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생,춤 바람 나다

백현순 안무의 '태양새 고원을 날다'

장코폴로 2009. 1. 26. 17:37

[영상] 백현순 안무 '태양새'
 
  




아는 자만이 알 수 있는 겨울 대륙풍이 베이징을 휘감던 2008년 12월 20일(토), 8시, 세기극원(21세기 극장)에서 중국국제청년교류센터가 주최하고 세기연출공사와 세기극원이 주관한 백현순(한체대 무용과 교수) 안무의 '태양새'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지만 대구광역시가 우리 문화예술 작품의 해외 진출에 의욕적으로 후원한 작품이다.

자작나무와 미루나무 가지 너머 수도공항의 오륜 줄기를 타고 넘어 온 베이징 시민들은 신비로운 동방의 춤을 경탄으로 지켜보았다. 시민들과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은 근래에 보기 드문 최신 한국 춤이라는 후한 점수를 받았다. 시민들은 물론 베이징 바츄이 외국어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도 부터도 만족스러운 공연이라는 반응을 얻었다.

‘태양새, 타이양 니아우’의 한을 풀어준 한민족 자긍과 배례 작품이다. 잿빛 베이징 하늘을 붉은 빛으로 채색하고 대지를 직통하는 바람을 잠재운 한국 춤의 열기는 이전에 접하지 못하던 한류 2탄의 시발이 되었다. 한류를 처음으로 보도한 '年靑報, 니엔칭 빠오'를 곁에 두고 벌이던 공연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색하는 춤, 역사가 있는 춤, 프로 춤의 경계를 수용하는 백현순의 춤은 베이징에서 진화했다. 피터 드러커의 말이 생각났다. “뛰어난 사람일수록 잘못이 많다. 그 만큼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저질러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어떻게 잘못을 발견하며, 어떻게 조기에 고칠 수 있는가를 알지 못한다.” 백현순이 저지른 베이징 춤은 작품의 완성도와 예술성으로 무용사에서 큰 획을 그었다.

'태양새'는 우리민족 수호의 새이다. 세 개의 발과 부리가 있는 새(착지할 때만 발이 세 개가 된다)는 5천년 넘게 우리 민족과 영토를 넘보는 종족들을 혼내주던 새였다. 서울문화재단은 작품의 가치를 알고 '태양새 고원을 다시 날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고, 노원문화예술회관 초청에 이어 백현순의 ‘베이징 버전’은 태양새의 부활을 알리는 춤이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3장으로 이루어진 '태양새'는 민족의 자존과 자긍심을 드높인 작품이다. 민족 새, 태양새가 부활하여 우리 둥지로 찾아드는 과정을 통해 상고사를 재현하고 베이징 평원에서 제(祭)를 올린 일은 역사적이다.

도입부의 ‘하늘민족’은 환상적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민족 태반 형성은 느린 서정으로 몰입을 유도한다. 서사적 내러티브에 꽃비처럼 내리는 낭만의 핵심, 이윽고 부리가 길지만 벼슬이 있고, 착지할 때 만 세발이 된다는 태양새를 송 설은 능숙하게 연기해낸다.

고조선 탄생 전부터 북방에 태양 속에 산다는 전설의 태양새가 있었다. 태양새(三足烏)는 고분벽화(장천1호분, 각저총 등)에서 발견되며 한국인의 우주관, 생명관을 반영한다. 육정학의 영상과 권동우의 조명은 ‘태양새’의 비상과 아픔과 미래를 쉼 없이 보묘(補描)해 낸다. 그레타 리의 의상과 김영화의 의상, 성남시립 국악단의 라이브 연주는 판타지 자체였다.

태양 속에 살고 있으니 검게 보일 수 도 있고 엄청난 위력과 카리스마의 상징이었던 이 새의 존재를 무지 속에 방기한 것은 조상에 대한 무례이다. 태양새의 왜곡되었던 문양은 의상에서 수정되고, 품격을 위해 의도적으로 대부분의 의상은 화려한 원색을 우회한다.

고경희의 2인무, 검무, 장고 춤, 소고 춤, 부채춤 등이 작품에 이입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를 늘 도와주었던 민족의 대표적 상징물 태양새는 전쟁, 국론분열과 사리사욕에 빠진 탐관오리를 보면 사라진다. 전쟁과 아픔이 스쳐가고 백성들의 울음이 하늘에 닿는다.

‘사랑’을 잘 표현해낸 박진미, 송경호 듀엣은 고난도 연기를 무난히 처리하였다. 박은정,김은경, 장수정, 김아람 등의 대구무용단과 권세시, 박소현 등의 한체대 무용단, 조홍진, 박동원, 박병철 등의 남성무용단, 박진미를 비롯한 창원무용단은 주제에 밀착된 표정연기와 다양한 춤 매무새와 안무의 의도를 잘 소화해 내었다.

태양새는 고구려 멸망으로 사라진다. 안정을 희구하는 ‘삼(三)을 위한 춤’과 상처의 치유를 하는 ‘물을 위한 춤’이 백현순에 의해 처연하게 추어지면서 태양새는 서서히 미동을 하고 희망을 보여준다. 미래의 태양새가 나타나면서 백성들은 흥겨운 춤판을 연다.

불과 분란을 다스리는 태양새는 화기를 잠재우고 평화를 가져온다. 작은 태양새 들의 축복을 받은 대지에는 평화가 깃들고 우리민족은 화합을 약속한다. 어둠을 걷히고 온 누리에는 영광의 빛이 비친다.

하늘의 지배자, 태양새는 신앙처럼 민족의 상심을 치유하며 지속적 희망을 얘기한다. 하늘민족이 동방의 아침을 경건으로 열고, 평강의 춤이 추어진다. 불기운을 잠재운 태양새의 비상은 고원에 평화를 가져온다.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태양새’가 우리고원(=한반도)을 다시 날 때 우리 민족은 대 축복을 받는다. 세사(細沙,미세모래)가 비처럼 내리는 가운데 시민들이 평화를 간지럽히며 완급을 구사, 서서히 암전되면서 이 낭만적 서사는 끝이 난다. 이어 울려 퍼지는 사물을 주조로 한 관현악은 더욱 흥을 북돋운다. 베이징에서의 공연, 성공적이었다.(2008.12. 29 문화저널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