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관찰사 이명식의 생각 |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어느 날 정조는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이명식(李命植)에게 충청도를 다스린 적이 있으니, 충청도의 문제점을 익히 알 것이라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명식의 답은 이러하다. “소소한 폐막(弊瘼)이야 일일이 거론하기 어렵습니다만, 대체로 충청도의 백성은 거개 밭을 갈지도 않고 베를 짜지도 않는, 농사꾼도 아니고 장사꾼도 아닌 부류들입니다. 농사꾼도, 장사꾼도 아니기에 생업이 없어 흉년을 만나면 굶주림과 추위에 염치를 완전히 팽개쳐 하지 못하는 짓이 없고, 서로 그런 짓을 본받아 풍습이 된 지 오랩니다. 인심이 맑지 아니한 것이 오로지 여기에서 비롯되니, 정말 딱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입을 것, 먹을 것을 주면서 살릴 수도 없습니다. 제산(制産)하는 방도(쉽게 말해 스스로 입을 것,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 방도)를 마련해 주어서 그 생업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
곤궁한 사족(士族) 대책, 법령을 제정하기만 하면? |
충청도 백성들이 농사꾼도 아니고, 장사꾼도 아니란 말은 무슨 말인가. 충청도 양반이란 말이 있듯 충청도 사람은 대부분 사족(士族)이란 말이다. 이들은 대부분 과거에 매달려 관직을 얻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그 과거라는 것이, 관직이란 것이 서울의 소수 양반의 독점물이니, 그들에게 차례가 돌아갈 리 만무하다. 그러니 흉년이 들어 굶주리게 되면 염치 따윌랑 팽개치고 하지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명식은 이들에게 제산의 방도를 마련해 주자고 한다. 이어지는 질문은 당연한 것이다. 정조는 제산하는 방도는 어떻게 마련하면 좋겠냐고 묻는다. 이명식은 또 이렇게 답한다. “사·농·공·상이 곧 사민(四民)인데, 우리나라는 단지 문벌(門閥)만 높이 치므로 농· 공· 상의 이름을 얻게 되면 자손에 이르기까지 영원토록 그 이름은 누가 됩니다. 때문에 호서 지방의 백성들은 거지반 사족(士族)으로서 가난과 곤궁으로 인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를지라도 농사꾼이나 공장이나, 장사꾼이 되지 않으려 합니다. 보통 백성의 부류까지 모두 이런 풍조를 따르니 한 도의 백성 중 3분의 2가 모두 이런 무리입니다. 이들은 하는 일 없이 그냥 놀고먹으며, 일정한 생업이랄 것이 없습니다. 지금 만약 법을 정해 빈궁한 사족들은 농사꾼이나 공장이, 장사꾼이 된다 하더라도 그 자손에게 조금도 누가 미치지 않게 해 준다면, 이 무리들은 반드시 모두 즐거이 농사꾼이 되고 장사꾼이 되고자 할 것입니다. 이른바 사족들이 모두 이와 같다면, 보통 백성들도 또한 변할 것이니, 이와 같다면 백성들은 생업을 잃는 한탄이 없어질 것이고, 제산의 방도로 아마도 마련된 것입니다.” |
구체적 실천방안 없이 그냥 해본 소리 |
사족이 농사를 짓거나 수공업자가 되거나 장사꾼의 길을 열어주고, 그로 인해 자손들을 비사족(非士族)으로 취급하는 일이 없게 하자는 것이다. 정조는 다시 묻는다. “정말 경의 말처럼 하면 크게 변화하는 효과가 있을까?” 이명식은 단언한다. “법령을 제정해 사족들을 알아듣게 타이르면 어찌 그들이 따르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승정원일기』 정조 3년(1779) 8월 25일조의 한 대목이다. 과연 이명식의 말은 실천되었던가? 아니었다. 구체적 실천 방안이라고는 없는, 그냥 해 본 소리일 뿐이었다. 양반이 농사를 지어도, 수공업자가 되어도, 장사꾼이 되어도 그 자손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법을 제정하기만 하면 일거에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발상은 그야말로 ‘순진무식’한 발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문제는 사족이 지배층이라는 사실, 과거가 사족 체제를 유지하는 결정적 수단이라는 데서 발생하고 있었다. 여기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없는 한 이명식의 발언은 듣기 좋은 꽃노래일 뿐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조정 관료’들은 이명식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문득 드는 엉뚱한 생각이다. 나만 그런가? |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춘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0) | 2012.07.18 |
---|---|
사람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다 (0) | 2012.03.17 |
염리와 탐리 (0) | 2012.02.20 |
국부의 증진은 기술의 혁신으로 (0) | 2012.01.30 |
풍자와 시대정신 (0) | 2012.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