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의 조각보'는 여성을 상징하는 퀼트에서 따온 것이다. 2014년에 이은 두 번째 공연은 경연을 방불케 하는 춤 희망의 좌표를 설정하고, 안무학 개론의 통섭을 꾀하고 있었다. 생존에 얽힌 현실, 엄습해오는 불안감, 실핏줄을 타고 들어오는 여린 청춘의 냉기, 본능적 생존, 피할 수 없는 청춘의 상흔, 이유 있는 항변들은 조각보의 영역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성숙으로 가는 길목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과 나를 되돌아보는 일은 엉클어진 나를 깨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신에게는 껍질을 깨는 아픔과 부리를 새로 돋게 하는 작업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고, 인간은 자아에 대한 고민에서 성숙의 씨앗을 틔운다. 서은지의 새로운 시선으로 빚은 '속사람'은 자신의 앞으로의 춤 규율을 세우겠다는 엄숙한 선언이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공간, 그들은 공존하면서 서로의 세계 안에 가두기도 한다. 'Innerman'은 자신과 마주치는 또 다른 나 무의식, 그의 슬픔, 고통, 괴로움 같은 감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알게 된 존재, 두 의식이 혼재되어 만들어지는 이미지의 형상화를 상징하는 단어이다. 기화(氣化)의 물화(物化), 사람의 자기의식은 매일 새로워진다.
강한 임팩트를 동반한 서은지의 일반적 이미지와는 다른 시적 사유와 자신에 대한 성찰이 감정 깊숙이 스며들어 내면을 표현해내는 춤은 분홍을 짙게 입어가는 늦은 봄의 낭만을 느끼게 한다. 그녀가 '흐르는 시선_innerman'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나를 들여다보면, 희망은 도처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춤의 전사에서 고전을 두른 여성의 자태를 보이고 있다.
서은지가 '내안의 나'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두 가지 오브제가 활용된다. 하나는 무대 바른편 나무 화병의 앙상한 나뭇가지이다. 자신이 과거에 받은 상처, 잘못된 경험, 괴로움, 두려움, 아픔, 거부, 실수, 슬픔, 분노, 고통, 절망감에 대한 의식의 형체를 표현한다. 나뭇가지에 다가서지 못하다가 화병 바깥의 흰모래를 화병 속에 넣으며 내안의 외로움, 상처들을 포용하며 화해한다.
다른 하나는 무대 왼편 의미가 달린 나무 모빌이다. 공간을 의식과 무의식의 두 가지의 세계로 나눠주는 역할을 한다. 내안의 속사람과 나 자신, 둘의 세계를 넘나들고 그 둘이 어렵게 닿을 수 있고 포용하는 과정을 전달한다. 자아의 고통과 절망에 다가가서 그 본질을 찾는 과정을 상징한다. 희망의 나무에는 생산의 포자가 가득함을 서은지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서은지는 2015년 한국예술가협의회에서 '올해의 주목할 예술가상'과 '청춘대로 덩더쿵' 신진 안무가전에서 신진안무가상을 수상한 춤꾼이다. 윤수미 무용단의 '춤의 조각보Ⅱ'에 출품된 그녀의 춤은 현실에서 상상까지 섬세한 여성 심리를 포착한 열정의 춤이었다. '청양의 해'를 마무리하며 여성 안무가의 힘을 보여준 작품은 자연스럽게 연(緣)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안무가로서 서은지는 익숙하지만 낯설고, 보이지 않은 듯하지만 보이는 살가운 구성으로써 새로운 춤의 성장기를 보여주는 스타일과 유형을 창조해 내고 있었다. 그녀의 몸의 상상력은 감각적 촉수로 때론 격하게, 때론 부드럽게 몸시(舞詩)를 구사하며, 촘촘한 구성과 우리 춤에 기반을 둔 창작 춤의 열린 세상으로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