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에 깔린 조망, 미디어의 홍수 속에 미디어가 제2의 자아, 브랜드가 되는 세상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스며들어 있다. 미디어 시대의 현대인들의 모습과 경향은 『트렌드』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공사회가 현실처럼 인식되고 고통이나 불안이 없는 평화의 공간을 형성한다. 안무가는 인간의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소통과 숨결, 원초적 자연을 그리워한다.
정한결이 그려내는 판타지의 무대는 지금의 서울 한복판이다. 분홍, 보라, 녹색, 연두로 설정된 ‘맨발의 청춘들’이 사회를 클럽 공간으로 여기고, 인공광(人工光)에서 금세 튀어나올 것 같은 열정을 보이며, 손발 끝에서 머리끝까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손끝에서 몸으로 움직임이 확장되면서 안무가가 밝히고자하는 미디어 중독 현상들이 도출된다.
이미지의 증폭은 거대한 조형을 이루며, 그 조형은 신비적 인자(因子)로 부각된다. 한국무용에서 출발한 컨템포러리 춤의 사회학적 접근은 모험을 동반하지만 정한결의 춤은 그 한계를 극복하고, 적극적 동참과 흥분을 불러일으키며 도도하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다. 시장가치를 확보하고, 정교한 수사로 세태를 풍자하는 정한결의 춤은 관객들의 적극적 지지를 받는다.
춤이 진행되면서 이루어지는 여인 두 쌍의 춤 연기의 조합은 미래 사회의 진전의 일부를 암시한다. 음악은 그 간극을 메우고 있고, 관찰자 여인 정한결은 따스한 응시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춤의 핵심을 찌르며 유연한 몸동작으로 간결하게 주제를 타고 오르는 상징성은 신선하며, 건강한 힘을 끌어내어 춤의 은유탑(隱喩塔)에 진입하는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한 여인의 안경이 벗겨진다. 세태에서의 탈피, 무리에서의 이탈은 중독에서 벗어남처럼 고통을 수반한다. 타인과의 만남을 힘들어한다. 불협화음을 상징하는 신서사이즈의 파열음, 기계가 굴러가는 듯 한 사운드, 기계음에 맞춘 여인 정한결의 어둠속의 춤, 독무로 추어진다. 그녀는 춤 속에서 깨우침을 주는 관조의 여인이다. 안경을 벗은 여인, 눈을 가린 채 몸을 비튼다.
구부린 동작을 반복하며 등장하는 여인들, 모두 안경을 벗은 모습이다. 자유자재로 짝을 바꾸어가며 현실을 직시한다. 눈을 가린 여인도 서서히 전진한다. 파도소리, 움직임의 확장이 서정적으로 이루어짐을 알린다. 리듬감을 탄 몸은 반복되는 종소리처럼 평온감을 느끼며, 움직임의 기(氣)를 모은다. 네 여인과 한 여인이 보여준 자유의 춤은 섬광 속에 빛난다.
현대무용을 격상시킨 무용가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정한결은 동덕여대 무용과 박사출신으로 이전의 그녀의 안무작 『도시인』, 『자리비움, Off-Line』, 『터치 블루, Touch Blue』에서 보여준 도회적 감각으로 차가운 현대인들의 심연에 자리 잡은 따스한 정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녀가 『트렌드』를 통해 탐색한 춤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출연 나수진, 임예지, 정라일락, 조단비, 정한결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