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24일부터 김건희의 여덟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부암동 널찍한 ‘갤러리 AW’는 세 번째 작가와의 소통 대상자로 늘 푸른 서양화가 김건희(金建熙,Kim Guen Hee)를 초대했다. 큰 언덕을 오르는 강건한 이미지의 해방둥이 김건희의 외출은 그녀의 기(氣 技, 祈)의 파편들을 모으는 작업의 일부이다.
경북여고와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서도 그녀는 질주 속에 정제, 폭풍 속의 침잔을 터득해 왔다. 1971년, 대구백화점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올림픽을 치르듯 4년 터울로 전시회를 여는 여전사 김건희는 여전히 희망을 주는 호쾌함과 포근함을 지니고 있고, 펄 벅 여사의 패기와 작품속의 대지를 닮아있다.
1980년, ‘현실과 발언’ 의 창립 멤버로서의 그녀의 삶은 여러 작품에서 투영된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그녀의 ‘삶은 복잡하지 않다. 우리가 복잡할 뿐이다. 삶은 단순하며, 단순한 것이 옳은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깬 의식으로 새즈믄에는 본격적으로 안성에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사방(四方)을 자연으로 방패삼아 바로크의 침실 같은 낭만으로 자연이 지닌 엄청난 생명력을 매일 감탄하며 그리고 덧칠하고, 벗겨내고, 다시 덧칠하는 과정은 경건한 수행자의 모습이다. 내공으로 퇴적된 작품으로 피어오르는 기의 움직임은 김건희의 텃밭에서 굽던 삼겹살 냄새 같은 구수함을 풍긴다.
순정으로 피어오른 김건희의 열아홉 대작들은 야생화처럼 들쭉 날쭉이다. 대지를 품은 자연이 뿜어내는 기(氣)의 움직임에 불을 밝힌다. 작가는 윤선도의 ‘오우’ 중 소나무를 즐겨 그린다. 정령이 깃들어 있을 것 같은 그녀의 소나무는 배반의 나이테를 두르지 않았다. 그 자양분은 강인한 정신적 힘이다.
‘낙락장송’, ‘금강송’의 기개와 절개는 숭례문과 춘양목의 목불(木佛)로 까지 연상된다. 붉은 소나무, 그들의 영혼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희망으로 와 닿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임꺽정과의 대화를 부를 것만 같은 삼한리의 ‘구름 속 하늘’은 여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와 그녀의 나무들은 ‘노란나무’, ‘참나무’, ‘팽나무’, 자작나무의 ‘한여름’을 막(幕)으로 놓고 소박한 그러나 화려한 원색으로 다양한 호흡으로 굳건히 지켜온 기억속의 세월들과 시적 대화를 하는 듯 하다. 거침없이 전진하는 작가의 힘의 근원은 자연을 후원자로 두고 타협하지 않은 정신 때문이다.
그녀의 ‘작업실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나리’, ‘들국화’, ‘모란’, ‘목화’, ‘붓꽃’, ‘엉겅퀴’, ‘큰 오이풀’ 등은 강인한 야생성과 생명을 가진 식물들이다. 동물적, 탐욕적 살기를 배제하고 민초들의 상징인 꽃과 풀로 자신을 드러내는 김건희는 영낙없는 민중 대변(代辯)의 전사모드 작가이다.
여인을 타고 흐르는 달빛이 만든 장엄함과 후미진 개울까지도 동지적 의식으로 감싸는 김건희는 이창(裏窓)의 신비를 안고 여름 마음으로 자작나무와 초록으로 ‘한여름’을 엮었다. “한여름의 초록바다는 지루하게 지루하게 나를 짓눌렀다/ 따가운 햇살이 곡식과 열매를 살찌울 때 / 내 화실 안은 초조로움으로 꽉 차 있었다 / 앞마당에 서 있는 어린 자작나무와…/ 바람결 따라 연한 잎새들의 황홀한 일렁임이 나를 위로해준다”
아직 김건희는 헤르만 헤세의 ‘가을날’에 버금가는 ‘한여름’을 산다. 작가 김건희는 병에 꽂힌 장미를 그리지 않고, 들에 핀 꽃들의 질긴 생명력을 더 좋아한다. 사월의 이십삼일까지 고고한 빛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김건희의 자연일체, 자연 동화의 모습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황토현에서 곰나루까지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못다 핀 꽃들을 위한 그녀의 외침은 벚꽃 그윽한 들판의 빛이요 희망이다. 97년부터 자유함성으로 띠로 두른 꽃들의 백색향연이 안성으로 영역을 옮아가지만 그녀의 넉넉한 마음속에 오늘도 야생화는 자유의 송가를 찬(讚)한다.
장석용(문화비평주간) 문화로 하나되는 세상, 대한민국 NO.1 문화예술언론 <문화저널21> [저작권자 ⓒ문화저널21 (www.mhj21.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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