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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흐름의 승리, 독립영화의 힘
이 충렬 감독의 『워낭소리, Old Partner, 2008』
○ ‘우리의 오늘’로 이르는 느릿한 경전(經典)
워낭소리를 들으면 틱낫한의 나지막한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사계를 통해 두르러 지게 녹색 여름빛 위로 가을과 봄이 스쳐가고, 겨울 빛 우울이래야 순환이다. 법화경 위로 숨결처럼 가볍게 와 닿는 스침, 산사의 작은 풍경소리처럼 워낭은 울림이 있다.
2008년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10일 폐막식에서 독립영화 이 충렬 감독의 데뷔작 『워낭소리』에 'PIFF메세나상'(다큐멘터리부문 최우수상)을 수여했다. 고 영재 PD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작품은 이 정향 감독의 『집으로』의 감동을 능가하는 수작이다.
많은 구호들보다 더 큰 힘으로 세상을 지고 가는 ‘노인과 소’는 헤밍웨이의 주인공들이 끈질김과 기다림, 평화에 대한 믿음에 버금가는 투사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싸우지 않아도 투사이며, 평화를 말하지 않아도 거부할 수 없는 평화로의 이끌림을 구사한다.
이 충렬 독립영화 감독은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많은 만화영화 작업과 방송다큐멘터리 작업을 병행해 왔다. 그의 『워낭소리』는 점점 도시화 되어가는 이 시점에 농촌과 농부가 던져주는 작은 울림(=워낭소리로 상징)으로 우리의 작은 귀를 크게 열어준다.
연기(緣起)의 심연에서 가벼운 산책을 나온 듯한 노인들의 출현은 갇힌 소들의 운명을 질책하는 듯하다. 이미 우리의 소들은 농경의 동지들이 아니라 ‘화’로 가는 육식의 오브제가 되었다. 노인을 둘러 싼 모든 것들은 단순하지만 심오하고, 탈문명의 동지인 소로 행복하다.
스튜디오 느림보가 제작하고 독립영화 제작/배급/홍보사 ㈜인디스토리가 배급할 이 작품은 최 원균 할아버지, 이 삼순 할머니, 늙은 소가 주인공이고 젊은 소가 조역으로 출연하며, 단역에 동네사람들, 시장에 있는 소들, 명절에 집을 찾은 자식들이 출연한다.
보르도의 포도 알 같이 실한 햇살들이 투박한 오지의 마을을 간지럽히고 있을 때, 생의 찬가는 느리게 들꽃들을 흔들어 놓는다. 볼품없는 개자 붙은 과일이라도 은혜의 산물임을 고마워하는 마음들이 빼곡히 촘촘하게 들어있는『워낭소리』에는 서리 맞은 꿀이 박혀있다.
우리의 본디 말 ‘워낭소리’의 사전적 의미는 우마(牛馬), 말과 소의 목에 다는 쇠방울 이다. 깨달음과 성찰의 메시를 담고 있는 이 방울은 스위스의 산간에서도 한국 경북 봉하에서도 결실을 기다릴 수 있는 부드러운 희망의 사운드를 창출해 내는 도구로 존재한다.
○ 현대문명과의 공존을 부르짖음
이 영화의 주장에는 과격이 없다. 아쉬움, 회한 같은 ‘내안에 우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비를 맞고 서있는 늙은 소 같은 신세, 서글픔을 대신할 더 처연한 수사는 없다. 축복의 빗줄기를 기대했지만 감독은 냉정하게 외면하고 투박한 흙에서 생명의 모세혈관을 발견했다.
‘워낭소리’는 우리에게 커다란 반성의 공간을 제공하고 겸허하게 만든다. 산골 깊은 곳 까지 시위가 벌어져야 하는 상황이 아쉽고,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부럽다. 팔순 노인과 마흔 살 소의 삼십년 동행은 가슴 뭉클한 이별 이야기는 감독의 시선 자체이다.
이 충렬의 선물꾸러미에는 ‘나에 관한 성찰’과 ‘현대문명과의 공존 모색’이라는 테제가 들어있다. ‘해냄’에 대한 강박관념과 무모함으로 빚은 ‘워낭소리’는 수행심으로 노인처럼 행복하게 프레임을 구사하고 빛과 사운드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모습이 역력하다.
감독은 ‘유년의 우리를 키우기 위해 헌신했던 이 땅의 모든 소와 아버지들에게 이 작품을 바칩니다.’ 라고 생존의 전선에 섰던 소와 아버지에 대한 헌사를 잊지 않는다. 기계가 소의 역할을 다해주는 시절에 소의 존재를 떠올림은 감독의 해탈방식이다.
얽매이지 않고, 조급증 없이 나들이 하듯, 농촌과 노인을 사랑하면서 영화에 대한 사랑을 키워 나간 이 작품은 잡상으로 찌들은 도시인들에게 해독제를 제공하고 있다. 샤걀의 아침과 피카소의 선 굵은 추상으로 비칠 노부부의 일상은 안개를 걷히게 할 힘이 있다.
HD와 HDV로 잡은 봉하 지역과 주인공들이 빚어내는 감동적 스토리는 아쉬움과 부러움이 섞여있다. 삼년 여에 걸친 촬영 작업의 결과는 75분으로 축약되었고 극장용 다큐멘터리로서도 썩 괜찮은 편이다. 문제적 중편이 토해놓은 핍진성과 진실성은 가벼운 장편의 보약이다.
○ 느림의 미학, 그 해학적 수행
노인의 수행은 늘 일상과 연관되어져 있다. 큰 욕심내지 않고 대처에 가 있는 자식들 식량 보내 줄 정도로 농사짓고, 소도 자신의 농사일을 도와 줄 한 마리만 키운다. 그 소도 가족임에 틀림없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신앙처럼 자신의 일을 규칙적으로 한다.
늘 느릿한 일상에서 자연을 감지하며, 외로움이이 밀려오거나 외부세계에 민감하지도 않는 생활의 유일한 동반자는 부인이며, 소와 같이 일하는 것이다. 낡은 고물 라디오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살피는 것이 문명의 혜택이라면 혜택이다. 부인의 잔소리는 코미디에 가깝다.
산천초목과 하나 되고, 만물동근의 이치를 깨달으며 사는 삶은 바로 수행이다. 팔순 농부 최 노인은 삼십년간 부려온 마흔 살인 늙은 소 한 마리가 있다.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이 소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다. 귀가 잘 안 들리지만 소의 워낭소리에는 민감한 최 노인이다. 소에 대한 노인의 애정이 남다른지라 투박한 영남 사투리로 된 늙은 아내의 잔소리가 심하다.
어느 봄날, 최 노인은 소가 이제 1년 밖에 살지 못할 거라는 시한부 선고를 전해 듣는다. 소를 팔 생각도 해보지만 결국 소는 값으로 해결될 수 없는 가족임이 판명되고, 젊은 소가 일소로 들어오고 갈등과 코미디가 연출된다. 짧은 장면이지만 소들의 운명을 보면서 우리의 처지를 돌아보게 된다. 절묘하게 상황을 연출해내는 감독의 테크닉이 돋보인다.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비까지 맞아야하는 신은 엄청난 폭소를 자아내게 하고 그것도 느릿하게 묘사된다. 경험과 연륜,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늙은 소는 죽어야할 운명이지만 인간과 대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라짐으로 슬픈 것이 아니고 기억하지 못해 슬픈 것’,‘ 내가 죽고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 내가 산다면…’같은 명제들이 늙은 소가 최 노인의 눈물을 뒤로 하고 숨을 거두기까지의 이야기에 걸려있다. 비스듬하게 햇살이 산등성이를 비출 때, 늙은 소의 무덤은 노인의 애정, 생명존중 사상이 침화된 부분으로 비춰져서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담담하게 눈물겹게 담겨진 산골농부와 늙은 소 이야기는 일상의 큰 울림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감동과 반성의 기회를 준다. 느림이라도 빠른 템포를 앞설 수 있고, 그 비릿한 어설픈 광경들이 우리에게 교훈을 줌은 잠시나마 우리가 순수를 생각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석용(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뷰즈, 200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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