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아 안무의 『아이 컨페스』
두려움에서 움트는 극복의 몸짓
3월 17일(월),18일(화) 춤 전용극장 M은 수선화와 아쿠아 마린의 향과 몸짓으로 겨울을 털어내는 제(祭)를 올렸다. 화사한 3월은 본격 안무가를 꿈꾸는 김신아를 제주로 간택했다.
감사와 참회, 희구로 짜여진 고백의 몸짓은 ‘얼음으로 향하는 영혼’이거나 차가운 물로 자신을 정제해 나가는 도정(道程)이며 작가 엘드리지 클리버에 대한 오마쥬이자 헌무였다.
흑, 적, 백으로 배분된 기본 의상 컨셉 위에 사선과 직선, 원형의 조명은 영혼의 울림으로 시대의 죄악을 부채 살처럼 펼쳐 보인다. 바닥의 셜레이드 효과도 심리적 역할을 해내었다.
창작무용의 숨결을 알리는 피리소리 위로 감성 짙은 작가의 『얼음 위의 영혼』이 덧칠된다. 김신아는 이 추상의 그림자를 이미지 중첩과 지속적 파열음으로 집요하게 추적한다.
혼돈과 광기로 범벅된 다양한 각도에서의 사랑의 모습들은 부조리한 시대의 희생물이 된 영혼들을 위로하는 위령제이다. 그 속에 김신아는 짙은 슬픔으로 자신을 거울화한다.
김신아의 설복있는 참회 일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고 두려움을 망각했던’ 자들의 만행은 고발되고, 망연자실과 거친 호흡, 광기어린 울분이 핏빛 선연하게 무대에 가득 퍼진다.
디지털 시대에 조망되는 아날로그 시절의 젊은이들, 특히 흑인들은 묘사 범위내의 최대 희생자였다. 낭만을 꿈꾸던 자는 가학의 대상자가 되고, 반사회적 인간이 되어갔다.
피의 제전위에 ‘물’은 희생을 안식하게 하는 영혼의 묘약이 되었다. 암흑시대의 잔인성을 표출하는 거친 춤, 박, 타악의 사용은 샤머니즘과 신비주의를 동시에 보여준다.
반복되는 ‘사랑해’의 공허함이 살인을 예고해도 안무가는 먼 곳에서 울리는 호른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보낸다. 부드러운 피아노 음이 떨어지고 그림자극처럼 살인이 자행된다.
장미 송이가 쏟아지고 사랑은 싹튼다. 다양한 형상의 인간들은 부대낌 속에 스스로의 자리를 잡아간다. 화합을 위한 백색제의, 중첩된 슬픔들은 영혼의 사막 속으로 사라진다.
3장의 복합 신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여자의 고백, 남자의 고백, 화합의 장을 보여준다.
1장: ‘여자의 고백’에서 거울 속의 여자(이현경),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전정환), 거울 밖의 여자(김신아)는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의 이미지를 형상화 해낸다. 악의 꽃이 만발한 시절, 다른 생각과 양식, 인종과 문화에 대한 융통성, 변화와 적응이 강조되는 장이다.
2장: ‘남자의 고백’에서 지독한 사랑에 빠진 남자(오대원), 거울 밖의 여자(서연수)는 클리버의 ‘얼음 위의 영혼’의 핵심 아이콘들을 기대감과 설래움으로 증오와 사랑에 대한 중독증을 천연덕스럽게 나타낸다. 광희(狂喜)는 증폭되고 의로움이 강조된다.
3장: ‘검은 품’은 수묵의 깊이를 헤아리게 한다. 자신을 태워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자연의 섭리가 담겨져 있다. 서연수, 도은진, 이룩, 오대원, 최성욱이 김신아와 펼치는 인간 존재의 부정과 현실 직시, 화합의 장은 훌륭한 재목으로 거듭 태어나려는 희망의 몸짓이다.
김신아는 쿰의 ‘묵간’에서 물려받은 전통과 개인적 재능을 자기 모범으로 삼아 도약을 거듭하는 춤 예술 창작자 중의 한 명이다. 자유로운 사고에 근거한 개인적 철학과 다양한 리듬을 탄 춤들이 보다 정제된다면 그녀의 훌륭한 작품들은 날개를 달 것이다.
봄날 고향집 같은 M극장에서 고백과 참회라는 테제로 정신적 혼재와 애절함 갈구 뒤에 피는 웃음의 미학을 보여준 김신아의 본격 행보는 ‘무지개 살제비 꽃’ 이후 그녀가 추구해온 어두운 영혼을 위한 굿판을 접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겠다는 의욕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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