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읽는 장샘

창조적 영감이 필요하다면, 깨어있으라

장코폴로 2010. 11. 12. 11:46

창조적 영감이 필요하다면, 깨어있으라
글 : 김지영 (교보문고 독서경영연구소 연구원)
디자이너, 새로운 사명을 찾다
INSPIRABILITY
맷 패시코우 | 시드페이퍼
뮤즈(Muse)는 사람, 사물, 특정 행동, 상황에 구분 없이 기발한 착상과 끊
임없는 자극으로 활기를 주고 영혼을 일깨워 창작을 고무시키는 그 무엇이
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에게 뮤즈는 ‘명성’ 이라는 실체 없는 욕망이었는데,
이는 예술가도 연예인만큼 유명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전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해체시키는 도전
과 모험을 가능케 했다. 창작 욕망을 자극하고 예술 영역을 넓혀나갈 수 있
도록 돕는 뮤즈, 이것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창조하는 모든 이들이 필요로 하
는 존재이자 힘이다.
9.11 사건 이후 침체되어 있던 도시 뉴욕, 그곳에 뮤즈를 잃고 창조력이 방전된 한 디자이너가 있었다. 크
리에이티브 디자이너로 활약하던 맷 패시코우(Matt Pashkow)다. 어수선한 도시에 내걸린 성조기의 물결 속
에서 새로운 희망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며 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고민을 하던 그는 우연히 한 장
의 광고 포스터를 발견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시작하고 만들어내도록 충동하는 힘, 새로운 뮤즈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 광고 포스터는 밀튼 글레이저(Milton Glaser)가 뉴욕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디자인 ‘I♥NY’였다.
하트의 아랫부분에 까맣게 탄 흔적을 남겨 9.11의 아픔을 담아내면서도 희망을 품은 그 디자인을 보고, 사람
들은 티셔츠, 머그잔 등 온갖 선물용품에 ‘I♥NY’을 새겨 전했고, ‘I♥NY’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단순한 이미지 하나가 도시의 재건과 국가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이들의 의지에 불을 지폈고, 진심 어
린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일러주었던 것이다. 쉽고 간단하지만 완벽했던 밀튼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스스로를 비롯한 디자이너에게 또 하나의 사명을 짐 지운다. 디자이너의 진정한 역할은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자인이란 그 자체로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자극이며 사람들에게 감
동을 전하는 창조적인 예술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터들은 말했다
만족스러운 최종 결과물을 위해 자신을 혹사시켜가면서 밤낮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보통
의 일상이다. 일을 하는 과정이 오롯이 ‘크리에이티브 공장’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위대한 역작을 만들
어내는 이들에게는 영감이라는 연료를 수급하는 자신만의 뮤즈 혹은 영감을 얻는 남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
까. 그 답을 찾아 맷 패시코우는 에릭 스피커만,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등 40인의 세계적인 크리에이터들과
마주하는 유쾌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INSPIRABILITY』는 그 기록을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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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난 크리에이터들이 내놓은 답들은 대단히 놀라운 것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휴식을 취하는….’ 일반적인 재충전 방법을 제 멋대로 즐기고 표현해 나가는 대답 자체가 듣는 이들로 하여금 자극을 불러 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굵직한 목소리 몇 개의 인터뷰에 귀를 기울여보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페트롤라 뷔론티키스(Petrula Vrontikis)는 새롭게 알아가는 것들이 영감의 원천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주의 깊게 보는 정보나 데이터는 단지 떠다니는 점에 불과하지만, 계속 새로운 것을 흡수하는 동안 어느 순간 데이터들이 그것을 뛰어넘는 가치가 되고, 이야기가 되고, 감성이 되어 본능의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그녀에게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도 영감을 얻는 방법 중 하나다. 평소 쓰지 않던 머리와 온 몸의 감각까지 총 동원하여 전혀 모르는 곳에서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은 창조적이고 흥미로운 과정이기도 하지만, 익숙한 습관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생기는 두려움과 불안감까지도 다시 활용하고 표현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 디자인을 그려내는 정적인 활동 대신 정반대의 활동적인 일을 하며 영감의 돌파구를 찾는 이들도 있었는데, 특히 이스라엘 출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펠렉 탑(Peleg Top)은 ‘요리’를 한다고 한다. 많은 실험 단계와 즉흥성을 가지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활동인 요리는 날 것의 재료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디자이너의 일과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기에 영감을 불러오는 데 도움된다는 것이다. 브랜딩 전문가로 활동하는 마이클 D. 샐리스버리(Michael D. Salisbury) 역시 서핑이나 모터사이클 같은 활동으로 일상에서 잠시 떠났다가 돌아온다고 한다. 서두르는 만큼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잠깐 현실에서 한발 짝 벗어나면 모든 것을 달리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영감을 묻는 질문에 새로운 반론을 제기하는 이도 있었다. 타이포 디자이너 에릭 스피커만(Eric Spiekermann)는 영감을 구하기 위해 휴식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단지 ‘현재 급박하게 일을 해내야 하는 상황에서 회피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고 말한다. 예술을 한다는 것, 창작을 이룬다는 것은 스스로가 작품에 완전히 빠져들어 즐겁다고 생각되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영감을 따로 구하기 보다 몰입하는 동안 내재된 것들이 표출되는 즐거움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의식에 의식적으로 깨어있으라
전체적으로 정리해보면, 크리에이터들은 공통적으로 삶 속에 깃든 작고 사소한 것들에서도 창조의 발화점을 넘어설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천재성을 믿고 언제나 깨어있어 무엇을 하는 순간에도 영감이 찾아오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의식에 의식적으로 깨어있으라” 맷 패시코우가 영감을 얻었던 디자인 ‘I♥NY’의 주인공 밀튼 글레이저의 이 말이 창조적인 영감의 답을 얻고자 했던 이 프로젝트의 결과에 관한 적절한 요약이 될 듯 싶다.
『INSPIRABILITY』이 책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을 주제로 핵심 인터뷰와 함께 각 디자이너들이 친필로 작성한 질문지와 작품, 그리고 디자이너로서의 영감을 담아 찍은 사진을 싣고 있다. 중구난방 이지만 매력 넘치는 친필로 작성한 질문지와 그 자체가 작품인 직접 그린 그림이 주는 시각적인 재미도 크다. 그러나 대단히 새로운 영감의 방법을 기대했기에 40명의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작품만으론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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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을 느낀다면, 책을 덮고 사람을 만나러 나가기를 권한다. 맷 패시코우가 유명 디자이너들을 만나 인터뷰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당장 완벽한 답을 얻어낼 수는 없더라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얻는 과정에 편견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머릿속에 산재된 창조 부스러기들이 스파크를 만들어 새로운 영감을 피워낼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영감을 찾아 떠난 유쾌한 프로젝트『INSPIRABILITY』는 우리 모두의 일상인, 사람과 만나고 대화하기에 관한 창조적 가치를 일깨우는 계기를 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크리에이티브 배터리가 방전되었다면 당장 일독을 권한다. 시각적인 즐거움과 두뇌의 휴식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의식’ 중에 읽은 책 한 권이 ‘의식적’으로 영감을 일깨워 줄 것이다. BM
김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