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文舞)를 대표하는 『위대한 스승 공자』(2004)와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무무(武舞) 『영웅 이순신』(2015)의 창작은 ‘문묘일무’를 연구해온 안무가로서의 당연한 도리다. 방대한 분량을 축약한 대작 『영웅 이순신』은 나라사랑에 불탔던 이순신, 춤 사랑에 일생을 매진한 임학선 같은 자신의 작업에 헌신하는 모두에게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가 되었다.
문무(文武)를 겸비한 조선의 제독이자 장군인 이순신이 마흔 일곱에 맞이한 임진왜란은 전쟁 속에 활짝 핀 그의 인간정신, 책략, 휴머니즘을 발휘한 최고의 무대였다.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며, 애국, 애족, 효심의 아이콘으로 최근에 더욱 부각된 이순신은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 김상휘, 김영조 연출의 드라마 『징비록』에 이어 춤으로 만들어진 임학선 안무의 『영웅 이순신』으로 확장된다. 모두가 작품성과 흥행성에 있어서 우위를 입증하였다.
원 소스 멀티 유스의 전형, 고뇌와 피로 쓴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포스트모던한 디지털 숲에서 정공법으로 현대성을 확보한 작품이다. 일무 음악에 맞추어 전개된 공연은 사선의 탑조명이 공간감을 확장시킨다. 무대 중앙 후미에서 문이 열리면 붉은 눈알의 용머리를 든 이순신(김주빈)이 등장하고 바닥에는 거북선의 등을 상징하는 하늘을 향해 누운 여성무용수들의 두 발이 올라가 있다. 신비감이 감도는 춤은 승하선 시의 배의 층계를 연상시키고, 여덟 명씩 짝을 이룬 여성무용수들(병사들)의 출정을 맞이한다. 백색(조선군)의 승리와 적색(왜적)의 패퇴 모습이 재현된다. 이어 여인들은 다양한 물결을 연기해낸다. 이 물결을 헤치고 이순신이 늠름하게 바다로 나아간다. 진격의 쇠 나팔소리가 우렁차게 바다를 울린다.
임학선의 작품이 평가받는 점은 1) 한국인들의 가슴 한편에 도도히 자리 잡고 있는 공자 중심의 유교적 가치관의 발현과 실천을 작품 창작의 우위에 둠 2) 이순신을 주인공의 삼아 역경을 극복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형적인 인물로 삼음 3) 상징과 기호, 구성과 진법, 색상과 심도로 단순화를 시도함 4) 공자제사인 석존대제(釋奠大祭)의 문묘일무, 이순신의 제사인 둑제(纛祭)의 경험을 살려 독창적인 방법으로 작품을 승화시킴 5) 작품을 부각시킬 수 있는 문학적, 공간적, 서정적 상징코드(‘바다’), 역사적 상징코드(‘난중일기’, ‘통영승전무’), 시각적 상징코드( ‘거북선’), 전통무의 상징코드(‘강강술래’, ‘무무’)를 잘 활용하고 표현함 6) 역사무용극의 건조함을 덜어내는 조명과 사운드와 조화된 심리묘사 7) 평화의 수호자로서의 이순신 이미지 부각 구체화 8) 이순신장군의 제사음악인 “정동방곡”에 맞추어 간척(干戚:방패·도끼)을 들고 ‘무무’가 추어짐 9) 문무와 무무(칠덕무(七德舞)의 진전으로 ‘간척무’로 삼음 점 10) 다년간에 걸친 연구에 기초함 11) 대규모 무용수들이 일사분란하게 주제와 역할에 맞는 자신의 역할의 연기를 해냄 12) 전반적으로 잘 짜여 진 통일성 등에 있다. 결국 ‘임학선댄스위’가 추구하는 1)석전대제의 ‘문묘일무’ 콘텐츠 개발의 지속화를 통한 한국춤 발전 도모 2) 무용ㆍ유학ㆍ영상의 융복합적 구성을 통해 한국창작춤의 새로운 장르 개척 3) 한국춤의 브랜드 가치 창출 및 세계무대 진출 소스 구축하겠다는 생각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목단춤과 검무로 승전의 기쁨과 모친의 수연이 베풀어진다. 의기 내산월이 연희를 이끈다. 궁중춤 형식으로 화려하게 펼쳐지는 목단춤 사이사이로 검무가 들어와 팔방의 원무로 돌아가면 연희는 절정에 달한다. 장군복을 입은 이순신과 백색 한복을 걸친 모친은 무희들과 연희를 즐긴다. 내산월이 이순신에게 목단꽃을 선사하고, 이순신은 그 꽃을 어머니에게 안겨준다. 무희들도 차례로 꽃을 선사한다. 목단꽃 속에 파묻힌 모친 또한 기쁨의 모습이다. 연희가 끝나고 이순신은 선조를 향해 북향배를 올린다. 이순신의 충효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전쟁사극 형식의 무용극은 전통무용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검무를 수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한국창작 무용은 전통무용의 다양한 원용의 형태를 보여주는데, 궁중무에서 변형된 목단춤은 목단의 의미를 살리면서 충성과 충효의 열정을 살리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다양한 복식의 의상, 전통을 주조로 한 사운드도 형식적 층위를 격상시키는 도구다.
이순신과 선조의 갈등,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있던 꽃이 하나 둘 떨어지고 이내 실신한다. 이순신은 파직되고 왜장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선조, 이순신, 왜장 그리고 어머니의 4인무가 암울한 전쟁의 소용돌이를 예감케 한다. 떨어진 꽃은 죽음의 넋이 되어 무대에 나뒹군다. 죽음의 넋을 위로하던 어머니마저 운명을 달리하였다는 소식이 백의종군 중 전해진다. 빈상여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루는 이순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내산월, 슬퍼도 내색할 수 없는 이순신의 소리 없는 통곡이 민초들의 슬픔으로 이어지고, 끝없는 흐느낌으로 바다 위를 흐른다.
이동 무대는 부지런히 무용수들을 무대 밑으로, 위로 오가면서 변화를 준다. 전쟁의 분위기와 장군의 이미지를 구체화 시키는 무예연마 장면, 평화 시에는 잔잔한 바다를 상징하는 바다 이미지를 여성 춤꾼들은 연기해낸다. 무사들은 바다 위에 있음을 무사가 여성 춤꾼들은 따라가는 것으로 표현한다. 깃발은 계속 움직이고, 인물의 기하학적 배치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치이다. 춤꾼들은 인물들의 성격, 상황, 주변들을 지속적으로 묘사해내고 있다.
이순신의 고뇌와 의지를 난중일기에서 읽어 본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앉아 홀로 신중히 하는 이순신. 그의 마음을 필체·학체·궁체의 춤으로 담아내는 내산월. 그러나 결전을 눈앞에 둔 이순신은 사랑하는 여인마저 뒤로 한다. 그들의 못다 한 사랑이 애처롭다. 내산월 앞에 시련이 닥친다. 왜장이 그녀를 취하려 한다. 강하게 저항 할수록 왜장은 더욱 거칠게 그녀를 낚아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민초들은 강한 분노로 몸부림친다. 그들의 몸부림은 강강술래의 울부짖음이 되어 하나로 단결된다. 손에 손을 맞잡은 그들의 몸과 몸은 어느새 긴 성벽으로 이어져 진을 친다. 성벽 넘어 울돌목으로 판옥선의 남성군무가 일렬종대로 오버랩 된다.
시조, 전통춤의 여러 갈래, 로맨스의 도입, 선과 악의 공존, 강강술래의 연원 등이 작은 명제로써 등장함으로써 대상과 존재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갇힌 사고의 공간, 소원해져있던 역사의 영웅 이순신을 열린 공간에서 대면하는 일은 더욱 신성시 되는 특이점이 있다. 추악한 권력과 싸우면서 민초들의 참혹한 현실을 몸으로 껴안으면서 옹호는 작업은 거룩하다.
울돌목의 판옥선 병사들. 일렬종대로 늘어선 판옥선의 선두와 후미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일렬횡대의 일자진을 친다. 쇠나발이 울리고 격군이 북을 치고 병사가 노를 젓는다. 이순신이 좌현과 우현을 지시하면, 노가 물위로 치솟았다 잠기기를 거듭하고 격군들의 북소리가 다급해진다. 격군들은 몸을 숙이고 젖히며 온몸으로 노를 젓는다. 좌현의 배가 비틀거리고 판옥선이 곤두박질한다. 이순신은 우현으로 지휘통제를 잡아가고 병사들은 활시위를 당긴다. 붉은색 모자를 쓴 왜병들의 공격에 쫒고 쫒기는 상황. 이순신과 왜장의 진검승부, 왜장의 검이 허공을 찌르며 승리를 자신할 때 장군은 최후의 결전을 지시한다. 격군들의 북소리가 난타로 바뀐다.
전쟁의 사실(史實)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면서 무용극은 공감(共感)의 절정, 숙연한 승리의 기쁨, 처절한 항전의 승리감을 맛보게 한다. 임학선은 서사와 서정의 간극을 생명의 상징들로 채우고, 손가락이 터지고, 발이 부러지는 참혹한 상황에서도 승전이라는 아름다운 핏물을 연출해낸다. 슬픔의 전장에서 피워낸 평화의 내음이 전율로 퍼진다.
강강술래로 단결된 민초들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병사들에게 용기를 북돋운다. 병사들은 다시 일어나 맨몸으로 최후의 사투를 벌인다. 병사들은 몸과 몸이 서로 맞부딪친다. 왜장이 휘청거리며 이순신 앞에 무릎을 꿇는다. 순간 무대는 정적이 흐른다. 잠시 후, 판옥선의 병사들은 승리의 기쁨으로 넘쳐나고, 기쁨에 취한 민초들의 치맛자락이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다.
강강술래는 마지막 힘까지 보태겠다는 여린 민초들의 결의의 결정(結晶)이다. 모두가 사라질 운명 앞에, 이순신 군단의 제2의 무기고 역할을 자임한 행위의 증거였다. 전쟁의 카타르시스로써 ‘강강술래’는 슬픔과 기쁨을 안고 있다. 분노와 탄식을 잠재우고, 오로지 의지로만 남는 생존의 상징이다. 조국을 수호하는데 있어서 합심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판옥선의 영웅 이순신. 그의 정신은 ‘평화’를 상징하는 ‘무무’로 빛난다. 이순신 장군에게 올리는 헌무, 둑제(이순신장군제사)가 ‘정동방곡’(둑제 제사음악)에 맞추어 추어진다. 복원 이후 처음으로 36명이 육일무(六佾舞)의 형식으로 이 춤을 이순신에게 헌상한다. 이순신은 미소로 화답한다. 나라를 위해 평생을 물위에서 살았던 이순신, 모두가 그를 기리면서 춤은 종료된다.
임학선은 한국창작무용의 대표적 안무가의 한사람으로써 그녀가 직조한 『영웅 이순신』은 춤의 결론부에 펼쳐진 헌무(獻舞)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앞으로 이 작품은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져 전국과 해외를 순회할 것이다. 영웅 이순신이라는 존재의 신비와 그의 영웅적 행위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매력과 예술적 가치를 소지한 『영웅 이순신』의 탁월성에 찬사를 보낸다.
(출연: 김주빈(이순신, 조인호(왜장), 정향숙(내산월), 유혜진(내산월), 정보경(내산월), 우멩(선조), 이혜준(선조), 김미영, 노한나, 김수정, 박완주, 이정민, 김라희, 이혜민, 김세정, 조민아, 김동민 등)
사진제공=임학선댄스위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