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신화전에 비친 백현순의 춤
백현순 안무의 ‘집’
한국춤의 흐름과 방향을 모색하는 제23회 한국무용제전이 2009년 8월 27일(목)/28일(금) 오후7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한국무용연구회 주최로 열렸다.
1984년 한국무용제전이 개최된 이래 김매자, 임학선, 윤덕경에 이르는 한국춤의 도도한 흐름은 지금까지 비교적 경제적, 권력지향적, 헤게모니쟁취적 입장을 배제하고 있다.
통제와 구속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한국무용연구회는 경제적 궁핍함과 시간에 쪼들리는 두레식 공연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숙성될 틈이 없는’ 혹은 ‘형식적’ 공연을 반복한다.
무대에 오른 이상, 작품 뒷 이야기는 접어야 한다. 모든 것이 안무가의 책임이다. 과유불급이다. 새로운 전통과 방법 모색은 성실성과 작품에 대한 시간 투자 여부에 달려있다.
8월 27일, 김정녀의 ‘살풀이 춤’(이매방류), 박연진의 교방굿거리 춤 ‘예안’과 28일, 정재만의 ‘살풀이 춤’과 정승희 ‘태평무’는 갈라 춤으로 춤의 정형을 보여준 소중한 춤이었다.
첫날 강미리 안무의 코리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는 ‘꽃 아리랑’, 우리의 뿌리를 찿아 가는 백정희 안무의 ‘시원’, 세월에 걸친 집의 의미 변화와 ‘오늘날의 우리’라는 명제의 백현순 안무의 ‘집’은 변신과 응용의 해결책을 보여주는 춤이었다.
둘째날 김명주 안무의 ‘공쥐판타지’, 권금향 안무의 ‘나비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수 없어,넌?’, 정 란 안무의 ‘비너울 승천’(학도청람전상서)은 한국 창작춤의 현주소, 뒤틀림, 우울과 소통불량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들이었다.
이 중 백현순(한국체육대학교 교수)의 ‘집’을 오부제로, 그의 춤을 현주소로, 주변을 열린 영역으로 설정하고 텍스트로 삼는다. 한 음절 단어 ‘집’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현재와 과거가 혼재되며, ‘집’의 신화는 용암을 타고 흐른다.
전설이 피어나는 길목에 붙어있는 부적, 부적은 과거를 옭죄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 진농(眞弄)의 도구가 된지 오래이다. 경건하게 핸드벨이 판을 벌리면 귀족을 뗀 서민들이 세포처럼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다. 백현순은 전사처럼 탄탄한 서민 이야기를 즐겨 차용한다.
참혹한 구도, 뽄테나는 색감을 물린 소박한 서민 브랜드는 백현순의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한다. 밋밋한 파스텔 톤을 털어나는 과감한 작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서민들의 일상이 소재가 된 그의 작품들은 기 모으기와 같은 고전적 신체 디테일에서 신서싸이저를 사운드로 쓰는 과감한 타협을 한다. 신의 집, 산신, 여러 신들의 거주를 통해 본 오늘의 ‘집’은 현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현대에 코팅된 사색 제로의 슬픈 공간이다. 안무가 백현순의 춤은 이미 영계(靈界)와 현실을 놀이 공간으로 만들어 온지 오래되었다. 인선일체(人線一體)의 형식에서 망울을 터트리는 의식과 움직임, 떨림과 떨어짐의 함수관계는 계절의 변화로 생과 생동의 하모니를 이룬다.
라이트가 호박을 가져가면 그 은은한 빛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된 남, 녀가 주인으로 서고, 재즈 사운드 속에 고추가 달린 그물이 끌려간다. 요란한 현대 속에 아파트를 상징하는 영상이 뜨고, 생산된 인간들이 메꾸는 현대, 그 성냥갑 같은 공간 속의 우리는 무엇인가?
오늘의 신화는 여전히 불안하다. 사이렌소리나 스탑 워치, 불안감과 강박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백현순이 만들어 내는 오늘날의 ‘집’의 신화는 코믹한 우울이다. 안무가 백현순, 그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영원히 그 답은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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