[스탈린그라드 (Stalingrad)]

출시년도 1993

시상정보 1993년 독일바바리언 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군터 로바하

           1993년 독일 아카데미 골든 길드상 요셉 빌스마이어

           1993년 독일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군터 로바하

           1994년 모스크바 영화제 감독상 요셉 빌스마이어

           1994년 모스크바 영화제 최우수작품상 군터 로바하

 

[리스본 스토리 (Lisbon Story)]

출시년도 1994

줄거리

오늘의 진지한 감독들에게 영화만들기 자체가 종종 영화의 소재가 되고 있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산업의 파괴력, 전망의 상실이라는 안팎의 공세 아래서 자기표현으로서의 영화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없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그들은 출구를 모색하려 한다. (속 베를린 천사의 시)를 만든 이후 심한 비판을 들었던 빔 벤더스는 (리스본 스토리)에서 영화만들기의 과정을 소재로 삼아 영화의 본질로 사고한다. 녹음 엔지니어 빈터는 영화감독인 친구 프리츠로부터 엽서를 받고 리스본으로 달려간다. 리스본에는 프리츠는 없고 찍다만 필름만 남아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빈터가 프리츠에게 영화가 태어났을 때처럼 다시 거리에서 카메라를 돌리자고 권유하는 장면이다. 그건 벤더스가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파니 핑크 (Keiner liebt mich)]

다른 이름 Nobody Loves me 

다른 이름 Fanny Fink

출시년도 1994 

줄거리

공항 검색원으로 일하는 파니 핑크는 허름한 아파트에 입주해 사는 29세 의 노처녀. 죽음을 준비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빠짐없이 하며 무엇보다도 주술을 믿는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애인이다. 어느 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심령술사이자게이클럽에서 가수로 일하는 오르페오를 만난다. 그는 운명의 남자를 예 언해 주고 파니는 그 예언에 따라 이기적인 아파트 관리인을 자신의 운명의 남자로 철석 같이 믿게 된다. 영화의 초점은 파니와 오프페오의 진심 어린 관계다. 독일의 여성감독 도리스 되리의 작품. 아름다운 색채와 에 디트 피아프의 음악이 잘 어우러졌다.

 

[브라더 오브 슬립 (Brother of Sleep)]

출시년도 1995

시상정보 1995년 독일 바바리언 국제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요셉 빌스마이어

          1996년 트랜토 국제영화제 그랜드 작품상 요셉 빌스마이어

          1996년 트랜토 국제영화제 편집상 알렉산더 베르너

          1996년 홍콩 국제영화제 외국어 부문 최고 작품상 요셉 빌스마이어

          1996년 독일 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요셉 빌스마이어

          1996년 산 세바스찬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요셉 빌스마이어

 

[굿바이 마이 프랜드2 (My Friend Joe)]

출시년도 1996

줄거리

책읽기를 좋아하는 열두살의 크리스는 짖굿은 동네 아이들로부터 겁쟁이라 따돌림 당하는 처지. 그에게 구세주처럼 등장한 새 친구는 남장 소녀 조. 자전거 타는 솜씨부터 대담함까지 크리스가 아쉬워하는 것만 고루 갖췄다. 조를 남장시킨 숨겨진 폭력이 우정의 위협물. 크리스 볼드 감독. -시네마트.

 

[블루스맨 (Mr. Bluesman)]

출시년도 1996

줄거리

90년대의 독일영화는 빔 벤더스나 폴커 슐뢴도르프 등의 거장이 사라진 "예술영화의 공백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추세의 한켠엔 당연히 할리 우드의 무시무시한 상업적 마력이 존재한다. `블루스맨' 역시 나날이 할 리우드화 되어가는 독일영화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블루스 피아노연주자인 스파이크가 훔친 차를 해외로 운반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격는 악몽의 순간을 액션영화와

로드무비의 관습적인틀에 담고 있다. 해피 엔딩의 결말 장면에서 블루스 기타의 거장, B.B 킹이 직접 출연, 주인공 스파이크와 연주하는 장면이 볼 만하다. 


[비욘드 사일런스 (Beyond Silence)]

다른 이름 Jenseits der Stille 

출시년도 1996

줄거리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작품. 청각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라라는 그들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외부세계와 다리가 되어 모든 일을 현명하게 처리하던 귀여운 꼬마 소녀 라라. 그녀는 자라면서 음악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것도 아버지인 마틴이 싫어하는 "클라리넷" 연주자가 되기를 꿈꾼다. 이 클라리넷 연주는 마틴의 누이가 즐기던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자였던 마틴은 누이의 연주를 보고 경탄하는 식구들과 손님들에 의해 심한 콤플렉스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성인이 된 라라는 어머니마저 죽게 되자 아버지의 심한 간섭을 견디지 못하고 베를린에서 음악 수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침묵을 넘어서"라고 번역될 이 영화의 제목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아버지와 딸이 침묵을 넘어 서로 이해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관객들은 소리없는 청각장애자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결말 부분이 다소 상투적이긴 하지만 적잖은 질문과 고민을 전해줄 만한 아름다운 드라마다.

사람들은 "침묵을 넘어서" 삼라만상과 다른 사람의 마음과 교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정상인들도 감각하기 쉽지 않은 이 교감의 경지를 장애인들은 어찌 이룰 것인가. 카롤리네 링크가 연출한 독일영화 (비욘드 사일런스)는 농아인 부부와 그 사이에 태어난 딸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 어머니가 죽고 조금은 고집스런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소녀는 고모의 음악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게 된다. 그러나 음악을 싫어하는 아버지 때문에 소녀는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와 딸은 결국 화해하는데 그 화해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바로 소녀가 연주하는 음악. 장애인인 아버지는 소녀의 음악을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믿지 못하겠다면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된다.



[스탠 바이 유어 맨 (Maennerpenson)]

다른 이름 Stand by your man 

출시년도 1996

줄거리

판에 박은 할리우드표 코미디와는 뚜렷한 차별성을 보이지만 다소 뜬금없는 장면이 연출되는 독일의 로맨틱 코미디. 죄수들의 교화에는 감금보다

과감한 자유방임 정책이 효과적이라 믿는 젊은 교도소장이 '일'을 만든다. 힘이 저축돼 있는 남자 죄수의 한시적인 바깥 여행을 허락하는 것. 혜택

입은 두 죄수는 각각 순수한 가수 지망생과 자존심 강한 간호사와 사랑 만들기에 돌입해, 최종적으로 성공한다. 지난해 초 독일 흥행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데틀레프 부크 감독. 이성욱 기자 


[싸이렌 나잇 (Silent Night)]

다른 이름 Stille Nacht 

출시년도 1996 

주제 사랑 , SEX 

줄거리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도 다른 남자와 육체적 탐닉에 몰입하는 줄리아(마 리아 슈뢰더)의 이중생활에 관한 적나라한 보고서. 수줍기만 했던 파니 핑크, 마리아 슈뢰-더가 예의 그 숨겨진 끼를 발휘하고야 말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배경으로 독특한 색감과 이미지를 보여주며 연극적 구성이 돋보이는 음울한 영상. 파스빈더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주춤한 독일영화계를 끌고 나가는 다니 레비가 감독했고 독일의 국민배우로 발돋움할 태세 인 마리아 슈뢰더는 제작에 각본까지 참여했다. 베를린영화제 출품작.

 


[침묵을 넘어서 (Beyond Silence)]

출시년도 1996

주제 가족 

줄거리

청각장애자인 부모를 둔 라라는 어릴 때부터 부모와 바깥

세상을 이어주 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숙모

클라리사로부터 클라리넷을 선물받고 음악과 소리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면서 점차 가족들의 침묵의 세계로부터, 어린

시절로부터 벗어난다.

독일의 신예감독 카롤리네 링크 의데뷔작. 


[달 잘될 거야 (Alles Wird Gut)]

출시년도 1997 

주제 동성애  

줄거리

TV드라마 대본과 감독으로 잔뼈가 굵은 감독 앙겔리나 마카로네의 감독 데뷔작이며, 또한 유럽에서 날아온 생소하기 짝이 없는 흑인 레즈비언 드라마. 당장 생각나는 것은 (워터멜론 우먼)이나 (두 소녀의 사랑)같이 근년 톡톡히 재미를 본 레즈비언 영화들. 그만큼 부쩍 이런 영화들이 많다. 스와힐리어로 "하쿠나 마타타", 우리말 뜻으론 "다 잘될 거야." 이 낙천적인 감탄사를 제목으로 택한 (다 잘될 거야)는 나보우와 에리카 킴이란 레즈비언 커플에게서 관계의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터져나오는 외침. 나보우는 예전의 연인이던 카차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절망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실직 레즈비언. 반면 킴은 언제나 최고가 되려 발버둥치는 카피라이터. 그저 둘을 이어주는 공통점이라곤 인종차별주의에 매일 시달려야 하는 흑인 레즈비언이라는 점뿐. 이 두명의 입심 좋은 레즈비언이 서로를 헐뜯고 화해하는 일상을 통해 백인사회의 유색인종 레즈비언으로서의 삶을 가꿔나간다.

추천노트: 요즈막의 레즈비언 영화의 말솜씨를 집약하는 풋풋한 레즈비언 로맨틱 드라마. "멜로여 안녕"에서 "멜로여 너를 믿는다"로 바뀐 근년의 레즈비언 드라마의 추세를 보여준다.

 


[워커홀릭 (Workahokic)]

출시년도 1997

주제 사랑 , 코미디   

줄거리

독일의 여자감독 샤론 폰 비터샤임이 보기에 현대의 조직사회는 사랑을 할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방송국 엠시(MC) 로다의 애인 막스는 그런

사회의 보편적 인간형이라 할 일중독자. 로다는 막스의 무심함에 지쳐 스스로 일을 찾아 독립하기로 한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감춰줄

과시용 여자친구가 필요한 은행가 세드릭 덕에 텔레비전의 주요 프로그램을 따내고, 자유로운 음악가를 '침실용' 새 애인으로 얻는다. 막스가

이쯤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에서 탈출한다는 로맨틱 코미디. 크리스타인 폴, 토비아스 모레티, 랠프 바우어 주연. 리콜트 폰 가제른과 텔레

뮌헨 필름 제작. 안정숙 기자 



[카스카듀어 (Cascadeur)]

출시년도 1997

줄거리

주연, 감독, 제작의 1인 3역이 돋보이는 하디 마틴스 감독의 데뷔작. (인디아나 존스)의 제작군단이 만든 만큼 내용 또한 보물을 찾아 나서는 고고학자와 독일군과의 대립으로 전개된다. 액션이 강조된 아류 (인디아나 존스)이다.

 

[코미디언 하모니스트 (Comedian Harmonists)]

출시년도 1997  

줄거리

(스탈린그라드), (브라더 오브 슬립) 등으로 국내에 알려진 조셉 빌스마이어 감독의 신작. 20년대 후반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 베를린에서 활동했던 남성 6중창단의 이야기다.


 

[롤라 런 (Lola Runnt)]

출시년도 1998

줄거리

# 롤라의 애인 마니는 자동차매매 회사 수금원. 지하철 안에서 보스에게 20분 뒤 건네줘야 하는 10만마르크의 돈을 잃어버린다. 롤라는 돈의 행방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가 달리기 시작한다. 속도감과 긴장감 넘치는 젊은 영화.


# "59년 장 뤽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로 데뷔했을 때의 흥분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독일감독 톰 카티에의 (롤라 런)이 발표되자 독일언론은 (롤라 런)이 다음 세기 독일영화의 희망을 알리는 사건이라고 떠들어댔다. 독일영화가 자국에서 이렇게 주목받은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 톰 카티에는 (롤라 런)에서 (네 멋대로 해라)처럼 비정통적인 테크닉을 통해 새로운 영화미학을 구현한다. 170만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점프컷, 들고찍기 촬영, 빠른 카메라 움직임으로 불과 81분의 상영시간 동안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할 만큼 현란한 기교를 선보인다. 자동차매매 회사 수금원인 롤라의 애인 마니는 지하철역 안에서 보스에게 20분 뒤 건네줘야 하는 10만마르크를 잃어버린다. 롤라는 돈의 행방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가 달리기 시작한다. 톰 카티에는 단순한 플롯에 화면 분할 효과와 애니메이션, 비디오 화면까지 동원해 이야기와 스타일의 경계의 한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제2회 부산판타스틱영화제 월드판타스틱 시네마 부문 출품작.


# 독일 젊은 감독 톰 티크베르의 세번째 작품으로 베니스, 토론토, 선댄스 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 초청됐다. 롤라의 남자친구 마니는 조직 두목의 돈을 나르다 실수로 돈가방을 지하철에 놓고 내린다. 20분 안에 10만마르크를 만들어 두목에게 주지 않으면 죽을 운명에 처한 마니는 롤라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한다. 롤라는 돈을 구하기 위해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동분서주한다. 점프 컷, 애니메이션, 들고 찍는 카메라의 기교들이 현란하다. 톰 티크베르가 직접 관여한 테크노 음악도 영화에 속도감을 더한다. -우일 (★★★☆) / 한겨레 1999.06.04


# 완성도와 재미에 비해 국내에서는 많은 극장을 잡지 못한 탓에 아쉽게 흘러간 영화. 시종일관 달리는 화면이 인상적인, 그냥 지나치면 후회할 작품이다. 독일의 장 뤽 고다르라 불리는 톰 티크베어는 90분 속에 한 가지 사건을 재치있고, 세 가지 시각으로 요리해냈다. 그리하여 롤라가 달리는 상황은 여러 상황으로 전개되고, 한 가지 사건은 다양한 계열로 변주된다. 이번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한 영화로, 현란한 점프 컷의 화면들이 시각적 즐거움을 더해준다. 사운드트랙 또한 압권이다. 감독 자신이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기도 하다. / 씨네21 203 비디오



[밴디트 (Bandits)]

출시년도 1998  

줄거리

*감옥에서 밴드를 만든 네명의 10대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독일의 뮤지컬 영화. MTV 스타일의 활력을 도입해 속박을 거부하는 10대와 록음악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영화에 옮겼다. 할리우드 영화의 매력을 자국영화에 이식하려는 유럽 상업영화의 한 경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젊은 영화의 유행을 만들어내려는 경쾌한 유희정신을 내세운다.


*감방동기인 반항적이고 시니컬한 폭력범 루나, 매력적인 결혼사기범 엔젤, 연약한 심성의 살인미수범 마리, 록가수 출신 엠마는 밴디트라는 록그룹을 결성한다. 그리고 감옥에서 탈주를 감행하는데 이들이 수감중에 보낸 데모 테이프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카차 폰 키르니에 감독, 카차 리만, 야스민 타바타바이, 니콜레트 크레비츠, 유타 호프만 출연, (주)신필림 수입․배급 [씨네21 188호 20자평]

 

[킬러 콘돔]

특수효과 유치해도 순간의 재치 빛나

Kondom Des Grauens

감독 : 마르틴 발츠

출연 : 우도 사멜, 마르크 리히터

등급 : 18세 이상 관람가

제작/수입/배급 : 영성

뉴욕 한 모텔에서 남자들 성기가 잘리는 사건이 줄을 잇자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다. 형사 루이지는 우연히 성기를 물어뜯는 정체 불명의 괴물킬러 콘돔을 목격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 가운데 피해 자가 점점 늘어난다.

대강의 스토리에서 짐작되듯, 독일영화 '킬러 콘돔'은 기상천외한 소재를 황당한 상상력으로 다루는 전형적 B급 영화이다. 스토리는 엉망 진창이고,키치적 세트와 미술은 조악하고 야단스러우며, 할리우드 블럭 버스터에 비하면 돈 적게 들인 특수 효과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순간 순간의 재치와 생각나는대로 화면에 담는 B급 영화 특 유의 자유스러움이 전편에 가득차 있다. 폼 잡는 내레이션에 과장된 연 기가 부조화를 빚고, '사이코' 샤워 살인장면과 '죠스' 음악효과를 패 러디하는가 하면, 어느새 정치와 종교를 직접적으로 야유하기도 한다.

게다가 '킬러 콘돔'은 노골적인 게이 영화이다. 거대한 성기를 가진 주인공 루이지는 수시로 남창과 관계를 맺는 게이이고, 옛 경찰 동료 밥은 여장을 하고 바베트란 여자 이름으로 살아간다. 루이지와 남창 빌 리 사이의 사랑이 영화의 또 다른 기둥이 되고, 루이지는 종반부 이성 애자의 편견을 꾸짖는 일장훈시를 한다. 종종 동성애자들 섹스가 암시 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킬러 콘돔이 남성 성기를 물어뜯는다는 설정 속엔 프로이트가 이야 기한 유아기적 거세 공포가 희화화되어 담겨있다. 하지만 킬러 콘돔 모 양을 노골적으로 여성 성기처럼 표현해낸 이면에는 게이들 입장에서 남 녀사이의 섹스를 보는 부정적 느낌이 배어있기도 하다. 킬러 콘돔은 게 이들을 물어뜯는 사회 편견을 은유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작년 서울에서 꽤 화제를 불러모으며 열렸던 제1회 퀴어영화제 상영 작품. 아주 독특하지만 사람에 따라 무척이나 불쾌한 영화가 될 수도 있다.


■몇 가지 영화에 대한 글

∙파우스트

1<소개>

괴테가 중세시대의 독일 전설인 파우스트에게 흥미를 가지고 그것을 희곡으로 작성해 보겠다는 생각을 일으킨 것은 일찍이 소년 시절부터였고, 초고 파우스트가 작성된 것은 그의 슈트라부르크의 대학시대였으니 1774년경, 즉 괴테가 24세 되는 때이다. 그러나 그것이 간행된 것은 그후 여러 차례 가필된 단편 파우스트로서, 1790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그 후 다시 쉴러의 권고 등으로 새로운 장면을 첨가하고 고쳐 써서, 쉴러의 사망 후 1808년에 제 1 부가 출판되었다. 그 다음에 오랜 중단 기간을 경과한 다음 영국의 천재 시인 바이런이 그리스 독립전쟁에서 사망하였을 때 거기에 자극을 받아 제 2 부의 집필을 시작하였다. 바이런의 필명은 극중 제 2절에 오리프리온에 암시되었다. 전편을 완결한 것은 1831년 8월이었으니 그가 죽기 불과 반년 전인 것이다. 따라서 도합 60년의 세월이 걸린 이 작품은 그의 폭풍노도기부터 고전기를 거쳐 만년의 종합적 완성기에 이르는 전생에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되어 있는 전설상의 파우스트는 15세기 또는 16세기경에 실재했다는 연금술사이며 거기에 여러 가지 마술의 이야기가 혼입되어서 16~17세기에는 널리 파우스트 전설이 독일 각지에 유포되어 있었다. 이것이 최초로 책이 되어 나온 것은 1587년 프랑크프르트의 서점주인 수피스에의한 것이었으며, 또한 영국의 극작가 마아로우에의한 비극 파우스투스박사의 비화는 체제를 갖춘 최초의 파우스트 극이라고 할 것이다. 그 마알로우의 작품이 영국의 순회극단에 의하여 다시 독일로 역수입되어 독일에서도 그것이 민중극 또는 인형극으로서 상연이 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파우스트 전설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생겨서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주인공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속박을 벗어나려하는 순수 독일적인 거인의 상징인 것이다 그가 인간으로서의 모든 학문과 재주를 획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만족치 못하고 우주의 신비와 최고의 향락 및 부유를 맛보고자 악마에게 몸을 팔기까지 한다. 즉 악마는 파우스트에게 모든 욕망과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24년 후에는 그이 영혼을 자기 마음대로 가져가겠다는 계약을 맺는 것이다. 그래서 파우스트는 악마를 일단 자기의 종으로 데리고 다니며 그 마술의 힘으로서 가진 향락과 정욕을 마음대로 누린다. 그러나 온갖 욕망의 충족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마음의 만족을 발견할 수 없어서 신에게 기도를 올리려고 한다. 그 때 악마는 미인의 전형인 고대 헬레나를 마술로 재현시킨다. 파우스트는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그녀를 포옹하는데 그 순간 헬레나는 복수의 여신으로 변해서 파우스트를 지옥으로 끌고간다

대략 이와같은 줄거리이며 괴테에게는 특히 그러한 파우스트의 욕망과 충동 그리고 그 고뇌와 운명이 독일적인 인간상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괴테가 그 인간상을 전 인류의 보편적인 상징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이상적인 형상으로서 끌어올리기까지는 80평생의 체험과 노력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괴테의 파우스트에 있어서는 주인공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는 점에 특색이 있다. 이것은 괴테 자신의 인생관과 종교관의 근본 문제이기도 하지만 괴테의 파우스트가 종래의 권선징악적 또는 외신적 전설이야기의 경지를 벗어나서 위대한 인류의 문학으로 변모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이기도 한 것이다. 하기야 괴테 이전의 계몽주의자 레싱도 파우스트를 구제하여 그의 진리탐구의 충동 자체를 죄악시하는데 대한 최초의 계몽적 반기를 들었지만 레싱의 작품은 결국 완결을 보지 못했던 것일뿐더러 그의 입장은 지식면에서 그치는 것이고 괴테에 있어서처럼 그것이 뚜렸하게 전인적인 근본문제로서까지 등장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2<테마>

진리 탐구에 매진하던 개인이 완성되는 테마이다. 이 작품의 중요한 가치는 살아가는 동안 가슴 속 깊이 내재된 여러 사념과 사고들, 감정들을 통쾌하고 완벽하게 완성해 냈다는 데 있다. 더구나 대화와 문구들이 각각 그 하나로 완벽한 시를 이룬다는데 더욱 감탄하게 된다.

구성면에 있어 희곡의 형식을 빌어 여러 인물의 자연스런 도입과 사고 진행의 부드럽고 극적인 전개에 놀라게 된다. 파우스트 박사와 메피스토펠레스의 대화가 주된 골격을 이뤄 이 둘 사이의 대립하거나 동행하는 대화들, 행동들을 통해 살아가면서 표현하진 못했지만 느껴봤을 가슴속에 가둬진 말들, 모순된 행위들을 정곡을 찔러 통쾌하고 완벽하게 서술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은 모두 괴테 자신의 삶에서 비롯된 깊은 통찰의 반영으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대화는 결코 그 하나가 배척되는 것이 아니다.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의 마술 때문이 아니라 메피스토펠레스의 사고와 인간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있었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 단지 행위만 있었다면 향락일 뿐 파우스트는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와의 대화가 있었기에 '행위'가 아닌 '행동'을 한 것이다. 또한 등장 인물은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이외에 수많은 인물이 나온다. 이런 인물들의 대사는 인간의 삶과 생각들에 대한 완벽한 표현을 이루고 있다. 결핍, 죄, 근심, 곤궁 같은 추상적인 존재를 희곡의 형식을 빌어 인물로 등장시키고 그들의 입장이나 퇴장같은 행동과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런 추상적 개념을 극적으로 정의해 내는 등 여러 인물의 직접적, 간접적인 비유나 표현에 놀라게 된다.


3<줄거리>

<제 1부>

파우스트의 제1부는 최초에 현시와 무대의 전곡이 있으며 그 다음에 천국의 서곡이 나오는데 여기서 그 전체의 윤곽이 암시된다. 즉 악마 메피스토는 천상의 신과 내기를 하여 기어코 파우스트를 유혹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거기에 대해서 신은 파우스트가 결국은 올바른 길을 찾아갈 것을 확신하지만 그에게 시련을 주기 위하여 메페스토로 하여금 유혹하는 것을 허락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은 미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은 동시에 "선한 인간은 설혹 컴컴한 충동을 받더라도 역시 올바른 길을 잃지 않는 것이다" 하고 메피스토에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메피스토는 관능적 향락과 욕망의 충족으로 인간을 유혹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번만은 신에게 내기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본곡에 들어가서 제 1부의 막이 열리며 오십여세의 노교수 파우스트가 중세의 고딕식 연구실 속에 둘러 쌓여서 혼자 앉아 있다. 그는 우주 일체의 가장 깊은 진리의 본질은 규명하고자 철학, 법학, 의학, 신학 등 인간의 지혜가 미칠 수 있는 모든 학문에 통달하였으나 목적하던 우주의 본체와 창조의 원리는 조금도 해명할 수 없다고 탄식한다. 아무리 발버둥을 하여도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일찍 배웠던 영술을 사용하여 초인간적인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나 역시 실패한다. 그래서 그는 구차스러운 육신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드높은 자신의 이상을 따를 수 없음을 통감하고 인간이라는 탈을 벗어나서 영들의 세계로 하늘 높이 비상하려는 결심을 한다. 그는 사방의 벽에 가득한 서적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고요한 밤중에 홀로 독배를 마시려고 한다. 바로 그 순간 부활절의 새벽 종소리와 더불어 예수의 재생을 노래하는 합창소리가 들려온다 그 희망에 넘치는 맑은 목소리는 파우스트의 굳어 붙은 마음을 다시금 아득한 옛날의 생의 환희로 잠 깨워 주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들었던 독배를 떨어뜨린다. 그가 필생의 학구와 해박한 지식과 정신력으로서 얻지 못하였던 다른 하나의 생의 의의를 그 소박한 인간의 근원에 있는 자연성으로 다시 찾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날 부활절에는 오래간만에 거리에 나가기도 하고 민중들 사이에 끼어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기도 하면서 한낱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향락을 직접 체험하였고 그것으로서 지금까지 도달하지 못했던 진리를 발견해 보고자 하였다. 산책길에서 돌아올 때 그는 한 마리의 강아지가 뒤따라 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악마 메피스토털레스의 변신이었다. 다시 서재로 돌아온 파우스트는 새로운 의욕으로 요한복음을 사랑하는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한다. 우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의 말씀을 독일어로 "말"이라고 해놓고 벌써 막혔다. 말을 그렇게 까지 높은 뜻으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 "뜻"이라고 고쳐 본다. 그러나 그것은 소극적이어서 또다시 "힘"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방향을 잡을 수 없어서 "행위"라고 하여 "태초에 행위가 계셨느니라" 고 해 놓고 그는 일단 안심할 수가 있었다. 즉 우주의 근원에 존재하여서 만물을 구성하는 본체를 행위라고 한 것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사상과 상통하는 사상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파우스트를 따라 온 강아지 사실은 메피스토는 학생의 모습으로 변하여 악마의 본성을 나타내고 이어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계약을 성립되었다


내가 어는 순간을 향하여

멈추어라! 너는 정말로 아름답다!

하고 소리 칠 땐 너의 맘대로 나를 결박하려무나

나는 즐거이 명망할 것이고

죽음의 종소리가 울릴 것이다.


그리하며 메피스토는 현세에서 파우스트이 종복이 되어 인간사회의 모든 향락과 부귀를 마음대로 누리는데 노력을 하지만 그 대신 내세에 가서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자기가 마음대로 소유하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만약에 파우스트가 향락과 유혹에 빠져서 어디까지나 항상 노력하는 그의 기상을 잃어버린다면 즉 어느 한 찰나에 향락의 극치를 맛보고 거기에 탐닉하여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면 자기는 멸망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파우스트를 타락시키고 그의 영혼을 탈취함으로서 승리를 거두려는 악마 메피스토와 오히려 그 악마를 노예처럼 부리며 그의 재주를 사용하여 넓은 세계의 모든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자기가 심오한 학구로서 얻지 못했던 인간과 자유의 궁극적 진리를 발견해 내려는 파우스트는 함께 인생수업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 간 곳은 학생 술집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무궤도하고 난잡한 음주와 소란이 노련한 파우스트에게 별 흥미가 있을리 없었으니 그 다음에 메피스토는 관능과 성욕의 방법으로 그를 유혹하기 위하여 마녀의 굴로 이끌고 간다. 거기서 그는 마약의 힘으로 그를 20대의 청년으로 변하게 만들었으며 이제 어떠한 여자하고도 정욕의 구렁에 빠지도록 악마에 의해서 준비는 다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젊은 파우스트가 최초에 만남 여인은 마치 지극히 순결하고 귀여운 그레트헨이라는 처녀였다. 과연 메피스토의 계획대로 파우스트는 그 소녀에게 담박 반했지만 그것은 예상외로 깨끗하고 진실한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젊은 남녀의 사랑은 메피스토의 마술의 힘이 계입되어서 끝내 넘지 못할 선을 넘었을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예기치 않았던 죄까지 저지르고 말게 되었다. 순결하고 천진난만하던 처녀 그레트헨도 어느새 사랑의 노예가 되어서 님을 위한 일편단심에 마음이 팔려 과실로 자기 어머니를 죽였을 뿐 아니라 순박한 오라비까지 죽게 하고 급기야 사생아를 낳아서는 어쩔 줄 몰라 광증에 걸려서 영아 살인의 무서운 결과를 빚어냈다. 한편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유혹과 계략에 빠져서 환락경 발푸르기스의 밤에 참석하고 있었으나 자기의 애인 그레트헨이 그러한 고난에 처해 있음을 알고 즉시 그녀에게로 달려간다. 파우스트는 환락과 도취 속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뿌린 죄의 씨를 회피함이 없이 달게 받으려는 각오가 있었던 것이다. 그레트헨은 이제 완전히 정신착란을 일으켜서 자기가 목메그린 애인 파우스트까지 알아보지를 못하고 무서운 사형을 눈 앞에 두고도 구원하러 달려온 그와 함께 도망치려고 하지 않는다. 형을 감수함으로서 자기의 육신을 신에게 바쳐서 심의 심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녀는 함께 도망치자는 파우스트에게 오히려 당신이 무섭다고 한다. 그때 메피스토는 그 광경을 보고 "저 여자는 처벌되었다" 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천상에서 "구원되었다" 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 내려왔다. 인간의 어떠한 죄과도 진실한 인간성과 양심으로서 정화될수 있다는 괴테의독특한 기독교 정신이 나타나 있는 장이다. 여기서 1부는 끝나고 제1부는 그레트헨의 비극이라고 한다

제 2부에 들어가면 파우스트는 미를 추구해서 생의 의의를 파악하려고 한다. 제 1부가 악

악마의 힘으로 현세의 향락과 체념을 얻어서 본체를 규명하려다가 비극으로 끝나는데 반해. 2부는 고전미의 전형으로서 희랍미녀 헬레나를 따라가서 그녀와 결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만족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헬레나의 비극이 되었있다. 이것으로써 괴테의 유년기에 집필된 제 1부와 고전기에 집필된 제 2부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뿐더러 전체를 통해서 볼 때 괴테의 이념이 마이스터에서도 표현된 바와 같이, 인류사회를 위한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에 가치를 부여하려는 그의 말기의 소신을 나타내려는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제 1부의 끝에서 파우스트가 겪은 그 비참한 체념으로 그는 정신과 육체에 타격을 받고 쓰러져 버렸던 것인데 이제 다시금 자연의 위대한 소생력으로써 새로운 갱생과 용기를 가지고 깨어나는 장면으로서 제 2부의 시초가 이루어져 있다. 메피스토는 그를 이번에는 대 세계로 안내한다. 그는 제 1부에서 그를 소 세계 즉 소시민의 세계이며 인간의 개인 생활의 근본을 체득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였던 것인데 이번에는 시야를 넓히어서 보다 상류의 공공적 성질을 띄운 곳으로 데려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로마제국의 궁정에 들어간다. 거기서 그는 지하의 보물을 담보로 지폐를 남발하여 재정난을 구한다. 괴테 자신의 바이마르 입궁과 국가재정관리의 고충을 엿볼 수 있다. 그 공으로 파우스트는 중용되었고. 그 재주로서 황제 앞에 세계의 고금을 통한 미남과 미인인 파리스 및 헬레나를  불러 내보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러나  메피스토의 마술을 가지고도  이미 지나간 고대 그리스의  인물을 살려 내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메피스토에게서 얻은 열쇠를 가지고 시공을 초월한 어머니들의 나라로 건너가서 거기에 헬레나의 형태를 빌려온다. 파우스트는 거기서 마의 열쇠의 자력으로 삼각의 향로를 이끌어 왔으며 그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파리스와 헬레나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것은 본체가 없고 그저 형태뿐인 환상이었는데,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파우스트는 그것을 껴안으려고 하였다. 그때 그 열쇠가 그녀에게 접촉되면서 폭발하고 파우스트는 기절하였다.

제 2막에서 기절한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에 의해 운반되어 예전 파우스트의 연구실에 뉘어져있다. 예전의 조수였던 바그너가 이제는 명교수가 되어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조인간 호움쿨루스를 제조하는데 성공하였다. 조그마한 유리병 속의 소인간은 매우 총명하여 지금 잠자는 파우스트의 꿈을 투시한다. 그때 파우스트는 헤레나 출생의 아름다운 정경을 꿈꾸고 있었는데 , 그것을 인조인간이 투시하고 그를 미의 고전의 나라 그리스로 데리고 가서 잠깨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여 그를 비행망토에 태워서 그리스로 운반해 간다. 그리스의 테살리아에서 잠 깬 파우스트는 헬레나를 찾아서 헤메이었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한편 호뭄클루스 정신 뿐의 존재여서 육체를 갈망하였고, 사랑의 여신 가라네아의 아름다움을 쫓아가다가 드디어 유리병이 깨어져서 불꽃이 되어 흘러가 버렸다.

다음 제 3막에서는 트로야로부터 와비 헬레나가 희랍군에 탈취되어 스파르타로 돌아온다. 그녀는 변장한 메피스토의 안내로 게르만의 침입군의 수령에게로 인도되어 가서 결혼하게 된다. 그 수령이 바로 파우스트였다. 중세 게르만의 영웅과 희랍미인의 결합은 북구의 생명력과 남구의 형식미와의 조화를 의미하고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 오이포리온은 영국의 천재시인 바이런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조숙한 천재 오이프리온은 경쾌하고 개성적이며 투쟁적이다. 그는 그리스의 독립전쟁에 뛰어 들어가서 양팔을 날개처럼 펼치고 언덕에서 대담한 비약을 하여 거꾸로 떨어졌으며 그 아름다운 육체를 없애버렸다. 헬레나는 그 뒤를 딸라 저승으로 갔고 이제 파우스트에게는 그녀의 겉옷만이 남아 있었다. 즉 여기서 고전주의의 껍데기인 형식만이 남게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주의적 세계의 방문으로 사상이 풍부해져서 돌아온 파우스트는 미적 향락으로 이루지 못한 만족을 인간사회의 공익을 위한 자신의 헌신적 노력으로 얻으려 한다. 그는 광대한 해안 지대의 간석지를 개간하여 만인을 위한 옥토를 형성하려는 큰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러기 위하여 황제의 강적을 격파하고 그 보상으로서 토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사상을 꿈꾸고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하여 그는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여 비로소 마음의 행복을 얻게 되었다. 연령이 백세에 도달하여 메피스토가 불러낸 근심의 소녀가 뿜는 입김으로 눈까지 먼 그는 그때야 비로소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 멈추어라 순간이여, 그대는 참으로 아름답다.!"라고 하는 소리를 하였다. 그래서 메피스토는 약속대로 령을 빼았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의 유혹에 빠져서 향락이나 물질적 욕심에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가 내기의 조건에는 졌을 망정 그 내용에 있어서는 최후의 시련에까지 훌륭히 이겨낸 것이나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의 영혼은 구원될 자격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의 구원이 단순한 자력으로서만이 이루어질 수 없고 천신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괴테의 종교관이었다. 천사들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는 우리가 구원할 수 있다. "하며 파우스트의 영혼을 마귀들로부터 뺏어서 구출하지만 천국까지 오르기에는 하늘로부터의 은혜가 내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죄의 여인의 하나로서 옛 애인이었던 그레트헨이 나타난 성모에게 그의 영혼을 위한 은총을 빌었다. 그리하여 그는 천국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대사>

메피스토펠레스

현세를 벗어난 쾌락이라, 이거군

밤이슬에 젖어 깊은 산 속에 누워서,

땅과 하늘을 황홀하게 포옹하고,

내 스스로를 부풀려서 신이나 된 듯한 기분이 되어,

대지의 골


수를 예감의 힘으로 파헤치고,

엿새 동안의 신의 창조를 가슴에 느끼며,

오만스레, 나 같은 것은 무언지도 모르는 것을 맛보고,

때로는 사랑의 기쁨에 취하여 만물 속에 녹아들고,

지상의 아들로서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그리고 그 고원한 정신적 관찰을- 입으로는 말하기 어렵지만- (음란한 몸짓을 하며)

이런 것으로 끝을 맺자는 것이겠지요.

 

적의의 여신

메가이라 

사람은 모처럼 구한 것을 품에 간직하지 않고,

더없는 행복에도 익숙해져 버리고는,

어리석게도 더 좋은 것을 동경하는 법이지요.

태양을 버리고 서리로 따스해지려는 격이지요

 

 메피스토펠레스

 맙소사! 그만둬라!

폭군과 노예 제도의 싸움 따위는 보기도 싫다.

지루해서 못 견딘다. 끝이 났나 하면,

또 처음부터 시작이거든.

더구나 뒤에 숨은 불화의 악마 아스모데우스에게,

조롱당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단 말이야.

자유의 권리를 위한 싸움이라고는 하지만,

자세히 보면 노예 대 노예의 싸움과 다를 바 없거든. 


5<요약> 

전체 내용은 <비극 1부>와 <2부 1막~5막>으로 구성됩니다.

1부에서 파우스트는 현실에서 더 이상 진리를 얻지 못하고 악마와 계약을 합니다.

진리를 찾고 그 순간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고 할 때까지 악마는 파우스트 박사의 종이 된다는 계약입니다. 비극 1부에서는 온갖 쾌락과 즐거움을 맛봅니다. 소녀 그레트헨과 사랑에 빠져 기쁨을 얻습니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을 유혹하여 임신케 한 나머지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를 죽게까지 합니다. 혼자 남아 멍해져 버린 그레트헨은 낳은 아기를 물 속에 버리고 감옥에 갇혀 처형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감옥에서 미쳐 버린 연인을 바라봅니다.

 2부에서 파우스트의 활동 영역은 과거에서 미래, 인간 세계에서 그리스 신화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활합니다.

 1막에서는 궁핍한 황제에게 부를 주고

 2막은 미의 여신 헬레나를 찾아가는 과정

 3막은 헬레나와의 사랑과 좌절

 4막은 새로운 목표와 희망, 그것을 이루기 위해 황제에게 땅을 얻는 과정

 5막은 꿈을 실현하려 하는 과정과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으로 종결됩니다.


호모파버

1<테마>

프리쉬의 호모파버는 주인곤 발터 파버가 여행이라는 방랑상태에서 주위의 상황과 인간을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기록이다. 프리쉬는 이 작품을 통해서 현대에서 고정된 상황은 허위이며 신념 고정관념 운명 따위는 진실의 적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한 모든 것은 살아있고 떠돌고 있는 상태에서 포착되어야 하며 인간 인식의 타성에서 완결된 초상이 만들어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즐겨 쓰는 형식을 완결되니 않는 세계상을 표현하기 위한 일기체의 스케치로 이러한 형식으로 씌여진 작품은 그의 지성이 현대 휴머니즘의 극점에 달한 것을 시사해 준다.

이 작품의 제목인 "호모파버"는 이 제목 안에서 벌써 한 유형의 관계를 지배하는 특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호모파버는 원래 라틴어인데 "대장장이로서의 인간" 즉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기술적인 인"간 또는 "공작인' 이라는 뜻이다. 이것과 대립되는 단어는 호모사피엔스 즉 예지의 인간이다. 예지의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특히 이성을 통해서 사고하는 인간이다. 따라서 호모파버는 이론적 사색적인 인간이 아니라, 실용적이며 기술적이 것에 종사하는 인간이다.

피르쉬는 이 호모파버를 통해서 20세기의 기술문명에 의해 탄생된 자기를 상실한 현대인의 초상을 보여주고 있다. 호모파버 자신의 세계관계 자체와 프리쉬가 자주 언급하는 템포라는 말 속에 초개인적인 현대문명의 문체가 깃들어 있다.

인류의 문명은 우리의 한계, 우리의 템포 우리의 척도를 벗어나 무한히 달리고 있다. 이리하여 현대의 비극 즉 인간 상실이 시작된다.


2<줄거리>

주인공 호모파버는 209세기의 기계문명 때문에 인간의 감정과 정서 정신생활을 모르는 기계적인 인간이다. 그는 오로지 기술자이기만 하다. 신의 섭리라든가 인간의 운명 따위는 믿지도 않는다. 그는 통계로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이며, 신도 신화도 모르는 기계적 인간이다. 그는 있어야 할 궁극적인 의미에서 좁은 세계만을 지닌 참된 삶을 모르고 살아온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자아를 상실한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는 세계와 개인과의 상호관계 또 주위 세계와 자아의 의식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는 말하자면 자의 위축에 의해 주위 세계에만 동화되어 사는 인간이다. 이는 자기소외 즉 인간의 삶에 대한 치명적인 소외상태에 빠지게 마련인 것이다. 이것은 프리쉬가 지적하듯이 기계문명의 혜택을 받은 오늘날 우리 인간의 가장 큰 결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호모파버는 저개발국을 위해서 유네스코에 소속된 기술자로서 비행기와 자동차로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바쁜 직업을 갖고 있다. 그는 실무나 자기가 개인으로서 해야 할 일에 있어서는 빈틈이 없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현대 기계문명을 극도로 유익하게 이용할 줄 아는 기술자다. 그는 일상적인 관계를 거의 혐오하다시피 하고 실무로써만 대인 관계를 갖는다. 여인들과의 애정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에게는 자기 고유의 정신적인 체험보다는 육체적 물질적인 향락만이 전부다. 인간을 사랑하는 감정이 그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나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아버지가 되기를 기뻐하기 보다는 당혹해 한다. 또한 결혼문제도 그렇다. 애정에서 한나와 결혼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유대인의 피를 갖고 있어서 결혼하려는 것이다.

호모파버가 기계 조립을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가던 중 엔진 고장으로 멕시코의 어느 사막에 불시착한다. 광활한 사막에서 밤에 달을 쳐다볼 때 인간은 무엇인가 느낌을 갖게 되지만 그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는 시공의 무한성을 생각해 본다든가 태초의 개벽을 생각해 보는, 말하자면 불가사의한 신비성에 대한 어떤 감동을 갖지 못하는 인간이다. 삼라만상을 대할 때, 그는 그것들이 한결같이 계산해낼 수 있는 물체로만 여겨질 뿐이다. 그는 감정의 고갈 상태에 있다. 이와 같은 현대인간의 무감각성은 인간이 인간을 수 있는 소위 양심이라는 것을 잃어버린 것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작가 프리쉬의 천재적인 착상 가운데 투사된 인간형이 세계와 접하고 있는 관계를 분석하여 그것의 각도와 좌표를 음미해 본다면, 현대인간의 남과의 관계 맺음에 대한 기피증을 우선 들 수가 있다. 호모파버가 멕시코로 향하는 비행기 속에서 자기 옆 좌석의 독일인 헤르베르트에 대해서 관계를 맺음을 기피하고 있는 것은 현대인의 특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호모파버는 또한 인간의 감정을 부인하고 있고 신의 섭리나 인간의 운명을 믿으려 하지도 않고 있다. 그리고 신비라는 말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불가항력적인 존재를 인정하려들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는 연속적으로 우연한 일들이 일이어나고 있었는데 그것을 오로지 우연의 연속으로만 보고 있고 확률에 의하여 모든 계산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하여 기계적이고 생리적인 현상의 우연들로부터 운명을 유도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며 현대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라고 파버는 말하고 있다. 그는 오직 수리와 합리성 및 법칙에만 의존하고 그것만을 신봉하고 있는 자로서 그에게는 경이롭고 놀라워할 만할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타산적인 머리의 소유자 호모파버가 만사에 무서울 정도로 정확을 꾀하고 있으나 부단한 계산과 정밀한 사고의 한계와 그 허점까지는 생각지 못했다는 것, 즉 자기의 계산의 정확성을 맹신한 것이 그의 비극이 된다. 자베트가 그의 딸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머릿속에 감돌고 있으면서도 무엇보다 정확한 계산만을 중시하고 근친상간적 연애 관계라는 기구한 운명을 의식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소포클세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근친상간을 갖게 되는 비극이 운명에 의한 비극이었다면 호모파버가 겪는 비극 또한 현대 기계문명에 의한 인간상실에서 일어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작가 막스 프리쉬는 이 작품에서 이 같은 인간형의 한 모델인 호모파버를 제시하여 인간 내면의 문제를 문명의 문제 및 시대의 문제와 병립시켜 놓았다. 따라서 호모파버라는 이 작품 중에는 호보파버라는 인간형을 다루면서 인간의 영원한 본질적이 내면문제와 더불어 20세기 인간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 특히 망각된 자의식, 잃어버린 자아, 잃어버린 인간의 척도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프리쉬는 기계문명의 허위에 가득한 호모파버를 독특한 언어로써 성격화하고 있다. 즉 간결한 전보문 스타일의 문체 냉담하고 타산적인 말, 비약이심한 말들을 구사하여 파버의 성격을 특징 짓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의 허세에 찬 기계인으로서의 장광설을 자기 자신을 은폐하려는 허세이기도 하며, 공허한 마음, 확실에 대한 회의, 그리고 삶 자체와 인간관계에 있어서 진정한 관계의 결핍들은 은폐하려는 수작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들이 일생생활의 허위의 몸짓 그리고 현대 문명에서의 자기 소외를 극복하는 길을 찾아보게 하려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즉 작가 막스 프리쉬는 호모파버의 운명을 우리에게 보여 줌으로서 합리주의의 토대 위에 건설된 오늘날의 기술문명사회5가 초래할 수도 있는 십각한 사태를 경고하고 있다.


3<요약>

프기쉬는 호모파버를 통해서 기술문명에 의해 탄생된 자기를 상실한 현대인의 초상을 몇가지 대립되는 요소들을 형상화 하여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호모파버는 파버 곧 기계적인간 기술자라는 뜻처럼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는 미래지향적이며 예측의 결과와 해답에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오늘할일을 생각한다 . 그러기에 우연의 사슬이나 갑작스러운 일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으며 그는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외부의 확률에 의해 계산된 자신아닌 자신이다. 이에 반해 한나라는 여인은 호모파버와 대비되는 호모사피엔스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감정, 기분.사랑 우연의요소를 중시하며 자기위주의 사랑을 하는 파버에게 희생적으로 사랑을 베푼다.파버의 비극은 바로 이것이다. 그는 한나의 사피엔스적 요소를 차단함으로서 합리적 사고에만 매달려 자신의 본질 중 하나를 잃어 버린 셈이다. 그러기에 그는 자아를 상실하여 완전 할 수 없으며 자기굴레에 빠져 합리적이지만 비합리적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결국 딸과의 비인간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는 운명의실말리를 수중에 장악한 듯 싶은 보다 큰 힘이 실제로 자신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적 요건의 우연성만을 주장하여 자기 내부에 책임져야할 요인이 내포되어 있음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프리쉬는 이작품을 통하여 현대에서 고정된 상황은 허위이며 신념 고정관념 운명따위는 진실의 적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파버적 요소와 사피엔스적 요소의 조화를 꾀하여 인간의 영원한 본질과 망각된 자의식 잃어버린 자아를 호모파버를 통하여 깨닫게 해주고 있다.



심판

1<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1883년 7월 3일 프라그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상업에 종사하였다. 두 명의 남동생을 가졌지만 두 남동생은 어린 나이에 죽었다. 그의 양친은 사업상 너무 바빠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시간을 할애 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가정교사와 지내야 했으므로 몹시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히 어린시절에 종종 이사를 다녔기 때문에 친구들과도 고립되어 원래 내향적이고 신경질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카프카는 자신의 모습이 밉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새옷을 입으면 스스로의 미운 모습이 그만큼 두드러지게 눈에 뛴다고 새옷 입기를 두려워 했으며 똑같은 이유로 거울 보기를 꺼렸다. 카프카는 독일계 국민학교와 중 고등학교에서 수학한 이후 대학에서는 부친의 간곡한 소망에 따라 법학을 공부하여 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노동자재해보험협회에 취직하여 업무능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1922년 건강상의 문제로 물러날 때까지 14년간 근무하게 된다. 이 시기에 밥벌이를 위한 직업과 친직으로서의 문학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은 점점 깊어갔다. 그러나 문학에서의 자신의 동일성을 발견한 카프카는 결국 작가로서 본연의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후두결핵에 걸린 카프카는 1924년 6월 3일에서 그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카프카는 20세기 현대에 있어서 고독하고 가장 난해한 문제작가인 동시에 현대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소설가이다. 그는 현실과 환상의 미묘한 교착 속에서 인간존재의 보편성을 추구했던 세계문학의 거장이다.


2<테마>

이 작품의 전체 구조는 고유한 존재를 지향하는 순수자아와 소속을 지향하는 사회적 존재의 갈등을 다루는 카프카의 문학적 명제를 예시적으로 보여준다. 법을 필요로 하면서 그 법 때문에 파멸하는 법률 앞에서의 시골사람과 같이 k는 소송으로 뒤덮인 세계 속에서 살고자 하면서 동시에 그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는 그 세계에 의해 처형된다. 다시말해 그는 이 세계와 더불어 생존할 수도 이 세계를 떠나서 생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작품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과연 k가 유죄인가.? 하는 것이다. 죄를 부인하면 할수록 그는 죄의 혐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죄를 시인하는 길만이 소송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암시가 제시된다. 이 외에도 이 작품에서 재판소로 대표되는 관인의 세계와 더불어 로 대표되는 만인의 세계는 환상적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 자체라 할 수 있다. 재판소에서 일어나는 얼핏 보아 부조리하고 비현실적 사건들, 모순으로 가득찬 재판조직, 꿈 속처럼 기이하고 에로틱한 장면들, 지루하게 계속되는 회의 와 성찰 이러한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의 개인적 사회적 현실생활 속에서 항시 발생하고 체험하게 되는 현상의 총체적인 재현이다. 재판소 관리들이 행사하는 권력은 곧 모든 존재에 현실이 가해 오는 삶의 압박이며, 재판으로부터 벗어 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죽지 않고 삶의 질곡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3<줄거리>

은행의 업무주임 k는 생일날 아침 갑자기 죄목도 모른채 체포된다. k는 처음에는 농담으로 생각했지만 차츰 피고의 심리에 사로잡힌다. k를 체포한 재판 조직은 보통의 재판조직과 는 달라서 k에게 평상적인 생활을 시킬뿐더러 행동의 자유까지 허용하고 있다. k는 일요일에 심리가 행해진다는 전화연락을 받고서 묵살할 수 도 없기 때문에 마지못해 지정된 장소에 출두한다. 그곳은 더럽고 지저분한 빈민 아파트가이다. 무턱대고 계단을 올라가 보니 상당히 넓은 방은 검은 예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심리가 시작된다. k는 자신을 변호하지만 k의 주장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k는 법정을 마음껏 야유한다. 법정은 온갖 불투명한 것 투성이여서 몇시에 오라는 것인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고 막상 찾아가 보아도 어둡고 답답한 것이 마치 미로와 같다. k는 어쩐지 마음에 걸려 다음 일요일에도 똑같은 장소에 가보았으나 입구에 있는 여자 이외에는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는 죄책이 없는 데도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이 재판소의 상례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재판소와 관계있는 자들과 인연을 맺으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어느날 저녁 k는 자기가 근무하는 은행의 창고에서 그를 체포했던 감시원들이 매를 맞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처음에는 그들을 구조하려고 했으나 주위 사람들에게 진상이 알려지면 그들에게 말려들어 자신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포기한다. 그는 아무리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자만 아무 효과도 없고 그저 사람들의 조소를 받을 뿐이다. k의 소송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의 일신뿐만이 아니라 가문에 관계되는 중대사라고 염려한 나머지 그의 숙부가 시골에서 찾아 온다. 숙부는 k의 체포가 형사소송의 일종이지만 일반재판소의 소송사건이 아님을 알고 그에게 시골로 도피하라고 권고한다. k의 숙부는 그의 동창생이자 법조계의 유력한 인물로 손꼽히는 변호사에게 k를 데리고 간다. 변호사는 심장병으로 누워 있었는데 k의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그의 변호를 맡는 동시에 마침 그 자리에 있는 재판소의 사무국장에게 그를 소개한다. 한편  변호사의 간호사겸 정부는 k를 별실로 유혹하여 성적관계를 맺더니 열쇠를 내주면서 언제든지 찾아와 달라고 말한다.

그가 밖으로 나가보니 숙부는 k와의 밀회를 알고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노발대발한다. 그런 일이 있은지 1개월이 지나도록 변호사는 k를 부르지도 않는다. k가 보기에는 변호사가 그의 소송사건을 처리해줄 만한 의사도 능력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변호사는 k에게 재판소의 내막을 설명해 주는 것이 고작이다. 변호사에게만 사건을 맡겨서는 별도리가 없다고 생각한 k는 자기 스스로 소송문서를 쓰려고 생각하지만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때 마침 변호사에게 진정하러 왔던 공장주를 통해서 화가가 재판소의 사정에 정통하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k는 화가를 만나서 재판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결국 변호사를 해약할 결심을 한 k는 변호사의 집을 찾아간다. 문을 열자 간호사가 속옷바람으로 내빼고 몸집이 작은 상인이 나타난다. 그 역시 의뢰인의 한 사람이고 벌써 여섯 사람째 변호사를 교섭하고 있으며 k의 심리를 방청했는데 k는 유죄인 것 같다는 소문이란다. k가 부탁했던 변호를 취소하자 그는 k의 성급함을 나무란다. k는 이탈리아인 고객을 안내하라는 명령을 받고 날씨가 나쁜데도 불구하고 성당으로 가려고 한다. 그때 마침 전화가 걸려 왔는데 k는 지금 추적을 받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k는 성당으로 찾아 갔지만 아직도 이탈리아 고객이 와있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안으로 들어가서 종교화를 보고 있으려니까 그 때 젊은 승려가 부른다. 그 승려는 k가 다른 사람에게 구조를 청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는 k에게 법률의 입문서에 나오는 "법률 앞에서" 라는 우화와 그 갖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이야기해준다. k가 체포된지 꼭 1년이 지난 그의 31회 생일날 밤에 두 신사가 그 앞에 나타난다. 그들은 정식 재판절차도 밟지 않은채 그를 형장인 채석장으로 끌고 가서 칼을 휘둘러 마치 개처럼 그를 무참하게 살해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이제까지 무죄를 주장하던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 조차 불가능하다.


4<요약>

우리는 살아 가면서 자의든 타의든 간에 크고 작은 죄들을 지을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망각한채 스스로 법을 지키고 있다는 신념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카프카는 비현실적이고 난해한 작품속의 주인공 K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K의 죄목은 원죄적이 측면과 자신의 윤리적인 죄로 요약된다.

심판에서 법원의 역할은 아주 중요한데 여기서 법원은 부조리한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며 교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즉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종교적인 측면에서 원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카프카의 의도이며 어두운 자아의 반영이다.

다음 K의 윤리적인 측면으로 볼 때 그는 인간성을 상실하여 인간을 수단으로서 이용하는 이기적인 인간이며 겸손하지도 않고 오만하다.

이러한 두가지 죄목으로 K는 죄를 부인하면 할수록 죄를 저지름으로서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에 얽매이게 된다.

그러므로 카프카는  K의 유죄에서 불투명하고 답답한 미로와 같은 우리의 삶이 재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죽지 않고 삶의 질곡을 벗어 날 수 없는 것과 같으며 이러한 굴레는 결국 인간이 만든 것에 스스로 빠져든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법률 앞에선 근원적인 어떤 죄도  구원 받을 수 없으며 유죄이다. 결국 인간의 죄는 법앞에서가 아닌 진정한 인간관계 속에서 인간의 내면에서 스스로를 회계하고 행해질 때만이 사라지고 구원 받는 것이다.


 

베를린천사의 시

1<감독>

빔 벤더스

1945년 8월 14일 뒤셀 도르프에서 태어남. 1964-1966년 뒤셀도르프 대학에 진학하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학을 전공하였으나 2년을 다닌 후 포기. 파리의 시네 마테크에서 영화를 발견. 1969년 독일에서 돌아와 뮌헨 영화학교 1기로 입학 최초의 단편영화 "시펙타클의 현장" 1969년 단편영화 은빛도시, 알리바바,  2000광년. 촬영기사 로비뮬러를 만나 처음으로 함께 일함. 페터 한트케의 각본으로 석장의 미국 엘피제작. 1970년 페터한트케의 경찰영화 장편영화 도시의 여름. 1971년 영화제작사 설립. 페널티 킥을 맞은 골키퍼의 불안.  1972년 주홍글씨. 1973년 도시의 엘리스. 1975년 잘못된 움직임. 1976년 시간의 흐름 속으로. 1977년 미국인 친구. 1978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초청으로 미국에서 하베트 제작 착수. 1980년 닉스 무비 미국에 그레이 시티사.설립. 1982년 하메트 사물의 상태로 베니스 영화제 금사자상 수상. 1984년 파리텍사스. 파리텍사스로 칸느영화제 그랑프리수상. 1987년 베를린 천사의 시. 1989년 베를린 천사의 시로 칸느영화제 감독상 수상. 칸느영화제 심사 위원장. 1990년 세상의 끝 촬영시작


2<줄거리>

베를린 천사의 시 원제는 "베를린의 하늘" 이다. 이것은 천사의 이야기이다. 다니엘 브루더 노 간츠와 파시엘 오토산이라는 두 천사가 베를린의 하늘을 날고 있다. 이들은 인간들의 일상 생활과 마음 그리고 그들이 희노애락을 내려다 보면서 관찰하고 이를 어딘가에 보고하믐 임무를 띠고 있다. 둘은 가끔 만나 각자가 관찰한 것을 놓고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이들은 하늘만 날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의 방 자동차 안, 지하철 등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나타나 관찰한다. 그리고 때로는 베를린의 상징인 전승기념탑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카메라는 천사들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면서 천사가 보는 것은 모두 흑백화면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시선만이 색채를 띤다. 천사들의 시선이 머무는 인간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하지만 천사들은 인간들이 마음속으로 하는 말들을 모두 들을 수 있다. 카메라가 움직이면 인간들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소리들이 음향효과 역할을 한다. 두 시간이 넘는 이 영화의 절반 가량이 두 천사가 인간을 관찰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천사 다니엘은 이렇게 오랜 시간 인간을 관찰하다 보니 천사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조금씩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인간이란 가끔은 슬퍼하고 분노하고 싸우기도 하고, 사랑도 하면서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살지만 천사는 그렇지가 못하다. 천사 다니엘은 점점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다니엘은 그의 이 같은 심정을 동료 천사 카시엘 에게 모두 털어 놓는다.

다니엘은 어느날 한 서커스단에서 곡예를 하는 마리온 솔베이트 도마르탄을 발견한다.마리온을 보는 순간 다니엘 천사는 그녀에게 반해버린다. 마리온이 속해 있는 서커스단은 파산해서 헤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서커스가 마지막 공연을 하는 날 다니엘은 마리온의 공연을 지켜본다. 마리온이 공중공예를 하다 혹시 떨어 질까봐 조바심을 내기도 하면서 다니엘은 점점 마리온에게 빠져든다.

마침 이때 베를린에는 영화 촬영을 위해 미국에서 피터포크가 와있다. 피터포크는 촬영이 없는 시간에는 틈틈이 베를린 시가지를 돌아다닌다. 하루는 베를린 장벽 근처의 간이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다니엘 천사가 가까이 가자 그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처럼 말한다. 원래 인간은 천사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다니엘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피터 포크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를 말하면서 다니엘 천사에게 악수를 청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악수에 응할 수가 없다.

다니엘 천사는 카시엘 천사와 함께 베를린 장벽을 따라 거닐면서 인간이 될 것을 결심한다. 마침내 다니엘은 베를린 장벽 바로 옆에서 인간으로 변하면서 실신해 버린다.

인간 다니엘이 깨어나가 하늘에서 천사였을 때 입었던 철갑옷이 떨어진다. 다니엘은 이 철갑 옷을 팔아 인간들이 입는 새 옷으로 바꿔 입는다. 인간이 된 다니엘은 하늘로 날아 오를 듯 모든 것이 신난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마리온을 찾아간다. 이때 마리온의 서커스단은 결국 해체되고 단원들은 뿔뿔이 제 갈 길로 흩어진다. 모두가 떠나고 난 텅 빈 공터에 마리온은 홀로 가방을 깔고 앉아 지친 마음으로 자기를 포근히 안아줄 기사가 나타나주기를 막연히 기대한다. 그러나 다니엘이 서커스가 있던 자리에 와보니 서커스단도 마리온도 어디론가 떠나고 없다. 다니엘은 온 시내를 뒤지며 마리온을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피터 포크를 만난다. 이번에는 인간으로서 만난 것이다. 다니엘은 이때 비로소 피터 포크도 인간으로 변한 전직 천사였음을 알게 된다. 다니엘은 자기말고도 인간으로 변한 천사가 있음을 알고 무척 기뻐한다.

다니엘은 천에 천사였을 때 가보았던 뮤직홀에 혹시 마리온이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본다. 그리고 거기에서 마리온을 만난다. 마리온은 이미 꿈속에서 다니엘을 보았기 때문에 그를 낯설어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뜨거운 키스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3<요약>

인간의 세상은 역사는 천사들이 보기엔 지극히 부정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인간의 내면은 출산의 고통과 고독 슬픔과 눈물 싸움의 요소로 가득 차 있으며 외면은 분단과 전쟁 증오와 폭력 등이 만무하다.

여기에 천사의 세상은 진실하며 평화롭고 영원하다. 하지만 천사 다니엘은 가혹한 세상에 마리온을 향한 사랑의 힘으로 뛰어든다.

천사의 삶을 버릴 만큼 인간의 삶이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이러한 대답을 사랑과 희망에서 찾고 싶다. 세상의 질서란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과정에서 인간은 충돌하고 싸우지만 그속엔 전쟁의 폐허 분단의 현실속에서도 피어나는 한송이 꽃과 같은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그와 만나 미래를 설계하는 일상의 즐거움도 있다. 이에 반해 천사의 삶은희망도 없고 극적요소도 없다. 완벽하고 진실하지만 무의미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므로 빔벤더스 감독은 인간의 삶이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외치고 있다. 한정되고 위험한 삶이지만 그 속에는 사랑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분실과 분단을 초월한 믿음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둘을 하나로, 슬픔과고통을 희망으로 만드는 인간의 한없이 매력적이 요소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죄가 많은 동물이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만물의 영장인 것이다.


 

양철북


1.<소개>

<양철북 Die Blechtrommel> 제작 : 1979 감독: 폴커 슐렌도르

독일영화 양철북이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었을 당시 이외의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이 영화가 본래 오락영화라기보다는 문예영화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양철북의 성공은 하나의 이변이라 할 만하다. 이는 람보류의 미국 오락영화에 식상한 국내 관객의 문화적 빈혈상태를 해소시키는 신선함을 제공했음을 반영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가사이한 주인공 오스카 마쩨라트가 지적 호기심을 유발한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영화의 원작인 권터그라스의 최초의 장편소설 양철북이 지닌 심원한 매력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1959년 양철북의 출현은 실로 침체되어 있던 전후 독일 문단을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라스는 작품 출간 이전에 초고 상태의 원고를 47그룹에서 낭독하게 되는 데, 이로 인하여 그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47그룹상을 타게 된다. 이는 이 작품에 대해 독일 문단이 얼마나 감격적으로 반응하였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당시 평론가들이 그라스를 "잘 길들여진 독일 문단에 나타난 야9생의 괴물", "독일 문학에 나타난 사자"라고 언명한 것도 양철북과 작가 그라스의 이채로움을 반영한 것이다. 이와 같이 수많은 화재를 낳은 문제작 양철북은 1979년 슈뢴도르프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칸느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이듬해 4월에는 독일영화로는 최초로 오스카상 최우수 외국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서독에서는 전후의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되었다. 그러나 영화 양철북은 소설 양철북과 얼마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소설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랑푸르 라베스베크의 소시민 사회 에피소드들이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설 양철북에서는 줄거리 연관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빵가게의 셰들러 부부, 채소상인 그레프 부부. 삼류 음악가인 마인 , 헤르베르트 일가 등이 영화에서는 단지 스쳐가는 엑스트라 정도로 취급된다. 뿐만 아니라 시간의 지평에서도 소설의 1,2부에 해당하는 오스카의 난쟁이 시절로 국한되어 오스카가 다시 성장을 시작하는 제 3부는 영화화되지 않았다.

아마도 영화 제작 기술상의 이유로 생겨났을 이러한 원작의 축소는 자칫 소설 전체의 의미 연관에 있어서 심각한 오해를 낳을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소설은 오스카가 전후의 새로운 세계를 거부하는 것으로 끝나는 비관적인 종결은  지니는 반면에 영화는 오스카가 새로운 사회를 향해 떠나는 낙관적인 종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원작이 지닌 전반적인 회의의 분위기에 비추어 보면 영화의 이러한 낙관적 여운은 작가의 의도를 호도할 위험이 있다.



2<테마>

모두 사부작인 권터 그라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양철북은 현재 정신 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난쟁이 오스카의 개인사 기술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독일의 근대사를 조명하고 있다. 양철북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정치적 격변들 . 예컨데 나치즘의 야만성과 잔인성. 그리고 그들이 일으킨 전쟁 등이 어떻게 소시민들의 삶을 무참히 짓밟았는가를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따라서 양철북은 독일 정치와 사회와 역사에 대한 신랄한 비판서라 할 수 있다. 오스카가 언제나 가지고 다니며 말을 하는 대신 두드리는 북은 고도로 복합적인 예술적 은유라 할 수 있다. 나치시대를 근대사의 한 폐이지로 갖고 있는 독일인들의 숙명적인 고뇌를 잘 표출해 내고 있는 이 영화는 끔찍한 역사를 겪어온 우리들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추락사고를 당한 혹은 스스로 추락한 그래서 성장이 중지된 정신적 난쟁이 일지도 모른다. 또는 정신병원에 갇혀 북조차 치지 못하는 난쟁이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도 오스카처럼 백지에 수치스러운 역사의 진상을 기록해야만 한다. 양철북은 바로 그러한 의무를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다.


3<줄거리>

30세의 오스카는 서독의 한 정신 병원에 수용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회상록을 적고 있다. 회상록은 1899년 외할머니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황량하고 드넓은 감자밭에서 촌부가 감자를 호호 불며 먹고 있다. 한 남자 (방화범) 가 경찰을 피해 달려오고 있고, 그는 여자의 네겹 치마속에 피신처를 구한다. 여자는 그를 깔고 경찰을 따돌려 주고 남자는 치마 속에서 바지 앞춤을 여미며 나온다. 그렇게 잉퇴된 이가 주인공 오스카의 어머니이다. 오스카는 1924년 폴란드 단치히 교외의 랑푸르 라베스베크에서 태어나는데, 그는 아버지 마쩨라트를 법률상의 아버지로만 인정할 뿐 실제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촌이자 애인인 얀 부론스키로 믿고 있다. 오스카는 자궁속에서부터 엄마를 동시에 사랑하는 두 남자 중 어떤이가 자신의 아버지인지를 혼돈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오스카는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완전한 성인의 지각을 갖추고 있다. 비록 정신적으로 박약하게 보여지고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 간과될 수 있는 대화를 엿듣고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오스카는 너무나 섬뜩한 어른의 눈빛을 한 아이로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기이해져 간다. 아이의 목소리도 히스테리컬하게 들려온다. 오스카는 세 살 때 자신의 눈을 통해 보이는 세상의 모습 특히 합법적인 아버지의 눈을 교묘히 피해 성적 관계를 끈질기게 이어가는 얀 아저씨와 엄마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방조하는 아버지의 행태에 실망하고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의도적으로 지하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성장이 중단된다. 그의 키는 94CM에서 성장을 멈춘다. 그리고 그는 나치가 붕괴하는 1945년 까지 성장을 하지 않은 채 세 살박이의 시점에서 세상을 관찰한다. 세 살이 된 생일날 그는 양철북하나를 얀 아저씨로부터 선물 받는다. 그는 또한 상당히 먼 거리에서도 소리를 질러 유리창을 깨뜨릴 수 있는 특이한 재능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북을 빼앗으려고 한는 자에 대해서 이 목소리로 저항한다. 그가 성장을 멈춘 동안 마을엔 나치가 등극하고 위세를 떨치고, 그리고는 패배한다. 어머니는 얀 아저씨와의 불륜관계가 준 고통을 못이겨 얀의 아이를 잉태한 채 자살하고 어머니가 죽은 후 나치 당원인 아버지는 자신의 가게에서 일할 오스카와 동갑나이의 마리아를 고용한다. 오스카는 마리아를 사랑하여 애인으로 삼고자 하지만, 마리아는 아버지의 정부가 된다. 반면에 얀 아저씨는 폴란드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의해 죽음임 당한다. 그런 세상에 오스카가 개입하는 것은 양철북을 두드리고 기성을 질러 유리를 깨는 것을 통해서이다. 엄마의 간통행위의 절정을 온 동네 우리를 깨어가며 망치고 나치의 전당대회를 왈츠를 추는 무도장으로 바꾼다. 성적 열정과 정치적 엄숙함은 파괴되고 희화화 되어 버린다.

북 치는 오스카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베브라이다. 그러나 지식인이자 예술가인 베브라는 나치의 선전관이 되고 그에게 설득당한 오스카 역시 음악광대 베브라와 함께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로 산다. 그 곳에서 1943년부터 1944년 까지 난쟁이들로 구성된 나치 위문단의 일원으로 전선 위문공연에 참여한다. 오스카와 베브라는 대서양 연안의 어느 요새에서 나치의 수녀 학살을 방관한다. 자신의 스승으로 생각했던 베르라라 죽자 , 오스카는 베브라의 상속인으로 지명된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나치 당원이었던 아버지 마쩨라트는 나치를 색출하는 소련군 앞에서 자신이 버린 나치 배지를 삼킴으로서 죽음을 맞이한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오스카는 아버지의 무덤속에 자신의 북과 북채를 묻어버리고 다시 성장하기로 결심한다. 전쟁이 끝난 후 오스카는 계모와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르는 동생 즉 쿠르트와 함께 단치히를 떠나 화물열차에 실려 어딘지 모를 새로운 곳으로떠난다.


4<요약>

양철북은 오스카라는 비정상적인 난쟁이 아이를 통하여 독일의 근대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그러기에 오스카의 외형적인 요소하나 하나가  상징이요 의미이다. 나는 그 요소를 분석하고 나아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상형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오스카는 난쟁이이다. 이것은 소외되고 비정상적인 소시민을 멸시받는 난쟁이로 은유한 것이다. 또한 역사의암흑기로서  인정 받을 수 없는 역사를 상징하기도 한다.

둘째 오스카는 세 살박이이다. 이것은 순수한 아이의 눈을 강조하여 사물을 관찰함에 있어 위에서 아래로 쳐다보게 함으로서 소시민의 성적, 물질적인 부패와 나치의 기만성, 허구성을 폭로하는 수단이며 나치에 대한  소시민의 항의에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오스카의 주위의 인물들을 통하여 사회적인 분위기, 나치의 패망 유대인의 학대등 사회의 부정적인 요소를 고발한다.

결국 작가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독일의 정치적 격변들이 소시민의 삶을 어떻게 무참하게 짓밟았는가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오스카는 성장함을 계기로 정상인으로 복귀한 독일의 과거 청산의 희망을 암시하며 순수한 인간적인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쩜 정신적인 난장이 일지도 모르는 우리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은폐하기 보다는 통렬하게 비판하여 청상하고 희망의 새로운 백지위에  긍정적인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5<영화평론>

귄터 그라스의 1959년도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독일역사에 대한 일종의 학습이다.

영화는 오스카라는 비정상적인 아이의 시각이라는 우회도로를 통해 이 학습에 이르게 한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인류에 대한 최대의 죄악을 범한 이 역사에 대한 접근을 아주 기이하고 변태적인 것으로 만든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과거 독일을 죽이고 아버지가 남긴 정부와 자신의 아이일지도 모르는 동생, 즉 아버지의 짐을 지고 어딘지 모를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오스카는 어쩌면 독일 전후세대의 자화상이자 새로운 독일영화의 자기선언일지도 모른다.

폴커 쉴렌도르프가 새로운 독일영화의 대표적 감독들과 공유하는 감성은 바로 이러한 역사에 대한 해석에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벤더스나 파스빈더 또는 헤어초크 등에서 보이는 개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독일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추구하되 그 원천을 문학작품에서 찾는다. 사회비판적이고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이야기는 자극적이되 스타일은 그에 흡족한 것이 못된다. 하지만 <양철북>은 칸에서도 수상하고 아카데미에서도 외국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새로운 독일영화 가운데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둔 드문 작품이다.

<필자: 주진숙 영화평론가․중앙대>


������양철북' 은 3살 때 성장을 멈춘 난쟁이 오스카의 눈을 통해 전후 폐허화 된 현실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하고 있다.

두 명의 병사에게 쫓기는 방화범 요셉 클라이체크는 감자밭에서 네 겹 치마를 입고 앉아 있던 안나 브론스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치마 폭에 숨어 위기를 모면한 그는 치마 속에서 일을 치르고 만다. 그들은 딸 아그네스를 낳고 숨어산다. 그러나 1 년 후 그는 추적자들에게 쫓겨 강물로뛰어든다. 그 후로 그를 본 사람은 없다.

아그네스는 성장하여 마체라트와 결혼을 한다. 그때 이미 아그네스는 얀과도 사랑을 즐기고 있었다. 오스카가 태어나고도 그들은 그 사랑을 지속하고 있었다. 오스카가 세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날 양철북을 선물 받는다. 그런데 그 생일탁자에서 얀과 어머니는 발끝으로 서로의 은밀한 부분을 애무하고 있다. 그것을 발견한 오스카는 성장을 멈출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오스카는 나이는 먹어가지만 여전히 어린아이로 남아 있다. 그러던 어느날 동갑내기인 마리아라는 소녀가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온다. 그녀와 오스카는 같은 나이지만 행동이나 사고는 영 차이가 난다. 오스카 는그녀를 통해 처음으로 여자와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어느날 오스카는 마리아가 아버지인 마체리트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격분한 오스카는 집을 뛰쳐나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자라지 않는 노인 베브를 만난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The berlin Intertationnal Film Festival)에 대하여..


세계 3대 국제 영화제 중 하나. 세 영화중에 가장 늦은 51년에 동서 화합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당시 분단 되었던 독일의 통일을 기원하는 영화제로 시작되었다.


베를린 영화제가 가장 자랑하는 것은 영포름 부문이다. 실험적이거나 진보적은 영화들이 출품된다. 베를린 영화학교 주최로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한다. 80년대 초반 재정적 고비가 있었으나 헐리우드 제작자들 속보이는 지원으로 고비를 넘겼다. '99년 현재 49회를 맞이했다.


역 사

 베를린 축제는 그 당시 서구의 자유세계에서 세계 영화제를 겨냥하여 수 많은 필름들이 생산, 소개되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1951년에 탄생한다.

당시 베를린은 고립된 셈이나 마찬가지였고 독일은 전후 복구사업에 정신이 없던 시기였다. 그런 독일 베를린에서 국제 영화제를 열기로 한 데에는 서방세계의 정치적 의도가 짙게 깔려 있었다. 독일은 전후 복구사업인 마샬 계획을 수립, 이를 지원하던 미국측에서는 과거 소련과 동유럽 국가에 대항해 베를린을 서방세계의 전시장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있었고, 또 점차 인구가 줄어드는 베를린시를 위해서도 시민을 붙잡아 둘 문화 프로그램이 필요하였다.

이렇게해서 시작한 것이 베를린 영화제이다.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이념적이고 정치적․사회적인 주제를 다룬 영화들을 소개하는데 중점을 두어왔다. 특히 동구권 영화들을 다수 초청해서 서방세계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공산권 영화의 소개와 교류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였다.

더불어 제3세계 영화와 미국 인디펜던트 영화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고 구 동구권 세계가 무너진 후에는 동서독의 동질성 확보를 위한 민족의 축제와 구 동독지역 영화산업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꾀하고 있다. 베를린 영화제의 조직은 좀 독특하다. 영화제를 주관하는 기구가 회사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명칭은 '베를린 축제 유한회사(Berliner Fest-Spiele Gmbh)이다. 이 유한회사의 총예산중 50%는 연방정부가 지원하고 나머지는 주정부 보조금과 기타 수입으로 채워진다. 베를린 영화제의 1년 예산이 최근에는 40억원을 상회하므로 아무리 여유가 있는 독일이라 할지라도 만만치 않은 금액인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경쟁부문 영화 선정을 둘러싸고 심심찮게 로비설이 오가는 것도 사실이다.


개최시기

매년 2월 중순으로 영화관계자들은 베를린 영화제 출품작들을 살펴보며 그 해의 세계 영화계 흐름을 예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베를린 날씨는 우기인 관계로 비나 눈이 내린다. 영화제 개최 시기로는 최악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베를린 영화제의 개최 시기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행사가 끝날 무렵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미국영화 견본시(American Film Market)와 일정이 겹친다는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요즘에는 베를린 영화제 폐막과 AEMA 개최 사이에 3일간의 터울을 두고 있다

 

행사 내용

베를린 영화제는 공식경쟁 부문, 파노라마, 영 포룸(International Forum des Jungen Films), 회고전, 아동영화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시의적절한 프로그램들이 여기에 첨가된다. '영 포룸' 부문은 경쟁부문 다음으로 많은 관심을 끄는 부문으로 깐느 영화제의 '15인의 감독' 부문과 마찬가지로 영화제 집행위원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별개 조직이 1971년부터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초기에는 소규모 자본으로 만든 진보적인 영화들을 주로 소개하다가 점차 새롭고 혁신적이며 실험정신이 깃든 영화들을 소개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 전세계의 유명 영화감독 가운데 초기시절 이 '영 포룸' 부문에 작품이 소개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 부문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요즘에는 유명 감독들의 영화도 자주 초청을 받아 '파노라마' 부문보다 오히려 더 주목을 끌기도 한다. 그러나 비경쟁이므로 별도의 상은 수여하지 않는다. 또한 이 부문의 특징은 영화가 끝난 다음 관객과 감독이 꼭 질의토론 시간을 갖는 것으로, 작가와 관객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이 부문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베를린 영화제의 메인 극장은 조 팔라스트(Zoo Palast) 극장이다. 동물원 성이라는 별명이 붙은 까닭은 이 극장 바로 옆에 넓은 동물원이 있기 때문이다. 조 팔라스트는 현대 설비를 갖춘 대형 극장으로 동시통역 시설까지 완비하고 있다. 경쟁부문 참가작들이 바로 이 극장에서 선을 보이는 것이다. 같은 건물에 있는 아틀리에 암 조(Atelier am Zoo) 극장은 주로 '파노라마' 부문 영화 상영장으로 이용된다. 이밖에도 영화 상영관으로는 '델피 필름팔라스트(Delphi-Filmpalast)', '아스날(The Arsenal)', '아카데미 데어 쿤스트(Akademie der Kunste)', '글로리아 팔라스트(Gloria Palast)' 등이 있고 '아스토르(Astor)', '쿠담(Kudamm)‘ 극장에서는 주로 회고전 영화들이 소개된다.                     이들 극장은 영화제 본부로 쓰이는 시네 센타(Cine Center, 조 팔라스트 극장과 바로 인접한 위치에 있다.)에서 대부분 5~10분 거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영화제 기간중에는 이들 극장을 순회하는 셔틀버스가 정기적으로 운행되기도 한다. 그러나 1991년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고 난 뒤 영화제가 구 동베를린 지역까지 확대되면서 요즘에는 구 동베를린의 알렉산더 광장 근처에 있는 알렉산더 극장에서도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영화제 본부로 쓰이는 시네 센타는 원래 대형 상가건물로 영화제 기간중 이곳에는 '베를린 견본시(Berlin's Film Market)'가 개설되어 세계 각국의 영화사들이 이곳에다 판매사무실을 개설한다. 그 밖에도 시네 센타에는 이 건물 안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끔 안내소, 티켓 예매처, 스낵바, 식당 등이 설치된다.


시상내역

황금곰상(Golden Berlin Bear) / 은곰상(Silver Berlin Bear, 심사위원특별상) / 최우수감독상(Silver Berlin Bear for the Best Director) 최우수남우주연상 /최우수여우주연상 단편영화대상 / 단편영화은상 


'영화노트(영화일반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상옥론  (0) 2010.02.11
영화인식  (0) 2010.01.22
신상옥 감독론  (0) 2010.01.18
박철수 감독론  (0) 2010.01.13
신성일론(1부)  (0) 2010.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