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명상

기독교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장코폴로 2010. 3. 5. 09:42

 

기독교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전 세계 84개 나라에서 2,6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해 15개 종목에서 86개의 금메달을 놓고 실력을 겨루었습니다. 모든 선수들은 17일간의 열전으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눈과 얼음의 축제’인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이번 올림픽은 개최국인 캐나다가 금메달 14개, 은메달 7개, 동메달 5개의 성적으로 종합 1위를 차지하였고 전통적인 동계스포츠 강국인 독일, 미국, 노르웨이에 이어 한국은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종합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정정당당하게 스포츠정신을 발휘하며 최선을 다한 2,600여 명의 선수들은 메달에 상관없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특히 경기 직전 어머니가 숨지는 슬픔을 맞았지만 꿋꿋이 연기를 펼쳐 피겨 동메달을 따낸 조애니 로셰트 선수는 세계인을 감동시켰습니다. 로셰트는 피겨 쇼트프로그램 순서추점 직전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숨지는 충격적 슬픔을 경험했지만 스포츠인 으로서의 정신력을 가지고 흔들림 없는 연기를 펼친 후 눈물을 쏟는 모습을 보며 모든 사람들은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에 반해 스포츠정신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 한국 사람들에게 ‘반칙왕 오노’라는 불명예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미국 스케이팅 선수가 있습니다. 이 선수는 4년 전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 남자 1500m 결승에서 '할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의 실격을 이끌어내며 금메달을 가져갔고, 1000m에서 중국의 리자준과 몸싸움을 벌이다 안현수를 걸고넘어진 것도 오노였습니다.

 

   500m 결승에서는 부정 출발을 했는데도 심판이 문제 삼지 않는 바람에 실격당하지 않고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러더니 4년이 지난 이번 올림픽에서도 그 버릇 남 못주다 쇼트트랙 500m 결승에서 딱 걸려 실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이정수는 1500m 결승이 끝난 뒤 2위를 한 오노를 향해 “시상대에 설 자격이 없는 선수”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독일을 방문하여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내려 뮌헨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조금 후 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짐 가방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습관적으로 닫힘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 때 나와 같이 탔던 여자가 갑자기 독일 말로 나에게 화를 냈습니다. 나는 독일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 내가 이 여자에게 야단을 맞고 있구나 하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손동작을 통해서 내가 야단을 맞은 것이 엘리베이터의 문이 자동으로 닫히는데 왜 닫힘 버튼을 누르면서 에너지를 낭비하느냐라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독일 사람하면 근면, 절약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며 이 단어들은 독일인의 정신이라고 까지 말합니다. 전쟁의 폐허에서 그들이 오늘날 세계 제일의 선진국이 된 것은 그들의 근면, 절약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학창시절에 들었던 말 가운데 전쟁 패망 직후 독일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고 싶어도 참았다가 열사람 이상이 모이면 그제야 한 개의 성냥을 켜서 담배를 피웠다는 정말 믿지 못할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가 관광객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독일 여자는 마치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야단치듯 생면부지의 사람인 나를 야단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나는 그때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가 버리고 난 후 나는 막 화가 났습니다.

 

    내가 화가 났었던 것은 이 여자가 과학 상식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나에게 야단을 쳤기 때문입니다. 사실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누르는 것 자체는 절전 효과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엘리베이터가 약 7초 후면 자동으로 문이 닫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결국 문은 자동으로 닫힙니다. 단지 내가 조금 먼저 문을 닫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만약 약 7초 사이에 누군가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한다면 내가 7초를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한 번 더 운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전력이 소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엘리베이터에는 밤 시간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었고 내가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았어도 아무도 타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으로 문이 닫혔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닫힘 버튼을 누른 것은 전력을 소비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절약한 것이 됩니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그 독일 여자에게 야단을 맞을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호주로 돌아 온 후 나는 가끔 그 독일 여인을 생각하면서 기독교인인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분명히 그 독일 여자에게는 독일인의 정신인 절약이 몸에 배여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보든 안 보든, 그 상대자가 관광객이든 아니든, 그리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의 절약 정신을 그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이 독일 여인에게 독일인의 정신이 스며있는 것처럼, 스포츠 선수들에게 스포츠 정신이 몸에 베여 있는 것처럼 과연 우리 기독교인들도 기독교 정신이 몸에 베여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정신을 갖고, 또한 상대에 따라 나의 기독교 정신이 뒤바뀌는 그러한 모습이 아니라, 그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나의 기독교 정신을 당당하게 보여 주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나 자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2010년이 시작하면서 올 해는 기독교 정신으로 살아가리라 마음먹었었는데 두 달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살지 못한 것 같아 나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러워지며 그때 그 독일 여인의 정신이 새삼 부러워집니다.

 

-호주의 어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