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공연은 우리춤 계보에 화려한 전통을 쌓아가고 있는 김영숙의 『헌선도(獻仙桃)』, 이금주의 『태평무(한영숙류)』, 최창덕의 『승무(이매방류)』, 정양자의 『아리랑』, 박소림의 『살풀이춤(이매방류)』, 이화숙의 『즉흥무(강선영류)』, 한혜경의 『12체 장고춤』, 양성옥의 『태평무(강선영류)』, 김말애 원작의 『한국의 인상』(춤다솜 무용단)에 이르는 아홉 작품으로 꾸려졌다.
1. 김영숙의 『헌선도』(獻仙桃), 고려 문종(文宗) 때에 중국 송나라로부터 전해진 당악정재의 하나이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밤〔원소(元宵)〕에 즐거운 잔치〔가회(嘉會)〕를 갖고 왕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하여 서왕모(西王母)가 선계(仙界)에서 내려와 삼천년에 한 번 열린다는 불로장생의 선도(仙桃)를 받들어 올린다는 내용의 궁중무이다.
헌선도(獻仙桃)에는 ‘봉탁’(奉卓) : 이나윤, 김희원, ‘봉선도반’(奉仙桃盤) : 김희원, ‘죽간자’(竹竿子) : 박혜연, 송영인, ‘선모’(仙母) : 김영숙, ‘협무’(挾舞) : 이미주, 이승주, ‘봉위의’(奉威儀) : 변현조,박수정, 현민아, 홍민정, 문경민, 장하림 이가영, 김민선, 오수아, 김서경이 각각 배역을 맡아 자신의 연기를 해내고 있다.
수직과 수평의 대열, 의식을 위한 적색 주조의 화려한 의상, 악관이 선도반(仙桃盤)을 받들어 기(妓)에게 주어 그것을 왕모에게 전한다. 왕모는 그 반을 받들고 헌선도조의 원소가회사(元宵嘉會詞)를 부른다. 세 개의 복숭아가 바쳐지는 과정은 환상적이다. 경건한 제를 위해 모든 손은 흰 소매로 가려져 있다. 당시의 미의식과 사상의 깊이를 가늠하게 하는 명작이다.
○ 김영숙/일무보존회 회장, 정재연구회 예술감독,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일무 전수조교
2. 이금주의 『태평무』(한영숙류), 태평무는 궁중에서 왕이나 왕비가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거나, 임금의 업적을 기리거나 송축하기 위하여 추는 춤으로서, 한국 춤의 대부로 불리는 한성준(1874-1941)에 의하여 만들어진 창작 춤. 왕과 왕비로 대무(對舞)하여 추었음에서 비롯하여 한영숙과 강선영에게 전수했다.
지금은 서로 다른 성향으로 전수되어, 절제된 궁중정재의 미적 형식과 민속무용의 특징을 고루 갖춘 춤으로서, 신명과 힘, 의젓한 몸가짐, 조급하지 않은 디딤새와 함께, 화려한 팔 사위와 현란한 발동작이 특징이다. 현대적 시각으로도 춤 기법과 장단의 절묘함은 태평무의 내면적 견고함과 세련되고 우아한 춤으로서의 높은 미적 가치를 드러낸다.
이금주는 전통 실내악에 맞추어 노련한 춤사위로 품격과 위엄을 보여주었다.
○ 이금주/국립무용단원·서울대사대 강사역임, 울산시립무용단 상임안무·감독역임, 댓돌무용단대표, 우리춤협회이사
3. 최창덕의 『승무』(이매방류), 민속춤의 정수(精髓)로써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는 한국춤의 모든 기법이 집약되어 있다. 품위와 격조가 높은 민속춤의 예술형식을 띈 무작(舞作)으로 높이 평가되는 이 춤은 전래된 속설이 많으나 문헌에 기록이 없어 확실하진 않으나 조선 중기, 불교의식무의 영향을 받아 기방(妓房)의 예인(藝人)에 의해 창작되어진 것이라고 추정된다.
힘 있고 호화로운 장삼의 곡선미는 속세의 번뇌와 수도승의 고행을 표현하듯 공간미적 형태의 아름다움과 내면적 세계를 표출하며, 멋과 흥을 담고 있는 춤사위로 구성되어 있다. 종반부에 법고(북놀이)는 힘차고 풍요로운 민속장단의 구정놀이와 당악(세산조시)으로 구성되며 다양한 리듬으로 타주된다. 최창덕의 승무는 예능보유자 이매방으로 부터 전승된 것이다.
최창덕은 법복의 색상(검정)과 마무리 위치를 달리 함으로써 기존 승무와 차별화를 꾀하고 있으며, 음악에 따리 연기해내는 폼이 지극히 유연하다. 투명과 반투명의 효과를 적절히 구사하면서 돗자리를 동원, 승무의 철학적 깊이를 보여준다. 여유와 달관으로 북채의 움직임을 보여주며 ‘승무’를 관조와 즐김의 대상으로 만드는 특기를 발휘한다.
○ 최창덕/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97호 살풀이춤 이수자, 우봉 이매방 춤 보존회 부회장, 제1회 전국 전통무용 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 제19회 전주대사습 전국놀이대회 무용부 장원, 우리춤협회 부이사장
4. 정양자의 『아리랑』(김해랑류), 1926년 10월 1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춘사(春史) 나운규(1902~1937)가 원작, 각색, 주연한 『아리랑』은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를 고양하고 암울했던 시대를 반영한 영화였다. 이 영화는 수면아래 침잠해 있던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김해랑은 이것을 모티브해서 신 창작무용 『아리랑』을 서울 부민관(태평로 옛날 국회의사당) 무대에 올렸다.
전총 춤사위에만 익숙했던 수많은 관객들에게 무대 전체를 휘어잡으며 힘차게 율동하는 신무용 춤사위를 선보여 엄청난 충격과 반향을 불러 왔다. 신무용 『아리랑』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민족이 고초를 겪고 있던 애환과 한이 가득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질곡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이 있음을 표출하고 잃어버린 민족혼을 찾고자했던 작품이었다.
정양자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민족이 세계를 향해 힘차게 표호하고, 웅비하는 한민족의 기상을 드높이고, 밝은 미래를 창조하기를 염원한다. 샤막 뒤, 가야금 선율에 따라 추던 춤은 샤막이 걷히고 춤은 고조되고 역동적인 면을 더 강하게 강조하고 표현한다. 강한 의식이 깔리는 춤이지만 그녀가 재구성한 춤사위는 붉은 치마 선처럼 섬세하고 곱다.
○ 정양자/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수훈, 경상남도 도립무용단 초대간장, 제21회 경상남도 문화상 및 마산시 문화상, 록파 무용단 단장, (록파)정양자 춤보존회 회장
5. 박소림의 『살풀이춤』(이매방류), 살풀이춤은 고도로 다듬어진 전형적인 기방예술로서 한과 신명을 동시에 지닌 신비한 느낌을 주는 춤이다. 살풀이춤(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1990년 지정)이란 명칭은 본래 수건춤, 즉흥춤이다. 한말에 한성준(韓成俊)이 춘 춤을 살풀이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 한성준은 조선조 중기 이후의 살풀이춤을 계승,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살풀이춤은 교방과 기방으로 들어가 예능적 무용으로 다듬어져 전승되어 왔다. 교방의 멤버들 중에는 무당 출신들이 많았다. 무당춤이 살풀이춤이 된 셈이다. 살풀이춤은 흰 치마저고리에 옷고름을 늘어뜨리고 흰 수건(또는 천)을 손에든 채 ‘살풀이곡’에 맞추어 맺고 어르고 푸는 3가지 기본 동작을 중심으로 추는 예능 춤이다.
박소림은 핑크빛이 도는 한복에 이매방류의 춤의 특징인 흥이 많고 춤 마디마디에 멋이 흐르며, 즉흥성을 띠고 있는 『살풀이춤』을 남도 무악인 ‘살풀이곡’에 맞추어 결이 곱게 추어낸다. 교방예술의 원형을 계승한 그녀의 ‘살풀이춤’은 기교의 과장이나 무리하게 천을 운용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개성을 자신이 알고, 장점을 살린 그녀의 춤은 독특한 춤 향이 있다.
○ 박소림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97호 살풀이춤 이수자 (이매방류), 우리춤협회 부이사장, 동작문화원 이사 겸 예술단 부단장
6. 이화숙의 『즉흥무』(강선영류), ‘즉흥무’는 어떤 양식 없이 자유자재로 춤출 수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음에 맞춰 서서 춤춘다하여 ‘입춤’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수건을 들고 춘다하여 ‘수건춤’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 춤은 치마, 저고리 차림에 굿거리, 자진모리장단에 의한 단순한 구조로 되어있지만 춤추는 사람의 예술적 자질을 평가하는 춤이다.
한성준이 창안한 ‘즉흥무’는 그 문하생 강선영에게로 이어지고 전통춤의 백미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이 춤은 연희자의 감흥에 따라 즉흥적으로 춤을 추지만 그 자유정신 속에 일정한 내적 규율이 있다. 한성준은 『조선음악무용연구소』 원생들의 졸업시험에 반드시 이춤을 추도록 하여 춤 실력을 평가 하였다. 춤추는 이의 창작성을 볼 수 있는 춤이다.
○ 이화숙/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예술종학교 전통원 출강,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춤 보존회 회장, (사) 우리춤협회 부이사장
7. 한혜경의 『12체 장고춤』, 12체 교방 장고춤을 일컫는다. 일제말기 대정권번의 김취홍에 의해 추어졌던 장고춤으로써 오천향을 거쳐 한혜경에게로 전승된 춤이다. 현재의 장고춤은 ‘12체교방장고춤’과 故이정범의 ‘호남우도설장고’ 가락을 접목하여 무대 예술화된 춤으로써 ‘12체장고춤’이라 불린다. 독무로도 이 춤은 매력적이지만 군무로 변형되면 장관을 이루는 춤이다.
장고 12체로 신명의 미학을 보여주는 이 춤은 은근히 흥을 돋우다가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는 작품이다. 느린 장단으로 흥청거리며 장고춤을 추다가 빠른 장단으로 몰아 도약하면서 흥을 돋운다. 상체의 아름다운 선과 발동작의 움직임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장고를 비스듬히 어깨에 둘러메고 다양한 장단의 변화와 도약을 이루고 있는 춤이다.
한혜경은 흥과 멋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자태, 표정연기, 멋들어진 가락의 춤사위로 한국 대표민속춤을 자신감있게 연기해낸다. 장고를 멘 12가지의 독특한 춤사위가 그 신명과 멋을 더 하며 예술성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장고의 품격을 높인 돗자리, 자연과 꽃을 연상시키는 움직임,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춤은 과히 명인의 안목을 보여주는 연행(演行)이었다.
○ 한혜경/ 12체 장고춤보존회 대표, 한국전통춤협회 부이사장,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97호 살풀이춤 이수자
8. 양성옥의 『태평무』(강선영류), 왕십리 당굿의 무속장단과 춤사위를 바탕으로 한 태평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써 강선영이 춤 보유자 이다. 태평무는 왕과 왕비가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춤이다. 의젓하면서도 경쾌한 춤사위, 가볍고도, 절도있게 몰아치는 발 디딤새가 신명을 불러오는 춤으로써 정중동의 흥과 멋, 미적 형식을 가진 완벽한 춤이다.
춤은 율동이 크고, 화사하고 우아한데, 겹걸음, 따라붙이는 걸음, 잔걸음, 무릎들어 걷기, 뒤꿈치찍기, 앞꿈치꺽고 뒤꿈치 디딤, 뒤꿈치 찍어들기, 발옆으로 밀어주기 등 가벼우면서도 절도 있게 몰아치는 발디딤새의 기교가 섬세하고 다양하다. 장단과 발디딤이 현란한 멋을 보여주지만 상체의 호흡은 절제미를 보인다. 음악은 경기 도당굿을 바탕으로 낙궁, 터벌림, 섭채, 올림채, 도살풀이, 자진도살풀이 등으로 연주된다.
활옷을 입고 한삼을 끼고 추다가 상궁이 받아들면 당의를 입고 추며, 퇴장하면서 끝이 난다. 발 디딤새는 신명을 불어오면서 기량의 과시가 돋보이게 하는 춤으로써 손색이 없다. 우리 민속음악의 대표적 가락과 장단이 고루 어우러져 손놀림은 우아하고 섬세하다. 양성옥이 연기해낸 『태평무』는 절제미와 기교의 과학적 분류를 살펴보게 하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 양성옥/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무용과 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전수조교, 한누리 무용단 예술감독
9. 김말애(대한민국 춤원로원 부원장) 원작, 춤다솜 무용단의 『한국의 인상』, 봄 햇살 아래 파릇한 새싹이 돋아날 무렵, 아지랑이 속에 갖가지 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색과 향기를 뽐낸다. 옛 여인들이 밖으로 표출해내지 못한 내면의 정염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색상(연두, 빨강, 분홍, 보라, 오렌지 등)의 의상을 입고 자신들의 한과 흥을 마음껏 나타내는 화사한 부채춤으로서 수려한 우리나라의 산수와 풍경과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한국의 인상』은 이날 마지막 피날레 작품으로 손색이 없었다. 김말애 안무가의 이 작품은 1986년 아시안 게임 경축공연으로 추어진 『청산녹수』 중 한 장면에서 발췌한 것이다. 7인 군무로 펼쳐진 작품의 배경막에는 코리아, 소나무가 떠있고, 한국에 대한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부채춤은 김백봉이 창안하여 1954년 11월 서울 시공관 무대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김말애의 ‘부채춤’은 그 춤을 만들어간 모두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머리 위에 족두리를 얹고, 원색의 복식에 양손에 무선(巫扇) 모양의 꽃부채를 들고 창부타령의 굿거리·자진모리 장단에 따라 생동감 넘치게 춘 춤은 부채춤의 원형(圓形), 색채감, 개개인의 개성 드러내기, 위치 만들어내기, 다중회전, 부채를 펴고 접고 돌리고 뿌리는 기교 등을 기억으로 남긴다.
○ 김말애/대한민국 춤원로원 부원장, 경희대 무용과 명예교수
제9회 우리춤축제 ‘명작명무전’ 세번째 공연은 무림의 고수들이 진수를 보여준 명무의 향연이었다. 명인들은 그들의 진솔된 춤 연기로 자신이 고수임을 입증시켰다. 그들은 전통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자유분방을 자제하고 내공으로 자신을 숙성시켰다. 우리 무용사에 큰 획을 그은 이번 공연은 익히 알고 있지만 잊혀서는 안 될 소중한 무형의 유산을 보여주었다.
장석용 글로벌 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