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에 매료된 ‘G’그룹의 착각 | ||||||||
[Angle] 선진국 이익그룹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첨병 진정한 대안은 유엔총회 회원국 ‘G192’에서 나와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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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가 유행하고 있다. 금융·통화·에너지·식량·환경 전반에 걸친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G’자로 시작하는 국가협력체들의 등장은 총체적 대안 제시의 회피로 해석된다. 오는 9월 24일과 25일에 피츠버그에 모이는 G20은 새로운 세계 지도자 그룹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정통성마저 결여하고 있는 G20은 이미 실패로 판명된 조직 방식에 대한 대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음번에는 어떤 ‘G’그룹이 새로 등장하게 될까? 이미 G2에서 G192(유엔총회 회원국을 포함할 경우)까지 다양한 ‘G’그룹의 목록이 존재한다. 최근 들어 이러한 ‘G’그룹들이 번성하고 있다. 소련 해체 이후, 언론이 편의상 ‘G’라고 이름 붙인 국가협력체 중 가장 눈에 띄는 두 그룹은 G77과 G7(나중에 G8로 확대되었다)이었다. 개발도상국의 연합에 맞서 몇몇 국가들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감독하에 스스로 부여한 권한으로 국제적 사안들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G8은 세계경제 질서의 감독관을 자처하면서도 초국적 기업과 글로벌 금융회사의 이익을 대변함으로써 비난의 표적이 되어왔다. 동일한 정치적 논리를 가졌으면서도 회원국 자격을 얻지 못한 국가들뿐 아니라 특히 사회운동과 시민운동 세력들로부터, 정통성을 결여한 부자들의 클럽이라는 비난을 들어왔다. G8에 대한 적대감은 2001년 7월 제노바에서 열린 반대시위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 시위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1명의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G8에 대한 국제사회 적대감 고조 그로부터 8년 후,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가 발생한 상황에서 지난 7월 이탈리아에서 다시 개최된 G8 정상회담은 큰 소란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한편 각 회원국들은 예전과는 달라진 상황에서 국제적 사안들에 대한 토론이 좀더 대의적(代議的)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G8은 또한 다른 ‘G’, 즉 G5(중국·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브라질·멕시코)를 초대하는 배려도 보였다. 그 결과로, 5개국이 늘어난 G13(8+5)에 이집트가 추가되어 G14로 확대되었다. 회의 일정에는 아프리카 5개국과 한국·호주·인도네시아·덴마크 정상들과의 회담도 포함되었다. 이 국가들은 12월 7일에서 18일까지 코펜하겐에서 개최될 유엔기후변화회의에서 이루어질 협상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보다 먼저, 11월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제네바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무역기구(WTO) 제7차 각료급 회의는 일종의 G153으로서,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시작된 무역협상 라운드를 2010년까지 매듭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G8의 쇠퇴와 해체가 필연적인 상황이 되어가는 가운데 두 개 ‘G’그룹, 즉 G20과 사실상 은밀하게 G20의 핵심을 구성하는 G2가 새로운 세계 지도자 그룹으로 부상하고 있다. G20은 G8 기존 회원국들이 신입 회원국을 선출하는 원칙에 따라 구성된다. 그럼으로써 전세계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 모델을 지켜내고 그것에 새로운 옷을 입히는 임무를 새로운 12개 회원국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2008년 11월 워싱턴, 2009년 4월 런던, 9월 24~25일 피츠버그에서 세 번에 걸쳐 진행된 G20 정상회담은 현 위기를 극복할 수단을 길게 나열하고 있지만 그중 어떤 것도 실질적인 실행을 담보하고 있지는 못하다.
미·중의 배타적 G2, 새로운 강자로 G2가 G3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럽연합(EU)에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경제 규모로 보면 G3의 성립이 정당화될 수는 있겠지만 EU가 통일된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EU의 주요 회원국들은 G8과 G20의 회원국 자격에 만족해한다. 이 국가들은 에스토니아, 체코, 폴란드 등 다른 EU 회원국들의 정치적 견해로 인해 곤란에 처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독일의 기민당 소속 페터 알트마이어 내무부 차관은 새 회원국들이 대서양 너머의 새 동맹국(미국-역자)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새 회원국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EU에 가입했지만 정치적 문제는 미국과 함께 결정하고 있다.”(2) G2, G8, G20의 회원국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가능한 한 많은 국가들이 참여하는 국제기구의 정통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가령 유엔의 모든 회원국이 참여하는 G192를 무시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배경 탓에 미겔 데스코토 유엔총회 의장이 제안해 2009년 6월 뉴욕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세계 금융경제 위기와 그 영향에 관한 유엔회의’가 조직적인 보이콧을 당했다.(3)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이끄는 위원회의 보고서를 기초로 준비되고 있던 이 회의는 의제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G20 국가 지도자들의 이목을 끌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국가 지도자들의 참석을 유도하기 위해 회의 개최를 3주나 연기했음에도 주요 지도자들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예컨대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는 그 몇 주 후에 부인 카를라 브루니의 뉴욕 공연을 보기 위해 직접 대서양을 건널 만큼 여유가 있었다. 거대 미디어들 또한 이 ‘침묵의 야합’에 동참했다. 마치 이 회의는 열린 적조차 없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스티글리츠의 껄끄러운 보고서가 이번 보이콧에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했다. 이 보고서는 온건한 자유주의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대부분 국가들에서 점증하고 있는 소득 불평등’이 세계경제 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급격한 불평등 심화를 위기의 진원지로 보고 그 메커니즘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4) 이때까지 금기시되던 문제를 건드린 셈이었다. 이 보고서를 대략적으로 살펴보자. 미국에서는 경기 침체와 노동 수입의 감소(임금 디플레이션)에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치적 필요가 대규모의 가계 부채, 특히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을 양산했다. 즉, 국경을 넘나드는 서브프라임 대출의 ‘증권화’가 자산 거품을 키웠으며 금융기관들은 이것이 초래할 수 있는 ‘해악’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선진국들, 껄끄러운 충고에 무관심 잘 알려진 대로 다음과 같은 결과가 초래됐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붕괴하면서 파산한 은행들은 납세자들의 희생으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전세계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스페인·아일랜드·영국처럼 미국식 모델을 채택한 국가들의 피해가 컸다. 경기가 후퇴하고 실업률이 급상승하는 상황에서 경기부양책들이 발표되었다. 이 화재의 불씨가 서브프라임이고, 은행가와 증권업자가 불장난을 한 것이라면(불장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방화범들’은 이 거대한 산불을 일으킨 방전(放電)의 근본 원인을 되짚어봐야 한다. 각 개인의 행위들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고 심지어는 독려하기까지 한 이데올로기적·정치적·규제적 차원의 배경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이 배경이란 신자유주의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 즉 자유무역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말한다. 우선 자유무역은 다국적 자본이 세금이 낮고 법적·환경적 규제가 느슨한 곳을 찾아 이동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선진국의 생산시설들이 인건비가 싼 국가들로 이전됐고 이는 지속적으로 임금 삭감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했다. 두 번째로 ‘조세천국’을 경유하는 자본의 이동은 재앙을 전세계로 퍼뜨리는 역할을 맡았다. 스티글리츠도 자유무역 모순 외면 G8이나 G20, 심지어는 보고서를 쓴 스티글리츠 그 누구도 이 두 개의 이데올로기적 기둥을 감히 문제 삼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위기 탈출의 해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WTO 각료급 회의에서 무역 자유화를 위한 새로운 합의들을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합의들이 초래할 부정적 결과 중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교역량 증가로 인해 운송수단 이용이 증가할 것이고 당연히 온실가스 배출량도 증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5) 그럼에도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는 기후변화회의의 성공을 바라는 이들의 태도는 완전히 정신분열적이다! 여기서 세계 지도자들이 서로 얽혀 있는 문제들을 전체적인 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국제 금융회사들과 거대 산업자본의 압력하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리스본 협약)을 통한 시장의 자율 규제라는 유토피아가 이들에게 정치적 정당화의 수단이 되어왔다. 물론 가끔 사소한 문제들이 발생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들은 지금과 같은 체제가 계속 유지된다면 이제 추진력이 모두 소진된 자본주의가 자기 파괴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들은 평등과 연대에 기초하면서 생태계에 덜 해로운 형식의 새로운 모델을 구상하는 대신 현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설사 정치 지도자들이 현 체제를 문제 삼을 능력이나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현상 유지를 요구하는 엄청난 압력에 눌려 뒷걸음질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도회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G’가 등장해 기존 ‘G’를 몰아내고 춤을 출 테지만 신자유주의라는 무대는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다. ‘G’의 대포 소리에 대항해 대안의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그룹은 오직 유엔총회 회원국으로 구성된 G192밖에 없다. ‘미주볼리바르대안’(ALBA)도 한 모델이다. 국제적인 지위가 그리 높지 않은 9개 국가로 구성된 이 그룹은 중남미에서 하나의 훌륭한 정치적 구심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G’그룹은 이들에 최소한의 발언권만 줌으로써 이런 현상이 다른 대륙에 확산되는 걸 막으려고 할 것이다.
<각주> (1) Martine Bulard, <중-미 공동체라는 환상> 참조. http://blog.mondediplo.net/2009-07-29-Le-fantasme-de-la-Chinamerique. 글·베르나르 카상 Bernard Cassen 번역·정기헌 guyheony@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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