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있는 제사』는 춤 예술에 헌신하며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삶’을 표방했던 최현의 작가주의세계를 인지케 한다. ‘나는 행복하다’를 주문처럼 외우며 춤 예술의 가치를 역설했던 최현의 ‘심중의 외침’은 울림을 낳았고, 가슴속에 묻어둔 아쉬움과 그리움들은 무대 위에서 명시적이고, 두드러진 형식으로 표현되어 잔잔한 감동과 화려한 최현의 춤 판타지를 연출하였다.
2002년 7월 8일 최현이 73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전, 봄날의 용문은 유람하기에 좋은 날씨였고, 흐드러진 봄꽃 향기에 취해 예우(藝友)들과 산채비빔밥을 같이 먹고, 더덕 안주에 막걸리도 나눠 마셨다. 다음 날 석하 선생은 서울대 병원으로 검진을 갔고, 그곳에서 투병하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다. 풍류를 즐기고 다정다감했던 그가 간지 10년이 넘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무심한 세월의 굴레를 넘어서도 100여 편의 안무작을 남긴 최현에 대한 그리움은 ‘달빛아래 춤’으로 제자들의 가슴에 남아 저녁노을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최현은 조택원, 송범을 잇는 신무용의 대가로서 남성춤의 정체성을 지켜 낸 무용가였다. 그를 기리는 『달 있는 제사』는 최현의 안무작을 모티브로 한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달 비춘 소반 위’(모티브: ‘비상’, ‘달 있는 제사’) 안무/ 정혜진, 출연/ ‘비상’ 1명, ‘제사의 춤’ 1명, 제자들 전체 제사지냄. 2장 ‘차오르고 차오르니’(모티브: ‘비원’), 안무/ 정혜진, 손미정, 출연/ 예원학교 학생과 성인. 3장 보름에 비는 소원(모티브: ‘군자무’), 안무/ 정혁준, 출연/ 남성 군무. 4장 찬란하게 기운다(모티브: 비파연), 안무/ 남수정, 출연/ 남수정 무용단 5장) 돌고 돌아 그 자리로(피날레), 안무/ 정혜진, 마혜일, 출연/ 서울예고 학생과 출연자 전원.
열린 무대의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냄새로 가득한 공연장. 제자 대표는 경건하게 제(祭)의 시작을 알린다. 이번 공연은 독무, 군무, 남녀 혼성무로 어린 제자에서 큰 제자를 아우르는 스승과 제자들의 진정성이 돋보였다. 언급 외 작품으로 최현은 『새불』, 『아리랑』, 『영고』, 『안녕』, 『심청전』, 『춘향전』, 『꿈의 춘향』, 『허행초』, 『남색끝동』, 『남천』, 『고풍』 등의 안무작을 남겼다.
이번 무대는 최현 춤의 재현과 변주, 전통춤의 변형, 구성과 진법의 묘미를 살려 신무용과 전통 춤이 만나 품격과 전례를 만들어 나간 최현의 공간적 질서, 움직임의 수사, 전통음악의 사용 등 ‘멋의 예인’, ‘이 시대의 마지막 낭만주의자’ 최현의 창의력을 사유적으로 보여주는 무감(舞感) 조성의 화려하고 섬세한 춤사위를 겨냥한 강도있게 구성된 공연이었다.
무용극, 창극, 뮤지컬 등 100여 편의 작품을 안무하였던 선생의 작품 중 국립무용단 공연의 객원안무로 선보인 『군자무』는 초연 당시 이문옥, 양성옥, 이미미, 최정임 등 직업 무용단 무용수들의 개성을 한껏 살린 안무작으로써 그 해 무용월간지 ‘몸’이 선정한 제1회 무용예술상 ‘작품상’을 수상하며 숱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명작의 대표작으로는 1976년 교통사고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비상’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냈던 『비상』과 1994년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첫 선을 보였던 『허행초』, 『남색끝동』, 생전에 마지막 안무작인 『비파연』 등이 있다. 『달의 제사』, 『신명』, 『연정』, 『신이여』, 『미얄할미』, 『연가』 등 고인의 대표작들은 한국 창작 춤의 멋과 흥을 살린 한국춤의 백미이다.
『비상』이 최현 창작 춤의 일대 전환점을 이루며, 중견무용가 윤성주, 정은혜, 김호동 등 최현 춤의 씨앗이 그 뿌리를 내리며 그들로부터 줄기로 또 무성한 푸른 잎으로 돋아나고 있다면, 『허행초』는 인생을 돌아보는 한 노인의 서정을 절묘하게 표현하며 움직이지 않는 몸짓에서 묻어 나오던 ‘절제의 미학’을 통해 최현 춤의 또 다른 철학과 예술성을 극대화 시켰다.
『달 있는 제사』는 스승을 기억하며 한바탕 노닐다가 최현 선생의 춤추는 이미지의 영상을 향하여 절을 하며 막을 내린다. 춤을 통해 여전히 살아있는 전설의 춤꾼은 자신의 춤이 노출될수록 신비를 발하는 묘한 매력을 소지하고 있다. 그의 춤은 동면하지 않고 ‘생의 약동’을 느끼게 한다. 최현화(崔賢畵)는 지워질 수 없는 창작과 상상의 유전자의 상징이다.
● 출연: 원필녀, 이미미, 백정희, 윤성주, 이경화, 김경진, 정혜진, 이미영, 남수정, 마혜일, 전순희, 강경수, 윤명화, 정혁준, 손미정, 최원선, 한효림, 박정연, 김영은, 김유정, 최혜진, 김명신, 안나영, 서예우, 조인호, 황태인, 윤서희, 이상아, 이나래, 하지연, 박수윤 등
● 최현 댄스로지
1929년 12월 6일 부산 영도에서 출생,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0대 시절 경남마산(오동동)에서 보내며 소년 가수로 가극단에서 일하다가, 초청강사인 무용가 김해랑의 눈에 띄어 1946년 5월, 마산의 김해랑무용연구소(1946~1953년)에 입소하여 전통춤의 유형별 특징을 연수하며 창작법을 익혔다. 피난 시절, 박용호로부터 현대무용을 배웠다. 마산상고, 1953년 서울사대 진학, 졸업,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에서 예술학을 전공하였다. 1950년 영화 「삼천만의 꽃다발」에 연기자로 데뷔하여 「춘향전」, 「시집가는 날」, 「자유결혼」 등 12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한영숙(韓英淑)으로부터 ‘태평무’, ‘승무’, ‘살풀이춤’을 김천흥(金千興)으로 부터 ‘궁중무’와 ‘처용무’ 등을 사사받았다. 1957년 동남아 7개국 순회공연단에 합류, 조용자와 『춘향전』 듀엣과 ‘봉산탈춤’ 등을 공연하였다. 1955년에는 서울 혜화동에 최현 무용연구소를 개설하여 후학들을 양성하였고, 서울음대(1961~1962년),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무용과(1965~1997년), 서울대 사범대학(1967~1974년), 이화여대(1969~1970년), 중앙대학교(1980~1981년) 출강, 1981~1985년까지 서울예술전문대학 교수로, 국립국악원무용단 안무자(1978년), 국립무용단 지도위원(1979년)을 맡았으며, 1981년부터 85년까지 서울예대 무용과 교수직에 이어 이화여대와 한예종 등에 출강하였다. 1995년 국립무용단 단장을 맡았고,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2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1964년 임성남(林聖男) 안무의 『사신의 독백』과 『허도령」에 출연하고, 이듬해에는 송범(宋范) 안무의 『배신」 등에 출연했으며, 조택원(趙澤元)은 최현을 위해 『신로심불로」를 안무하기도 했다. 1969년부터 1990년까지 오랜기간 동안 문화체육부 문화재전문위원직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비상』(1974), 『군자무』(1976) 등의 작품을 안무했는데, 그의 대표작이 된 『비상』은 하늘을 훨훨 날고 싶은 새의 의지를 표현한 독무이다. 1979년 1회 때부터 서울무용제 심사위원을 1974년~1982년까지 국립무용단 지도위원으로 활약했고, 1986년 아시안게임 문화축전 식전행사의 『영고」, 1986년 아시안게임 문화축전 때 식전행사 『영고』를 안무, 총괄하였으며, 1988년에는 ’88서울예술단의 창단 공연 작 『새불』을 안무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 폐회식 『안녕』의 총괄 안무를 맡았으며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후 『심청전』, 『춘향전』 등을 안무했다. 1990년 동아일보 창간 70주년 기념 창극 『아리랑』을 안무, 소련연방 5개국을 순회 공연을 하였고, 1990년대에서 2001년까지 『꿈의 춘향』, 『허행초』, 『남색끝동』, 『달의 제사』, 『남천』, 『고풍』, 『비원』, 『비파연』 등 소품 위주의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1993년 국립무용단이 재공연한 『군자무』는 매란국죽의 각기 다른 여인상을 정갈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1994년 12월 춤 입문 50년만의 첫 작품전에서 초연된 그의 독무 『허행초』는 최현 춤의 득도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1995년 국립무용단장 겸 예술감독을 맡으며 광복 50주년 경축행사 안무를 총괄하였으며 1995년 5월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위한 문화사절단으로 국립무용단이 중남미 피파회원국을 순방, 순회공연 하였다. 최현은 1965년부터 무용극, 창극, 마당극, 뮤지컬을 안무, 주연하였으며 무용극의 대표작 『초라니』, 『춘향전』, 『시집가는 날』, 『마의태자』와 연극 『심청』, 『학이여 사랑일레라』, 『새불』 한국무용 안무작인 『비상』, 『군자무』, 『녹수도 청산을 못잊어』 등이며 창극마당으로 『심청가』, 『강능매화전』, 『광대가』, 『별주부전』, 『소태산』, 『홍보전』, 『이춘풍전』, 『놀부전』, 『허생전』 등 작품을 남겼으며, 195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40여 개 나라를 순회하면서 우리의 춤 문화를 통해 국위를 선양했다. 그동안 최현 선생이 안무한 작품은 100여 편이 넘으며 소극장무대, 1988년 장애자 올림픽 안무를 비롯, 1993년에는 최현 선생의 대표작 『비상』이 명작무로 지정되었으며 『군자무』 안무로 창무 포스트극장 제1회 예술대상을 받았고, 제4회 서울시문화상, 1994년 10월 문화의 달에 대한민국 문화훈장 화관장, 1996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상을 받았다.
●최현우리춤원
‘崔賢우리춤院’은 1994년 최현의 개인 발표회를 시작으로 탄생했다. 이 단체를 통해 최현은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후 선생이 타계하고, 추모공연을 3차례 갖게 되면서 부인인 원필녀 선생을 비롯한 김향금, 이미미, 백정희, 서영님, 윤성주, 이경화, 정혜진 등 몇몇 제자들이 모여 발족한 것이 지금의 ‘崔賢우리춤院’이 되었다.
최현에게 ‘崔賢우리춤院’은 우리 춤을 보존하기에만 급급하기보다 그 맥을 잇고 계속 발전, 계승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선생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제자들이 모여 ‘崔賢우리춤院’의 목적과 의지를 받들기로 하였고, 초대 회장에 이미미, 2대 회장에 백정희, 2014년부터는 정혜진이 회장을 맡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고문으로 원필녀, 김향금, 이미미가 이끌어 주며, 백정희, 서영님, 손병우, 윤성주, 이경화, 이노연, 정은혜와 당연직 이사로 정혜진 회장과 남수정, 전순희 부회장이 운영위원으로 최현우리춤원을 꾸려나가고 있다. 김경진, 한칠, 박은영, 장해숙, 이미영, 마혜일, 남수정, 전순희, 강경수, 윤명화, 정혁준, 홍예주, 손미정, 박은행, 최원선, 한효림, 박정연이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업으로는 매 주 선생의 춤을 배우는 <崔賢우리춤院 워크숍>진행, 7월에는 <성묘 가는 길>행사를 올렸으며, 8월 “崔賢우리춤院 강습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상반기에는 <崔賢 춤 展> 우리춤 보존 공연을 하반기에는 미래의 우리춤을 위한 창작공연을 올린다. 지금까지 몇 차례의 학술세미나 등을 개최하였다. 선생의 흔적들을 모아 전시회와 출판 사업을 준비 중이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