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인연, 세월 그리고 아쉬움
단기4327년 갑술년 1994년은 토요일로 한 해를 열어 12월 31일로 끝을 냈다. 이두용 감독의 『연애는 프로 결혼은 아마추어』로 시작해 심의넘버 64번 김성수 감독의 『매춘 5』로 한해를 마감했다. 『연애는..』에 출연했던 강석우, 탤런트 임혁주 등은 재학 시 극장에서 내가 출석을 부르던 학생이었다.
잘나가던 제작사 동아수출공사의 『장미의 나날』에 출연한 강수연은 인사성이 바르고 매너가 있어 월드스타가 될 자질이 풍부하였다. 아시아 영화제나 부산영화제에서 자리를 같이해도 언제나 겸손해했다.
장길수 감독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출연한 최진실은 훗날 야구선수 제자 조성민과 결혼하여 많은 에피소드를 뿌렸다. 이후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에 출연한 최진실에게 사인을 부탁한 나는 임상수 감독의 부친인 임영 선배로부터 평론가 품위 떨어트린다고 호된 질책을 받았다.
『서편제』신드롬으로 이일목 감독의 『휘모리』가 등장했다. 된장국처럼 구수한 이정국 감독의 『두여자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마음 따스한 김서라와 윤유선이 등장했는데 김서라는 신일고에 와서 학생들을 격려하는 톱스타였고, 윤유선은 워커 힐에서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
박철수 감독의 거친 샌드페이퍼와 같은『우리시대의 사랑』은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박 감독은 이후 대전에 둥지를 틀었고 나는 박철수 필름아카데미 창립식때 사회를 보았다. 94년 당시까지 박 감독의 실험은 진행형이었다.
故 이영일 평론가의 동생으로 연세대 교육심리학과 출신인 이영실 감독이 만든 『대통령의 딸』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유 프로덕션 때 자주 만났고, 국군영화를 주로 만들다가 뛰어든 충무로의 벽은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독신으로 해병대 장교에다 명문(?) 출신의 자존심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다.
북한 탈출 이후 신상옥 감독이 만든 『증발』은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만무방』의 엄종선 감독은 해방공간을 무대로 희생된 민중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으로 장동휘는 춘사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연극연출가 김아라의 남편 김진해 감독이 만든 『49일의 남자』는 영화 연출의 기본 정석을 보여준 작품이다.
여균동 감독이 『세상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때에도 『매춘4』,『빨간 앵두 8』,『애마부인 10』등의 영화가 만들어 지고 있었다. 정지영 감독의 『허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안정효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 하여 재미를 좀 본 영화였다. 안정효 작가는 군산 세미나 때 포구에서 술을 같이 즐겼고, 정지영감독과는 조감독 시절의 할리우드 키드들이었다.
KBS 라디오에서 한 시간 동안 토론한 적이 있는 심형래는『티라노의 발톱』을 꾸준히 만들고 있었고, 박헌수 감독의 『구미호』는 한국영화의 기술적 발전을 위한 희생물이 되었다.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은 나름대로 코리안 느와르의 법칙을 만들었으며,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은 이념 갈등사를 큰 가지에서 다루고 있다.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세상을 뒤집어 까는 그런 영화였다. 곁에 있으면 차분한 그가 영화를 만들 때면 신기가 발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섹스 애니 오중일의 『블루 시걸』은 애니의 부화를 기대했던 나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준 작품이다. 박성배 감독의 『해적』은 단시 액션에서 너무 앞선 작품이어서 제작자가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이다. 서윤모 감독의 『라이 따이한』은 혼혈 벤트남인의 아픔을 그린 작품으로 화제가 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강우석의 『마누라 죽이기』는 이 당시 기발한 로맨틱 코미디였다. 강우석이 결혼한 평창동 연예인 교회, 그리고 올림피아 호텔 부페의 음식은 맛이 있었다. 언제 만도 구수한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도 배 감독의 변신을 읽게 해주는 작품이었고, 김성홍의 스릴러 『손톱』도 시나리오와 연출력을 보여준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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