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째 방문 사이를 오락가락하던 안개다발 속에서 연보라색 미모사꽃이 터졌다. 안개가 몰고오는 미모사꽃 향내가 갯가의 냄새같다. 아마 산 너머 바다쪽 바람이 꽃향을 터뜨려서 비릿한 것일까.
연일 짙은 습기에 진이 빠져서, 여름인데도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불이란 만져지지 않는 황금이다. 토닥토닥 타들어가는 불빛 속에서 꽃가루같은 향기가 묻어난다. 죽어서 마지막 몸통을 날리면서도 향기를 뿌려주는 나무는 정말로 아낌없는 천사다.
나는 장작불이 탈 때마다 연금술을 생각한다. 불꽃은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부활의 끈같다. 그래서 나는 한때 연금술사가 되는 것을 꿈꾸기도 했었다. 무에서 유로 생성됐다가 다시 무의 진공으로 환원되는,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르케(근원). 하기야 지금도 ‘깨달음은 연금술’이란 생각을 놓아본 적이 없다. 세속의 먼지에 그을린 오욕의 육체를 수련해서 순백의 진공이 되는 그 자체가 연금술이 아니고 무엇이랴.
한 순간 똑딱하는 그 사이 바로 부처의 경계로 나아가는, 그야말로 천길의 장대에서 한 걸음 몸을 날려 은산철벽을 뚫은 찬연한 자유. 그 깨달음의 진위무인이 되는 것이 연금술이다. 변신의 완전한 연소야말로 또한 연금술인 것이다. 나는 이 풍진 세상에서 잘 살려거든 저 황금 불빛으로 연소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랑도 미움도 고통도 슬픔도 찌꺼기가 남으면 징그러운 지옥의 벌판이다.
타지 않은 나무는 방의 열기도 데워주지 못한 채 연기만 진동한다. 완전한 연소야말로 회한의 덩어리, 애증의 그림자로 미련의 불빛도 남기지 않는다. 풀풀 매캐한 연기가 나는 것은 싫다. 징징 짜는 것도 싫다. 울고 싶을 때 소리쳐 울고, 아플 때 진저리나게 아파야 하고, 고통의 나락에 빠질 때 더 깊은 천길 수렁으로 나뒹굴어야 한다. 그래야 울음과 고통과 수렁의 뒤끝을 볼 수 있다.
우리 존재가 이끌고온 그림자, 그 그림자의 뒤끝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죽음의 길을 잘 열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외치는 존재의 그림자 속에 불꽃이 연소한다. 황금의 빛으로 연소하는 불꽃이 내 존재의 그림자를 태우고 있다.
/여연스님 대흥사 일지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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