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오월 광주를 재현한 휴먼드라마
김지훈 감독의『화려한 휴가』
가장 황량한 날이란 한 번도 웃지 않은 날이다.(세비스티앙 샹포르)
남도 들녘의 초록을 끼고 형과 동생, 부녀의 다정한 이야기가 두런두런 들려 올 듯한 소도시 광주, 작은 꿈으로 일상을 채워가는 사람들의 살가운 가족, 소시민들의 온기가 느껴질 듯하다. 『화려한 휴가』는 정적인 동선에서 출발한다.
낭만적 도입부와 달리 그 날의 처절한 현장을 재현한 『화려한 휴가』는 경상도 작가와 감독에 의해 열흘간의 핏빛 항쟁이 125분의 길이의 직접화법으로 담담하게 그려진다. ‘이데올로기, 민주화’ 보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재해석해낸 영화는 몰입의 경지를 선사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감독은 살아남은 자와 사라진 자의 죄의식과 항쟁정신을 하나의 실타래로 엮어간다. 성당의 사제가 세상을 어루만지는 모습이다. 어쨌건 김지훈의 오월 광주 읽기는 당시 현장에 우리가 동참했던 것 같은 짧고 강한 충격을 주었다.
온실의 온기를 담은 다수의 단편의 그린하우스를 벗어나 판타지․ 미스터리 『비밀』, 코미디․액션 『목포는 항구다』로 장르 탐색을 해온 감독은 긴 호흡으로 현대사의 과오를 자기주관과 설득력으로 대속하며, 기존의 ‘광주의 한’에 대한 시선을 달리한다.
감독은 강한 카리스마로 일군의 스타들을 작품에 집중하게하면서 최고의 연기를 뽑아낸 능력은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아직도 ‘그 날의 일’을 잊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칠레나 아르헨티나의 독재의 그늘이 우리의 광주에도 존재했음을 본격적으로 알리고 있다.
화려한 제목과 달리 섬뜩한 계엄군의 작전명 『화려한 휴가』는 원형에 가까운 세트와 화려한 연기자들의 연기에 힘입어 광주 학살현장의 ‘느낌을 공유’ 하게끔 만든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일반성을 획득하기위해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한다.
감독의 역량은 상상을 실재처럼 만들고, 실재를 상상처럼 만들면서 영화의 묘미를 얼마만큼 보여주느냐 하는데 있다. 그런데 감독을 키우는 것은 제작자이다. 기획시대의 유인택은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묻혀진,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사건과 인물들을 들추어 낸다.
영화의 장점 중의 하나는 이 시절, 모두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동참할 수 없었던 조국의 민주항쟁에 대한 자그마한 이정표를 세우고 눈물의 제(祭)를 올린 점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던 소시민들이 역사의 중심에 휩쓸리는 과정이 영화의 주제이다.
글쓴이도 이 참혹한 일이 끝나고 곧장 망월동에 참배한 적이 있다. 침묵으로 지내야했던 시절에 대한 작은 반성에서였다. 망자들은 말없이 있지만, 망자가 된 사연을 잊지 못하는 숱한 사람들은 피를 부른 참극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흥분과 과욕, 혹은 상혼에서 빚어질 지도 모르는 오월 광주에 대한 예(禮)는 지극히 냉정하지만 그것을 초월, 조정할 수 있게끔 하는 제작자의 내공과 연출의 인내가 밑거름이다. 전태일을 부활시키고 광주 시민군을 애국 시민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인택과 김지훈의 각고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날의 희생에 비해 강도가 약하다는 비난이 있을 법도 하지만 『화려한 휴가』의 탄생만 가지고도 이들을 옹호하고 싶다.
영화의 절정은 애국가를 신호로 시위대를 향해 정조준 사격을 가하면서부터 이다. 자위를 위한 대부분 하층 시민들로 구성된 자발적 시민군의 시가전, 상상은 참혹한 실재가 된다.
같은 언어, 같은 애국가,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행위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반민족 범죄이다. 그 민주의 씨앗으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인다.
퇴역 예비역 대령 박흥수(안성기), 그의 딸 박신애(이요원), 신애를 사랑하는 택시기사 강민우(김상경)는 보통 시민들이다. 민우의 동생 진우(이준기)가 계엄군에 의해 희생되고, 신애가 민우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멜로드라마의 틀이 장착된다.
상업영화의 속성상 상업적 코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한계는 이 영화가 애초에 가졌던 지향점 이었다. 이만하면 잘 만든 영화이다. 세계의 우수영화를 두루 섭렵한 관객들의
레벨에도 성공작이라는 말을 듣는다. 오래 만에 실컷 울어본 영화라는 말을 듣는다.
20대의 택시기사 김복만과 가톨릭농민회 회원 홍순권, 가두방송을 했던 전옥주, 민주의 이름으로 희생된 무고한 시민들이 복합적 영화의 동인을 제공한 이 영화는 지식인과 권력자가 배제되고 3.1운동처럼 민초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전투란 민초들의 전투가 있고, 왕․ 귀족․ 장군이 중심이 되는 전투가 있다, 프랑스나 러시아처럼 승리하면 혁명에 성공하는 것이다. 민초들은 대부분 실패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화려한 휴가』에서도 마지막 전투로 모든 시민군이 희생된다.
영화는 몇 갈래의 관객흡인 장치를 갖고 있다. 1980년 민우와 신애의 광주식 러브 스토리, 민주화항쟁의 구체적 도화선이 된 금남로 발포장면, 도청 안의 긴박한 상황, 인봉(박철민)과 용대(박원상)이 담당하는 코미디 등이다.
이 영화는 허구를 표방하면서도 디테일이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방대한 자료들은 축약되고, 압축되어 기호와 기표의 늪을 헤치고 영화의 작은 부분들을 차지하고 있다. 다양한 인들의 사연들은 이 영화의 속살을 찌우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자주 들어왔던 ‘님을 위한 행진곡’이 영화 속에서 의미가 다르듯 영화 속의 인물들도 실존 인물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인물들의, 소시민들의 시각으로 보여 지는 이 영화는 유사 상황이 전개된다면 어느 나라건 비슷할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대나무는 5년 만에 싹을 틔운다고 한다. 그 싹을 틔우기 위해 노력해온 스탭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실보다 더 영화적인『화려한 휴가』가 역사를 읽어내는 좋은 텍스트로서 많은 담론을 창출해낼 것이다.
『화려한 휴가』에서 영화에 대한 세부 분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슴 뭉클한 감동이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 자는 산자의 몫을 다해야 한다.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할 영화가 드믄 세상에 이런 영화가 만들어 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엄숙주의자들의 도식적 소도의 제의를 우회, 대중적 순교의 전형을 보여준 이 영화는 희비가 개인과 집단의 야욕에 의해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내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평범한 시민들이 총을 잡아야 했던 ‘잠들지 않는 남도’ 이야기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김지훈 감독의 바른 역사관과 탄탄한 연기, 수려한 미장센과 깔끔한 화면처리, 편집, 음악 의상 등이 있는 칠월의 영화, 슬프지만 희망을 주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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