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땡볕아래 아이들

장코폴로 2009. 2. 19. 11:11

◆1985년


   땡볕아래 아이들


  문화공보부가 국산영화 진흥책을 발표한 1월 22일, 이 때에도 국어교사 이창동(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신일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중편 『전리』로 동아일보에 입선된 소설가였다. 영화제작자 황기성씨 아들을 담임하던 이창동은 변인식 영화평론가와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같이 신일고등학교에서 국어과에 봉직하고 있었다. 국어 독어 기술과 선생들이 자주 모였던 신일고 시절, 국, 독, 기  선생들은 신일 언론의 핵이었다.  

 나는 신일고에서 연극 방송 지도를 하면서 많은 재능 있는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주변의 혜화여고나 정의여고 학생들은 연극에서 여성역할을 해주었다. 부모님들의 반대와 소위 빠따를 맡아가면서도 학생들은 열심히 자기연마를 했다. 신일의 전반부 연극영화지도는 변인식 선생이 맡았고 후반은 내가 맡은 셈이다.

 조우 콜리의 『탄갱부』를 시작으로 신일의 연극반은 새로운 기지개를 켰다. 이창동 선생의 연극 팜프렛 그림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던 이창동은 익살스런 농담으로 주석을 즐겁게 만들어 주곤 했다. 연극영화과 지망생들이 늘어났고, 축제 때면 신일고 연극은 특히 인기를 끌었다.  

 연극영화계 신일고 출신 연예인들을 열거하면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 중 장두이(연기자),고명진(사진기자), 명계남(연기자), 이규형(영화감독), 이현승(영화감독), 정진영(연기자), 지석진(개그맨), 서우식(영화제작자), 김철홍(연기자), 임원희(연기자), 손효원(연극연출가), 박병호(카메라 맨)등은 신일을 알린 졸업생들이다.

 연극반 학생들 지도로 귀가는 거의 자정을 기록했다. 부족한 조명기 등을 보충하기위해 사재를 털어내고 외부의 지원을 받았다. 유명 피디, 연출가, 배우 등이 신일학교를 방문했다. 85년의 미아동 스토리는 <휘가로>, <백작>, <신일식당>,<상록수>,<용> 같은 음식점 다방 등을 빼 놓을 수 없다. 이 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해내고  있다. 최영인 내과 전문의, 최영수 작곡가, 정병원 검사, 최재혁 판사, 김권정 교수 등…….

 1985년 『땡볕』은 베를린 영화제 본선진출, 벨기에 겐트영화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상, 21회 시카고영화제 최우수 촬영상 수상 등 주목을 끌었다. 또한 외설적이거나 선정적인 영화들은 단속대상이 되었다. 11년이나 수입 금지되었던 『엠마뉴엘』이 수입되었고 5월 17일 실비아 크리스텔이 방한하여 주목을 받았다. 제30회 아시아 태평양영화제에서 『깊고 푸른 밤』은 각본상과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종래 3등급이던 공륜의 등급결정은 관람불가, 중학생이하 관람불가, 고교생이하 관람불가, 국민학생 관람불가 의 4등급으로 바뀌었다.

  1985년에는 80편의 방화가 제작되었다. 48,098,263명의 총 관람객 중 방화관객은 16,425,345명을 동원했다. 외화편수는 27편에 불과했다. 85년 흥행 베스트 10은 ①깊고 푸른 밤 ②어우동 ③고래사냥2 ④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⑤ 돌아이 ⑥애마부인3 ⑦땡볕 ⑧차이나 타운 ⑨오싱 ⑩달빛 스토리 순이다.

  이해 영화제들에서는 『땡볕』, 『깊고 푸른 밤』, 『길소뜸』,『어미』,『밤의 열기 속으로』, 『자녀목』등이 수상대열에 올랐다. 대부분 흥행이 저조한 가운데『깊고 푸른 밤』이  관객 50만 명에 육박해 겨우 체면을 유지했다. 작품소재와 어떻든 박철수,장길수,송영수,신승수,이영실,이미례,김성수,장성환,정지영,곽지균,김현명,이상철,김주희,김기현,양병간,차성호 등 신인과 신인 급 감독들의 활약은 한국영화의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외화 중 『킬링필드』,『인디아나 존스』,『람보2』,『아마데우스』,『폴리스 아카데미』,『마이 뉴 파트너』등은 이 당시의 외화 분위기를 읽을 수 작품들이다.

『길소뜸』,『어우동』이 부각된 1985년은 ‘동그랑땡’집의 기름 냄새처럼 고소한 냄새를 풍기지 못하고 흥행에서의 침묵으로 긴 장고에 들어갔다. 많은 감독들이 면벽 수행을 하고 있었다. 이 때의 긴 침묵은 오늘의 보약이 되는 통과의례로 생각하면 허수적 상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