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로 책이 출간된 지 어언 30년, 참으로 세월은 빠르기만 합니다. 유신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1979년, 유배지에서 귀양 살던 다산 정약용이 고향에 두고 온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한글로 번역하는 일을 시작하여, 끝내고 서문을 썼던 때가 그해 국화가 머물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10월 초순의 어느 날에 흑산도에서 귀양 살던 둘째 형님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 원고까지 합해서 서울의 출판사 시인사로 보냈었습니다. 책을 제작하던 때에 10.26이 일어나 세상이 요동쳤으나, 11월 20일자로 마침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다산의 서간문 모음 번역서가 출간되었습니다.
지난주에 출판사 <창비>는 출간 3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회를 열었습니다. 몇 편의 편지도 새로 넣고, 번역문도 다시 가필하여 이른바 개역증보 네 번째 판을 출간한 기념으로 동호인들을 초청하여 저녁 먹는 잔치를 벌인 것입니다.
다산이 세상을 떠난 85년째인 1921년, 다산의 현손(玄孫) 정규영(丁奎英)은 다산의 연보(年譜)를 『사암선생연보(俟菴先生年譜)』라는 이름으로 편집하여 필사본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다산의 평생이 편년체로 아주 정확하게 기술된 책이었습니다. 현손이라면 다산 손자의 손자이기 때문에, 다산의 손자는 다산을 직접 모시고 글을 배웠고, 가정의 내력을 잘 아는 처지였으니, 그 할아버지에게서 다산에 관하여 넉넉하게 들어서 알고 있던 정규영은 그동안 남겨진 자료를 활용하여 훌륭한 다산연보를 꾸밀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연보에는 다산 49세 때인 1810년 한 해 동안에 아들에게 봄·여름·가을 세 차례에 걸쳐 가계(家誡)를 보냈다는 기록을 남겼고, 흑산에서 귀양 살던 형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를 그대로 실어놓기도 했습니다. 55세인 1816년에는 아들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를 그대로 올렸고 문집에도 있는 글을 더욱 강조하기 위하여 전문을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했던 이유를 밝혀놓았습니다. “병자(1816)년의 가서(家書)는 네 가지 큰 등급의 정밀한 뜻을 밝혀 몸을 세울 바른 곳을 나타내고 우뚝하게 꺾이지 않았으니, 후학들이 종신토록 가슴에 새기려함이다. 가계와 가서(家書)는 모두 성현들이 남긴 의논들이어서 범속한 데에 떨어지지 않았으니, 한 집안의 자손들을 바로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천하의 자제들이 모두 이것으로 수신·제가할 수 있는 것이기에 수록하였다”라는 글이 바로 그것입니다.
30년이 넘도록 스테디셀러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비록 아들이나 형님에게 해준 편지는 성현들이 논의했던 내용이었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한 진리에 가까운 글이어서, ‘천하의 자제들’이 귀감으로 여길 수 있다는 판단으로 그 글을 연보에 강조하여 실었다는 뜻이 됩니다. 출간 30주년 행사를 하면서, 다산의 후손들에게 전해온 편지는, 바로 21세기 모든 국민들에게 전해주어도 손색이 없는 글이었기에, 그 책은 독자들의 사랑을 계속해서 받는 것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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