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희 안무 출연의 전통춤 산책
춤 전용 극장 ‘엠’ 은 개관 1주년 기념으로 지난 20일(일) 오후 5시 고경희의 전통춤을 초청했다. 한국 전통 춤 중 독무에서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는 고경희는 심도깊은 심리묘사와 작은 동작 하나에도 디테일을 가하는 섬세한 안무가이자 춤꾼이다.
고경희가 안무 출연한 여섯 마당의 안무작은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에피소드로 연결되어 있다. 큰 기쁨으로 와 닿는 총체무인 영남검무, 태평무, 진도북춤, 활인춤, 살풀이춤, 달구벌 덧배기춤은 독특하며 아울러 흥과 멋이 살아 숨쉬지만 연마는 더욱 어렵다.
포스트 모던의 제단위에 고고하게 마지막 선홍빛으로 남을 전통 춤들은 현대 이론으로 무장한 학자들의 ‘사기성’을 질타하는 웅장함과 패기를 보여주었다. 고경희는 ‘바보스럽게 지킴’이 변형과 진보, 혁신이라는 폐쇄회로를 관통하는 아우토 반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전통춤’은 길이 험하고, 눈이 많아서 전통을 빗겨간 아방가르드 작품들의 공격에 취약하다. 열린 마음과 뜨거운 가슴, 바른 느낌으로 순종과 정통성으로 성직자의 길에 버금가는 작업을 지속시켜온 열정은 천민자본주의 시대의 ‘그래도’의 희망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마다 앞장 서온 것은 춤이었다. 그들이 움직이고 피를 토해 낼 때, 상상력은 배가 되었고, 기운은 혁명으로 닮아 있었다. 초심으로 안무라는 ‘현·絃’을 뜯어내는 고경희의 소통의 춤은 전통과 재현 사이의 앞니 빠진 ‘갭’을 잘 연결시키고 구조화 한다.
『영남 검무』는 웅장함, 배치와 이동에 따른 움직임과 리듬감 등으로 진주검무의 춤사위와 신라검무의 현란한 칼놀림을 근간으로 영남인들의 호탕한 기개가 돋보이는 이정진 주축의 육인무이다. 신 방식으로 꾸민 미장센은 화려한 비쥬얼과 친밀한 사운드를 껴안고 있다.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고경희의 독무, 한영숙류의 『태평무』는 발 디딤의 다양성, 손놀림의 상징성, 품격을 느끼게 하는 왕비의 복식 등은 민속 춤 추기의 전범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춤은 지금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무(錯舞)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진도북춤』은 양손에 북채를 들고 추어진다. 진도 민속춤의 변형은 이미영, 정선화, 천혜선 삼인무로 파종과 모내기 등을 담은 지역특성, 아주 강렬한 보폭 큰 움직임과 회전, 경쾌함을 보이며 박을 옮겨가며 춤을 춘다. 예술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가진 인기 레퍼토리이다.
『활인춤』은 퇴계의 활인심방 심신수련법 중 우주의 원기를 도인하는 방법론이 춤으로 고안된 춤이다. 퇴계 이전의 삼국무술의 신비의 과정을 그대로 전하는 느낌으로 무사들의 숨고르기에 비급을 지닌 춤이다. 김경린, 김은경, 정연주의 세기는 신비감을 그대로 전달한다.
고경희의 『살풀이춤』은 누구에게나 액을 풀어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출발한다. 백색제의는 많은 상징을 담은 명주 수건과 이에 감춰진 한과 환희의 배반적 이중주를 천연덕스럽게, 신비로운 춤사위로 보여준다.
마지막을 장식한 『달구벌 덧배기춤』은 6박의 굿거리 장단으로 잔가락이 많고 자진모리장단과 어깨춤이 돋보인 작품이다. 이정진을 비롯한 6인이 재현한 이 작품은 경상도의 투박한 인정미가 느껴지는 춤이다. 관객과 출연자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걸작이다.
고경희의 전통춤은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조건에서도 밝음을 꿈꿀 수 있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역경 속에서도 고난을 참아낸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작품들이 ‘순수’라는 밝음을 얻을 때 ‘전통춤’의 새벽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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