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으로 밝혀지는 한국전쟁의 외각 희생자들 | ||
(장석용의 비디오 산책)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 | ||
80년대 최고흥행감독 배창호, 그가 '정', '러브 스토리'의 지고지순을 담은 영화의 한계를 실감한 모양이다. '흑수선'으로 흥행이 되는 블록버스터 감독이 되기를 자청했다. 한국에서는 우럽정서의 토종영화 묘목을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는 반증이다. '흑수선'은 80년대 열독서인 김성종의 '최후의 증인'이 원작이다. 전쟁물은 시대에 관계없이 나이가 없다. 다만 연출가의 감각과 시각이 존재할 뿐이다. 전쟁으로 희생된 남녀의 戀事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엮은 이 작품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게 해준다. "영화를 어떻게 읽을까?"는 전적으로 관객 몫이다. 엔터테인먼트물을 두고 예술적 가치를 논하거나 완벽한 미장센이나 영상철학을 담았어야하는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 그런 경우이다. 작품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면 관객은 행복한 일이다. 살인사건으로 밝혀지는 50년 전 비극은 진행형이다. 오형사(이정재)는 암호명 흑수선으로 암약했던 남로당원 손지혜(이미연)와 지혜의 머슴 황석(안성기) 사이의 러브 스토리, 시대상황, 배신과 음모가 담긴 일기장으로 사건 전모를 파악하고 종결 짓는다. '흑수선'은 중견감독의 작품이다. 원로 임권택을 제외하고 중견감독의 작품을 구경한다는 것은 한국에선 힘든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배감독의 봉기(연출)는 과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전개도 편안한 스타일과 타입을 차용하고 있어서 친근감이 든다. '흑수선'의 탄생을 반기는 다른 이유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전쟁이란 소재를 여러 장르에 접목시켜 그 비극을 교훈으로 삼아 꾸준히 제작해오고 있는 것처럼, 우리 역사를 애써 잊으려고 애쓰는 민족사의 일부분을 들추어 내준 점이다. 또 다른 이유들이 많지만 배 감독이 흥행에 성공하면 다른 중견 감독들이나 제작자들이 자극을 받을 것이고 우리는 원로에서 신인까지의 커다란 스펙트럼을 가진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게 되었을 것이다. 워낙 많은 이야기와 볼거리를 담다보니 주제 밀착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급한 액션과 저속한 대사와 몸짓들이 담긴 영화들이 판치는 현실과 비교해 '흑수선'은 상대적으로 중후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결론적으로 '흑수선'은 복합장르로 오락성을 부각시킨 시네아스트의 도발적 역사재현물이다. |
'영화보기와 영화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호타루' (0) | 2009.02.20 |
---|---|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플 라이프' (0) | 2009.02.20 |
김태균 감독의 '화산고, 火山高' (0) | 2009.02.13 |
엘라 렘하겐 감독의 '차스키 차스키' (0) | 2009.02.10 |
난니 모레티 감독, '아들의 방' (0) | 2009.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