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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에세이 ] 2010년 8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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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서혜정, 성우 |
목소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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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은 말을 똑바로 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늘 엄마에게 듣던 말 중 하나로 기억한다. 혀 짧은 소리를 내서도 안 되고, 말을 빨리 해서도 안 되고, 더듬거려서도 안 되고, 작은 소리로 말해서도 안 됐다. 내가 성우가 된 것은 그런 엄마의 양반타령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였는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수업시간에 일어나 책을 곧잘 읽었다. 어릴 때부터 또박또박 말을 잘한 탓에 여고 시절에는 방송 반 활동을 하며 성우의 꿈을 구체적으로, 키워나갔다. 그리고 서울예대에 입학한 후 성우의 길을 걷게 되었고, 성우로 살아온 지 어느 덧 30년 가까이 됐다. 그러니까 내 인생은 말로 시작해서 말과 함께 반세기 가까이 산 것이다.
말과 만나서 살아온 세월…. 돌아보니 참 신나고 재미있었다. 만화영화 더빙을 하며 아이들 세계에서(세일러 문), 동물의 세계에서(라이언 킹) 동심을 꿈꿀 수 있었다. 외화를 더빙하면서는 FBI요원으로(X-File), 푼수 돌씽으로(위기의 주부들) 특별한 삶을 살았다. 생로병사의 비밀 내레이션을 할 때면 건강 박사가 되고, 루브르박물관의 한국말 서비스를 녹음할 때는 큐레이터도 된다. 그리고 롤러코스터 남녀탐구생활을 녹음 할 땐 코미디언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목소리만큼이나 다채로운 인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은 늘 신선하고 에너지로 가득 찼다.
밀폐된 공간. 지금은 물론 스튜디오 안에도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만, 처음 방송을 시작한 80년대 초에는 무더운 여름이면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스튜디오 안에서 몇 시간이건 녹음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래도 신났었다. 내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나오는 것을 들을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나의 목소리를 통해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누군가는 내 목소리를 듣고 행복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나도 모를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물론 그 행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건강만 허락된다면 아마도 오랫동안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인간의 신체 중 가장 늙지 않는 곳이 목소리라고 했던가. 성우 1기 선배이자 대학교 은사님이기도 한 고은정 선생님께서는 75세가 되신 지금도 방송 활동을 하고 계시니 말이다. 그런 목소리에 신께서 특별한 은총을 내려 주셨으니 이 또한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 이처럼 목소리와의 만남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성우로 살게끔 만들었다. 그래서 서혜정은 성우이고, 뼛속까지 성우이다.
지금도 나는 신께 감사드린다. 남들처럼 해외여행을 가지도 못하고, 나라 안에서라도 몇 박 며칠 여행을 할 수 있는 형편도 못되지만, 베르사이유 궁전 한국말 서비스 녹음을 하며 파리에 다녀올 수 있는 기회도 생겼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소개하는 방송을 하며 뉴욕에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라디오 드라마 <신이내린 목소리 조 수미>를 녹음 할 땐 이탈리아에서도 살아보았다. 또 영화 <제5원소>를 더빙하면서 미래 세계에도 다녀왔다. 명성황후를 녹음 할 때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신께서 주신 그 축복을 세상과 나누고 싶다. 5년 전부터 시각장애인 단체와 인연이 되어 목소리를 기부하며, 다시 한 번 나의 삶에 감사드리고 있다. 내 목소리가 무엇보다 그분들의 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눈물 나도록 행복하다. 내가 가진 무형의 재산을 세상과 나눌 수 있는 기쁨을 허락해 주신 그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말과 만나 반세기 가까이 살아 온 나의 삶이 앞으로 더욱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조심스레 염원한다. 나의 목소리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리며.
*1962년 출생. KBS 공채 17기(1982)로 데뷔. 서울예대 졸업. 출연작으로는 <위기의 주부들: 수전 역><재밌는 TV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 내레이션>등 다수. 저서로는 <속상해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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