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생,춤 바람 나다

청매실맛나는 한명옥의 춤 여행

장코폴로 2009. 2. 11. 07:57

청매실맛나는 한명옥의 춤 여행


국립국악원 예악당 저녁을 전통의 향기로 가득 채운 춤꾼 한명옥은 유월 보름 공연에서 그녀가 인천시립무용단 단장이라는 짜인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예기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엄니의 한』(살풀이 춤), 『소고춤』, 『숨』(산조)은 그녀의 춤 철학의 핵심이다.

맥과 흐름을 동일선상에 놓고 그녀는 자신이 안무했던 작품과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는 선후배들의 작품들을 교차 구성한다. 초등학교 입학 이전부터 춰온 춤이 숙성된 청 매실 맛을 내는 단계에 진입한 한의 한(恨)(Han's Han), 동경, 사랑은 범인의 것이 아니다.

소리꾼 왕기철은 구수한 창으로 한명옥의 춤들을 정감 있고 맛갈 나게 만들었고, 양종승의 해설은 춤의 별칭에 대한 이해와 한명옥의 소중한 존재를 부각시켰다. 김유미 주축 인천시립무용단 단원들은 탈 소우주의 스승을 위해 신명나는 춤 연기로 따스한 배웅을 했다.

아박을 두 손에 놓고 박자에 맞추어 대무하는 최순희 주축 5인무 궁중정재인 『아박무』, 봄날의 화사함에 걸 맞는 여유와 여인들의 교태를 느끼게 해준 한량무의 여인편인 『흥춤』은 , 승무를 심화시킨 채상묵· 진유림의『쌍승무』, 집체 북춤 『두드리라 Ⅱ』(천고의 울림)는 ‘은근과 끈기’의 표상이자 고전미의 백미를 함축한 전통춤의 또 다른 묘미를 느끼게 하는 우수 레퍼토리 작품들이었다.

『엄니의 한』은 남도 살풀이 장단을 반주로 한 이매방류의 살풀이 춤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3백(흰 치마, 흰 수건, 흰 고무신)의 상징위에 배경 막의 흰 구름, 바닥에 투사된 화이트 칼라는 쓰린 마음, 인고의 세월의 흔적을 말끔히 정화해내는 살풀이 독무는 물처럼 투명하고 담백하며 깔끔하다. 천이 던져지며 뿌려지고 걸쳐지며 백색 눈물이 첨가된다.

바람으로 흩어져 멀어지는 떠나신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이 스며들어 한이 심화된 살풀이 음률에 맞춰 한명옥이 맺고 푸는 기법은 독창성을 확보하고 있고, ‘한’을 삭여내고 극기하는 한국 여인들의 단아하면서도 강인한 극기를 의식화 해낸다.

『소고춤』은 장구, 꽹과리, 북, 징의 사물에다 이종훈의 태평소를 첨가 천지만물의 이치를 깨우치며, 음양의 조화와 사람들의 하나됨을 기원하는 춤이다. 몸과 마음이 바르면 세상에 거칠 것 없다는 한명옥의 춤은 그녀의 몸이 악기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굿거리, 자진모리, 동살푸리, 휘모리 등 다양한 가락에 맞추어 소고를 두드리면서 사물놀이패와 음악에 맞춘 그녀의 여성을 담은 발디딤과 대삼, 소삼 몸짓은 짜밈새와 무브먼트가 신명을 불러온다. 도입과 마무리 에서 인천시립무용단과 합일은 그녀가 춤꾼임을 입증한다.

『숨』은 산조운율에 맞추어 추는 춤이다. 맨손으로 추는 춤은 신비에 쌓인 여인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키고 부각시킨다. 긴 흐름의 마지막 부분에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그런 춤이다. 기악독주곡 ‘산조’ 리듬에 맞추어 부드러운 버선발이 나비처럼 가볍게 내디뎌진다.

진양조, 중모리, 굿거리, 자진모리 장단 순으로 진행된 춤은 아쟁의 선율에 맞추어 전통의 그윽한 멋을 보여준다. 새로운 한국 춤의 지평을 넓혀갈 그녀의 춤은 전통의 바른 보존과 변주에서 보여주는 그 깊이를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오랜 세월, 자주색 엉어리로 그녀의 피 속에 머문 냉기를 털어내는 ‘숨’ 독무는 한 여인의 인생에 대한 애절함과 요원함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한명옥 만이 토해낼 수 있는 춤사위는 전통의 멋과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한국 춤의 묘미를 보여준다.

한명옥, 그녀의 춤은 아직 진행형이다. 많은 연구를 거친 전통춤과 창작춤으로 우리를 다시 즐겁게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