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별, 영자, 퍼레이드

장코폴로 2009. 2. 4. 10:20

    최인호․이장호․김호선․하길종/ 별, 영자, 퍼레이드


 74년 영화연기자 허장강은 김기덕 감독의 『꽃상여』에 출연하고 사망하였다. 한국의 봄은 도래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소리 없이 젊은이들은 희생되었다. 영화는 표현의 자유가 차단된 채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에서 비정상의 테마들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75년, 사퍼모어, 유신의 그늘은 우리를 거리로 내몰았고, 강남의 중앙대, 그 먼 곳까지 데모대는 형성되었다. 나는 데모주동에 삭발을 감행했고, 많은 동지들이 잡혀가는 것을 목격했다. 씁쓸한 대학에 관한 나의 추억은 하길종의 허무와 이어졌고, 심지어 이장희,송창식,윤형주,김세환,양희은의 통기타 리듬에 담긴 도시의 우울을 넘어 더욱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독기를 덜 먹은 우리들에게 영화로 마음의 도피처를 제공한 사람은 최인호․이장호․김호선․하길종 등이었다. 당시 불란서문화원과 독일문화원은 자유의 공기를 만끽하는 공간이었다. 미국문화원은 이미 영화를 홍보하고 자국영화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공간을 벗어나고 있었다. 나의 영화와 연극에 대한 집착은 관람 수준을 넘어 참여의 기운을 보이기 시작했다.

 75년 봄에 ꡐ영상시대ꡑ(이장호,김호선,하길종,변인식,이원세,홍파,홍의봉이 동인)가 모집하는 연기자 시험에 3차까지 붙은 나로서는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결정적인 영화 가이드는 영화배우 유지인(56년 1월 27일생)의 친구인 이공희 동국대 연극영화과 학생이었다. 우연히 중앙대에 들른 그녀는 연극․영화라는 다리로 가는 메신저였다. 많은 정보가 교환되었다. 그녀는 청소년영화제에서 수상, 시나리오 작업, 뉴욕 유학, 해외영화제 수상, 문화일보 소설 당선 등 영화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영화진흥공사는 영화제작까지 나서 『태백산맥,75,권영순 감독』을 만들었고, 75년에 우리나라 TV 수상기는 201만 4천 927대, 영화제작 편수는 94편, 영화관 597개에 관객 75,597,997명을 기록했고, 관객수와 영화제작편수는 예년에 비해 점점 줄고 있었다. 우수영화에 대한 보상제도는 그나마 문예물로 불리우는 아트․반공 영화들을 배양시키고 있었다.

 75년 주목받은 영화는 양띠 이혜영의 아버지인 이만희 감독의 『삼포 가는 길』,유현목 감독의 『불꽃』,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등이 있다. 이만희 감독은 1970년 스카라 극장 뒤 여관에서 원고 작업할 때 심부름 간 적이 있고, 유현목 감독은 70년대 후반 동서영화동우회 회장 하실 때 사무국장으로서 만남으로 연을 맺었고, 하길종 감독은 78년 고대 안암병원에서 식물인간으로 의식이 없을 때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만희 감독은 유작 『삼포 가는 길』을 포함 49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74』,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75』,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75』의 30대 신인감독들 세 사람이 휩쓸어 버린 서울 단일극장에서의 관객수가 각각 56만,36만,15만은 엄청난 숫자였다. 조국 근대화와 소비향락, 금전만능시대 물질우선 등의 문구에 맞게 저급 멜로드라마는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60년대에는 라디오 연속극이 영화화 판권의 치열한 섭외가 있었다고 친다면, 70년대에는 신문연재소설이나 베스트셀러가 빅히트를 예고하는 시나리오 감의 표적이었다.

 제작편수를 채우기 위한 정소영 감독의 『성숙』과 같은 멜로드라마와 김효천 감독의 『협객 김두환』,액션스타 박노식의 『폭력은 없다』,정창화 감독의 『심판자』같은 액션도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75년은 54년 6월 4일생 정윤희가 이경태 감독의『욕망,75년 7월1일 개봉』으로 데뷔한 해였다. 육감적인 용모와 완벽한 얼굴의 그녀는 제2의 김지미라는 칭송을 받았다. 이후 그녀가 작품으로 만나 촬영장에서 도시락을 같이 먹을 줄이야 꿈에서라도 생각했겠는가? 나는 그녀를 박범신작 김호선 연출의 『죽음보다 깊은 잠』에서 조감독으로 만나게 된다. 신상옥 감독은 5번째 리메이크된 뒤마의 『춘희』를 오수미를 주인공으로 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박호태 감독의 『격동』개봉에서 김시현 감독의 『석별』로 끝난 75년의 암울한 풍경은 별 수작 없이 끝났고, 언급된 작품말고,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이라는 카피를 단 김지헌 각본․김기영 감독의『육체의 약속』,『여고졸업반, 김응천 감독․나연숙 각본』의 임예진, 『어제 내린 비,이장호 감독』의 이영호가 신인으로 부각되었다.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가 주도한 75년은 하이틴 영화의 화려한 서막을 알리고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