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7일 7시 30분 남산 국악당에선 홍성미의 마법의 꽃 짓 세 번째 공연이 있었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 우리의 인생도 부대끼며 살아가게 짜여 져 있음을 안무가는 일상의 사계의 꽃으로 작은 명제를 삼는다. 국립무용단의 핵심으로 세파라 불리워지는 흔들림 속에 꿋꿋하게 자연인으로 살아남은 홍성미는 자신을 꽃에 대입하고 기교를 첨가한다. 꽃들은 힘든 현실을 우회하여 낭만적 서사를 견지한다. 홍성미의 꽃 짓은 바람이 불고 비에 젖고 서리와 눈을 맞아도 아름답다.
포 시즌 위에 걸친 목련, 양귀비, 매화초, 설련화는 주제와 밀착되는 상징성을 띄고 있고, 이에 따른 디테일은 용혜원의 봄과 오세영의 여름, 이태자의 가을과 김남조의 겨울 이미지를 침화(沈花) 시킨다. 전설처럼 살아남은 꽃의 신비는 홍성미 춤의 신비로 비약 상승된다.
홍성미의 춤은 비교적 춤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녀가 구사하는 댄스트루기는 난해함을 배제하고 간결하고 담백함을 소지하고 있다. 4장으로 구성된 틀은 사계를 구분하고, 꽃을 생각하게 하며, 묘사된 작은 디테일 들이 모두가 이해될 즐거움으로 와 닿는다.
꽃 마당의 1장은 봄에 피는 목련, 2장은 여름에 피는 양귀비, 3장은 가을에 피는 매화초, 4장은 겨울에 피는 설련화로 큰 틀을 잡는다. 큰 붓으로 핵심어를 쓰듯 홍성미 춤의 세기와 원색 묘사의 큰 틀은 국수호 춤의 기본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안무가 홍성미는 봄은 화운무(花雲舞)와 낙화(落花), 여름은 임우(霖雨)와 양귀비(楊貴妃) 그리고 비화랑(悲花郞), 가을은 풍월(風月)과 가을꽃(秋花) 그리고 흔적(痕跡), 겨울은 겨울꽃(氷花)으로 세분화시키며 꽃 묘사에 들어간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봄의 서정은 꽃구름을 몰고 와 꽃잎을 터트리고 봄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느긋하게 다가오는 봄은 서두르지 않고 모퉁이의 목련은 조춘(早春), 서로에게 봄을 알리고 꽃들 모두가 우리의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알린다.
‘아름다움은 관능과 슬픔이 태워 올리는 빛이다.’ 그렇게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다가 천둥이치고 비를 맞고 성숙의 터널로 만춘을 맞이하는 것이다. 다급함에서 조금은 조급한 발걸음으로 총총 미지의 세상을 향해 작은 항해를 떠나는 것이다.
홍성미의 미덕은 ‘우리 것’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장사익의 노래와 가을꽃 불면의 밤,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 ‘사랑도 매양 섭리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홍성미는 인생의 황혼기에나 느끼는 성숙을 토로한다. 그녀의 춤은 슬픔도 기쁨으로 와 닳는다.
홍성미를 주축으로 서지연, 조병만, 배강원, 노기현, 유채연, 유상아, 김동훈, 김우건, 김태형, 홍연지, 김나연, 박규리, 권지혜가 한 송이 꽃들이 되어 하모니를 이룬 ‘흔들리며 피는 꽃’은 꽃 춤이 원색의 화려함에 자연스럽게 용해되어 희망을 추는 춤이다.
홍성미의 춤은 시적이며, 여성적이다. 유머가 담긴 자기 고백이다. 그녀는 꽃으로 소통을 시도한다. 정적인 범주 속에 원색의 하모니가 피고 한과 슬픔, 별리의 아픔도 지는 꽃처럼 아름답게 묘사된다. 블루 프린트를 벗어난 하이키 조명들이 이를 입증한다.
인생을 꽃에 대비한 홍성미의 춤은 모래성의 쓰러짐이 아니라 씨앗을 잉태하는 창조적 꽃춤 이다. ‘흔들리거나’ 혹은 ‘반짝이면서’ 숙성으로 가는 전설의 바람이다. ‘꽃의 반란’과 ‘어둠에서 피는 꽃’을 애써 피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녀의 춤, 만나기 힘든 순수 서정의 열정을 보여준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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