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ity | 2010-11-17 | no.763
조선왕조 500년 지속의 힘, 왕의 밥상
글 : 서광원 (생존경영연구소장)
“젓수시옵소서.”
왕의 밥상
함규진 | 21세기북스
이제는 세계적인 드라마가 된 ‘대장금’에서 흔히 듣던 이 궁중 말은 임금에게 수라상을 올리면서 하는 ‘잡수십시오’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가 대장금에서 보았듯이 이 말에는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뉘앙스가 배어있다. 때가 되면 먹는 식사는 개인으로서는 한 끼를 해결하는 일상적인 것이지만 한 국가를 다스리는 최고 지존이 먹는 것이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배를 채운다는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 무엇을 어떻게 먹는다는 문화적 의미, 더 정확하게는 정치사회학적 의미가 배어있어서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드라마 대장금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있었을까? 아무리 세계 공통어인 요리를 주제로 했다고 해도 말이다.
이 책 『왕의 밥상』은 이런 차원에서 독특하고, 차별적이면서 흥미로운 책이다. 조선왕조 519년을 다스렸던 27명 왕들의 밥상은 어떠했을까를 아주 구체적으로, 특히 음식 자체의 측면에서부터 정치사회적인 시각까지 고루, 그리고 면면이 살피고 있다. 쉽게 말해 ‘밥상으로 본 조선왕조사’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의 찬찬한 노력과 다양한 시각이 아주 인상적으로 느껴져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조선 왕들의 밥상은 소박했다.
우리가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최고권력자의 밥상은 말 그대로 ‘최고’와 ‘권력’의 정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일 게다.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진귀하고 기묘한 식재료를 써서 극한의 조리기술로 만들어낸 희한한 요리… . 사실 산해진미, 주지육림 같은 단어도 여기서 유래되었고, 중국 명·청조 시대에서 유래된 만한전석(滿漢全席) 또한 최고 권력자의 밥상에서 시작되었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과 한민족 요리의 진수를 추출해서 만들어낸 중국 역사상 가장 진귀한 요리를 만한전석이라고 한다. 호사스러움과 고급스러움이 극치를 이룬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비슷했다. 최고 권력자가 특별한 존재임을 널리 과시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왕들은 어떠했을까? 저자 함규진은 다양한 각도에서 왕의 밥상으로 초점을 좁혀간다. 조선을 다스렸던 27명의 왕들 모두를 불러내 그들의 식사 습관까지 다루면서 밥상에 심상치 않은 의미가 있음을 추려낸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하나의 사실을 드러낸다. 조선시대 왕의 밥상이 우리가 쉽게 머리에 떠올리는 최고 권력자의 밥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호화로움이나 사치스러움이라는 표현을 적용할만한 음식들이 없다는 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1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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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선 왕들의 다른 나라 왕들의 밥상과 달랐다. 무엇보다 소박했다. 예를 들어 곰발바닥이나 제비집 같은 것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 권력자들만이 먹는 최고의 요리를 만들기 위한 재료다. 그런데 조선 왕들의 밥상에는 이런 게 등장하지 않는다. 구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조선의 왕들은 이런 재료들을 구하지 않았다.
조선이 가난했는가? 풍족한 나라는 아니었어도 가난한 정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민간에서는 분명 사치의 극한을 달리는 요리들이 있었다. 돈 있는 양반들끼리 값비싼 요리 경쟁을 하기도 했고, 17세기 중엽의 민간요리서인 ‘음식디미방’에는 왕실의 진연의궤(왕실의 잔치나 제사를 드리는데 필요한 재료를 기록한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곰발바닥 요리가 버젓이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왜 권력의 정점에 있는 왕의 밥상에는 이런 게 없었을까?
건강과 맛과 정치가 어우러진 이상을 꿈꾸었던 왕의 밥상
조선은 건국 때부터 이상적인 군주를 정점으로 이상적인 국가를 꿈꾸었던 성리학의 나라였다. 위로는 하늘을 받들고 아래로는 백성을 보듬어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한 철학을 구현하려고 했던 나라였다. 당연히 왕은 개인이기에 앞서 만백성을 바르게 다스려야 할 사람이었고 그러려면 항상 하늘의 뜻과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야 했다. 왕의 밥상 또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래서 왕의 식사는 한 개인의 사적인 활동이 아니라 공적이고 엄숙한 행사였다. 그래서 왕의 밥상은 항상 세 가지 차원에서 준비되었다.
첫째는 건강이다. 군주가 건강하지 않고 나라가 건강할 수 없는 없다. 조선은 왕의 밥상에 우주의 진리인 음양오행의 법도를 구현해서 찬 음식을 먹으면 뜨거운 음식을 겸하고, 고기 반찬을 먹으면 채소 반찬을 함께 했다. 미식의 극단을 추구하는 서양과 달리 균형과 조화에 중점을 두었다.
물론 맛도 있어야 했다. 조선의 임금들은 성리학 이념에 따라 끊임없이 정무와 학업에 종사해야 해서 쉴 시간도, 오락거리도 없었다. 그래서 건강을 해치거나 사치스럽다는 비난을 받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맛있는 밥상을 차려야 했다.
마지막으로 왕의 밥상에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정치였다. 왕은 밥상머리에서도 완전하게 개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각 지방에서 진상한 재료로 만들어진 밥상을 보면서 각 지방의 상황을 짐작하고 어려운 지방에는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 가뭄 같은 재난에 처하면 반찬 가짓수를 줄이거나 아예 밥상을 물리는 감선까지 했다. 왕 혼자서 배부르게 먹는 게 아니라 백성들과 더불어 먹기를 지향한 것이다.
조선이 519년을 유지했던 힘을 밥상 속에서 찾다.
다시 한 번 흥미로운 건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이런 밥상을 지향한 군주가 없었다는 점이다. 베르사이유에도, 로마에도, 교토에도 없었다. 이 책과 비교를 해보려고 유럽의 음식사가(史家)인 로이 스트롱이 쓴 기록을 보니 유럽의 왕들은 수많은 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높은 단에서 혼자 식사를 했다. 희귀한 요리를 즐겼고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식사를 했다. 하지만 조선의 왕들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더불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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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추구한 밥상을 추구했다. (연산군 같은 예외는 있었다) 음양오행을 통해 자연과 더불어 먹었고, 만백성을 생각하며 더불어 먹었다. 그러다 보니 조선의 왕실 음식에는 민간에서 찾아보기 힘든 희한한 찬품이 없었다. 하지만 맛이 있어야 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니 훨씬 많은 재료를 써서(이것도 희귀하고 아주 비싼 재료가 아니다) 하나의 음식에서도 여러 계통의 재료가 골고루 섞이도록 하는 숙련된 솜씨를 발휘할 수 밖에 없었다. 희귀한 재료나 정교한 요리 기법보다 대장금이 보여주는 정성의 요리가 탄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궁중요리에는 (서양 요리에 있는) 한판 승부 같은 게 없다. 먹는 사람이 즐겁게 먹고, 건강이 좋아지기를, 식 재료와 음식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마음도 생각하면서 마음까지 따스해지기를 바라는 정성이 깃들어있다.”
조선은 몇몇 시기를 제외하고는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약점도 많았다. 그런데도 유례가 드물게 519년을 지속한 것은 저자의 말처럼 바로 이런 노력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먹는 것과 권력 사이에 무엇이 있고, 또 있어야 하는지를 잘 짚어준 책이다. BM
[오늘의 북멘토] 서광원 | 생존경영연구소장
1991년 경향신문 기자로 입사하여, 1997년에는 인터넷벤처기업을 설립·운영 했다. 이후 ‘이코노미스트’ 기자로 언론계에 복귀하여, CEO와 기업 경영 관련 기사를 다루며 기업과 구성원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리더십을 연구해 왔다. 현재는 생존경영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사장으로 산다는 것』,『시작하라 그들처럼』,『사자도 굶어 죽는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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