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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상속-김 동 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장코폴로 2015. 12. 1. 09:22
사회적 상속
김 동 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는 외국에 나가면, 대학, 도서관, 박물관을 주로 방문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언제나 건물의 입구에 적어놓은 사람들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기부자들 명단이다. 그 지역사회의 단체나 개인들이 이런 공공적인 일에 기꺼이 기부를 했고, 오늘 당신들은 이들의 기여 덕분에 이런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건물의 명칭도 이들 개인 기부자들의 이름을 딴 것이 많다.

알고 보면 상당부분 국민세금 덕

  그런데 한국의 큰 대학이나 도서관 건물은 모두 애초 설립 당시 재단이나 국가 아니면 재벌 대기업이 지은 것들이다. 건물의 명칭도 재벌기업이나 기업가의 호를 딴 것이 많다. 물론 재벌 대기업들도 사회공헌의 큰 뜻을 갖고 그런 기부를 했겠지만 과연 회사 돈이 아닌 개인 돈을 기부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미국에서는 상속세 폐지 움직임에 가장 먼저 반대하고 나선 사람들이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거부들이다. 워런 버핏은 “사회의 자원이 부의 귀족왕조로 불리게 되는 식으로 대물림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큰 부자든 작은 부자든 ‘사회의 자원’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 하는 경향이 있다. 

  5억짜리 아파트가 15억으로 뛰면 차액 10억은 그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도로, 지하철, 편의시설 등을 설치한 것은 국가이고, 그것은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것이다. 대기업이 10년 만에 10배로 몸집을 불렸다면 그것은 기업주의 노력의 결과만은 아니다. 지금도 정부 예산 중 가장 많은 액수는 투자 지원, 환율, 면세, R&D 등 여러 가지 형태로 기업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정부, 투자자, 소비자, 노동자의 공동 기여물인 수조 원 수십조 원의 대기업을 세금 거의 내지 않고서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극히 부정의한 일이다. 그것은 불법이 아닐는지 모르나, 매우 부당한 것이고, 더 나아가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갉아먹는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의 갑부들이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은 그들의 도덕심이 넘쳐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게 법이자 상식이고 또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75.6%는 개인 기부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고액 개인 기부는 아직도 신문에 날 정도로 드물다.

개인 상속보다 사회 인프라에 기부를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이 있다. 미국의 기부자들은 주로 대학, 도서관, 의료기관, 박물관 등 사회의 인프라, 그 사회의 지속성과 관련된 것에 기부를 한다. 즉 건물 등 외형적인 것이 아닌 사람을 키우는 일, 소프트웨어에 투자를 한다는 말이다. 기부금품 모금 통계를 보면 한국의 기부는 자선사업이나 국제구호가 대부분이고, 기부금 모금단체도 종교단체가 대부분(66%)이고 교육단체는 6%에 불과하다. 한국인들은 재해나 불우한 사람들에게 즉흥적으로 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자선도 칭찬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선을 베풀 대상이 줄어드는 사회를 만드는 일, 그것을 위해 일하는 세력을 키워주는 일이다.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바로잡는 일에 젊은이들이 더 많이 헌신할 수 있고, 더 많은 학자들이 그런 주제로 연구하고, 더 많은 언론인이나 정치가들이 그 일과 씨름해야 법과 제도가 바뀌게 될 것이다. 자선보다는 교육, 사회운동, 정책과 정치를 바로잡는 일이 필요하다. 

  김낙년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자산에서 상속의 기여도는 1980년대 27%에서 2000년도에는 42%로 치솟았다고 한다. 이런데 현 정부는 가업계승자 면세범위를 500억 원으로 상향 조정한다고 하고, 심지어는 ‘효도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부모를 모시는 자녀들에게 5억까지 상속세 공제를 한다고 한다. 자영업자가 가업승계차원에서 수억, 혹은 수십억 원 대 정도의 가게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부정의하지 않다. 그러나 500억 원 상속을 과연 가업승계로 볼 수 있을까? 기부를 장려해도 시원찮을 판에 기부하지 말고 자식들에게 물려주라고 국가가 나선 꼴이다. 상속세 제로가 되면 ‘지옥과 같은 한국(헬조선)’은 더 심각한 신분사회가 될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한국의 몇몇 뜻있는 기업가, 부자들이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적 상속’을 실천을 하는 흐뭇한 이야기도 있다. 사회적 상속은 미래를 위해 지금 세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여러 면에서 미국이라는 나라는 비판받을 점도 많지만, 그들의 기부 문화, 즉 사회적 상속 관행을 보면 왜 그들이 세계를 지배하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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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겸 민주주의 연구소 소장
· 전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 

· 저서 
〈대한민국 잔혹사〉(한겨레출판)
〈전쟁과 사회〉(돌베개)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길)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한겨레출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