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다 |
이 광 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
다산은 “≪상서(尙書)≫<고요모(臯陶謨)> 1편은 ≪대학≫과 ≪중용≫의 본원”으로 “만세 도학의 연원(淵源)”이 된다고 하며 자신의 삶과 정치의 이상을 그곳에서 피력하고 있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知人]’과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安民]’은 ≪대학≫의 종지이다. ‘9덕은 중화가 완성된 덕’이며 ‘천명을 항상 공경하고[祗庸]’, ‘하늘이 할 일을 정치가가 대신하는 것[天工人其代之]’ 등 천명을 중심으로 정치를 설명하는 것은 ≪중용≫사상의 근원이 된다. <고요모>편에서는 사람이 하는 정치를 천명의 이름으로 설명하지만, 그러한 천명은 결국 인민의 귀와 눈과 마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늘의 귀밝음과 눈밝음은 우리 인민의 귀밝음과 눈밝음을 통해서이며, 하늘이 상을 주고 벌을 내리는 것은 우리 인민이 상을 주고 벌을 내림을 통하여 이루어진다.[天聰明自我民聰明, 天明畏自我民明畏]” 다산은 상제가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을 편안하게 기를 뿐 아니라 인간의 도심을 통하여 항상 바른 삶을 인도하고 있다고 한다. |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
모든 것을 대상화하여 연구하는 과학이 극도로 발달하고, 과학에 의하여 인간의 인식의 범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고 넓어진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의 힘은 너무나 위대하여 과학은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당연하게 보인다. 그러나 동아시아 고전에 기초하여 오래도록 성현의 말씀을 음미하고 경청한 나는 과학적 지식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과학적 진리만이 진리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과거의 성인과 현인들이 설파하는 진리는 과학자의 진리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성현의 말씀에서는 대상화된 세계보다 항상 인간과 하늘이 더 중요하다. 인간과 하늘을 말할 경우에도 생물학의 대상인 육체로서의 인간보다도 삶과 생각의 주체인 마음을 중시하며, 하늘을 말할 경우에도 천문학의 대상인 구체적인 천문보다도 주재로서의 하늘을 더욱 중시한다. 사람의 마음과 하늘의 주재성은 대상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과학에 의해서는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되거나 그 중요성이 폄하되기 쉽다. 과학의 절대성을 믿는 현대인에게는 하늘과 마음을 수용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보인다. 단군이 조선의 기틀을 닦아 하늘의 뜻을 받들어 ‘홍익인간’을 건국이념으로 표방한 이래 우리민족은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삶과 정치의 이념으로 삼았다. 우리의 국기인 태극기에서 태극은 하늘을 의미하고 그 안에서 음과 양은 대립하면서도 상호의존적인 현상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바깥에는 하늘과 땅, 물과 불을 그려 상대적인 현상세계의 근원을 밝히고 있다.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은 하늘(·)과 땅(―)과 사람(|) 즉 삼재(三才)에 근거하며 모음을 만들고, 오행(木, 火, 土, 金, 水)에 기초하여 자음을 만들어 사람의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한글에서 하늘(·)은 모음의 축을 이룬다. 가깝게 동학을 개창한 최제우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표어를 가지고 새시대를 열고자 하였다. 하늘을 중시하고 하늘과 인간을 연결지어 이해하는 것은 우리민족의 오랜 전통이었다. 아직도 우리는 “천하를 얻는 방법이 있으니 그곳 백성을 얻으면 천하를 얻게 된다. 그곳 백성을 얻는 방법이 있으니,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그 백성을 얻게 된다[得天下有道, 得其民, 斯得天下矣, 得其民有道, 得其心, 斯得民矣]”는 맹자의 말을 은연 중 믿고 있다. 다산 역시 성현의 말씀의 진리성을 믿기 때문에 육경과 사서를 통하여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고자 하였다. |
진실한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공감을 불러 |
그러면 민심을 얻고, 천심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민과 하늘은 진보를 좋아할까? 보수를 좋아할까? 진보와 보수는 대립하면서도 상호의존적인 상보적인 양자이다. 자신만이 선하고 상대는 역사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편협한 생각이다. 지킬 것을 굳게 지키는 것이 정당한 보수이며, 고칠 것을 바르게 고치는 것이 정당한 진보이다. 자연세계는 보수와 진보를 조화시켜 가며 안정과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유학에서 탕왕과 문왕은 혁명을 이룬 성왕이지만 공자는 과거문화를 총정리하여 지킨 보수의 성인이다. 처한 입장에 따라 보수를 중시하기도 하고 진보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정당성은 내면에 있는 진실한 마음, 하늘이 준 마음의 명령에 따름으로써 확보되었다. ≪주역≫에서는 “하늘이 도우는 자는 하늘 뜻에 따르는 자이며, 인민이 도우는 자는 자신이 믿는 사람이다[天之所助者, 順也, 人之所助者, 信也]”라고 하였다. 진실한 마음, 곧 하늘마음에 따를 때 하늘과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국회의원을 뽑고 대통령을 선택해야 되는 선거의 해가 되었다. 선거철이 되면 마음을 잊고 바쁘게 살던 정치인들도 “민심이 곧 천심이다”라는 전통적인 믿음을 되새기며 어떻게 하면 민심과 천심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진실한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을 지닌 영원한 마음, 곧 하늘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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