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샘 옆 미술관

한국화가 황상오 개인전

장코폴로 2009. 1. 26. 18:10

  한국화가 황상오의 한지 회화展


 오월 찬가가 터지던 인사동, 봄볕은 단성갤러리에 내려 앉아 단아한 모습의 황화백 작품들과 어우러져 보리밭 서정을 얘기한다. 한지에 인디아 잉크로 채색된 그의 작품들은 눈물이 나올 만큼 가슴 시리게 그리움과 동경, 유년의 추억과 고향을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월 스무 닷새에 시작해서 오월을 열고 귀향하는 그의 작품들은 『오월의 노래』,『눈바람』,『녹우』(綠雨),『추억』,『회상』,『들녘』,『그리움』,『파랑새』,『봄볕』,『해조음』(海潮音)과 같은 자연친화적 청정 제목을 달고 있고 꿀 박힌 사과처럼 맛이 있다.

 백․녹․청․황의 주조색 들은 작가의 동심을 담다가 태고적 신비를 거쳐 귀소 본능에 이르는 서사를 담백하게 그려낸다. 그가 선택한 이데올로기적 함의는 백색의 한지에 담겨져 있다. 황화백이 선택한 한지는 ‘학’이 상징하는 모든 것을 다 껴안고 있다.

 작가는 순백(純白)의 이미지에다가 채색을 시도한다. ‘그의 그림에는 선인들의 예술 혼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고, 채색은 백색을 받쳐주는 동반자적 관계이며, 덧칠은 그림의 혼(魂) 이다.’ 어우러짐과 결속, 하나 됨, 즉 인본주의가 없이는 그의 작업은 불가능하다.

 작가의 대부분의 오브제들은 자연이다. 그는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자신도 모르게 노장사상을 농축하여 작품의 무가시(無可視) 재료로 쓰고 있다. 인간들은 모두 상상과 상징 속에 숨겨져 있다. 순수가 탈색된 인간들은 그의 프레임에 들어갈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셈이다.

 그는 서정시가 지향했던 방향성을 선택하고 일급수에만 산다는 만경강의 실뱀장어처럼 고고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자꾸만 파괴되어 가는 자연을 탄식하며 가슴아파한다. 그래서 아쉬움으로 추슬러 올린 작품들은 아카시아 향처럼 향긋하며 사월 느릅나무처럼 싱그럽다.

 작가의 한지 회화 연금술은 봄비나 진달래, 녹두꽃과 아지랑이를 표현할 때 서정의 극치를 보인다. 향수를 일구어 내는 그의 솜씨는 봄바람을 타고 민족 향수의 시원으로 이어진다.    그는 한정된 한국화를 변형, 밑 색 우러나오는 한국화에 덧칠을 하듯 겹쳐 붙여 양화적 표현을 이끌어 낸다. 한지가 중첩되는 묘(妙)와 찢기고 겹치는 한지의 자유로운 윤곽선, 색 한지가 겹쳐지면 그 칼라는 마법처럼 ‘테마’를 불러일으키고 중첩 서정을 구가한다.

 한지가 찢기고 벗겨지면서 점으로 주름져 겹쳐져선 선으로 표현되는데, 때론 아크릴로 색선을 돌출되게 드로잉하고 덧씌운 한지가 마르면 칼로 깎아 스크래치로 노출시켜 표현한다.  혼합재료의 색과 이미지 위에 언 뜻 언 뜻 드러나는 먹색의 심도 있는 중후함과 담채 등의 표현은 한국적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는듯하다.

 전통방식을 재현한 재료가 호재(糊材)로 사용되었고, 닥나무 줄기나 황토 등도 그의 붓의 터치를 자연스럽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먹 작업과 채색 작업이 전통을 기반으로 두고 있어 예술가의 외길 작업이 ‘전통 보존’에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작가의 녹우(녹색비)의 여백, 황숙기의 보리밭, 녹두가 갖는 청포 이미지, 희망을 얘기하는 구릉지가 있는 ‘들녘’, 휘돌아가는 동선을 은근하게 묘사한 ‘승무’ 등은 서정의 환타지로 둘러 싸여 있다. 그는 언제나 희망을 얘기한다. 『파랑새』가 메아리로 날면 그 울려나오는 소리와 화음을 이룬다.

 10호,20호,50호,60호,100호 까지 다양한 사이지를 가지고 있는 그의 작품들의 끝은 여전히 그리움이다. 그는 늘 아름다운 시절을 그리워한다. 평생 그리움으로 남을 그의 작품들도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의 ‘쿤스트 파라디소’ 작업은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이다.(2007년 4월 파이낸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