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춤의 진화를 체현시킨 '월드 마이스터'
애잔의 恨을 희망으로 승화시킨 창작춤의 달인
역사에 희생된 민초들의 애환과 왕조의 비극을 무대로
미국, 러시아 등 세계 곳곳에 한국춤의 진수 선사
유럽 70개 도시에서 『한국의 북춤』 40일 장기공연 기록
■ 춤밭을 일군사람(2) 디딤무용단 예술감독 국수호
국수호(鞠守鎬). 이름만 들어도 모든 이를 설레게 하는 창작 춤의 달인인 그의 천재성의 시원이 궁금하다. 그의 춤을 체로 친다면 문학 숲의 시적 서사, 역사에 대한 끝없는 연민과 아픔, 현학적 상상, 민속 행위에 대한 동경, 가버린 꿈에 대한 그리움, 승화된 민족의 웅비와 화합, 겨룸과 조화, 아름다운 대칭으로 남을 수 있을 법 하다.
춤으로 생각하는 그는 국립무용단의 주역 무용수, 안무가, 무용대본작가, 연출가로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였고, 87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세계민속무용 페스티벌 참가이래로 『노이스트』(1988)와 같은 작품을 헝가리와 합작 안무하였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1993)을 볼쇼이 극장에서 공연하는 등 전 세계 곳곳에 한국의 춤의 진수를 선사했다.
비갠 후 운해가 걸린 맑은 여름 산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국수호, 낭만무풍(浪漫舞風) 거사의 일상은 한가로워 보이지만 늘 분주하다. 다정한 처마로 비유되는 후학들의 표정을 읽어내고, 그들의 춤사위를 다듬어 명품을 제조해내는 춤 공장엔 늘 봄바람 같은 그의 미소가 인다. 토담 곁에 소담하게 달린 감이 익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세월을 숙성시키는가보다.
그의 댄스로드는 미국, 캐나다, 중남미, 유럽, 동유럽,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지역 등의 무수한 도시에 걸쳐있다. 다양한 공연 장르와 제목의 춤은 경이롭다. 해외공연 중 유럽 70개 도시에서의 『한국의 북춤』 40여일의 장기 공연 기록은 그의 춤 인기를 실감나게 한다. 최승희, 조택원의 춤의 한류 이래 우리 춤의 신 한류를 이끈 주인공이다.
국수호의 춤은 고향의 전통, 자연과 음식 맛을 기본으로 한 정갈함에서 출발한다. 1948년 6월 2일 전북 완주 출생의 그는 일생을 풀빛서정으로 정글 같은 이 세상의 모든 세파와 싸워왔다. 그는 늘 애잔의 한을 희망의 춤으로 승화시키면서 디딤돌이 된 자리에서 춤을 관조한다. 모차르트적 장난기와 아이 같은 천진스러움이 그의 작품에 늘 배어있다.
마음 어디, 빈자리에 작은 암자라도 짓고, 부처를 닮아 세상에 부대끼면서도 허허로운 풍경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는 그만의 장점일 것 같다. 가득 쌓아둔 그만의 창작 비밀창고에는 삼국의 혼과 고려의 애환, 조선의 비극이 들어선다. 그의 복(공연)은 그의 짐(창작)이건만, 우리에겐 더 할 수 없는 축복이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우리 춤은 발전해왔다.
고수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여성성, 부드러운 정감의 화술과 제스처, 그 이면에 숨어있는 막강한 화력의 역동적인 춤사위로의 놀라운 변신과 제갈량 같은 지략과 테크닉 구사는 국수호가 달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어느 장르, 어떤 스토리로 만들어도 그의 춤들은 배아의 착상처럼 틀을 잡고 예술적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배움보다는 어울림에서 새로운 창작세계를 구축해온 그는 서라벌예대 무용학과,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사고의 논리적 틀과 창작의 원형을 구축했다. 안무가 겸 춤 작가로서 국수호의 작품들은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촘촘히 박혀있는 역사의식, 시적 상상력, 문무를 겸비한 춤의 배합을 통해 ‘춤의 미학’을 자신감 있게 보여준다.
국수호의 춤은 비갠 아침의 바람 속에 섞인 하늘을 나는 물고기 같은 비릿한 냄새가 인다. 허브 향의 달콤함에서 뻘 바닥을 헤치고 나온 낚지 내음으로 번진 향, 그것을 뿌리고 춤으로 조제하는 국수호는 분명 마법사임에 틀림없다. 그 작품들을 섭렵하는 과정은 우리에겐 큰 기쁨이다. 그가 발표한 신작들은 늘 수상작이 되었고, 춤꾼들은 수상자가 되었다.
중요 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이수자인 국수호는 박금술, 송범 등으로부터 춤을 사사했고, 1973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하여 후에 국립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1996~1999)이 되었다. 서울예대 무용학과 교수를 거쳐 1985년 중앙대학교 무용학과 교수가 되었다. 서울예술단 예술총감독(1989~1990)을 거쳐 현재 국수호 디딤무용단 이사장 겸 예술감독이다.
시집살이 같은 가혹의 훈련기를 거쳐, 허깨비 같은 교육 과정을 뚫고, 춤 도량의 수장으로, 오락과 예술의 저울대를 이성적으로 접하다가, 더 이상 따라올 수 없는 작품들을 조타하다가 풍랑을 맞았지만, 그의 디딤무용단은 여전히 왕성한 춤집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다름을 수용해내는 남다른 감각은 내면의 자유를 지키려는 견고한 질서와 리듬감에 있다.
시인 황금찬은 ‘아무리 작은 상이라도 상은 하늘이 내린 것이다’라고 말했듯,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는 국수호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분발을 촉구했다. 국수호 안무, 각본, 연출의 국립무용단 춤극 『하얀초상』(1988)은 최우수 예술가상, 그의 안무, 연출의『오셀로』(1996)로 최우수예술가상, 그리고 이 단체로부터 ‘20세기를 빛낸 인물’에 선정(1999)에 선정되었다.
외국 작품을 우리화 시키고, 우리 것을 현대적 감각으로 만들어 내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모방불가의 우리 춤이 분명한 작품들을 창조해낸다. 원형 그대로의 전승이 아닌 새로운 대한민국의 춤 전통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의 춤은 하늘이 내린 것이다. 그만의 정신적 씨줄과 예술적 날줄로 짠 코리언 춤 브랜드는 마법을 효능으로 전 세계를 경탄시킨다.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 예술평론집단인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의 수상 이후, 국수호의 춤은 제작단체는 다르지만 춤 평론가협회로부터 최우수 작품상 디딤무용단 춤극 『명성황후』(1994), 최우수 작품상 국립무용단 춤극 『티벳의 하늘』(1998), 특별작품상 서울예술단 춤극 『환생』(2001)으로 여전한 작품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국격을 높이는 작업들을 맡아왔다.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전북농악지도 대통령상(1970), 88서울올림픽 개회식 안무 「화합」, 국무총리상 표창(1988), 세계 공연 예술제 공로 대통령 표창(1998), 한·일 월드컵 개막식 공로 문화부장관상(2002), 제16대 대통령 취임식 총괄안무 대통령 표창(2003) 등은 우리 춤의 신명의 군집성과 격조 있는 구성을 과시했다.
조선일보 뮤지컬 대상 안무상 『광개토 대왕』(1996), 올해의 예술가상 국수호의 춤극『고구려』(2006), 한국무용대상 대통령상 수상작 『명성황후』(2010)에 이르는 긴 춤의 여정 속에 그는 선배들이 하지 못한 우리 전통 춤을 총 정리하였고, 창작 춤을 활성화 시켰으며, 우리 춤을 복원하기 위해 우리 춤 흔적이 있는 여러 곳에 발품을 부지런히 팔았다.
국수호의 미덕중의 하나는 타 장르와의 이종교배를 통해 새로운 종을 얻는 실험을 꾸준히 해온 연구자라는 점이다. 전통과 오페라, 발레와의 크로스 오버, 현대 음악과 종묘제례악과의 음의 조화, 빛과 소리와의 어울림 속에 현란한 우리 의상의 두드러진 우월성을 들추어내는 등 안무 이외의 분야에서도 각별한 예술적 감각을 동시에 보여 왔다.
그가 예술감독인 디딤무용단의 대표작은 민비시해사건을 다룬 『명성황후』(2010), 고구려의 호쾌한 기상을 그린 3국시대 연작 시리즈 최종 완결편 『고구려』(2006), 사도세자 이야기 『사도』, 달에 관한 모든 상상력의 총합 『월인』, 병자호란에 희생 이화이야기 『이화』, 역사에서 사라진 화려한 왕조 『가야』 등이다.
그의 대표작들은 역사 속에 희생된 민초들의 애환과 왕조의 비극을 주제에 밀착되게 고도의 테크닉과 세련된 연기력, 강약의 리듬과 역동적 군무, 극적 묘미를 살리면서 치밀하게 계산된 부분별 장치들로 연희자와 관객 모두가 만족하는 작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의 독무 『남무』,『아가』는 그의 춤 정신과 상상력, 연기력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텍스트다.
그는 해마다 베스트 작품을 갈아치워 왔다. 이제는 과거의 베스트 작들의 새로운 버전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춤 48년, 그는 작품을 통해 역사의 현장에 있다. 주제의식이 강한 작품들로 오늘의 신화를 써낸다. 무한무필(無限舞筆) 작가로서 잊혀진 신화와 전설, 헤세의 부화의 원시적 서론, 낭만적 서정, 강렬한 핏빛 산무(散舞)로 우리를 자극해낸다.
춤이 세상을 선도하는 무악가극(舞樂歌劇) 『남한산성에 피는 꽃-이화』는 배꽃서정의 향수, 환향의 명분과 동정의 촉수를 거세당함으로써 택할 수밖에 없는 자결의 의미, 그 동정 없는 폐쇄 공간의 한반도인들의 이중성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었다. 요즈음 한반도에도 그가 이미 지침으로 내렸던 일무지침 “힘을 기르소서!”는 선견지명의 춤임이 입증되었다.
천재 춤꾼 국수호의 춤은 어둠의 시대를 살아가도 희망을 품게 만든다. 코드 해석과 상징성의 판별, 분별할 수 있는 경계를 가진 춤은 대중성을 확보, 매혹스러운 무한 상상으로 질주한다. 따스한 표현 위에 걸쳐있는 냉혹한 프로정신은 국수호 춤의 존재 이유와 칭송의 대상이 됨을 설명한다. 사람들의 흔적을 덧입고 학인처럼 살아가는 그가 자랑스럽다.
/장석용(춤 칼럼니스트,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역사에 희생된 민초들의 애환과 왕조의 비극을 무대로
미국, 러시아 등 세계 곳곳에 한국춤의 진수 선사
유럽 70개 도시에서 『한국의 북춤』 40일 장기공연 기록
▲ 국수호 디딤무용단 예술감독
국수호(鞠守鎬). 이름만 들어도 모든 이를 설레게 하는 창작 춤의 달인인 그의 천재성의 시원이 궁금하다. 그의 춤을 체로 친다면 문학 숲의 시적 서사, 역사에 대한 끝없는 연민과 아픔, 현학적 상상, 민속 행위에 대한 동경, 가버린 꿈에 대한 그리움, 승화된 민족의 웅비와 화합, 겨룸과 조화, 아름다운 대칭으로 남을 수 있을 법 하다.
춤으로 생각하는 그는 국립무용단의 주역 무용수, 안무가, 무용대본작가, 연출가로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였고, 87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세계민속무용 페스티벌 참가이래로 『노이스트』(1988)와 같은 작품을 헝가리와 합작 안무하였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1993)을 볼쇼이 극장에서 공연하는 등 전 세계 곳곳에 한국의 춤의 진수를 선사했다.
▲ 사도
그의 댄스로드는 미국, 캐나다, 중남미, 유럽, 동유럽,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지역 등의 무수한 도시에 걸쳐있다. 다양한 공연 장르와 제목의 춤은 경이롭다. 해외공연 중 유럽 70개 도시에서의 『한국의 북춤』 40여일의 장기 공연 기록은 그의 춤 인기를 실감나게 한다. 최승희, 조택원의 춤의 한류 이래 우리 춤의 신 한류를 이끈 주인공이다.
▲ 남무
마음 어디, 빈자리에 작은 암자라도 짓고, 부처를 닮아 세상에 부대끼면서도 허허로운 풍경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는 그만의 장점일 것 같다. 가득 쌓아둔 그만의 창작 비밀창고에는 삼국의 혼과 고려의 애환, 조선의 비극이 들어선다. 그의 복(공연)은 그의 짐(창작)이건만, 우리에겐 더 할 수 없는 축복이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우리 춤은 발전해왔다.
고수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여성성, 부드러운 정감의 화술과 제스처, 그 이면에 숨어있는 막강한 화력의 역동적인 춤사위로의 놀라운 변신과 제갈량 같은 지략과 테크닉 구사는 국수호가 달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어느 장르, 어떤 스토리로 만들어도 그의 춤들은 배아의 착상처럼 틀을 잡고 예술적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 고구려
국수호의 춤은 비갠 아침의 바람 속에 섞인 하늘을 나는 물고기 같은 비릿한 냄새가 인다. 허브 향의 달콤함에서 뻘 바닥을 헤치고 나온 낚지 내음으로 번진 향, 그것을 뿌리고 춤으로 조제하는 국수호는 분명 마법사임에 틀림없다. 그 작품들을 섭렵하는 과정은 우리에겐 큰 기쁨이다. 그가 발표한 신작들은 늘 수상작이 되었고, 춤꾼들은 수상자가 되었다.
중요 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이수자인 국수호는 박금술, 송범 등으로부터 춤을 사사했고, 1973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하여 후에 국립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1996~1999)이 되었다. 서울예대 무용학과 교수를 거쳐 1985년 중앙대학교 무용학과 교수가 되었다. 서울예술단 예술총감독(1989~1990)을 거쳐 현재 국수호 디딤무용단 이사장 겸 예술감독이다.
▲ 명성황후
시인 황금찬은 ‘아무리 작은 상이라도 상은 하늘이 내린 것이다’라고 말했듯,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는 국수호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분발을 촉구했다. 국수호 안무, 각본, 연출의 국립무용단 춤극 『하얀초상』(1988)은 최우수 예술가상, 그의 안무, 연출의『오셀로』(1996)로 최우수예술가상, 그리고 이 단체로부터 ‘20세기를 빛낸 인물’에 선정(1999)에 선정되었다.
외국 작품을 우리화 시키고, 우리 것을 현대적 감각으로 만들어 내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모방불가의 우리 춤이 분명한 작품들을 창조해낸다. 원형 그대로의 전승이 아닌 새로운 대한민국의 춤 전통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의 춤은 하늘이 내린 것이다. 그만의 정신적 씨줄과 예술적 날줄로 짠 코리언 춤 브랜드는 마법을 효능으로 전 세계를 경탄시킨다.
▲ 사도
그는 국격을 높이는 작업들을 맡아왔다.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전북농악지도 대통령상(1970), 88서울올림픽 개회식 안무 「화합」, 국무총리상 표창(1988), 세계 공연 예술제 공로 대통령 표창(1998), 한·일 월드컵 개막식 공로 문화부장관상(2002), 제16대 대통령 취임식 총괄안무 대통령 표창(2003) 등은 우리 춤의 신명의 군집성과 격조 있는 구성을 과시했다.
조선일보 뮤지컬 대상 안무상 『광개토 대왕』(1996), 올해의 예술가상 국수호의 춤극『고구려』(2006), 한국무용대상 대통령상 수상작 『명성황후』(2010)에 이르는 긴 춤의 여정 속에 그는 선배들이 하지 못한 우리 전통 춤을 총 정리하였고, 창작 춤을 활성화 시켰으며, 우리 춤을 복원하기 위해 우리 춤 흔적이 있는 여러 곳에 발품을 부지런히 팔았다.
▲ 이화
그가 예술감독인 디딤무용단의 대표작은 민비시해사건을 다룬 『명성황후』(2010), 고구려의 호쾌한 기상을 그린 3국시대 연작 시리즈 최종 완결편 『고구려』(2006), 사도세자 이야기 『사도』, 달에 관한 모든 상상력의 총합 『월인』, 병자호란에 희생 이화이야기 『이화』, 역사에서 사라진 화려한 왕조 『가야』 등이다.
그의 대표작들은 역사 속에 희생된 민초들의 애환과 왕조의 비극을 주제에 밀착되게 고도의 테크닉과 세련된 연기력, 강약의 리듬과 역동적 군무, 극적 묘미를 살리면서 치밀하게 계산된 부분별 장치들로 연희자와 관객 모두가 만족하는 작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의 독무 『남무』,『아가』는 그의 춤 정신과 상상력, 연기력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텍스트다.
▲ 아가
춤이 세상을 선도하는 무악가극(舞樂歌劇) 『남한산성에 피는 꽃-이화』는 배꽃서정의 향수, 환향의 명분과 동정의 촉수를 거세당함으로써 택할 수밖에 없는 자결의 의미, 그 동정 없는 폐쇄 공간의 한반도인들의 이중성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었다. 요즈음 한반도에도 그가 이미 지침으로 내렸던 일무지침 “힘을 기르소서!”는 선견지명의 춤임이 입증되었다.
천재 춤꾼 국수호의 춤은 어둠의 시대를 살아가도 희망을 품게 만든다. 코드 해석과 상징성의 판별, 분별할 수 있는 경계를 가진 춤은 대중성을 확보, 매혹스러운 무한 상상으로 질주한다. 따스한 표현 위에 걸쳐있는 냉혹한 프로정신은 국수호 춤의 존재 이유와 칭송의 대상이 됨을 설명한다. 사람들의 흔적을 덧입고 학인처럼 살아가는 그가 자랑스럽다.
/장석용(춤 칼럼니스트,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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