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조와 암행어사 다산을 생각하며

장코폴로 2012. 1. 6. 11:33

정조와 암행어사 다산을 생각하며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정조는 1794년 10월 29일 다산을 경기 암행어사에 임명한다. 『다산시문집』 10권의 「경기 암행어사로서 수령의 선치(善治) 여부를 논하는 계(啓)」란 글은 그 결과 보고서다.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암행어사는 왜 파견하는 것인가? 조정은 지방의 주(州)·부(府)·군(郡)·현(縣)에 수령을 파견하고, 그들로 하여금 백성을 직접 다스리게 하였다. 수령은 자신이 맡은 지방에서는 거의 전제적(專制的) 권한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수령의 선치 여부는 체제 안정에 직결되는 중대한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조정은 각 도에 관찰사를 두어 수령의 선치 여부를 평가해 보고하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산이 「감사론(監司論)」에서 절절히 고발한 것처럼 관찰사는 되레 지방 행정을 부패하게 하는 원흉이었다. 조선후기에 암행어사를 자주 파견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북을 두리둥 두리둥 “암행어사 출두요!”

다산이 올린 보고서의 서두에 정조가 다산에게 내린 어서(御書)가 실려 있다. 그 글에서 정조는 ‘수령의 선치 여부를 꼼꼼히 조사하고 백성의 고통의 몰래 찾아내는 것이 어사가 맡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면에 수령-관찰사-조정-왕으로 이어지는 정식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전제되어 있다. 한데, 암행어사인들 어떻게 믿을 것인가. 암행어사는 왕이 가장 신임하는 신하를 보내기 마련이지만, 그 역시 적합한 인물은 드물었다. 정조 역시 적합한 인물을 구하기 어렵지만, 그렇다 해서 암행어사를 보내지 않는다면, 자신이 구중궁궐에서 어떻게 수령과 백성들의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 알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여기서 백성의 실정을 알고자 하는 정조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그가 33세의 젊고, 똑똑한 다산을 파견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정조는 다산에게 적성(積城)·마전(麻田)·연천(漣川)·삭녕(朔寧) 등 4고을을 염문하라고 지시했다. 다산은 천민들 사이에 섞여 신분을 숨기고 여러 고을을 다니며 민정을 살핀다. 어떤 경우 출두하여 관청의 행정을 빗질 하듯 철저히 조사하고, 어떤 경우 종적을 감추고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그렇게 해서 수령의 선치 여부와 백성의 실정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얻어 꼼꼼하게 보고서를 작성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적성현감·마전군수·연천현감·삭녕군수는 모두 선치수령(善治守令)이었다. 특히 삭녕군수 박종주는 그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에도 백성들이 정말 떠날까 두려워했다고 하니, 대단한 선치수령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 연천현감 김양직과 전 삭녕군수 강명길은 백성들을 착취한 전형적인 탐관오리로서 백성들의 원망과 한탄이 그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한다. 다산의 인물됨을 생각한다면, 그는 정조의 뜻을 성실하게 수행하였고, 보고서 또한 정직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통스러워하는 ‘민심’ 정신 못차리는 ‘정치’ 어찌 할까요?

정조는 총명하고 부지런하기 짝이 없는 군주였다. 그의 모든 생각과 실천에 에누리 없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조실록』과 『홍재전서』를 읽어보건대 그가 유교의 정치적 이상을 실천하고자 분투했던 군주였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의 말과 실천에는 어떤 진정성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다산의 학문과 사상의 진정성은  여기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작년 한 해 비정규직, 청년실업, 반값등록금 등은 한국의 정계(政界)가 풀어야 하는 화두였다. 하지만 변죽만 울렸을 뿐 그 어떤 것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나라 정계의 정치 행위에 어떤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아니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정치인들이 99% 국민들의 고통에 공감이나 할까? 그런 점에서 정조와 암행어사 다산의 경우는 아름답게 보이기조차 한다.
 
새해 벽두에 다산의 글을 읽으면서 새삼 정조와 다산을 다시 생각한다. 정조와 다산의 진정성은 확실히 아름답다. 하지만 정조와 다산 같은 인물의 출현을 기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왕과 양반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하는 해다. 우리 모두 각자 먼저 정조와 다산이 되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관찰사를 두고도 다시 암행어사를 보내는 세상을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횡설수설이 길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지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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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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