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공고’ 네 글자를 마음에 입력하는 즉시 망막에 펼쳐지는 영상은 두 컷입니다. 하나는 교문 입구에서 볼 때 오른쪽으로 비낀 색 바랜 붉은 벽돌의 4층 본관 건물과, 또 다른 하나는 교문 옆에 바투 서 있는 7층 신관 건물의 꼭대기 층 문예반실입니다. 우리 문예반 출신들은 말하곤 합니다. ‘우리는 한양공고를 다닌 게 아니라 한양공고 문예반을 다녔노라’고. 사실 우리에게 문예반은 ‘학교’였지요. 아니, 우스개를 하자면 ‘종교 공간’이었는데, 숭배의 대상은 두말 할 필요 없이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양공고 문예반’이 아니라 ‘한양공고’라는 잊었던 범주가 우리를 부르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한양공고 기계과 B반 출신의 이영식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휴』의 발간과 관련해서입니다.
공갈빵』(2002)과 『희망온도』(2006)의 저자인 이영식 시인. 이번에 발간된 시집 ‘휴’에서 ‘휴’의 의미는 중층적입니다. ‘휘유~’하는, 해가 질 줄 모르는 땅 잡초 무성한 밭고랑 같은 삶의 한복판에서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는 한숨소리와, ‘할喝’, 즉 선승이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소리로서의 ‘휴休 - 쉬라!’가 그것입니다. 한 음절로 된 낱말임에도 그 안에는 ‘신산한 삶이니 쉬어가자’는 의미의 인과가 응축돼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시집 ‘휴’ 속에 나오는 화자가 각양각층이라는 것입니다. 선창가 술집의 과부, 힘 들게 길을 건너는 할매, 돼지부속집에 모인 노동자들, 폐경기의 여자, 한 사람도 같은 얼굴이 없는데 하나같은 공통점은 모두 다 삶이나 욕망에 의해 너덜너덜하게 해진 존재라는 것이지요. 시인은 시의 제작자로서 시마다 다른 화자가 그들의 남루한 생을 시의 끝까지 밀고 나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막바지에서 ‘휴~!’, 외마디 한숨을 토하게 합니다. 그 지친 소리들은 선승의 喝처럼 준열함이 없습니다만 독자의 심중으로 파고들고 궁극에는 아프도록 젖어듭니다.
이영식 시인의 시를 한 편 한 편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은 차후로 미룹니다. 어쨌든 장마전선이 북상한 2012년 7월 12일 목요일 오후 6시 30분, ‘휴’가 가진 자장권이 우리를 인사동 ‘낭만’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참석 인원은 모두 6명으로 조촐했습니다. 정병국 선생님과 김의섭 형은 이국에 계셔서, 김영만 형님은 노모님께서 편찮으셔서 급거 귀향하셨고, 조찬용 형님과 오승환 형도 불가피한 회사 업무나 개인 사정 때문에 불참을 미리 알려오셨습니다. 아참, 모임이 7월 11일인 줄 알고 바쁜 일정에도 얼추 시간 맞춰 인사동에 출현하셨던 김대현 형까지 합치면 참석 인원인 7명이 되는 셈인가요. 하하~. 대현 형은 7월 13일 여수 연극 공연이 잡혀 있어서 새벽에 손수 운전을 하고 출발해야 하는 관계로 아쉽게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근래 문예반 카페에 가입하신 장석용 선배님, 최병래 선배님, 김득문 선배님, 변응섭 후배, 그리고 저까지 6명은 ‘낭만’에서 이영식 선배님의 시집 ‘휴’의 출판을 기념하는 식사모임을 가졌습니다.
좌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영환 김득문 장석용 이영식 최병래 변응섭 김용태
사진의 배경에 보이는 ‘휴’의 플래카드는 이영식 선배님이 준비해 오셨습니다. 저희가 준비해야 할 것을, 하는 죄송스러움과 함께 역시 이 선배님은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진의 맨 오른쪽은 ‘낭만’의 주인장이자 민예총의 전 회장인 화가 김용태 선생님입니다. 우리가 시집 발간 기념 모임을 가진다는 것을 늦게 아신 안주인장이 왜 미리 귀띔을 안 해 주었느냐고 아쉬움을 표명하여 김용태 선생님을 모시고 잠시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음식 서비스를 기대하였으나 역시 가장 좋은 ‘사람 서비스’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우리 중의 몇 분이 ‘휴’ 가운데 몇 편의 시를 낭송하였고 이영식 선배님이 시집에 대해 그리고 문학 창작에 대해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좋았습니다. 장석용 선배님은 전날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전시회에서 참석하여 뒤풀이가 새벽까지 이어졌는데도 당일 우리 모임에 기꺼이 참여하여 인사를 나누고 추억담을 공유하였습니다. 1차를 낭만에서 마치고 2차는 종로 3가 '번지 없는 주막' 호프집에서 가졌습니다. 1차 음식값은 우리가 추렴하였고, 2차는 이영식 선배님이 답례로 내시겠다는 것을 만류하고 장석용 선배님이 제공하셨습니다.
맥주를 마시다가 선후배들 생각이 났습니다. 글을 매개로 하여 이팔청춘에 만났던 사람들, 두보의 시 구절처럼 ‘꽃 지는 시절에 다시 만나’는 감회를 말로 할 수가 없더군요. 문예반 출신 가운데에서도 누군가는 계속 글을 쓰고 누군가는 글을 접고... 언제였던가 누군가로부터 우리가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문예반에서 글을 매개로 만났는데 현재는 자신이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문학의 세례를 받았으나 밥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보금자리였던 문학의 둥지를 떠나 있는 사람들, 그래도 마음은 한시도 그 둥지를 잊은 적이 없는 존재들. 언젠가는 ‘휴’의 시간에 삶의 다양한 경험들이 시나 산문으로 자연스럽게 분출되리라고, 꼭 그래야 한다고, 그래서 옛날처럼 다시 만나야 한다고, 병래형님과 함께 종로3가역에서 미끄러지는 3호선 전철을 타고 귀가하는 도중에, 취기와 함께, 그리움처럼 희망처럼 혼자 되뇌었습니다.
조영환(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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