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밍, 상처 입은 자의 대화법 - <과학하는마음 - 숲의 심연>
이주영(고려대 박사과정)
작 : 히라타 오리자
번역, 각색, 연출 : 성기웅
극단 : 제12언어 연극 스튜디오
공연기간 : 2011년 9월 30일~10월 16일
공연장소 : 정보소극장
관극일시 : 2011.10.14(금) 저녁 8시
<과학하는마음 - 숲의 심연>(이하 <숲의 심연>)의 배경은 아프리카 콩고의 유인원연구센터이다. 이곳에는 생물학자, 언어학자, 심리학자 등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있다. 이 연구자들은 유인원 보노보를 인공적으로 진화시켜, 인간과 같은 고도의 언어능력을 갖추게 하겠다는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다. 이들은 인간과 유사한 유인원이 어떤 커뮤니티를 이루고 살아가는지 연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집단에서의 커뮤니티 형성에 대해서는 소외시하거나, 혹은 거부한다.
과학하는마음 시리즈는 2006년 <과학하는마음1 - 진화하는오후>를 필두로 <과학하는마음2 - 북방한계선의원숭이>, <과학하는마음3 - 발칸동물원> 등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숲의 심연>은 이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으로, 국내에서 이번 공연이 초연이다. 벨기에(2008)와 일본(2010) 등에서 이미 공연된 <숲의 심연>은 국내 공연에서는 기존의 ‘과학하는마음’ 시리즈와 비교해 인물의 수를 줄였고(인물 수는 8명), 단순한 번안이 아닌 적극적인 각색 과정을 거쳤기에, 좀 더 한국 관객에게 관극의 이해 측면에서 친절한 작품이 되었다.
관객의 입장과 상관없이 극은 이미 무대에서 진행되고 있다. 관객은 이런 상황에 약간 당황할지 모르지만, 관객의 움직임과 시선에 상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사를 주고받는 배우들의 연기에 관객 자신들도 자연스럽게 관람 태도를 취한다.
무대는 콩고 정글지대 안의 연구소이다. 무대의 느낌은 아늑하다. 화학냄새 나는 차갑고 딱딱한 느낌의 연구소가 아니다. 나무가 주는 따뜻함과 가구와 소품에서 느낄 수 있는 이국정취가 잘 어우러진 무대이다. 배우들의 의상도 연구소 직원의 하얀 가운만이 아닌, 사파리룩 느낌의 모자나 베스트 등을 활용해 아프리카 정글지대의 느낌을 잘 살렸다.
아늑한 무대만큼이나(실제로는 덥고 뜨거운 지역이지만) 작품에 담긴 내용도 따뜻하고 아늑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인물들 간의 관계를 통해 이 작품의 내용이 따뜻하지 않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생물학자 강인주(이지하 분)와 인지과학자 최명(이윤재 분)은 부부 사이이다. 이들은 공통된 상처를 갖고 있다. 그 상처는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의 죽음이다. 자식의 죽음을 상처로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서로에게 따뜻하지 않다. 강인주와 최명은 서로 소통하려 들지 않는다. 인주는 점점 남편에 대해, 연구소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 모르는 일이 많아진다. 인주의 물음에 남편 최명은 무시에 가깝게 건성으로, 귀찮다는 듯 반응한다.
구광준(이화룡 분)과 은혜(전수지 분)도 문제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유부남인, 약간은 어수룩하게 보이는 구광준은 탈북자 은혜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었고, 이 관계로 인해 은혜는 임신을 했다. 은혜는 고심 끝에 구광준에게 임신 사실을 알린다. 이 순간 구광준은 은혜로부터 한 발짝 물러선다. 임신한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맞냐며, 외국인 연구원 라울(마두영 분)의 아이가 아니냐며 은혜를 의심한다. 구광준은 은혜와 책임이 결여된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 구광준에게 있어 누군가와의 관계는 책임이 결여된, 순간의 만족만을 의미한다.
<숲의 심연>의 내용이 따뜻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인간과 자연이 맺는 관계 때문이다. 서로 소통하지 않는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에서 소통과 관련된 연구를 한다. 이들이 콩고라는 아프리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폭력적 지배 구조는 발생한다. 인간이, 그것도 현대 문명을 표상하는 각 분야의 과학자들이 자연의 심부(소위 이들에 의해 야만으로 분류된 공간)로 들어가 인류를 위해 연구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곳의 과학자들은 인공적으로 유인원 보노보에게 언어능력을 주입한다. 이들은 영리한 보노보끼리 교배‘시키’고, 이들 사이에서 생겨난 아기 보노보의 성장을 지연‘시키’면서 보노보의 지식이나 인지능력을 향상‘시켜’ 나간다. 자연의 세계에 침입한 인간은 당당히(동시에 뻔뻔히) 자연을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변형시키고, 이 변형된 자연을 통해 이득을 취한다. 심리학자 조기쁨(이지현 분)의 사고가 이러한 폭력적 지배 구조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그녀에게는 자폐아 아들이 있다. 그녀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넉아웃 보노보를 희망한다. 넉아웃이란 “동물 뇌의 특정 부분을 인공적으로 위축시켜 연구함으로써 인간 뇌의 질병을 연구하고 그 치료법을 찾는 것”으로, “예를 들어 기억력이 없거나 어떤 운동 능력이 결여된 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프로그램 중에서) 인간을 위해 필요한 실험이지만, 이 필요가 정당성을 말하지 않는다. <숲의 심연>에 나타난 인간의 자연에 대한 폭력성은 착하고 순해 보이는 조기쁨의 입을 통해, 모성을 통해 드러난다.
<숲의 심연>이란 제목 안에 이미 이 정글지대의 폭력적 지배 구조를 유추할 수 있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조셉 콘라드의 <암흑의 심연>에서 가져왔다. 이 소설은 반식민적 정서를 대변하는(이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있지만) 작품이다. 콘라드의 작품이 갖는 서구 식민주의의 잔학상과 그에 따른 문제의식을 <숲의 심연>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로 전유하여 무대화한 것이다.
자연 파괴의 행위는 강인주의 과거 행동에서 정확히 파악된다. 아이를 잃은 후 인주는 콩고에 있는 자신의 침팬지 연구원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자식의 죽음이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인지 점점 침팬지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 그녀는 침팬지의 유아살해 현장을 목격한다. 성인 침팬지 집단은 아이 침팬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둘러싼 목적은 아이 침팬지를 살해하기 위해서이다. 엄마 침팬지가 아이 침팬지를 품에 감싸 안고 있다. 강인주는 아이 침팬지를 구하기 위해 유아살해 현장으로 뛰어 들어갔고, 그녀의 행동에 성인 침팬지들은 당황한 채 가만히 정지해 있었다. 이 틈을 타 모자 침팬지는 탈출했다. 이후 연구원들과 침팬지의 사이의 신뢰관계는 깨졌다. 침팬지 세계에서 유아살해는 도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강인주는 침팬지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침팬지들의 유아살해 행위를 인간의 윤리적 혹은 도덕적 잣대로 이해했기 때문에 그 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가학은 상업 논리와 만나면서 극에 달한다. 유인원센터에서 나온 연구 결과물을 이용해 기업은 에듀테인먼트 사업을 하려고 한다. 기업은 인간과 자연은 소통하고 융합해야 하는 관계라 말하지만, 이 소통과 융합은 자연이 인간에 의해 희생되고 훼손될 때에만 가능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연에게 가하는 잔인함과 폭력성을 지우기 위해 교육과 후원 사업이라는 그럴싸한 명목을 앞세운다. 이 작품에서는 이렇듯 소통하지 않는 인간들이 폭력적인 형태(인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로 자연과 관계하는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 보인다.
모순된 상황과 공간에서 여성인물은 모두 상처 입은 자로 그려진다. 힘의 논리에서 자연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약자의 위치에 서있다. 이 힘의 논리는 인간 세계에서도 유효하게 적용된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와 흡사하다. 작품 후반부, 강인주와 조기쁨, 그리고 은혜는 연구실에 서있다. 상처 하나씩 갖고 있는 이들은 가슴을 두드린다. 그녀들이 하는 행위는 고릴라들의 드러밍과 같다. 서로 갈등이나 충돌을 피하기 위한 고릴라들의 커뮤니케이션 수단 드러밍. 이 드러밍을 통해 그녀들은, 자연은 자신들과 마주한 상대방와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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