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시지프스의 신화를 닮은 그림자놀이

장코폴로 2009. 1. 29. 08:42

◆1971년


 시지프스의 신화를 닮은 그림자놀이


 경남여고에 입학한 혜경의 편지는 자주 이어졌고, 나는 다양한 문학적 수업을 쌓았다. 단 몇 시간의 만남이 몇 년간 이어졌던 것이다. 이젠 이 메일이나 전화가 대신하지만 편지는 여전히 매력 있는 통신수단 중의 하나이다. 전쟁영화나 이산의 아픔을 다룬 영화에서나 봄직한 편지를 기다리고 답장을 하는 긴 기다림은 인간을 인내, 성숙 크게 만드는 것 같다.

 어머니의 노파심 때문에 많은 편지들이 어머니의 재봉틀 속에 감추어졌고, 그래도 편지는 이어졌다. 낭만적 수사와 문호들의 명문이나 시가 인용되고 영화이야기들이 첨가되었다. 계절과 미래와 각오들이 실린 나의 글들은 시가 되고 수필이 되었다. 그 글들은 친구들에게 분양되었다. 희곡이나 시나리오도 습작해보고, 다독과 시도 자주 암송했다. 

 영화에서 문학적 수업 쌓기를 지시한 대표적 감독은 선생님 출신의 김수용 감독이 아닌가 한다. 조문진 감독처럼 김 감독님의 조감독(제자들)들은 하나같이 소설이나 시나리오 등의 영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리해 그들은 작가감독(auteur)이 되었다.         

 요즈음 드라마 피디가 영화계에 진출하면 성공할 확률이 적고, 설익은 해외 유학파가 영화계에 진출하면 참패를 각오해야하며, 흑인이나 아시아계 주인공이 해외영화제 수상작에 출연한 영화치고 한국영화관에서 빅 히트했다는 얘기를 별로 들어 본적이 없다.

 그러나 70년대에는 외화만 들여오면 그 영화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변하고 만다. 서로 외화를 들여오기 위해 국책영화나 문예물로 대종상등의 시상을 노렸다. 장동휘나 황해, 고은아, 남정임, 윤정희 누나들이 만든 스크린 퍼포먼스는 전설이 되었다.    

 요즈음 장르가 허물어지고, 방송․CF․가요․연극계 등의 인력이 영화연출에 관심이 증폭되는 색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70년대, 징조와 징크스가 운명처럼 내려 안고 있는 충무로 상황에서도 김진규, 박노식 등은 연출을 시도했다. 영화의 핵은 역시 감독인 것 같다.

 유학파인 신인이 영화감독으로 나서는가 하면 촬영감독, 제작자도 영화감독으로 들어 안는다. 시나리오 작가 신봉승씨가 영화감독이 되어 화제 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KBS 방송국 피디로서 영화계에 진출한 정소영 감독은 『미워도 다시 한번』 시리즈로 고무신 관객들을 1968년부터 1971년까지 포획하고 장안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아줌마 부대는 인간 축에 끼이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로서 많은 변화와 변신이 이루어지고 있는 한 켠에, 김기영 감독의 미스터리 심리극 『火女』, 사회의 인습과 성윤리를 허무는 유현목 감독의 『분례기』, 전쟁에 휘말린 청춘남녀의 애정을 서사적 틀에 얹은 신상옥 감독의 『전쟁과 인간』등이 71년을 대표할 영화로 다듬어 지고 있었다. 이성구 감독은 70mm로 『춘향전』을 , 이규웅 감독은 『성웅 이순신』으로 고전 레퍼토리와 민족정기를 드높이는 애국적 시도를 하고 있었다.

 영화의 낭만적 고향이라고 불려 져야할 이 시기에는 조심스레 여성을 벗기고, 남성의 원초적 본능을 건드리면서 상업적 활로를 모색하던 때였다. 한편으로는 검열이라는 철퇴를 피할 방법을 연구하였고, 검정과 흰 고무신을 자극할 멜로와 액션을 꾸준히 제작하고 있었다.

 대종상은 10회로 싱싱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맨드라미와 코스모스, 가을 국화, 화살나무가 알리는 가을에도 한국영화계로부터 기쁜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년 초에 내린 눈처럼 다정함을 벗어난 영화들의 대책 없는 궤도이탈은 아픔으로 다가왔다.

 71년은 70년대 중 감독들이 가장 고민을 많이 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해였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처럼 우리의 영화계는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검열은 강화되고, 간섭은 심해졌다. 영화 속의 여성들은 여성을 유린당했고, 남성들은 색광이 되어갔다. 여성들은 맥주집이나 깊은 산속에서 노리갯감으로 바뀌거나 남성들은 주먹패가 되거나 우람한 군인像을 하고 나타났다.       

 

 

  

 

                                                   1971년의 서울(고2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