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룰태림(언론인)
그나마도 조그마했던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라고 자랑해오던 우리 한민족이, 둘로 쪼개진지 65년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민족에게 해방의 기쁨과 분단의 슬픔을 동시에 안겨준 저 1945년의 8·15를 한국 현대사 일지에서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민족 분단이라는 불행의 씨앗은 이미 1592년~1599년의 임진왜란 때부터 잉태된 것이었다. 임란 때 왜군은 1594년 명나라와의 강화회담에서 “남부 4도”의 할양을 요구한 바 있었다.
300년 후 청국과 일본은 한반도 지배권을 둘러싸고 다시 전쟁을 벌였고(1894년 청일전쟁), 10년 후에는 일본과 러시아가 또 한반도 지배권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였다(1904년 러일전쟁).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일본에게 한반도 분할을 제안하나 이번에는 승리한 일본이 거부하면서 한반도는 36년간의 일제 식민 지배를 받게 된다.
임진왜란 때부터 등장한 한반도 분할론
이런 근현대사를 돌아볼 때, 우리 민족은 이웃나라들에 의한 한반도 분단론이 제기된 지 350년 만에 실제로 분단되었음을 알 수 있고, 우리는 올해로 3세대 이상을 분단시대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민족분단의 배경을 여러 가지 세계사적 원인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단이란, 어느 날 지도상에다 누군가가 줄 하나 긋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분단에 대한 역사적 해석만으로 위안을 찾기에는 민족적 희생이 너무 큰 바 있었다.
<이순신과 임진왜란>(비봉출판사)에 의하면, 임진왜란 7년 전쟁 동안 우리민족 희생자는 300만 명이라고 한다.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동학혁명’과 청일전쟁 때의 우리민족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아직 통계에 접해본 바가 없지만, 최하 100만 명은 될 것이라고 필자는 추산한다. 일제 식민지 시대, 징용으로, 위안부로, 학도병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얼마이며, 해외로 망명한 사람들은 또 얼마인가? 1945년의 민족분단은 기필코 ‘6·25동란’을 낳았는데, 6·25 희생자는 약 5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아니 이제부터는 민족분단의 씨앗을 잉태시키고 그것을 방치한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들을 근원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극복할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조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는 조선시대 동인, 서인의 붕당정치가 시작되고, ‘조보를 인쇄 발행한 민간인에 대한 고문 탄압(1577년)’으로 언로가 숨 쉴 틈도 없이 막히고, 임진왜란이 터진 선조 이후 조선 중 후기를 한민족의 원심력시대라고 분류한다. 선조 스스로 자기나라를 변방으로 자처하고, 명나라를 ‘부모의 나라’라고 말하는 마당에 이씨왕조가 민족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1894년의 ‘동학 농민혁명’은 ‘자주’와 ‘민주’ 속에서 새로운 민족적 구심점을 찾은 최초의 시민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사상에서 민주주의의 싹을 보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곧 하늘이 되려면, 개인이든 나라든 자주적 결정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주’는 ‘민주’와 쌍생아일 수밖에 없다. 당시 일본군과 운명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인 이유도 ‘자주’와 ‘민주’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자주, 민주, 평화를 토대로 남북이 하나 되어야
우리 민족의 이 ‘자주’와 ‘민주’를 향한 운동은 오늘날까지 100년 이상 계속되어 막바지 단계에 이르고 있다. 비록 아직은 분단을 극복 못했지만, 남쪽에서는 민주주의가 성숙단계로 접어들려 하고 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 내지는 위기를 걱정하고 있지만, 필자는 지난 50년 동안의 한국 민주화운동의 에너지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위기는 ‘꽃샘추위’ 정도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 한민족이 지난 500년간의 원심력시대를 청산하고. 2000년대 인류 문명사에서 구심력시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할 것이다.
그 출발점은 무엇보다도 남북이 하나 되는 일이다.
그 하나 됨도, “어떻게든”이 아니라, “자주적이고”,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하나 되는 것이다. 물론 이 ‘하나 됨’을 위해서는 이웃나라들의 도움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에게 주도권을 맡기고 “추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이 당사자가 되고, 이웃 나라들이 “조력하는” 그러한 “민족의 하나 됨”을 위하여 국민과 정부, 정치인들이 지혜를 모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할 때가 왔다.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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