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저서를 읽다보면, 문뜩 ‘이런 멋진 대목이 있구나’라는 감탄의 생각을 지닐 때가 많습니다. “모든 책에는 읽는 법이 따로 있다. 무릇 세상에 무익한 책이야 구름 지나고 물 흐르듯 읽어도 되지만 백성과 국가에 보탬이 되는 책이라면 반드시 문단마다 이해하고 구절마다 탐구하며 읽어야 한다(讀書總皆有法 凡無益於世之書 讀之可如行雲流水 若其書有裨於民國者 讀之須段段理會節節尋究 : 題盤谷丁公亂中日記)”라는 의미 깊은 독서론 입니다. 백성과 나라에 보탬이 되는 책이라면 정말로 꼼꼼하게 정독(精讀)하여 저자의 깊은 뜻을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고관대작들의 저서야 나라님의 곁에 있어 언제나 소통이 가능한 상태에서 저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지 않지만, 초야의 선비나 낮은 신분의 벼슬아치들의 삶이야 위에서 명령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에 하늘과 땅을 요리하고 해와 달을 돌게 할 능력이 있다해도 세상에서 활용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입을 다물고 묵묵히 가슴 속에 담아만 두다보면 울분이 쌓이는데, 마음에 숨겨둔 울분을 유분(幽憤)이라하고, 유분을 풀어서 글로 써서 후세에 전할 수밖에 없으니, 그것을 고심(苦心)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산의 결론이 나옵니다. “소인배들이 어떤 세력에 의탁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하면 나라를 통치할 수 없고, 지사(志士)들의 유분과 고심을 알지 못하고서는 나라를 통치할 수 없다(不知小人之依 則不可以爲國 不知志士之幽憤苦心 則不可以爲國 : 上同)”라고 설파하였습니다. 독서란 바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보탬이 되는 책은 꼼꼼히 탐색하며 읽어서, 세력에 의탁하여 나라를 망치는 소인배들의 동태를 알아내야 하고, 뜻있는 선비들의 저서 속에 어떤 유분과 고심이 담겨 있는가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다는 뜻이니, 독서의 중요함도 강조했지만,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는 더욱 큰일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경상도 선산부사(善山府使)로서 왜적과 싸운 일기인 『반곡난중일기(盤谷亂中日記)』에 대한 해제의 글에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반곡 정경달(丁景達)은 전라도 장흥 출신인데 선산고을의 원님으로 전쟁을 수행하면서 느끼고 경험했던 것을 일기로 남겼습니다. 정경달의 후손이자 장흥출신인 정수칠(丁修七)이라는 분이 이웃 고을 강진에 귀양 살던 다산의 제자였는데, 정수칠을 통해 『반곡난중일기』를 얻어 읽은 다산은 그 책의 해제를 통해 독서론을 폈습니다. 나라의 올바른 통치를 위해서는 소인배들이 어떤 세력에 빌붙고 있는가와 선비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떤 유분과 고심을 지녔었나를 파악해야만 한다는 대목은 다산의 탁견임에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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