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클라이맥스와 가파른 하강 1970년대 영화계

장코폴로 2009. 1. 28. 08:40

    ◆1970년


      클라이맥스와 가파른 하강 1970년대 영화계


 당시 영화계 분위기를 설명하자면 사설처럼 느껴지는 나의 이야기가 약간은 도움이 될 것이다. 황무지 속에 금잔화를 피워내는 그런 작업이 영화창작이 아니었을까. 하루에 영화 5, 6편 겹치기 출연하고 일주일에 한 작품 촬영을 다 끝내는 때 이었으니까. 

 뚝섬의 봄바람이 왕십리, 신당동을 타고 왔다. 어떤 정보나 도움 없이 혼자 시험을 치다시피 했던 나는 근대화 바람이 부는 대로 시골 학생들이 그러하듯 한양공고 자동차과에 입학했던 것이다. 올망졸망 아이들이 곳곳의 사투리를 토해놓고 힘겨루기 하는 것이 교실풍경이었다. 황량한 운동장에 걸맞은 살벌한 분위기가 새벽안개처럼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  

 코딱지만 한 학교에 주․ 야간 1,200여명이 정원이었고, 300여명이 정원 외 학생이었다. 예비고사에만 붙어도 한양공대는 입학한다는 정보가 떠돌았다. 조금 공부한다 싶으면 철봉대에 끌려가서 터지고, 막걸리도 한잔씩 같이해야 되고, 심지어 내키지 않는 여름 바캉스도 3박 4일 같이해야 하는 때였다. 그래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행복한 슬픔으로 남는다.  

 압구정 넘어가는 금호강에서 나룻배 젖던 원득술, 왕십리 동대문에서 한주먹 한다는 송명섭, 엄마가 학교에 살았던 성동서 부서장 아들 이홍현, 촌 머슴 배형초, 축구를 한다는 신현호, 유동춘, 학교 사환을 하던 김헌주, 광나루에서 모터보트를 전문으로 수리하던 손종구, 뇌를 다쳐 골프 맨이 된 이영민, 보컬그룹에 미쳐있던 이광봉, 연극 배우를 꿈꾸던 조인환,모방의 천재 신장균…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의 주인공들, 모두 2002 월드컵 멤버처럼 사연도 많고 슬픔도 많고 화려했다. 서울의 명문고 수준에서 부감으로 살펴보면 영원한 아웃사이더들이었다. 그들의 감정의 폭과 리듬은 컸고, 성숙의 편차도 너무 심했다. 그들이 영원한 꿈에 젖어들 수 있던 시간은 영화관에 있을 때였다. 그곳에선 잠시라도 평화가 있었다.

 영화계도 이와 별 차이가 없었던 것 형편인 것 같았다. 우리학교 분위기를 벗어날 수 없는 통제와 검열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1969년 229편,1970년 231편으로 사상 최대편수를 돌파했던 기록은 이후 가파른 하강 곡선을 그어야만 했다. TV의 증가와 영화의 저질화는 관객이 외면하는 수순으로 진행되었다. 생의 나침반이 되어야할 영화들도, 활기찬 사회의 흐름도, 신선한 학창 공기도 제대로 못 마시면서 아이들은 무모한 『빠삐옹』을 꿈꾸고 있었다.

 『필녀』(정소영), 『동춘』(정진우)같은 호스티스 물을 젖히고 흐릿한 기억에는 『태조 왕건』,『마지막 황태자 영친왕』『꼬마신랑』,『마님』,『민비와 마검』,『세조대왕』들이 자리 잡는다.

 시원한 시냇물이 흘러야할 학교건너편 골목에는 창녀촌이 있었고, 그 옆으로 조선시대 시체를 갖다버리던 시구문, 젓가락 장단으로 노래 부르던 중앙시장 골목 주막들, 유일한 청정지대인 창 뒤쪽으로 야구장, 축구장, 수영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서울 운동장이 있었다. 지금 동대문 운동장으로 이름이 격하된 그곳에는 월담한 수영 객들도 여럿 있었다.

 조숙한 아이들 중 하나는 여운봉 이었다. 충청도 촌놈이자 반장인 그 애는 향토장학금이 올라오고 1학년인데도 등치는 대학생 같아서 다방 레지들도 애인이 되었다. 나로 보아서는 크나큰 충격이자 새로운 세계에 눈뜨는 시점이기도 했다. 나를 막내로 취급하는 운봉이는 가끔 나를 을지로 다방에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 영화관에 같이 가기도 하였다.

  지금은 어린이 대공원 후문 쪽에 있는 영화사란 절에서 송충이 잡기 노력봉사에 동원된 우리는 가을을 기다리기로 했다. 가을은 어느 정도 우리의 숨통을 터줄 축제도 있었다. 그 축제는 서정이 아니라 터프한 한․동전 축구경기였다. 날리던 한양, 동북 의 현역과 오비 팀이 모여 벌이던 경기가 우리의 유일한 축제이자 낭만이었다.

 이 모든 역경의 강을 건너 드디어 수학여행, 그 중에서도 가장 감동에 남고 잊지 못할 일은 부산 동명극장에서의 『노틀담의 꼽추』를 감상한 일이었다. 꼽추역의 안소니 퀸, 집시역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명연기에 흠뻑 빠졌다. 학교의 삭막함과 대조되는 문학소녀 박혜경이란 고입 재수생과의 만남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