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생,춤 바람 나다

순헌무용단 기획공연 ‘하얀 종이꽃, White Paper Flower’

장코폴로 2014. 9. 24. 12:33

순헌무용단 기획공연 ‘하얀 종이꽃, White Paper Flower’
숙명여대를 기반으로 한 창작무용
이재경 안무의 「맨발의 기억」, 이나희 안무의 「씻나락 까먹는……」, 정송이 안무의 「눈물을 닮아……」
2014년 09월 24일 (수) 10:36:31 장석용(댄스 칼럼니스트,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changpau1@sen.go.kr

▲ 이재경 안무의 ‘맨발의 기억’ <사진제공=순헌무용단>
2014년 9월 13일(토) 저녁 7시, 대학로예술극장 3관에서 공연된 순헌무용단(대표:차수정, 숙명여대 무용과 교수)의 기획공연 「하얀 종이꽃」은 세편의 독자적 작품, 이재경 안무의 「맨발의 기억」, 이나희 안무의 「씻나락 까먹는……」, 정송이 안무의 「눈물을 닮아……」를 포괄하는 제목이다. 정제의 의미로 사용된 ‘하얀 종이꽃’은 한국전통무용의 계승자라는 상징을 담고 있다.

 

창작열에 불타는 청파동 여무사(女舞士)들의 역무(力舞), 안무자들은 거친 황야에 버금가는 세상에서 춤꾼으로 버텨내고 나아 가야할 창작 규범들을 스스로 만들고, 조심스럽게 응용하면서 그 연희적 가능성을 모색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작품들은 현실의 암울함 앞에서 극기하는 전향적 자세를 취하면서도 관객들을 위한 난장을 설정한다.

안무자 세 사람의 공통점, 모두 숙명여대 무용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한 재원이다. 고인이 된 스승 정재만의 뜻에 따라 예술감독 차수정이 적극적으로 안무가들을 독려하고 우리 춤(숙명 명무)의 창작 가능성을 타진한 이번 공연은 숙명 학원의 태생적 깊이감에다 백색 이미지의 순수 창작품을 접목시키는 작업이었다.

이재경(브뉘엘예고 강사) 안무의 「맨발의 기억」은 여성 사인무(솔로 이재경, 군무 측 김희선,이다인, 표혜인)의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구직’이라는 절대명제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허무함, 그 좌절감을 딛고 극기하고자하는 의지를 담은 작품이다. 풋풋함, 열정의 순수로 채워나간 이 작품은 저염(底鹽)의 강도로 거친 세상에 부대끼며, 생존해야하는 현실을 유쾌하게 풀어 헤친 작품이다.

개인의 수난이 사회적 수난임을 밝히는 이재경의 모습은 무수한 이력서 작성과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모습으로 대별되며, 의미 있는 침묵과 심도높이기는 ‘거침’보다는 곱게 비춰지는 피할 수 없는 유연성을 소지한다. 창작무는 무용단의 주조적 색감을 탈피하고 독자적 개성과 색조를 가질 필요가 있다. ‘맨발의 청춘’은 가난, 수난, 어두음을 과감하게 수용한 경우였다.

‘불과 수난의 해’에 펼쳐진 순수의 만행은 손동작의 디테일, 고민을 수반한 표정연기, 밝은 빛의 라이트, 드러나는 움직임, 사운드의 혼재가 빚는 부조화를 도출시킨다. 겸손과 순수로 엮은 이 작품은 ‘온실 춤’이라 칭한다. 거친 야생의 서리기가 스며들도록 성숙의 계절을 거쳐야 한다. 휘날래로 가는 조명, 붉은 빛이다. ‘나의 길, 나의 춤’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대목이다.

춤 꾼, 네 사람은 모두 신발을 벗어 바닥을 친다. 그들은 관습을 털고, 어둠을 딛고, 열정으로 가득한 마음을 담아, 붉은 빛 아래 난장에 가까운 춤을 춘다. 춤판에 관객이 동참되고, 춤의 새로운 원리를 찾아 떠나는 길이다. 안무가 이재경은 작무(作舞) 「맨발의 기억」을 통해 거침없이 서로 진솔해지기를 주창한다. 그녀의 서정이 ‘열린 춤’의 한 축이 되기를 기원한다.

▲ 이나희 안무의 ‘씨나락 까먹는…’ <사진제공=순헌무용단>
이나희(충북예고 강사)안무의 「씻나락 까먹는……」은 ‘헛것이 보이는 현상’을 토속 귀신과 결부시켜 코믹하게 전개시킨 작품이다. 사랑에 죽은 귀신, 배고파서 죽은 귀신 등이 ‘술’, ‘담배’, ‘밥’이라는 오브제를 동반한다. 강은지, 윤하영, 이진주가 귀신 역을 맡고 이나희가 헛것에 시달리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의도된 조명과 사운드는 불안과 공포를 우리의 것으로 만든다.

 

비교적 오픈 형식으로 전개된 이 작품은 상상을 현실로 끌어들인다. 학습된 조명 공식에서 귀신은 푸른빛과 안개 낀 어두움을 진하게 동반한다. ‘종이꽃을 든 여인’, 헛것에 시달린다. 죽음 문턱에 이른다. 안무가는 거칠게 형상화된 긴 머리의 귀신, 소복, 분장, 여린 분장 등으로 이 작품의 유희성을 드러내면서 꿈의 상실과 생존의 문제를 전통과 결부시킨다.

느린 진행, 붉은 색 조명 아래 세 귀신, 관객들의 창의적 상상을 요구한다. 뀅가리 등 전통 악기와 양악이 뒤섞여 편제된 사운드는 전반의 느린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헛것은 헛꿈이었음을 밝혀나간다. ‘나’와 ‘귀신’의 불안한 동거는 ‘왼 손’에 대한 강조로 나타난다. ‘나의 왼손은 나의 오른 손 보다 아름답다.’ ‘종이꽃을 든 여인’이 다시등장, 꽃을 던지면서 춤은 종료된다.

안무가 이나희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우회하여 귀신으로 표현하였지만, 귀신처럼 달라붙는 전통무용, 사랑하는 사내, 달콤한 대화, 어울림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은근히 붉은 홍시처럼 내실을 다지며 익어가는 자신을 통해 우리 춤의 존재감과 존귀함을 읽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적 상상력과 한국춤의 독창성이 부각되는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 정송이 안무의 ‘눈물을 닮아…’ <사진제공=순헌무용단>
정송이(숙명여대 무용과 강사, 삼성무용단 주역 역임) 안무의 「눈물을 닮아……」는 시대의 아픔을 눈물에 비유한 작품이다. 안무가 정송이는 2006년 제6회 우리춤경연대회 대상(문화관광부장관상), 2010년 제31회 서울무용제 '물빛이 하늘빛을 담을 제' 주역, 2011년 삼성무용단 정기공연 '제국의 아침' 주역의 실력으로 균제감을 지닌 이 작품을 다각도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이 작품은 탄탄한 구성으로 기승전결, 수미쌍관의 묘를 잘 갖춘다. 금발의 4인(최승용, 홍연지, 한예진, 정송이) 어항을 바라본다. 핑크빛 풍선이 떠 있다. 가벼운 피아노 사운드, 주발소리, 파도소리, 서로는 조용히 세상을 탐색한다. ‘내 귀는 소라껍질, 나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여인(정송이)은 어항의 물을 터치한다. 세상은 잔잔하며, 또한 지속적 박동처럼 움직인다.

여성적 섬세함, 집중도를 높이는 연기, 부드러움 속에 강한 메시지를 담은 이 작품은 빨간 벨트를 한 유랑극단 단원들의 연기 같은 정겨움이 있다. 분위기는 헐렁한 와이셔츠와 바지, 치마는 짧고, 길고, 불규칙하며, 자유롭다. 어항 속에 검정 물감이 들어간다. 가벼운 현의 울림, 모두 자신의 가발과 가식의 옷을 벗는다. 여인이 옷을 어항에 넣자 검게 물든다.

정송이의 고백성사, ‘삶의 치열함 속에 포장되어진 나를 두고 나는 한탄한다. 겉모습과 내면이 충돌한다. 눈물이 난다. 눈물의 시원, 내가 아닌 너는 눈물이 닮았다.’, 그 동종의 근원 찾기 끝에 만나는 품격과 숙성된 모습은 바람직한 청파 무사(舞士)들의 바람직한 전형이다. 안무가 정송이는 춤의 들뜸을 지양하고, 연꽃처럼 낮게 착지하도록 유도하는 테크니션이다.

순헌무용단의 기획공연 「하얀 종이꽃」 세편은 전통과 실험 사이의 근대화 풍경을 보여준다. 춤 방법론 개발, 틀과 스타일 연구, 차별화 전략 등에 대한 독자적 토론과 현실과 다른 ‘비단 옷에 쌓인 듯한, dans sa robe de soie’ 행복한 춤사위는 지양해야한다. 치열함과 경쟁이 수반되어야 하고, 소재선택의 신중함이 추가되어야 한다.

나이테가 테두리를 넓혀나가면 테크니션 집단 순헌무용단이 새로운 칼라를 지닌 창작무용을 수용하는 집단이 될 것을 확신한다. 앞으로 이 단체, 순헌무용단 단원들의 미래적 행보와 내실 있는 예술창작 작업들이 기대된다.

글=장석용 (댄스 칼럼니스트,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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