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庚寅)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6․25가 60주년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에 맞았던 그 무섭던 전쟁, 민족상잔의 큰 상처, 60갑자가 한 바퀴 돌았건만 민족분단의 틈은 아직도 메우지를 못하고 또 한 해를 맞았습니다. 백호(白虎)의 해라니, 힘세고 용맹한 호랑이의 기상을 본받아서라도, 새해에는 남북문제에 있어 뭔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새해의 해가 높이 솟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리 밝지 못합니다. 공자(孔子)의 이상은 요순세상을 이루는 일이었으며, 요순세상이란 희희호호(熙熙皥皥)한 세상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다산은 자기대로의 해석을 내렸습니다. ‘희희’는 밝다[明]는 의미이고, ‘호호’는 희다[白]는 의미라고 밝혀, 만 가지 일과 모든 사리(事理)가 훤하게 밝고 하얗게 투명하여 티끌 하나, 털끝 하나의 악(惡)인들 숨기지 못하고, 어떤 더러움도 감춰지지 못하는 세상이 요순시대였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떤 정책이나 시정(施政)에도 숨기거나 감춰둔 것이 없이 투명하게 보이고 속이 들여다보여 모두가 신뢰하고 기꺼이 따를 수 있는 세상이 바로 ‘희희호호’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세상도 그런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공자는 유교무류(有敎無類)라고 하여, 인간이 교육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는 있어도 본디는 모두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다산은 사람이란 천연동류(天然同類)라고 하여, 어떤 차이나 차등도 없이 본래부터 다 같은 인류라고 주장합니다. 공자와 다산은 평등하게 태어난 인간이니 평등한 삶을 살아가는 세상이 바로 요순세상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철저하게 사회적 평등을 요구하여 신분의 모순을 타파하자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토지소유의 혁명적 변화를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다산의 외침 이후 200년이 지났으나, 밝지 못한 우리 사회, 극도의 빈부격차로 사회적 양극화가 가속되는 우리 사회를 목도하면서 새해가 시작되는 요즘, 새삼스럽게 밝은 세상과 평등한 인간의 삶이 그리워졌습니다. 어떤 야심이나 음모가 감춰있지 않고, 밤이 대낮같이 밝고 훤한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까요. 잘난 사람, 많이 가진 사람만 대접받으며 살아가고, 못난 사람, 가지지 못한 사람은 끝까지 천대받는 세상이라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무엇인가 숨겨져 있다고, 감춰져 있다고 불평만 하는 세상이 오늘인데, 새해에는 그런 의심이 풀리는 세상이 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다산은 「원정(原政)」이라는 글에서 “정치란 바르게 하는 일이요, 고르게 하는 일이다(政也者 正也均也)”라고 주장했습니다. 누구는 법의 혜택만 받고, 누구는 법의 피해만 입는다면 평등한 세상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부자는 특별대우를 받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끝내 천대만 받고 탄압만 받는다면 어떻게 세상이 투명하고 밝아지겠습니까. 모든 국민이 믿고 따르게 하려면 세상만사가 희희호호해야만 합니다. 평등한 세상이 되려면 법이 공평하게 집행되어야만 합니다.
다산연구소 회원과 독자 여러분, 새해에는 다산의 염원이 만 분의 하나라도 실현되는 세상을 기원해봅니다. 밝아지고 평등한 세상,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주장해도 그럴 리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면 투명한 세상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탁 터놓고 나라의 주인 모두의 공감을 얻으면서 함께 가고 같이 해야만 요순의 세상이 올 것입니다.
새해 아침에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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