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북아 공동체와 한류

장코폴로 2009. 9. 24. 09:15

[삶과 문화] 동북아 공동체와 한류 (한국일보, 2009년 9월 22일)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가 취임했다. 하토야마가 취임 하루 전에 '정조처럼 정치하겠다'고 말한 것은 부인 미유키 여사에 잘 보이려 했는지, 한일관계를 중시하겠다는 제스처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드라마 <이산>을 보면서 공부하고 개혁하겠다'는 발언을 통해 한류 드라마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한류의 역사는 오래다. 담징과 아직기는 원조 한류스타로 일본에 우리의 앞선 문화를 전파했다. 5 세기경에는 백제의 왕인 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글을 가르쳐 학문과 인륜의 기초를 세웠으며, 공예를 전수하여 일본인이 큰 자랑으로 여기는 아스카 문화의 원조가 되었다. 일본 오사카에서는 해마다 11월 '왓소 축제'가 열린다. 한국어가 어원인 '왓소'는 고대 한국으로부터 왕인 박사를 통해 문자문화가 온 것을 기리는 의미이다.

 

도자기로 일본 열도를 감동시킨 조선 도공 이삼평은 오늘날까지 신처럼 추앙되 고 있다. 또한 12차례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 일행은 일본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1719년에 기록된 <해유록>에는 '에도에서는 통신사 행렬을 보기 위해 다리 아래 작은 배들이 고기비늘처럼 모였고, 주변에는 구경꾼이 고슴도치 털처럼 둘러 있었다'라고 쓰고 있다.

한류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는 이병헌, 비, 류시원, 소녀시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이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최고의 한류스타는 역시 배용준이다. 그는 일본의 중장년 여성들에게 '살아있는 신'로 꼽히고 있다. 작년 10월 배용준이 한류 스타로서는 처음으로 문화훈장을 받았다. 그가 한일 간의 문화교류와 긴장완화에 기여한 역할로 봐서는 훈장을 몇 개 더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원조 한류스타들과 배용준으로 이어지는 한류의 맥은 쌍방향적 문화교류의 물꼬를 텄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전통과 역사,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려는 일본인이 늘어나는 반면, 일본문화 개방 이후 유입되는 일본 문화의 영향도 만만치 않다. 일본 캐릭터와 애니메이션, 소설과 만화, 건축양식과 패션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일본문화의 영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일본 라멘 집이 호황을 누리고, 서울 강남역 뒷골목엔 일본 음식점과 선술집, 오뎅 가게가 즐비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전에는 일본 대학생 절반이상이 한국의 위치를 몰랐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지난 주 동북아 공동체 연구회가 주최한 <동북아 공동체로 가는 길>이란 국제학술대회에서 자칭궈 베이징대 교수는 한중일 3국이 문화와 경제의 긴밀한 교류로 인해 동북아 공동체를 이룩하는데 훨씬 좋은 환경이 되었다고 말했다. 마침 하토야마가 동북아 공동체 구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동북아 공동체 구축은 경제와 안보, 환경 분야가 중심이지만 그 근간은 한중일 3국간 문화의 교류를 바탕으로 한 3국 국민의 상호 이해가 절대적이다.

 

한류 애호가인 하토야마가 꿈꾸는 동북아 공동체가 같은 이공계 출신의 후진타오와 어떠한 교집합을 만들어내며, 한류가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왜냐면 3국간의 물리적 소통을 위한 해저 터널의 건설이라든가 하드웨어적 장치보다는 심리적인 소통을 위한 문화교류와 공감대 형성이 동북아 공동체의 성패를 더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승일 한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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