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기와 영화읽기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

장코폴로 2010. 2. 22. 09:36

         살인사건으로 밝혀지는 한국전쟁의 외각 희생자들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

 

 80년대 최고흥행감독 배창호, 그가 『정』, 『러브 스토리』의 지고지순을 넘어 블록버스터 감독이 되기를 자청했다. 한국에서는 토종영화 묘목을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는 반증이다.

『흑수선』은 80년대 베스트 셀러인 김성종의 『최후의 증인』이 원작이다. 전쟁으로 희생된 두 남녀의 戀事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엮은 이 작품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게 해준다.

'영화를 어떻게 읽을까?'는 전적으로 관객의 자유이다. 오락 지향의 작품을 두고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완벽한 미장센이나 영상철학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작품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면 관객은 행복한 것이다.

 살인사건으로 밝혀지는 50년 전 비극은 지금에도 와 닿는다. 오형사(이정재)는 암호명 흑수선으로 암약했던 남로당원 손지혜(이미연)와 지혜의 머슴 황석(안성기) 사이의 러브 스토리, 시대상황, 배신과 음모 등이 담긴 일기장을 통해 사건을 전모를 파악하고 마무리 짓는다.   『흑수선』은 중견감독의 작품이다. 원로 임권택을 제외하고 중견감독의 작품을 구경한다는 것은 한국에선 힘든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배감독의 이번 봉기(연출)는 과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전개도 우리가 그리워하던 스타일과 타입을 담고 있어서 친근감이 든다.

 『흑수선』의 탄생을 반기는 가장 큰 이유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전쟁이란 소재를 여러 장르에 접목시켜 전쟁의 비극을 교훈으로 삼고 있고 꾸준히 제작해오고 있는 것처럼, 잊으려고 애쓰는 민족사의 일부분을 들추어 내준 점이다.

  또 다른 이유들이 많지만 배 감독이 신나면 또 다른 중견들이 자극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워낙 많은 이야기와 볼거리를 담다보니 주제 밀착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급한 액션과 저속한 대사와 몸짓들이 담긴 영화들이 판치는 현실과 비교해 『흑수선』은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얻는다. 결론적으로『흑수선』은 복합장르로 오락성을 부각시킨 시네아스트의 도발적 역사재현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