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숙 안무, 출연의 『날지 못하는 밤의 새 - 카카포를 보다』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상징화 해낸 수작
2008년 03월 21일(금,8시), 22일(토,6시), 서강대 메리 홀에서 공연된 김혜숙 안무의『 날지 못하는 밤의 새 - 카카포를 보다』는 달의 사원에서 부처를 보는 듯한 경이와 레드우드의 숲속을 걷는 감흥을 동시에 느끼게 하며 현대인의 소외를 본격 리서치, 승화시킨 작품이다.
무대 전면, 세 개의 보드 위에 가벼운 라이트가 뜬다. 김혜숙이 미지의 세계를 터치한다. 가벼운 몸짓, 뒷걸음질, 반복되는 동작 ,그러다 점프되면 등장인물들이 차례로 소개된다. 검게 보이던 숲이 서서히 보인다. 카카포만 알 듯한 미답의 새벽 주목나무 숲이 열린 것이다.
카카포는 레토루아의 붉은 숲 감동을 되살리기에 충분하다. 상상의 조합은 레드우드와 카카포를 하나로 엮는다. 작은 갈등이 만들어질수록 신비감은 고조되며, 심리적 현상들이 등장한다. 심연의 원시 속에 들어가 있는 인간들의 탐욕은 고독의 사원을 무수히 침범한다.
가변의 숲은 춤이 진행됨에 따라 초 현실, 상상의 음미 공간, 열린 영역에서의 우리의 삶을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철학적 주제, 정교하게 짜인 미장센, 다양한 유형의 몸 연기, 절제된 사운드, 빈틈없는 구성, 판 유희(Holzspiel), 가장 없는 조명 등이 치밀하게 계산되었다.
선(禪)으로 가득 찬 밤을 기다리는 앵무새 카카포는 안주와 나태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나약한 현대인, 특히 지고지순한 여성의 표상으로 비춰지며, 사랑의 언로를 찾아내지 못한 채 좌절한다. 카카포는 김혜숙과 이 세상을 살아온 모든 여성을 투사한다.
좌절과 탈출의 상징은 튼실한 스키마를 채워간다. 일상의 풍요가 독임을 깨닫지 못하고 포식자가 없어서 비상을 포기한 카카포는 정열의 여름을 놓치고 말았고, 그 대가는 컸다. 그래서 춤은 무수한 도전과 실패의 그림자를 곳곳에 펼쳐놓고 시지프스의 신화를 재현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인가? 피요르드 지역 원시림에 사는 보물, ‘카카포의 삶’을 명제로 한 현대인의 체험학습은 멸종을 전제로 한 우리, 안무가의 삶과 무관치 않다. 포식자들이 쳐놓은 그물망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고자 하는 느린 동작은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안무가 김혜숙은 멸종되었다고 믿었던 카카포를 ‘붉은 숲’에서 찾아내었다. 그녀는 카카포를 통해 섬으로 변해버린 따스한 사람들의 정을 되살리고 있었고, 순수로 통칭되는 이슬과 이끼들 같은 다양한 먹이를 택했다. 하얀 알을 낳듯 서정적 춤은 무대를 휘감는다.
나무 보드는 카카포의 나무가 되고 섬이 되고 벽이 되었다. 카카포의 동작들이 연출되고, 그 동작들은 바로 우리들의 사회를 반영하는 대입 항이 되었다. 김혜숙의 매혹의 일면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단절의 벽허물기는 술래잡기처럼 율동의 울림으로 드러난다.
춤 공장의 신화창조는 원시의 기를 불러오는 파스텔 톤을 넘어 뜨거움을 분출하는 용암의 붉은 몸짓이 된다. 무한도전의 죽음보다 깊은 잠을 깨는 어둠과 밝음이 스쳐가고, 여운 가벼운 핸드 벨이 원시로 빨려가고 날카로운 박과 둔탁한 타악이 여리게 춤 심도를 높인다.
배경 막에 비치는 흑백영상이 위험에 처한 카카포를 알리면, 이에 상응하는 몸짓들, 달리고, 뛰어오르며, 회전하고, 움직이고, 동경하면서 원초적 몸짓은 삶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신비와 쾌청으로 이 시대의 동화를 써 내려간 김혜숙은 숲의 칼라가 바뀌듯 다양한 인간의 모습들을 만난다. 그 신비는 ‘화엄경’의 수사를 닮아간다.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는 아픔을 낳고, 알 수 없는 대화들은 수직과 수평의 전파처럼 우리를 낯설게 만든다.
김혜숙의 춤은 작은 디테일에 충실하면서, 점층적으로 주제에 밀착시키는 활화산 같은 힘과 자신으로 넘쳤다. 춤 흐름을 부드럽게 조율하며, 달의 기운을 마시듯, 인간이라는 섬으로의 유영(遊泳)은 천연의 순수를 보여주었다. 현대성을 소지한 그녀의 춤은 동화적· 우화적이지만 열정적이고 깔끔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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