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좋아하는 장공

파동과 마초

장코폴로 2009. 2. 6. 10:41

                        객석에서


                       파동과 마초


 지난 대선에서 병풍에 앞장섰던 나팔수 김대업이 고발한 내용은 검찰 조사결과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쇼였다. 방송은 일방적으로 김대업의 허위사실을 여과 없이 보도하였다. 최대 피해자는 이회창씨 일가였다.

 한때 북한영화를 우리나라영화라고 주장하던 많은 인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왠일인가, 모국에서 조차 우리나라영화인 북한영화를 볼 수 없다니 끔찍한 일이 아닌가! 시류에 편승하고 아부하고 편에 따라 떡고물을 나누어 주고 하는 예술행정이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없는것은 뻔한 일이다.      

 석탄일을 맞아 많은 인사들이 석방되었다. 그 중에는 정치자금법으로 구속된 인사들도 들어 있다. 유전무죄의 암담한 현실에 무슨 무슨 죄목은 웃기는 짬뽕같은 테제이다. 안티테제의 집단들은 이미 그 짠 맛을 잃은 이무기로 형질을 변경시키고 있다.

 예술집단들 속에서도 과거의 행적이 뻔한 인사들, 그들의 현재의 작업이 함향미달인 사람들, 그들의 작업들이 베끼기 수준인 사람들, 그들의 작업이 외국 책 번역 수준의 사람들이 내공도 없이 무모하게 권력과 금력에 덤벼드는 하루살이성 집착에 어안이 벙벙하다.      

  싱가폴 출신의 석학이자 외교관인 키쇼어 마부바니의 『순수의 시대를 넘어(Beyond the Age of Innocence), 2005』의 부제는 “미국과 세계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법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이즈음, 질서를 포함한 모든 것이 민주와 자유라는 미명하에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죄의 경중과 법집행마저도 권력의 눈치를 본다면 그 국가의 미래가 있는가?

 우리의 영웅은 어디에서 숨쉬고 있는가? 한국이 크기위해서는 여우적 지혜와 영웅적 프로젝트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옛날 청계천에서 놀던 때를 생각하면서 지금의 청계천 사업에 흙탕물이 뛰는 것을 본다. 그 들끓든 대선 의혹이 말끔히 해소된(?) 지금, 언론과 방송을 우리는 얼마만큼 신뢰해야할지 의심이 간다. 냄비언론에 속은 우리가 얼마나 더 ‘양치기 소년’의 말을 들어야할까?

 파동과 마초: 적당한 때에 파동을 만들고, 적당한 때에 연예인들의 대마초나 마약을 건드려라! 우지파동․만두파동,갈비파동,입시파동…. 권소(權燒)와 금소(金消): ‘청탁과 대가로 권력과 경제계를 혼내주어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다.

 절대적 믿음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존중받을 아버지들도 그  세대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맹목적 불신과 폐기처분해야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대안 없는 패거리화는 결국 동물적 응집력의 결과로 나타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결과 이제 그 공격의 대상은 바로 그들을 이용한 자들의 몫이 되었다.

 성찰은 없고 감각적 본능만 남아 있다. 분노의 화살은 광화문의 촛불로 이벤트를 성공시킨 당으로 향하고 이제 또 다시 세포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오직 내편만을 챙기는 서바이벌장 같은 예술현장은 직관적 사유와 전통도 모두 배척되어질 수밖에 없다.

 숱한 예술 단체장들 선임은 세칭 말하는 코드 맞추기 인사로 마무리 되었다. 혁명의 완결판인가? 진보적 착각에서 연유된 잡다한 발상들은 결국 광화문 현판이나 헌수나무들을 베어내는 동네 똘만이들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군대없는 독재는 총칼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ꡐ동물농장ꡑ의 사육제가 열린지 오래된다.  

  1962년 오버하우젠 단편영화제에서 독일의 신세대는 기성세대를 힐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Papa's Kino ist tot.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라고하면서 기성세대의 매너리즘과 무기력을 집중 성토했다. 이 선언이후 독일영화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젊은이들의 대안은   성공한 것이었다. 그들은 엄청난 부국강병의 안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영 파워의 대안이 이벤트성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별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영피플은 이념으로서가 아닌 부국강병의 안을 제시하고 눈에 진물이 날 정도로 학업에 정진해야하지 않을까? 조국전통 고수와 전통의 변형발전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하고 집중적 공부를 해야함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와 현재의 호치민과 베트남은 우리에게 커다란 텍스트와 콘텍스트가 될 것이다.

 공존의 미학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분법적인 사고로 편가르기는 모두에게 무익한 편견 그 자체일 것이다. 극단적으로 치닫는 분열과 갈등을 우리는 이미 해방 전후사에서 읽었고 6.25 동란때도 이미 겪었다. 우리 한국전쟁은 없었다.

 ꡐ우리에게 원로는 없고, 중견도 없다. 그들을 다 인도양에 버리자! 병자들도 다 버리자!

내편만 살자! 내가 선호하는 사람들만 살리자! 내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만 사람이다. 다른 생각은 다 고리타분하다!…ꡑ등의 가설이 성립한다면 대한민국은 세금 내는 사람이 없어서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중용을 미덕으로 아는 동양에서 그것도 리틀 코리아에서 아버지가 없는 세대의 달콤함을  실험해본다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너와 나의 균형없는 싹쓸이는 나쁜 피의 순환만을 의미한 다. 특히 미국 중심의 사고방식전수는 양아치적 몰이배들 만을 양산할 것이다.

 지난 5월 2일 평론가가 뽑은 제8회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에서 느꼈던 분위기는 아직도 더 다듬어져야할 무용의 현주소로 읽혀져 왔다. 실험이라는 명목으로 저질러지는 모던 댄스의 실체는 고의적 반동에 지나지 않았다. 의도적 사운드에 함몰된 몸의 실체는 아직도 형이상학만을 추구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대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근대성의 유령들은 남아서 과거에 그들이 누리던 독과점적 지위와 금권적 향유해 오고 있다. 그래서 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인간 측량기구 고의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예술계에서도 문명이라 부를 수 있는 의미있는 작업들이 이루어져야 할것이고, 어떠한 시대에도 절대적 선이 승리하는 토대를 구축하는 새로운 르네상스, 세종 문화 부흥시대, 찬란한 고려 문화가꾸기 등으로 승계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5월 16일 리틀엔젤스 예술회관에서 공연된 고 황무봉 선생 추모 십 주년 기념 ‘당신의 춤사랑 뒷그림자 이어갈 때’는 여러 측면에서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김매자 양선희,감미선을 주축으로한 라인업은 흩어진 황무봉 선생의 과거 작업을 입증시켜주는 필름과 사료를 찿아 공개하고 제자들에게 전수된 황무봉 춤의 전형과 변형을 확인시켜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미 저질러진 일들에 대한 방어체계 때문에 그들은 전략을 더욱 교묘하게 짜고 타인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나는 세칭 꼰데 옹호자이며 건실한 전통 수호 지지자인 동시에 문화 향수권을 그리워한다.

 세칭 진보적 개혁론자들의 입장을 몇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1) 기성세대들의 문화가 퇴폐적이고 친일적 용공적이라는데 반대한다. 2) 기성세대들이 낡아빠지고 문화창달에 이바지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3) 기성세대들이 사대적인 사고방식에 젖어있다는데 반대한다. 4) 기성세대들이 통일을 방해한다는데 반대한다. 5) 기성세대들이 지역할거를 조장하고 인식전환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반대한다. 6)기성세대들의 문화가 이해할 수 없는 체계로 짜여져 있다는데 반대한다. 7) 그들이 역사의 왜곡의 그물을 짜는 것을 반대한다.  왜 과거를 그리워 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가?

 윗사람들이 대접받는 사회가 멋있을 것 같다. 그들은 적이 아니다. 그들이 바로 서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예술을 사리는 길이 될 것이다.  어지러운 과거는 순리대로 청순되도록 두어야 한다. 인위적인 것은 회귀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시멘트 댐 같은 것이다. 공존의 미학은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창이다. 서로를 인정하자. 그리고 서로 반성하자!

 

 '먼 옛날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