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문학에서 부족하다는 2%인가?
어디까지나 내가 볼 때에 그렇다.
시인은 그저 ‘좋은 말’만 하려고 눈이 붉어진 사람들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당연히 좋은 말을 하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닐진대 그것에 무슨 문제라도 있단 말인가? 삶의 교훈이 되는, 지혜로운 말만 골라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삶을 통해서 우러나오는 자성의 깨우침이어야 하는데 그것과 무관하게 세상에 널려있는 좋은 말들만을 골라 주어 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좋은 말이긴 하나 말하는 자의 진실이 빠져 있어 공허한, 그래서 죽어있는 말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우리는 모름지기 주어 담은 말과 시인 자신의 진실이 담긴 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시인은 표현을 위한 표현을 일삼는 경향이 있다. 좋은 시를 써서 인정받고자하는 경쟁의식이 작용하여 새로운 표현을 먼저 하고자 하는 욕구의 반영이겠지만 지나치게 작위적(作僞的)인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 표현의 작위성은 목적과 수단을 전도시키고, 시를 난해하게 하는 일차적인 원인이 되면서 자칫 말장난으로 전락될 가능성이 또한 크다. 그래서 시의 장식 곧 겉치레만 요란스럽지 시의 주제 곧 시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의미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부른 시인이나 문학평론가들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의 시문학은 이런 두 가지 큰 경향 때문에 평생을 바쳐 시를 써도 그 작품들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제각각 소리치고 있는 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 존재의 본질과 인간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문학의 본령이라 한다면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인간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깊지 못한 결과를 낳는 셈이다. 다시 말해,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유기적으로 바라보는 안목 곧 철학적 사유와 인간적 고뇌가 결여되어 있어 진지함이 떨어지고 그 결과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는 ‘전략적 사고’가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전략적 사고란 창작행위와 그 결과가 갖는 대인간적 대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작품의 소재나 제제를 선택하고, 선택한 소재나 제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는 과정에서의 전문적 영역 확보를 위한 한 우물 파기가 지속됨으로써 작품의 내용과 기법을 통해서 작가의 개성이 부각되어야 하는데 우리 작가들에게는 그런 장기적 대응 전략 면에서 역량집중이 잘 안되고 있다는 뜻이다.
소설에서는 결국 작품 속 인물 창조가 핵심이 되는데, 그 핵심보다도 그 인물의 외형적 활동과 그것이 이루어지는 부수적인 사회적 배경과 자연적 환경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인물을 창조하는 데에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 가능한 인간 삶의 양태를 통한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련 지식이 밑받침 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의 능력 발휘가 아쉽다.
그리고 소설이 근원적으로 상상에 의한 허구라 해서 일방적으로 상황과 사건을 전개시키거나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인물 창조는 작품을 가볍게 만드는 인자(因子)가 된다. 반대로, 객관적 사실을 소재로 소설을 쓸 때에 소설가가 사실을 추구하는 역사가인지 사실을 재료삼아 제2의 사실 같은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소설가인지 모호한 입장에 서는 것도 작품의 흥미나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인자가 된다.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 창조되는 인물이고, 작가의 지적 기반 위에서 전개시키는 가공의 사건일지라도 그 안에서는 인과관계상 당위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그 끝은 공소해지게 마련이고, 그 공소함 때문에 가볍게 느껴지는 결과를 낳는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인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공감이 전제되어야 허구 속의 리얼리티가 확보되어 독자들을 긴장시키고 작품 속으로 강력하게 끌어들이는 힘이 될 것이다.
우리의 수필문학은, 한 마디로 말해서, 지성 부족, 함량 미달이라는 생각을 떨 칠 수 없다. 독자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원하고 있는데 작가는 그만도 못한 것들을 애써 만들어내어 보여주는 꼴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인간세계 속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결과가 중요한데 수필가의 눈이나 독자의 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면 작품 속에서 기대되는 바가 없게 될 것이다.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깊이 있는 지식과 자신에 대한 솔직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작품을 창작해내고 있거나 노력하는 많은 문학인들로부터 몰매 맞을 말만 골라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판단이다. 문학은 근원적으로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며, 인간과 인간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하나의 방법론이라는 대전제 하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우리 문학은 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그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판단이다. 이것은 대중이 원하는 욕구[흥미 호기심 자극 등]을 충족시켜 주는 상업주의와의 결탁이라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늘 화려한 의상과 포장지를 걸치고 나오지만 그것이 감싸고 있는 알몸은 빈약하기 짝이 없듯이, 수사(修辭)는 넘치고 기발해도 내용상의 진지함과 솔직함이, 그러니까 살아가는, 혹은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이 떨어져 가볍다는 느낌을 주는 게 그 2%라고 나는 판단한다.
-2015. 11. 13.
이시환
*이 글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회장 :장석용) 주최, 2015년 추계 예술평론세미나에서 ‘우리 예술계의 현안과 대책’이란 제하로 문학 분야 발제문의 부기(附記)로서 씌어진 것이다. 발표는 2015년 11월 14일 토요일 영동국악체험촌 세미나실에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