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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장코폴로 2015. 12. 2. 08:27

뮤지컬로 살아난 '신선' 고운 최치원

[공연리뷰]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기사입력 : 2015.12.02 07:41 (최종수정 2015.12.02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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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발레리나 김옥련이 안무하고 유상흘이 연출한 『해운대 연가, 최치원』(11월 18일~20일 해운대문화회관 고운홀) 공연은 한 시간 반 동안 신분과 제도를 뛰어넘는 극기, 불굴의 노력, 사랑의 여정을 노래한다. 열악한 제작 여건에도 불구하고 제작진 및 출연진 40여 명이 의기투합한 뮤지컬은 의미있는 성과를 낳았다.  

걸작 예술품 창작을 기치로 다양한 표현으로 고운 최치원의 인간적 매력 표현과 현실적 교훈 을 견지한 『해운대 연가, 최치원』은 신선이 된 초월자 고운을 다각도로 부각시킨다. ‘프롤로그’, ‘신화 속으로’, ‘이별 그리고 방황’, ‘새로운 만남’, ‘공연’, ‘에필로그’ 등 6개의 ‘장’(場)으로 구성된 뮤지컬은 삽화적(揷話的) 틀 안에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퓨전 판타지를 개척했다. 

‘프롤로그’, ‘곧은 길 가려면 어리석어야 했다. 장한 뜻 어디다 알리려고…’ 최치원을 기리는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개혁의 의지를 뜻하는 붉은 등이 등장하고, 목간을 두고, 왕비 사이에 귀족들의 육두품 최치원을 향한 시기가 일렁인다. 분노의 번개 영상이 배경에 핀다. 신라 말 고운의 개혁 의지는 제도와 인물들의 악습에 떠밀리고, 고운은 세속을 버린다.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신화 속으로’, 해운대 장산 일원에 전설속의 망부송, 황옥공주(인어), 학, 동물들이 평화를 구가하던 어느 날, 선계(仙界)로 찾아든 고운에게 선계에 입문하려면 시간을 초월하여 사악한 인간계의 선한 피아니스트를 구하라는 시험이 부과된다. 그들은 고운과 함께 오늘날의 현실세계로 뛰어든다. ‘장산 이곳에서…’ 최치원의 일대기가 밝혀지고, 해금소리, 코믹하게 전개된다.  

‘이별 그리고 방황’, 피아니스트의 아내는 말 못하는 댄서였다. 그 부부의 교통사고로 피아니스트는 음악과 아내를 잃고 방황한다. 중절모의 사내는 “자네 부인이 죽기 전에 어디를 가보고 싶다고 했지?”라며 그들의 신혼여행지가 해운대임을 상기 시킨다. 최치원 찬가, ‘붉은 가슴, 피 흘리며 가는 가시꽃…’이 엄숙하게 내리 꽂힌다. 사내는 고운의 마음이 된다. 

사내는 해운대를 찾는다. 해운대 영상이 뜬다. 두 개의 붉은 천 내려오고, ‘Jazz’라는 간판이 보이는 바, 테이블 네 개의 공간, ‘늘 시를 쓰며 영원히 날 사랑한다 말한 뒤에, 널 사랑해, 해운대의 사랑이여…’ 해운대 연가가 불려진다. 두 천 사이로 발레리나 등장하고, 바닥은 짙은 녹색이다. 피아노는 라이브로 연주되고, 가수와 열두 명의 연기자는 객석의 관객들을 무대로 끌고 나온다. 해운대에 온 피아니스트의 방황은 계속된다. 최치원과 날개달린 무희와의 춤이 이어진다. 붉은 천이 투우사의 유혹의 천이 된다.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새로운 만남’, 네 명의 깡패들이 죽은 아내를 닮은 붉은 원피스의 필리핀 밤무대가수와 그녀의 딸을 괴롭힌다. 필리핀 여인을 구한 사내, 여인의 독무에 이어 남녀 이인무와 여인의 노래가 이어진다. 가수와 남녀 네 쌍은 넘실거리는 파도의 영상을 타고 일직선으로 서있다. 이때 천은 다시 원위치가 된다. 그녀의 도움으로 사내는 해운대 관련 공연 연주자로 참여하기 위해 둘은 해운대 팔경을 찾게 되고, 돼지국밥, 오뎅, 찐빵, 꼼장어, 산낙지, 밀면 등을 쓴 열두 개의 피켓이 등장되고, 부산 사투리로 호객하는 소리가 코믹하게 들린다. 어디선가 “최치원, 저 시정잡배들과 어울리는 것이 천재의 꿈이었던가?”라는 소리가 들린다. 최씨 일가의 불타는 투혼이 노래된다. 거기서 전설 속 인물들의 도움으로 피아니스트는 다시 음악 세계로 돌아온다.  
‘공연’, 스탠드 바로 바뀐 무대, 노래에 이인무가 펼쳐지고, 피아니스트가 참여한 공연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사내는 죽은 아내를 보게 되고 둘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예술로 다시 맺어져 잠시 해운대 ‘달맞이 길’을 주제로 한 거리를 거닐게 된다. 달은 저물고, 공연도 끝이 나고, 아내도 사라진다. 작은 소원을 이룬 사내는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에필로그’, 해운대 바닷가 영상, 빗소리를 들으며 최치원 혼자 노래한다. 피아니스트는 아내의 징표인 귀걸이 한쪽을 해운대 일출 바다에 멀리 던져버리고 다시 삶과 예술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그냥 해운대 팔경을 즐기세요.” 속세의 말이 들려온다. 관객 석 옆에 켜져 있던 등이 모두 꺼진다. 무사히 시험을 마친 최치원도 신선의 세계로 들어간다. “어서 오라, 우린 오랫동안 자네를 기다렸네.” 선계의 소리가 들려온다.  

로마 멸망의 징후와 비슷한 신라 말의 어두운 풍경 속에 고운 최치원은 예술과 종교적 세계에 심취했다. 최치원 선생의 인물됨을 기린 이 작품은 동서양의 음악, 과거와 현재의 동시적 공간성, 죽음과 삶, 신화와 현실, 무대와 일상 등을 공존시켜 현대적 감각의 뮤지컬을 창조했다. 다문화 가족(필리핀 가수)이 주요 배역이 되고 ‘해운대’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친밀감을 불러일으키며 예술적 품계를 상승시켰다.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김옥련 안무의 『해운대 연가, 최치원』
김옥련, 부산 발레계를 이끌고 있는 해운대의 꽃이다. 발레와 접목된 뮤지컬 『해운대 연가, 최치원』은 ‘연가’들의 화려한 변신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걸작이다. 김옥련 상상력 스펙트럼의 가상한 산물이자 낭만적 고뇌의 노작(勞作)으로써 웅장한 서사를 부드러운 바닷바람에 정제시킨 듯한 느낌을 준다. 그녀가 추구하는 수사가 전국적으로 가치를 부여받았으면 한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