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발제
돈 주황, 바람꽃 피리되어
장석용(문화비평가, 본회 회장)
영동 감나무는 일 만 육천여 그루, 감나무족 사람들은 감을 신성시한다. 우리 예술가들은 그 신비의 땅에 붉고 노란 열정으로 늦가을 정취를 맛보러 간다. 예술가들은 예작(藝作)을 피워내기 위해 부지런히 밭을 갈았고, 예술평론가들은 고운 빛을 찬(讚)하고, 그 빛에 이르지 못하면 거름을 더 주라고 하거나, 과하다고 빼라고 했다.
충청북도 최남단에 위치한 영동은 동쪽은 경상북도 김천시와 상주시, 서쪽은 충청남도 금산군, 남쪽은 전라북도 무주군, 북쪽은 옥천군과 인접해 있다. 서울에서 영동까지의 거리는 193.8㎞, 장수벨트에 속하는 영동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갈라지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의 눌의산(743m) 황악산(1.111m), 서쪽의 마니산(640m) 천태산(715m) 성주산(624m), 남쪽의 민주지산(眠周之山 1,242m) 석기봉(1,200m) 각호산(1,176m) 삼도봉(1,176m) 천마령( 926m),막기황산(1,000m), 북쪽에 백화산맥의 포성봉(933m)이 있다. 북동부에는 추풍령이 위치한 곳이다.
우리는 가을을 9월, 10월, 11월로 잡는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이 지나고 양력 11월 8일이 절기로는 입동(立冬)이다. 세미나 기간인 음력 시월 초사흘과 나흘은 가을이자 겨울이다. 가을에 물들고 싶은 사람은 가을이라 생각하면 되고, 겨울을 꿈꾸는 자는 겨울이라 생각하면 된다. 아무래도 영동은 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감의 종류가 다양하듯이 예술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감은 크게 '단감'과 '땡감'으로 나누어진다. 우리의 예술도 우리의 것과 외국의 것으로 나누어진다. 무용은 전통무용과 서양무용, 문학은 창작문학과 외국문학, 미술은 동양화와 서양화, 연극은 창작극과 번역극, 영화는 우리영화와 외국영화, 음악은 국악과 양악으로 나누어진다.
영동은 내륙에 위치하여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이지만 충청북도에서 가장 따뜻하고 일조량이 많아 '과일나라'라고 불릴 만큼 생산되는 과일이 많고 맛이 매우 훌륭하다. 전국 제일의 고품질 농특산물 생산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감·포도·호두·사과·배는 전국 생산량의 6∼11%, 표고버섯은 전국 제일의 집산지를 자랑한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감은 ‘상주구슬감’, ‘정읍먹시’처럼 지역 명칭이 붙은 것과 모양을 본 딴 일흔여섯 종류의 감이 재배된다고 한다. 생김새와 색깔을 딴 감은 검은 감, 빨간 감, 애기 감, 부처 감, 물 감, 장둥이, 꾸리 감, 씨 없는 감 등 순수 우리말로 붙여진 감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검무도 ‘밀양검무’ ‘해주검무’로 나누듯 춤에도 류파가 있다.
지구상에는 190여 종의 감나무가 있다. 우리는 감을 먹을 때, 단감을 그냥 먹거나 땡감은 홍시, 곶감, 반건시 등으로 만들어 먹는다. 우리는 감을 부를 때, 수분이 많으면 수시(水枾), 붉게 흠뻑 익어 말랑말랑하면 홍시(紅枾)나 연시(軟柹), 형태가 납작하면 반시(盤柿), 떫은 감은 약시(藥柿), 6월에 익는 감은 조홍(早紅)이라 부는다.
돈 주황, 돈이 되는 주황색 감을 이렇게 불러보았다. 예술도 황금빛 비상을 꿈꾼다. 건시(乾柿)는 곶감을 말하는데 백시(白枾)와 황시(黃枾)는 볕에 말린 것, 오시(烏柿)는 불에 말린 것, 준시((蹲柹)는 꼬챙이에 꿰지 않고 납작하게 말린 것이며 반건시(半乾柿)는 절반만 건조한 것으로 구분한다. 예술도 어떻게 가공할지는 예술가들의 몫이다.
얼마 전 국립무용단 1기로 마산에서 주로 활동하시는 한국무용가 정양자 선생이 진양감 한 박스를 보내오셨다. 고희 공연을 앞두고 있는(11월 15일, 창원 3· 15 아트센터) 그 분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 분은 늘 최선을 다해 춤을 추어 왔고, 평론가로서 나는 그분의 공연을 여러 번 지켜보았을 뿐이다.
예술과 평론의 만남의 접점은 진솔함과 예술에 대한 사랑이 동반되었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비평의 주체가 되는 창조적 예술가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행위를 장려할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지원할 빠른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것도 평론가의 주된 책무의 하나이다. 서로를 격려하고, 지향점을 같이할 동지적 우군이 되어야 한다.
가을, 우리는 ‘예술울 위한 예술’ 이나 ‘관객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예술작업’을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계절을 맞고 있다. 언제나 비평가들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장르에서 문화적 전통을 새롭게 해주기를 요구한다.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부단히 지원의 주체가 될 지원 단체를 찾아내어 예술가들을 도와야 한다.
담론의 대상인 ‘우리예술계의 현안과 대책’은 늘 그래왔듯이 정답이란 없다. 자신의 기교와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개성있는 아이디어로 자신의 예술 작품을 상품으로 개발하여야 한다. 가능하면 국제적 마케팅을 고려하여 작업을 하는 것도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바람직한 자세가 될 것이다.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의 촬영무대인 영동은 호두와 감을 상징으로 하고 있고, 구름도 자고가고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을 품고 있다. 이 지역은 상주인구를 늘일 만큼 매력있는 지역으로 부각되고 있다. 영동의 지역적 가치평가는 자연과 자연이 생산해내는 결과물, 그 문화를 향유하는 현재 사람들의 행동에 있다.
상촌면 고자리와 용화면 조동리를 잇는 고갯길의 도마령(刀馬岺·840m) 24굽이의 단풍을 접하면 남으로 각호산, 민주지산, 북으로 삼봉산, 천마산 등 첩첩산중이 행정자치부가 주관한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지역자원 경연대회에서 100선’에 선정된 이유 있는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100대 명산인 민주지산(해발 1241M)은 힐링의 최적지 이다.
우리 단체는 문화재 49점 보유한 영동의 문화체험 장소로 1. 난계국악체험촌 2. 국악관람 3. 옥계폭포 4. 영국사 5. 와인코리아 6. 노근리평화공원을 선정했다.
1. 국악의 아버지 난계 박연의 고향에서,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분인 그분을 생각하며 난계의 생가와 난계사, 난계국악박물관, 난계국악기체험촌, 닌계국악체험연수관 등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법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북인 천구는 소나무 2만4천재, 소 40여 마리의 가죽이 사용되었다 한다.
난계(蘭溪)는 태종때 급제하여 세종이 충녕대군 시절부터 인연으로 봉상판관 겸 악학별좌에 임명되어 향악(우리 나라 음악), 당악(신라 시대 이후에 전래된 중국 속악), 아악의 율조 등을 조사했으며, 악기의 그림과 악보를 실어서 한 권의 악서를 편찬하자고 상소했다. 편경과 편종 연구, 아악의 악보 편찬, 종묘악을 완성한 음악가이다.
2. 세미나 1부가 끝난 뒤, 난계국악합주단의 연주를 관람하고 2부로 이어갈 예정이다. 박물관 옆에 국악기 체험전수관이 있다. 국악기 체험코너와 체험전수실, 136석의 공연장, 개인 연습실, 영상 세미나실, 숙박실 등이 있다. 연주 동영상을 보면서 가야금ㆍ거문고ㆍ해금ㆍ대금ㆍ피리ㆍ편종ㆍ편경ㆍ단소 등 8가지 악기의 음정을 들어 볼 수 있다.
3. 월이산 입구, 심천면 고당리에 있는 옥계폭포는 소원 성취 폭포로 난계가 즐겨 찾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옥계폭포 가는 길섶의 우거진 노송의 숲이 이루는 경관을 이루어 있어 "충북의 자연환경 명소"로 지정되어 있다. 옥계폭포주차장에서 700m를 걸어 주변의 풍광을 즐기면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 그 분위기에 압도될 것이다..
4. 영동 천태산에 있는 작은 절인 영국사에는 보물이 많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의 삼층석탑(보물 제553호), 팔각원당형부도(보물 제532호), 고려 명종 10년(1180)에 세운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망탑봉 삼층석탑(보물 제535호), 국가의 위기때 소리내어 운다는 높이 31m 둘레 11m, 천 살 정도되는 천연기념물 제223호인 은행나무가 있다.
5.포도주 공장 체험, ‘와인코리아’, 현재 한국에서 유일한 와이너리(포도주를 만드는 양조장)로서, 포도 재배에서 부터 정통 고급와인(샤토마니, ChateauMani)을 직접 생산하고 있다,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컨츄리 와인’은 3대째 이어온 전통 기법으로 개인 농장에서 수작업으로 국내 유일 무첨가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다.
6.노근리평화공원, 노근리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7월25일까지 5일동안 영동읍 하가리 및 황가면 노근리의 부선 철도 및 쌍굴(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제 제59호) 일대에서 미 공군의 공중 폭격과 제1기병사단 미군들의 무차별 기관총 및 소총 사격에 의해 사백여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유족들의 끈질긴 진실 규명 활동의 결과로 2004년에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이에 근거 이 공원이 조성되었다.
‘레인보우 영동’은 ‘빨강은 당도높은 고품질 사과, 주황은 영동의 감, 노랑은 난계 박연선생의 탄생지 국악의 고장, 초록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보존된 아름다운 산, 파랑은 맑고 깨끗한 청정수, 남색은 전국 최대의 주산지인 포도, 보라는 영동포도로 빚은 대함민국 대표와인을 상징한다.’한다. 영동군은 이를 관광 상품화 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열망이 있어야만 영동은 문화적 도약을 할 것이다. 영동은 영동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질 때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타 지역과 차별화된 시각과 진지하고 열정적 문화마인드를 가진 공무원들이 많아야한다. 지역사회는 예술가들의 적극적 도움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만의 잔치는 무의미하다.
문화재 49점을 보유한 영동의 대표적 먹거리는 어죽, 올뱅이 국밥, 산채비빔밥 정도이고, 햇살을 받은 곶감, 잘 익은 호두, 표고버섯을 만나는 장날은 4, 9일이다. 영동은 분주하거나 수다스런 곳이 아니다. 물건을 하나 더 팔기위해 상인의 기질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영동은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버스로 2시간 50분 거리이다.
아쉽게도 영동천일원, 난계사 등에서 진행되었던 ‘영동난계국악축제 2015’는 10월 15일(목)부터 18일(일)까지 펼쳐졌다. ‘난계 박연, 세종대왕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 축제는 '제6회 대한민국 와인 축제'와 함께 열려 축제의 분위기를 더했다. 이 축제는 2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대표적인 공연예술축제로 선정되었다.
1읍 10면의 영동군은 ‘군조(郡鳥) 비둘기, 군화(郡花) 진달래, 군목(郡木)을 감나무로 삼고 있다. 이은상 작사, 전석환 작곡의 ‘군민의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면 이 지역의 소박한 바램을 간단하게 파악할 수 있다. 충의의 고장이며 문화를 사랑하자는 이은상 선생의 가사가 너무나 재미있다.
1절, 백화산 황학산 동북에 솟고 송천이 양강이 서남에 흘러 볼수록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 2절, 보아라 산구비 강기슭마다 겨레의 피와 정신 아로 새겼네 충의와 예술의 빛나는 전통/ 3절, 사랑은 힘이다 한데 뭉치자 복지의 행진이다 모두 나서라 꾸미자 가꾸자 문화의 낙원/ 후렴구 기름진 우리 영동 여기 열렸네 아! 생활의 터전이다 정든 내고향 아! 웃음과 희망속에 힘차게 살자
이제 서론을 꺼냅니다. 예술가, 평론가 여러분들! 영동까지 멀리도 오셨습니다. 이렇게 오지 않으면 언제 영동을 찾겠습니까? 잘 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 모든 것이 기대한 것 보다 덜하더라도 영동 같은 마음으로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죽는 날까지 예술을 한다는 신념으로 예술가들의 신조를 지켜낸 여러분들을 영동은 환영할 것입니다.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는 우리나라 처음의 예술종합비평단체로 1980년 발족되어 지금까지 35년의 나이테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동선’을 모방한 많은 단체들이 생겼고, 우리행사를 벤치마킹한 시상식과 행사들도 무수히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전국의 여러 곳과 해외에서 많은 세미나를 개최해 왔습니다. 작년 청송 세미나에 이은 영동 세미나는 ‘미지의 내륙으로의 여행’ 이라서 호기심이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영원히 같이하자는 영동은 배반의 시대에 우직하게 의리를 숭상하는 모습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영동에서의 사람의 도리, 성장의 물꼬를 터준 선배, 후배, 스승 등 사람에 대한 짧은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는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영동에서의 1박2일, 우리는 서로 자연을 통해 많이 배웁시다.
저는 1970년부터 예술현장에서 잔심부름부터 시작하여, 영화조감독, 영화평론, 무용평론,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연구위원, 시와 희곡 시나리오 집필, 음악회의 작시를 제공했고, 유럽영화제에 가서 한국영화를 알리고 국제영화제를 만드는데 일조했습니다. 중국 광저우 모던 댄스페스티벌 한국대표, 저의 무용작품 중국 공연, 일본 동경 알리스 연극제 제작대표, 웨이하이 한중 미술총감독으로서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유럽영화제(이태리 생빙생 영화제) 최초 심사위원, 현대뮤지컬의 효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유관순 기념관에서 번역 공연, 때론 연극배우로, 곳곳의 문화행사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영동에 내려오는 일도 값진 문화행사의 일부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생활은 윤택해졌다고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 군중속의 고독을 겪는 예술가들의 삶은 ‘황야의 이리떼’의 분위기와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술의 생성, 향유 사이의 깊은 차이점을 간파해내고, 헤쳐 나갈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자신을 침화, 숙성 시키고, 삭히는 작업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건전한 예술가로의 성장은 우리와 주변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우리 스스로 예술가로서의 성장과 발전을 격려하며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잘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고, 자신의 무한능력을 개발해야합니다. 우예술가들의 성장 나이테는 무궁무진합니다.
우리는 엄청난 독서량과 자료보존, 정신자산의 축적으로 우수한 콘텐츠 개발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화원형에서 파생될 수 있는 우수한 뮤지컬의 소재, 콘텐츠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도모, 해외시장 진출, 축구에서 배우는 겸손한 교훈, 국가문화융성의 기본 정신, 행정 편의적 발상, 전문적 문화 육성, 향방을 모르는 문화흐름, 전국 2천5백여 개의 난장이 된 축제의 저질 문화 소비관행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들뜸에서 가라앉히기로 정신을 가다듬고, 일본정신을 수호하는 자들의 냉철을 배워하며, 중국의 부강을 이끄는 거대 지도집단의 비밀결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힘 있는 자들은 빈약한 고서 보관, 우리문화재 찾기, 유무형의 전통문화 살리기, 우리의 국격, 명장이나 장인들이 생활환경, 문화 향유, 예술계 전 분야에 대한 시간 투자, 현장 답사, 자료 수집에 걸친 작업과 진정한 예술가들의 울부짖음과 충고에 귀 기우려야 합니다.
쓴 소리로 평론가들은 예술가들을 계몽하고 리드해야할 책무가 있고, 그에 걸맞은 글 힘과 통제력이 있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예지력과 판단력, 분명한 비전 제시, 서로의 견해를 묻고, 그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자신의 견해만이 우월하다는 오만과 편견은 버려야 한다. 우리 춤의 영역다툼, 발행처가 분다한 문학 단체, 화가들의 등급을 인위로 조작하는 미술계, 발성과 기본이 되지 않은 배우들을 양산하는 연극계, 함량미달의 우후죽순 영화를 양산하는 영화계, 수준을 알수 없는 음악회들이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정부에서 던지는 떡밥에 현혹되어서는 않됩니다. 자신의 소신과 능력으로 좁은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닌 전 세계를 상대로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세계정보에 밝아야 하고, 미래전략과 ‘라이선싱 및 상품화’에도 관심을 두어야할 것입니다. 예술창작 작품의 참신한 생산과 아울러 콘텐츠 시장 트렌드, 라이선싱, 상품화 전략, 유통의 다양화, 마케팅 등에도 관심을 두어야합니다.
평론가들은 예술가들을 격려하고 그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예술가들은 혁신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자신감, 전국 어느 곳에서도 통용되는 예술 수준과 건전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오늘 영동에서 ‘예술계의 문제점과 대책’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창작 지속성 향상을 위한 실질적 도움, 타 장르 예술에 대한 이해, 예술가와 평론가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유익한 기회와 지역사회 발전의 작은 지침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총체적 능력에 대한 무서운 신뢰와 균형을 소지, 직책에 걸 맞는 예술작창작과 자신의 역할을 철저히 소화해내는 재능과 창의적 역할로 예술을 승격시켜야 한다. 전국을 커버하는 능력으로 예술가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면서 주변 예술가들이 인정하는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 능수능란한 예술 수사학으로 ‘견딤과 극복’을 자산으로 삼고, 예술구매자들을 매혹시킬 자신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개척해야 합니다.
인간의 총체적 염원의 틀에 담아 인간의 욕망과 현실의 갈등, 상상의 실현을 갈구하는 양식으로 환각파의 회화 같은 분위기로 예술을 창출해야할 것입니다. 자신의 형식과 제재는 자유롭게 선택하되 그 구조 속에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해야 할 것입니다.예술가는 자신의 고른 기량으로 예술적 가치를 입증해야합니다. 자신의 로컬리즘이 국제화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춤 등 타 장르를 아우르는 아트 판타지를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술가는 작품성을 고려하면서도 과감하게 오락 시스템, 흥행성도 고려해야합니다. 지역 발전의 축의 일부가 되는 요소인자인 예술, 지역사회는 자신을 완전 소진 시키고, 꽉 찬 소프트웨어로 언제나 베풀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예술에 대한 사랑, ‘사랑이란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둘을 주고 하나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아홉을 주고도 미처 주지 못한 하나를 안타까워하는 것이다.’(브라운)
예술가들은 도식적 작품들이 타락시킨 부분들을 우회해야하고 자신을 연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암시적 직유는 필연적 만남을 창출하고, 전위(轉位)를 통한 화평의 물길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냅니다. 자연의 청량감에 일조하는 예술로 선계(仙界)의 신비감을 만들어 내야합니다. 성공의 전조(前兆)는 많은 상징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무수한 창작의 동인(動因)을 찾아 상상의 예필(藝筆)을 잡아야 합니다.
영동사람이라면 대동단결을 위한 예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무원들은 책무 우선을 숙지해야한다. 최상품의 포도는 모래흙에서 자란다. 자양분을 섭취하기 위한 시련처럼 영동의 문화적 운명은 영동사람들이 만들고 변화시켜야합니다. 깊어 가는 이 늦가을, 먼 영동까지 진객들이 원행한 큰 뜻, ‘예술가들의 여유’는 창조입니다. 참가자들이 이 지역 문화 짜임새 완성(성장의 열쇠)을 위한 로드맵,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영동, 문화인들이 과감히 도전할 장점들이 많아야합니다. 모든 영동 사람들은 어리석을 정도의 문화적 목마름으로 영동에 문화 감꽃을 피워내야 헙니다. ‘영동 옥계폭포에서 춤추는 댄서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한 해에 한 팀씩 무용단을 늘려 보세요! 꿈은 이루어집니다. 이 시대에 신뢰를 주는 예술가들이 미학의 상층부를 넘나들며, 대중적 묘미를 찾아내는 심미안은 지고한 선에 이를 수 있습니다.
창의적 사고로 예술의 격을 높이는 일은 전투에서 승리한 장수 같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을 읽으며, 내면의 깊이를 느껴봅니다. 예술에 대한 사랑의 싹을 다시 틔어 봅시다. 어쩜 흠결은 흠모의 대상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영동 곶감의 빛나는 변신과 그 맛을 떠올리며,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이 세미나를 지켜봅시다.
감사합니다.
2015년 11월 14일
「가을 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2.4 – 1926.12.29)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Herbsttag」, Herr, es ist Zeit! Der Sommer war sehr groβ. Leg deinen Schatten auf die Sonnenubren,Und auf den Fluren laβ die Winde los.//Befiehl den letzten Fruchten, voll zu sein,Gib ihnen noch zwei suedlichere Tage,Drange sie zur Vollendung hin und jage. Die letzte Sueβe in den schweren Wein.//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 Wer jetzt allein ist, wird es lange bleiben, Wird wachen, lesen, lange Briefe schreiben. Und wird in den Alleen hin und her. Unruhig wandern, wenn die Blaetter treiben.
(릴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왕국의 프라하에서 출생, 로댕의 비서 출신)
「주여! 결실과 고독의 계절 가을이 왔습니다. 지난 여름, 성숙을 향한 당신의 뜨거운 손길은 참으로 위대하였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로 태양을 가리워 서늘함을 주시고, 당신의 그 크신 은총은 열매가 익어가는 들판에 바람으로 풀어놓아 주십시오. 당신의 완전한 말씀으로 마지막 과일까지도 무르익게 하시고, 조금만 더 따뜻한 햇볕을 주시면 과일들이 완전히 익을 것입니다. 아직도 쓴 맛이 가시지 않은 포도주는 달콤한 포도주로 변할 것입니다.이제 곧 겨울이 옵니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도 깊은 가을 밤 혼자 깨어나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것입니다. 집이 없는 사람처럼 고독한 사람도 낙엽이 흩날리는 가로수 사이를 불안스레 거닐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집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영혼이 거주하는 단 하나의 집입니다. 우리의 집은 강 건너에 있습니다. 그 집에 아직 당도하지 못했습니다. 강 건너의 집에 이르지 못했기에 우리는 고독하고 불안합니다. 우리의 영혼에 평화가 넘쳐 흐를 때, 그 때 비로소 강 건너 우리 집에 당도할 것임을 알기에, 평화를 주는 한 편의 시를 읽어 보는 것입니다. / 권희돈 시인의 시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