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도시 | ||
송 재 소(성균관대 명예교수) 그러나 노인이 많아서 좋은 점도 있고 불편한 점도 있다. 전통사회에서 특히 동양사회에서 노인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국민을 “노백성(老百姓)”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백성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또 존경한다는 의미에서 선생을 “노사(老師)”라 부른다. 젊은 선생도 “노사”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퇴계(退溪)를 더 높여 부를 땐 “퇴로(退老)”라 하고 목은(牧隱)을 “목노(牧老)”라 한다. 이렇게 늙을 ‘老’자는 나이가 많다는 뜻 이외에도 인품과 덕망이 높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노인을 존중하는 이런 아름다운 전통은 아직도 남아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 경로석이 마련되어 있고, 지하철은 무료로 승차할 수 있으며 공원 입장료, 의료비 등에서 노인은 우대를 받는다. 옛날에 노인이 존경의 대상이 된 것은 아마 노인 인구가 적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환갑 때까지만 살아도 오래 살았다고 해서 축하연을 베풀었으니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여기에다 풍부한 인생경험을 바탕으로 한 생활의 지혜까지 갖추었을 가능성이 많으니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에도 노인이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다름 아닌 ‘노욕(老欲)’때문이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늙으면서 생기는 끝없는 탐욕, 이것은 분명 노인의 치명적인 결함이다. 지금은 노인이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 다소 귀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노인 인구가 너무 많고 또 너무 오래 살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추세라면 올해 태어나는 아이는 서른 살이 되면 노인 1명을, 마흔 살이 되면 노인 1.2명을 부양해야 할 것이라 한다. 지금도 노인 의료비가 전체 의료비의 31%를 차지한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또 결혼하더라도 자식 낳는 것을 꺼려하는데 점점 더 많은 노인들이 생명을 연장해가고 있으니 노인이 사회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황혼의 반란」이라는 소설에 보면, 노인이 사회적 골칫거리가 되어 CDPD(휴식, 평화, 안락의 센터)라는 기관에 강제로 끌려가 주사를 맞고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공상소설이지만 참으로 끔찍한 이야기이다. 에이지퀘이크(agequake) 즉 ‘노령지진’을 예고하는 사회학자도 있다고 한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여 정부에서 여러 가지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하고는 있지만 정말 ‘노령지진’이라도 일어난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진이 어디 인위적인 노력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인가? 낡은 것은 소멸하고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자연의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일어나야 건강한 사회가 될 터인데, 지금 우리사회는 우중충한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다. 생기발랄한 초록빛이 아닌 잿빛 회색도시, 이건 분명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베르나르의 소설에서처럼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에게 의료공급을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70을 바라보는 노인임을 밝혀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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