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생,춤 바람 나다

장은정 안무의 '육식주의자들' /체면없는 사회에 고한 통열한 면박

장코폴로 2009. 2. 11. 12:53

체면없는 사회에 고한 통열한 면박
장은정 안무의 '육식주의자들'
 
장석용주간
 
2009년 2월 6일(금) 8시, 7일(토) 5시 양일간  아르코예술극장 기획공연으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공연된 장은정 안무의 신작 '육식주의자들'은 그녀의 정체성, 통섭의 접근성, 소외의 근원을 읽게 해주는 깔끔한 현대성 소지의 ‘질문...’ 연작 시리즈 완결편 이었다.

작품은 벌름거리거나 킁킁대는 코, 고집스러운 몸의 기관들을 묘사한 1장의 ‘냄새들’, 몸을 거는, 몸이 걸린 옷걸이, 혹은 몸을 널어 널리고 말리기를 나타 내는 2장의 ‘고기들’, 숨소리 내며 걷는 어둠, 사라지는 몸들을 상징하는 3장의 ‘조각과 흔적들’의 3장으로 나뉜다.

춤 작가는 인간과 주변을 면밀히 뷰즈(views)함으로써 의식의 저층에서 저장해두었던 내공과 타자와의 만남을 주선, 기층 위의 움직임을 전개시킨다. 필름을 가동시키면서 연(緣)과 동인(動因)은 무엇일까라는 철학적 호기심과 체험적 분노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이화여대 무용과에서 당대의 최고 스승들에게서 장은정은 ‘감(感)’과 간(間)’의 차이점을 실감하고 독자적 영역을 개척해 나간 그녀는 다양한 해외 무용제에서 수상과 작품을 공연함으로서 국제적 감각을 지닌 한국의 무용의 현주소를 알려 왔다. 그녀는 ‘응축된 힘과 순발력으로 현대춤의 극적상황을 자유자재 연출하는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는 안무가’이다.

그녀의 작품에선 영화감독 김기덕의 '악어'와 '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 회화적 이미지와 대한민국이라는 멀고도 폐쇄적 집단이기주의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질식하기 직전의 인간들의 욕망과 폭력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녀에겐 모든 것이 고립된 ‘섬’일 뿐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무용계의 스타들인 류석훈, 김혜숙 같은 명 춤 연기자들과 이소영, 이윤정, 최진한, 한승훈, 기진령, 정성태 같은 주목할 만한 춤꾼들이 주저 없이 출연할 정도로 무용사의 획을 긋는 의미 있는 내용들이 들어있다.

'육식주의자들'에서 안무가는 감성이 사라지고 서로가 처절하게 남(他者)이 된 폐허가 된 공간에서 ‘소외’와 ‘극기’에 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고 있다. 구체(球體)와 관절(關節)만이 회전이라는 연속동작으로 이루어진 껍데기만 있는 곳에 감성이 들어갈 틈은 없다.
 
그로테스크한 느낌과 모습들이 영상과 어우러지면 살점(flesh)을 두고 벌이는 정글의 법칙, ‘히트 앤 런’과 ‘런 앤 체이스’가 적용되는 현대사회가 투사된다. 조금 전의 살육, 포식, 배설은 망각되고 도덕률 제로의 섬에서 장은정의 폭거적 사이코패스적 상상은 시발된다.

음악, 의상, 조명의 독립적 예술성이 돋보이게 하면서 안무가 장은정은 왜곡된 열정의 적색, 하얀 방 개념의 시리도록 하얀 차가운 백색, 유토피아 같은 느낌의 순수를 나타내는 녹색, 그리운 세포의 살색으로 포진하고 선과 빛의 묘사를 단순화하면서 의미를 강화시킨다.
 
장은정의 '육식주의자들'의 의상은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느낌이 들도록 고려한다. 사이코들의 탄생의 근원을 파헤친 점에서 '추격자'나 연쇄살인범 등 심리학적 텍스트 기능을 한다. 외로워짐의 동인을 같이 생각해보자하는 안무가는 선진 사회의 정직성을 강조하고 건조한 사랑의 수맥을 동시에 찾고자하는 소망을 작품에 담고 있다.
 
부도덕하게 쌓아올린 상부계층의 탐욕스런 포획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장은정의 '육식주의자들'은 현대인들의 뒤틀린 욕망, 그 근저에 깔린 허망한 꿈들이 소진시키는 소모적인 아집들이 파생시키는 무수한 육식적인 도살 속에서 멸종되는 숱한 작은 소중한 꿈들의 실체를 구조적으로 들추어낸다.

기존의 가치에 도전하고 있는 전복성 작품으로 카리스마적 연출 통제력을 보여준 장은정은 의도적으로 마네킹의 등장같은 불편함으로 우리의 평온을 깨지만 그것은 우리의 영혼과 정직을 일깨우는 채찍의 의미를 갖는다. 그녀의 자주 빛 상상력에 존의를 표한다.


*안무가 장은정
1994년 프랑스바뇰레국제안무가 경연대회 최고무용수상을 수상,
평론가가 뽑은 젊은무용가 선정,
제1회 PAF안무상,
제1회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선정 젊은 안무가상,
제12회 사이타마 국제콩쿠르 우수상,
제5회 안무가 경연대회 대상 수상을 비롯하여
2005년 PAF 올해의 작품상,
2007년 한국평론가회 춤비평가상 수상
2008년『몇 개의 질문』으로 한국무용협회가 시행하는 ‘대한민국 무용대상’ 후보작
2008년 우수 무용 신작들의 대표 경연대회인 ‘서울무용제’ 경연대상부분에 참가
2009년 1월 한국 대표로 뉴욕의 북미 최대 공연예술마켓인 APAP 컨퍼런스에 참가

 (문화저널 21, 2009년 2월 11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